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 년간 나온 사라진 언어에 관한 모든 책 중에서
지적으로 가장 도전적이고 설득력 있는 책”
『타임즈 리터러리 서플먼트』-
ㆍ 사라져가는 언어를 각인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왜 중요한가
ㆍ 언어 다양성 회복을 위해 현장에 뛰어든 한 언어학자의 고군분투!
ㆍ 출간 후 언어학계와 인류학계를 비롯, 다양한 인문학/사회과학 저널의 극찬을 받다
ㆍ 존폐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실체를 보여주는 상세한 지도, 도표, 사진 수록
2010년 12월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 레드북 홈페이지’에 제주어가 인도의 코로어와 함께 ‘소멸 위기 언어’로 등재되었다.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기준한 소멸 위기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로 규정되었는데, 이는 마지막 5단계인 ‘소멸하는 언어’ 바로 직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표준어’라는 규범 속에 각 지방의 방언들은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희화화 대상이 되거나 주요 인물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제주어가 처한 상황은 사람에게 생명이 있듯 언어에도 생명이 있고,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데 인간의 관심이 필요함을 역설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비단 한 나라의 상황이 이럴진대 세계로 그 범위를 넓힌다면 어떨까? 이번에 번역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원제: Dying Words)는 세계 속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단순한 해외 토픽감으로 스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제기한 문제작이다. 즉 이 책은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언어가 생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언어 다양성의 현장에서 생동감 있게 기술하고 사유하는 한 언어학자의 탐사보고서다.
보고, 듣고, 느껴라! 오늘날 위기에 처한 언어의 존재를
“언어학 현지답사를 하다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언어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전에 생각했던 가능성의 경계를 계속 수정하게 된다. 이는 현지답사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 하나다.”(114쪽)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언어학자들은 자기 나름의 실험실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기술하고 있는 언어에 대해 어렵사리 이뤄낸 유창성을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여긴다. 유창성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그저 자신이 배우려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긴 여정, 때로는 굴욕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있기도 한 생생한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다.”(98쪽)
‘현장 언어학자’로 명성을 떨치며 언어 세계의 이론과 경험을 전방위적으로 사유하는 니컬러스 에번스의 노작??『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출간 직후 언어학계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계를 비롯한 각종 인문ㆍ사회과학 저널의 극찬을 받은 본 책은 사라지는 언어의 위기에 대한 추상적, 규범적 논의에서 벗어나 사라져가는 언어의 증언자들과 직접 생활하며 겪은 삶의 기록에서 배어나온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이제이북스, 2003), 『언어의 죽음』(이론과 실천, 2005), 『언어의 종말』(작가정신, 2008), 『언어들의 죽음에 맞서라』(나남출판, 2011) 등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논하는 책들이 국내에도 여러 권 출간되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이전의 책들이 갖지 못했던 ‘현장성 가득한 글쓰기’를 시종일관 구현한다. 언어학계에서 ‘현장 언어학자’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저자 니컬러스 에번스는 책에서 언어에 관한 법칙을 학계의 기계적ㆍ전문적 기술 형태로 설명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대중이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상황들을 다 감안하며 언어를 둘러싼 문제를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수많은 인터뷰와 관련된 참여 관찰 기록들을 통해 몸소 보여준다.
