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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0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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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50g | 133*190*20mm |
ISBN13 | 9788950977856 |
ISBN10 | 8950977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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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백영옥
아르테/2018.10.17.
sanbaram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는 작가가 방대한 독서를 통해 수집한 문장들 중 정수를 담은 에세이다. “제가 그어온 책 속 밑줄 중 단 하나라도 당신의 상처에 가닿아 연고처럼 스민다면 그것으로 저는 정말 기쁠 거에요.(p.9)”라고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작가는 상처의 시간을 겪은 사람들에게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같은 문장으로, 위로를 건네고 싶어 이 책을 엮었다고 말한다. 여섯 개의 주재 “나는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나에겐 내가 있지만 너를 기다려/ 내 영혼아, 조용히 앉아 있자/ 지구인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다해 대충 산다는 것/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어린 날입니다”로 나누어 따뜻한 위로의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여러 책들에서 길어 올린 좋은 말들과 작가의 경험을 보태어 위로의 말을 전한다.
“‘너무 사랑하는 것’은 한 남자에게 집착하고, 집착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기 인생이나 건강, 행복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을 끊지 못하는 상태죠. (p.31)” 사랑뿐만 아니라 행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막상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대개 행복이 아닌 행복의 조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바꾸려는 불확실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그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먼저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시켜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너’를 위해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의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와 ‘너’를 뛰어넘는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문제이니까요. 결국 진짜 문제는 나 자신을 희생할 만큼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p.46)” 상대가 내게 어떤 에너지도 빼앗길 원치 않기에 곧장 거리를 두게 된다. 내 공간, 내 시간, 내 취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헤어지거나 파트너를 바꾸는 데 익숙해진 이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치기보다, 새로 사는 이 시대의 쇼핑법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건 왜일까 반문한다.
“이젠 나를 보기 위해 거울보다 창문 쪽으로 다가갑니다. 거울 속 나와 달리 창문은 밖의 풍경을 품은 채 나를 비추죠. 창밖 버드나무와 몇 마리 비둘기와 지나가는 사람들의 풍경 속에 스민 내가 보여요. 세상 많은 것들과 연결된 관계 속에서의 나 말이죠.(p.64)” 거울과 창문은 비슷한 듯 다르다. 같은 시선이지만 하나는 안으로, 하나는 밖으로 나 있는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를 통하지 않는 ‘나’보다, ‘당신’을 통과한 ‘내’가 와 닿는 시간이 뒤늦은 연애편지처럼 도착한다. 아! 그랬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아름답지만 어리석었던 시절의 내가 보인다고 말한다.
“가장 좋은 건 그냥 안아주는 겁니다. 가장 큰 위로는 말이 아니라 함께한 많은 ‘그냥’들로 증명됩니다.(p.98)” 뚜벅뚜벅, 시계 초침이 말없는 방 안을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발자국들이 눈에 보일 듯 가만한 시간이 흐른다. 이때의 침묵은 사방을 투명하게 만들어 당신의 아픈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이럴 때의 침묵은 ‘그저 흘러넘쳐도 좋아요.’ 라고 말한다.
“소설이 좋아지는 순간은, 더 이상은 단 한 줄도 고치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때 눈 딱 감고 한 번 더 고칠 수 있다면, 소설은 좋아집니다. 비약적 도약이 아니라 점진적 발전인 것이죠.(p.130)” 그러면서 작가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쓰기 싫은 원고를 써야 할 때, 읽기 싫은 책을 읽어야 할 때, ‘잡초란 뽑아도 뽑아도 또 나는 것이라 매일 뽑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농사꾼에게는 ‘나중에’ 같은 말은 없는 것이고, ‘내일’ 씨를 심으면 씨알도 안 맺히거나 씨알이 작아지는 일이 태반이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씀. 절기를 귀신 같이 지키는 농부의 성실함은 황무지도 비옥하게 만드는 것처럼. 글 쓰는 것도 내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바쁠수록 우리에게는 빈 공간이 필요해요.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똑같은 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어요. 동료의 실수를 그의 무능함이 아닌 피곤함으로, 짜증을 연민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죠. 만약 당신의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합니다.(p.198)” 이와 같이 생활에서 여유를 갖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래야 나를 비롯하여 이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너도 다 아는구나. 아니, 너는 엄마보다 더 잘 아는구나. 엄마가 파리를 더럽고 귀찮게 여길 때, 너는 그것들에게서 공존의 기쁨을 보지. 새와 나무가 있는 곳엔 파리도 있어야 하고, 복슬복슬한 개가 있는 곳엔 개벼룩도 있어야 하지. 그런데 엄마는 자꾸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구나. 편한 것만 찾으려 하는구나. 너는 어떻게 이 모든 존재의 비밀을 알아내었니? -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p.244)” 이렇게 그동안 우리는 나의 눈높이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해 왔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천진함으로 보는 세상이 다르듯 서로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는 세상 또한 다양한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상대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일상생활로 지쳤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면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작가 백영옥은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다이어트 여왕>, <애인의 애인에게>, 소설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출간했으며, 산문집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다른 남자>,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등을 펴냈다.
(이 리뷰는 예스 24를 통해 아르테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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