◎ 전 세계 0.00001%의 슈퍼 리치, 그들은 누구인가?
당신은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자’라 부르는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인 젊은 백화점 재벌 김주원(현빈 분)에게 부자란 ‘매일매분매초 국내외 통장 잔고가 불어나기 때문에, 자기 통장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석유 재벌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 역시 비슷한 정의를 내렸다. “자신이 가진 돈을 셀 수 있는 부자는 진정한 부자가 아니다”
과거에는 ‘백만장자’, ‘600만 달러의 사나이’ 등 100만 달러(11억 원)가 부의 척도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화폐 가치가 변화한 현재에는 100만 달러를 가진 사람을 부자라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최근 슈퍼 리치의 동향을 추적하는 보고서들은 억만장자를 부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매년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를 발표하는 미국의 경제저널 「포브스(Forbes)」는 조금 더 엄격한 잣대로, 부자 중의 부자 ‘슈퍼 리치’를 선정한다. 「포브스」는 상장기업 주식부터 비상장기업 투자 지분, 보유 부동산, 현금성 자산, 심지어 요트나 미술품 같은 고가 수집품까지 망라해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거부들을 대상으로 억만장자를 뽑는다. 부자 피라미드의 상층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0.00001%의 사람만이 ‘슈퍼 리치’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가늠조차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이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 세계 부를 장악한 슈퍼 리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이 응축된 짧은 평전이자, 생물처럼 진화를 거듭하는 기업 이야기이며, 전 세계 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슈퍼 리치를 모르고서 부의 속성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이들을 빼놓고 세계 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 부의 과거가 아닌 부의 현재를 조망하다
해마다 3월이면「포브스」는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를 발표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다’는 식으로 가볍게 소비되고 말 뿐이다. 2010년 멕시코의 재벌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Helu)이 빌 게이츠(William H. Gates)가 14년간 지켜온 ‘세계 1위 부자 타이틀’을 빼앗았다. 이때도 국내 언론은 빌 게이츠가 세계 경제의 변방인 멕시코의 재벌에게 왕좌를 빼앗겼다는 정도의 흥미위주의 기사를 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슈퍼 리치의 순위 변동은 가십으로 소비되고 말 정도의 가벼운 팩트가 아니다.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등재된 슈퍼 리치의 면면은 변화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포브스」가 집계를 시작한 1994년부터 일본은 8년 연속 세계 1위 부자를 배출한 ‘슈퍼 리치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일본은 100위 안에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단 한 명만을 올렸을 뿐이다. 반면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브릭스(BRICs) 국가 출신 비율은 2006년 10%에 불과했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20%로 늘어났다. 슈퍼 리치의 면면을 살피는 일은 결국, 세계 경제 구도의 흐름을 살피는 일이다.
이 책은 ‘세계 경제가 대전환 국면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Warren Buffett)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시멘트 재벌 알리코 단고테(Aliko Dangote)는 한국 최고의 부자 이건희보다 재산이 29억 달러나 많다. 미국인으로는 다섯 번째 부자인 코크 형제(Charles-David Koch)는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2012년 미국 대선의 향배를 가를 중요 변수로 꼽힐 만큼, 미국 정계를 막후에서 지배하는 숨은 권력자들이다. 한국 이동통신업계 1, 2위 기업인 SK텔레콤과 KT가 세계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반면, 인도 수닐 미탈(Sunil Bharti Mittal)의 바르티 에어텔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이동통신사다.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 밀워드 브라운(Millward Brown)이 발표한 ‘가장 가치 있는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한국 브랜드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삼성은 55위지만, 리옌훙이 이끄는 검색엔진 바이두는 25위를 차지했다.
세계 경제의 흐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전 세계 부를 장악한 주인공 또한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부의 빠른 유속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지는 해와 뜨는 해’, 슈퍼 리치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 시각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전 세계의 슈퍼 리치들을 소개함으로써, 부의 과거가 아닌 부의 현재를 조망하고 있다.
◎ 세계 경제의 주춧돌, 글로벌 기업의 성공 전략을 좇다
40인의 슈퍼 리치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부를 축적했는지 좇는 여정은 하나의 기업이 개화해서 만개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으로 손꼽히는 BMW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임러벤츠의 하청기업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BMW를 구한 것은 헤르베르트 크반트(Herbert Quandt)였다. BMW를 잃을 수 없다며 노력하는 노동자와 소액주주들의 열정이 BMW뿐만 아니라 다임러벤츠의 대주주이기도 했던 헤르베르트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다(241쪽). 펀드매니저로 승승장구하던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성공이 약속된 월가를 미련 없이 떠나 자신의 집 차고에 쇼핑몰을 차리게 된 계기는 ‘인터넷 이용자가 매년 스물세 배씩 급증한다’는 한 줄의 기사였다(47쪽). 대도시를 장악하고 있던 코카콜라와 펩시에 맞서 ‘페이창’를 출시한 쭝칭허우는 ‘농촌부터 파고들어 도시를 포위한다’는 마오쩌둥의 혁명 전략을 콜라 마케팅에 활용해 성공한다(252쪽).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을 호시탐탐 노리는 락시미 미탈(Lakshmi Mittal)은 철을 녹이는 고로 하나 세우지 않고 세계 1위의 철강회사 아르셀로 미탈을 이끌고 있다(307쪽).