에번스가 추구하는 ‘현장성’이란, 흔히 소수 언어를 어렵게 간직하고 살아갔던 그리고 끝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언어 구사자에 대한 얕은 애도로 귀결되는 수단이 아니다. 이는 ‘소수 언어’의 중요성을 증언해줄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미개한 문화와 사회 구조를 갖고 있을 것이란 편견을 깨뜨리는 중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무기이자, 언어학이라는 분야가 갖는 한계를 고백하며 다양한 학문의 협력 관계 속에서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타파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를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3가지 지점
그렇다면 언어 다양성의 위기에 맞선 도전이라는 메시지는 비단 관련 학계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언어학자들과 언어공동체, 전문지식 없는 대중이 공동으로 노력해야만 이 도전에 맞설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부류의 독자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쓰고 노력했다.”(28쪽) 이 맥락 안에서 에번스는 현장 조사에서 기록한 다양하고 방대한 연구 자료를 토대로, “전 세계적으로 조용하면서도 급격히 퍼져가고 있는 언어 소멸에 대해 우리가 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무시받아온 무명의 언어들이 전체 인류 유산에 보태야만 하는 지혜가 얼마나 다양하고 심오한지, 너무 늦기 전에 이 언어들에 귀 기울이고 이 언어들로부터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447)를 살피는 여행을 독자에게 제안한다. 이 여행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지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언어는 사회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어떤 언어든 언어가 전달해야 하는 핵심 의미 하나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149쪽)
“공유하는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이에 동참하는 능력, 집중 대상과 목표를 조정하는 능력, 누가 무엇을 알고 느끼고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계속 기억하는 능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진화시켜온 핵심이라는 사실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 이 집약적인 사회성 덕분에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공유 세계, 즉 문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동력이 되어 여타 동물 종을 넘어서는 비약적인 진화를 이루었다. 이러한 성취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의 사회적ㆍ심리적 결과를 끊임없이 예의주시하는 능력에 기초한다.”(161쪽)
“언어가 없었다면 다른 아무것도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38쪽)라는 견해를 비단 언어를 애지중지하는 한 언어학자의 견해로 보지 않더라도, 우리를 ‘날마다 의미를 표출하는 인간’이라 규정한다면, 그 의미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이 주고받은 언어라는 전제하에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나와 타인이 주고받는 의미란 결국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가’라는 기본 틀 안에서 변화하고 응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에게 사회란 “아주 오랜 세대에 걸쳐 인간은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환심을 사고, 혹은 누군가를 속이거나 배척하려는 시도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방대하고 복잡한 체계를 구축”(38쪽)하는 곳이다. 여기서 언어의 진화는 곧 사회의 진화와 함께한다. 책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수 언어의 탄생과 소멸에 관련된 사연은 그 언어를 간직하고 구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진화 코드를 대변하며(제4부 참조), 이러한 맥락을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에번스가 추구하는 현장 언어학적 작업의 기본 전제라 할 수 있다.
에번스는 책에서 한 사회의 작동이 언어의 습득, 공유, 전승, 접촉, 수정, 변형 등을 통해 나타남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는데, 가령 카메룬 만다라 지역 질베 마을 사람인 조나스는 마다어를 포함하여 8개 언어를 구사한다. 조나스는 어느 날 자기가 결혼하고 싶은 소녀 고고를 찾아가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고백을 했는데, 조나스가 당시 사용하던 마다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소녀 고고가 쓰던 언어였다. 조나스가 이처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웃 마을과의 소통을 중시하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에번스는 이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어릴 때부터 (고고가 살고 있는 카메룬 공동체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웃 마을 사람에게 말을 전하는 심부름을 시킨다.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말을 기억했다가 이웃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이를테면 새로운 단어를 외우기 위해 동족어의 관련 지식을 활용하는 등 나이 어린아이들도 강력한 메타언어적 관심을 키우게 된다.”(49쪽)
2) 언어 생성과 소멸의 역사는 정치, 종교, 사상사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해왔다
