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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3년 0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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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8쪽 | 510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70658919 |
ISBN10 | 8970658912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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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 책과 나의 인연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오던 때 광고 카피는 이것이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오호라, 이 얼마나 선정적인 문구란 말인가. 엄마처럼 밥순이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자아실현이랍시고 사회에서 들뛰다가 결국 엄마의 모성애를 느끼고, 혹은 내가 그 모성애를 발휘하며 눈물을 흘리며 끝나겠지. 아아... 싫다.
이것이 대단한 착각임을 알게 되었던 것은 집 근처 도서 대여점에서였다. 그 시절만 해도 도서 대여점에는 만화보다 일반 도서가 훨씬 많았으며 주인 아저씨의 높은 안목은 통속 대중 소설과 향기있는 소설을 구분하여 꽂아놓는 경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책을 들추게 되었으며 집으로 빌려 와서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싫었다. 약삭빠르고 조카를 감싸줄 줄 모르는 매력적인 여성 요이가 싫었고, 언니 야난의 반항이 아니었으면 가문의 결합을 위해서 스위프트와 결혼했을 메리의 인생이 싫었다. 팀에게 사랑받으려고, 팀의 아이로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야난이 싫었다. 야난 스스로 밝히듯이 당당히 혼자 사냥을 하고 메리와 함께 다니던 그 야난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무리 속에서 남편의 냉대를 감수하며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야난은 얼마나 바보같단 말인가. 저렇게 먼 옛날부터 죄(!)를 저지른 여인은 이리도 힘든 날을 보내야 하는구나. 저렇게 먼 옛날부터 먹이를 찾아 헤메는 가문의 결합은 무서운 것이구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항을 준비하고 홀로 아이를 낳는 야난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처절함이 어떠한 것인가를 야난이 몸으로 보여 주는 듯 해서.
당당했다. 틸의 샤먼으로서의 힘이, 여자 오한의 힘이, 호랑이가 되어 사라졌다는 야난의 조상이 (정확히 말하면 틸의 어머니인), 어미 늑대의 감시와 보호를 받으며 무리에서는 떨어져 보낼 수 없는 그 겨울을 어린 자매끼리 이겨낸 야난과 메리가. 심지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따라 남편을 차 버리는 이기적인 요이가. 그 도도함과 다소의 오만함이 너무도 당당했다. 그리고 너무도 강했다. 진정으로 씨족을 이끌어 가는 것은 고기를 지배하는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 오한의 힘으로 뭉친 그녀들이었다. 새끼 늑대를 길들이는 어린 메리조차 강한 여인이었다.
그 강한 여인들이 힘을 안으로 감춘다. 그리고 고기를 지배하는 남자의 질서를 따르게 된다. 야난의 어머니는 자존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남편을 순순히 따르고, 에르호와 돌발적인 관게로 무언지 모를 앙갚음을 한 야난은 남자의 질서에 따라 고통받고 비굴해진다. 강한 스위프트 쪽의 풍습에 따라 남자들은 아내를 때려 주기를 원한다.
아마도 끝까지 남편에게 존중받고 당당한 여인은 틸 세대로 막을 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족. 표지 앞 뒤에 인쇄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긴 다짐의 글은 빼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은 인류학에 대한 흥미진진한 통찰이 들어있는 책이지 앞세대의 순종을 거부하는 여성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난은 여자 오한의 힘을 받은 여자였으므로, 혼자서 사냥하고 겨울을 이겨내는 여성이었으므로 두드러졌고, 그래서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순록의 달'이 평범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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