40인의 슈퍼 리치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유니클로, 자라, 아마존닷컴, 바이두, 나이키, 루이비통, 알디, 이케아, 위프로, 페이스북, BMW, 폴크스바겐, 포르셰, 닌텐도, 와하하 그룹, 로레알 등 세계 경제의 주춧돌과 같은 수많은 기업들의 성공 전략을 만날 수 있다.
◎ 부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로 이끈 부자 DNA를 파헤치다
40인의 슈퍼 리치가 부를 축적한 방식을 파고들다보면 정경유착, 독점, 노동력 착취 등 치부가 더 많이 부각되는 인물도 있고, 파고들수록 존경심이 깊어지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국적, 분야, 성공 전략 등 모두가 제각각인 이들 슈퍼 리치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사는 ‘부자 DNA’를 남들보다 더 일찍, 더 독하게 발현시켰다는 점이다.
인도의 이동통신 재벌 수닐 미탈의 부자 DNA는 ‘추진력’이다.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로켓이 추락하지 않는 이유는 최초의 추진 동력을 과감히 버리기 때문이다. 동력 분리에 실패하면 로켓 전체가 추락을 면치 못한다. 기업도 이와 비슷하게 창업 초기에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추진력이 회사가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추진력이 한계에 직면했을 때가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할 때다. 자전거 부품 공장으로 부의 발판을 만든 수닐 미탈은 발전기, 버튼식 전화기, 이동통신 등 끊임없이 신사업에 도전하며 기업의 진화를 이끌었다.
제프 베조스의 배짱, 카를로스 슬림의 치밀함, 손정의의 돌파력, 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의 강박 등 슈퍼 리치들을 부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로 이끈 부자 DNA는 아직 발현되지 못했을 뿐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이 책은 40인의 슈퍼 리치들에게 발현된 부자 DNA를 찾아내 독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슈퍼 리치의 삶을 관통하는 부자 DNA는 우리가 앞으로 겪을지 모를 수많은 삶의 격랑에 대처할 수 있는 커다란 지혜가 되어줄 것이다.
◎ 수십 수백 조의 부도 작은 공깃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40인의 슈퍼 리치는 수십 수백 조라는 일반인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감히’ 넘볼 수조차 없는 존재들은 아니다. 그들의 부도 작은 공깃돌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루이비통을 턱 밑까지 추격한 자라(ZARA)는 작은 옷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이 옷 가게의 주인은 가정형편 때문에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무급 견습직원으로 시작해서 15년 간 옷 가게 종업원으로 일한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다. 오르테가는 스페인 최고 부호이자 패션 업계에서는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다음으로 부자다(249쪽). 삼륜차에 빙과를 싣고 다니며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푼돈을 버는 마흔두 살의 남자에게서 어떤 미래가 그려지는가? 정규 학력이 낮아 초등학교에서 허드렛일밖에 할 수 없었던 쭝칭허우는 마흔둘에 동업으로 학교 앞에 매점을 차렸다.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그는 어린이 건강음료를 만들어 빅히트 치며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탄다. 지금은 중국의 ‘국민 음료회사’ 와하하 그룹의 회장으로 중국에서 돈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호가 되었다(249쪽). 수도와 가스 등 영국의 기간산업까지 인수하고 있는 홍콩 최고 재벌 리카싱은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다.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뜨자 열다섯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고교 과정을 혼자 공부했다. 또 70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 시간씩 영어 뉴스를 듣는다. 지식을 향한 갈구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리카싱은 영문판 화학 전문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단 한 줄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39쪽). BMW,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지멘스 등 세계 최고의 자동차와 전기전자 관련 기업들이 즐비한 독일에서 최고 부자는 할인마트 알디의 카를 알브레히트(Karl Albrecht)다. 검약이 몸에 밴 독일인의 소비심리를 파고든 알브레히트는 탄광촌의 작은 식료품 가게를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부자들도 찾는 독일의 ‘국민 마트’를 만들었다(55쪽).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나이가 많고, 배운 것이 없고, 전문기술이 없다는 사실은 부자를 꿈꾸는 자에게 걸림돌이 아니다. 오히려 역경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이들은 작은 공깃돌을 태산으로 만들며 수십, 수백 조의 부를 일궈냈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비루한 삶을 청산해주기를 기대하며 복권 한두 장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그러나 복권은 유통기한 1주일 치의 희망에 불과하다. 우리들 삶의 반전은 ‘로또’ 같은 한 장의 복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며 흘리는 한 방울의 ‘땀’에 있다는 것을 많은 슈퍼 리치들이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