「제2장 사천 년의 조율」은 세계사 속에서 언어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와 변화를 매끄럽게 정리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문자 체계가 성립, 발전되면서 언어에 대한 기록과 전파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시기상으로 “문화적, 군사적, 종교적 라이벌 집단의 언어가 아닌 이상, 다른 언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모든 고대 문명에서 마찬가지였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은 그리스인들조차도 자신들이 접하게 된 언어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83쪽) 이후 초기 기독교 시기는 언어 교류의 전환기가 되었으며 특히 수도원은 (동양의 불교와 마찬가지로) 언어 간의 교류가 강력한 모체로 작용했다. 서로 동떨어진 국가의 학자들을 종교 문헌의 연구와 해석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규합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선교에 기반한 미지의 언어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으로 뻗어가 식민 통치와 종교 전파에 착수하면서부터였다. 때로는 과학적 호기심이 이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했다.”(85쪽) 특히 당시 신세계에서 열광적으로 이루어진 스페인 사람들의 언어학적 연구는 “전혀 다른 이방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기록하려는 세계 최초의 체계적 시도”(87쪽)라는 중대한 의의를 안고 있었다. 수도사 사아군은 이 의의와 그 한계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인물이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던 그는 콜레히오 드 산타크루스라는 기숙학교를 맡고 있었는데, 이곳은 스페인화, 기독교화된 새로운 멕시코인 세대들을 문화화하기 위해 만든 학교였다. 그는 상부로부터 원주민 인디언들의 옛 관습을 모아 책으로 내되, 그중 사악한 것이나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반박하고 선한 것이라면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직무지침은 당대 식민국가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의 신앙 체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 작업의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사아군의 작업 진행 방식은 (특히 연구 윤리적 측면에서) 오늘날 소수 언어를 탐구하는 언어학자들의 그것과 유사했는데, 그는 필사를 담당하는 일행들과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여행에서 만난 현지 부족장이나 지도층에게 옛 관습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여줄 것을 부탁하여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여기서 온전히 가르친 멕시코인들의 도움만 받았을 뿐, 스페인 사람을 연구 파트너로 고용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사아군의 저작은 종교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악마의 사역을 기술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몰수되었고, 사아군의 필사가들에 대한 재정 지원도 중단되었다.
이 장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역사적 일화는 16세기 이스탄불의 오스만 제국 궁중에서 사용되던 수화에 관한 것이다. 1554년 오스만 궁을 방문했던 플랑드르 귀족 뷔스베크는 (대부분 귀머거리이며 수화로 의미를 전하는) 벙어리 하인을 통칭하는 disliz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궁 안의 권력자들이 그들을 선호한 것은 오스만 궁 속 은밀한 궁정사에 그 하인들이 전혀 관여해도 위험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힌다. 한편 disliz의 수화 체계는 통치자 술탄의 평온을 방해하는 것을 불경스러운 것이라 여긴 궁중의 많은 신하에게도 전파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은 오늘날 현대 터키 수화가 지금은 사라진 오스만 수화에 유래한 것이라는 가설을 만드는 계기가 되지만, 저자는 관련 사료의 미비함을 안타까워하며 사라져간 언어에 관한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3) 사라지는 언어와 기록, 애도의 문제에 대하여
사라지는 언어와 기록의 문제는 매체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매체사에서 주로 다뤄지는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의 특성은 언어의 사라짐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인데, ‘책’ ‘기록’ ‘기억’은 에번스가 언어학적 측면에서 두드러진 관심을 보이는 테마다. 저자는 여러 장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학자들이 인간의 기억력을 의심하는 것은 인간이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인간의 능력에 근본적인 구조 변경이 일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책이 기존과 완전히 다른 사고와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이긴 했지만, 바로 그 책 덕분에 보존성과 접근성이 안정화되면서 기억이라는 것이 그만큼 덜 필요해진 것이다. (…) 그 과정에서 우리의 기억력은 급속히 쇠퇴되었다. 내 원주민어 선생들은 내가 뭔가 기억하지 못할 때마다, 예컨대 마이너리그의 경기 대진표나 자기가 한 달, 혹은 몇 년 전에 가르쳐준 이름을 내가 잊어버렸을 때 깜짝 놀라곤 한다. 그들은 내가 공인된 현역 언어학자 명단에서 제명이라도 되어야 한다는 듯이 이거 내가 전에 알려준 거 잖아요, 라고 말한다. 한번은 아이의 기억력이 떨어질까 싶어 자기 딸에게 읽고 쓰는 걸 가르치는 게 내키지 않는다는 원주민 어머니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368쪽)
책의 탄생 이후 언어를 어떤 매체에 기록할 것이며, 그 매체의 발전이 언어 기록과 보존의 발전을 동시에 가져오는지도 중요한 논의 중 하나다. 에번스의 설명처럼 “과학기술이 새로이 진보할 때마다 이를 열렬히 받아들이면 자칫 접근 불가능한 폐매체에 기록물이 방치될”(439)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날로그형 매체가 갖는 파손 여부도 걱정거리지만, 디지털 체제의 전환이 사라져가는 언어의 안전한 기록을 담보하진 못한다고 경고한다.
사라지는 언어와 기록의 중요성은 언어학자인 저자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선보이는 소수 언어의 마지막 증언자들과의 여러 일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추피크어는 젊은 모국어 화자들에게 점점 사라져가는 언어이지만, 레오 모세스는 이를 간직하여 (영어를 포함한) 두 언어를 조정하고 훌륭한 번역가의 기량을 뽐낸다. 또 사라져가는 언어 구사자들의 능력은 때론 학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불식하는 이야기를 낳는다. 정규 학교 교냀을 별로 받지 못했던 토착민이 스스로의 지식을 기록화하는 데 얼마나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칼럼어 화자 샘 마즈넵의 이야기다(425쪽~427쪽 참조). 마즈넵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칼람어를 기록하는 철자법에 따라 방대한 양의 민족생물학적 정보를 모아 이를 칼람어와 톡피신어로 녹음하고 노트에 잇따라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학자 불머의 현지 보조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칼람족의 전통적인 생물학적 지식을 다룬 두 권의 멋진 논문을 출간하는 데 톡톡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에번스는 언어 다양성의 위기 가운데서 자신의 언어를 소중히 간직해온 현지인들을 ‘타고난 언어학자들’이라 부른다. 저자는 이런 ‘타고난 언어학자들’의 통찰력을 진심어린 시선으로 존중하면서 언어학을 비롯해 다른 여러 학문이 협력하여 소수의 언어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실천을 강조하는 것을 비롯해 언어 다양성의 현장을 지켜나가야 할 학자로서의 윤리를 강변한다. 에번스의 이러한 논의는 위기에 처한 언어 다양성의 현장을 미처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현 학계를 향한 날선 비판으로 이어진다.
“젊은 학자의 인생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하면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은 가장 이상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외딴곳에서 오랜 시간 보낼 수 있는 자유도 있고, 해당 언어의 비밀을 푸는 작업에만 수년간 집중할 기회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언어 다양성을 기록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가지리라 기대했던 바로 그 분야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박사과정생 인력들이 헛되이 쓰이고 있다.”(432쪽)
언어 다양성의 위기와 이로 인해 점점 우리 곁을 떠나는 소수 언어를 간직한 마지막 증언자의 죽음. 이를 향한 애도의 윤리는 한 언어학자가 가슴 아픈 심정으로 써내려간 탐사 보고서의 핵심 정서라 할 수 있다. 원고를 쓰는 가운데 호주 원주민의 공동체 내 원로의 장례식을 여러 차례 주재했던 저자는 이들을 땅에 묻으면서, 이들이 구사했던 언어의 실체를 알아낼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도한다. 이는 단지 소수 언어가 갖는 신기함을 체험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구사한 이들이 고수하는 전통과 그 지혜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문화의 여러 장면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한 언어가 쇠퇴하면 결국 화자는 몇몇 사람으로 줄어들다가 결국 단 한 명만 남는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저자는 마지막 화자의 죽음이 자기 선조들이 하던 것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후세들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 많고 호기심 강한 온 세계 사람들의 상실감과 연결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씁쓸한 현실을 달라본어라는 소수어의 화자인 앨리스 뵘의 한마디로 정리하며 사람들의 무관심 대상인 언어 다양성의 위기를 논하는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죽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