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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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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창비 | 2016년 04월 04일 | 번역서 : Vegetarian 리뷰 총점8.7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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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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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04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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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0.87MB 파일/용량 안내
ISBN13 978893643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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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 1970년 늦은 11월에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올해 영미판 출간에 대한 호평 기사가 뉴욕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 소개되고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인간의 폭력성과 존엄에 질문을 던지는 한강 작품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며 한국문학에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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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단편과 한국문학에 대한 선입관을 깨는 식물적 상상력의 변주.
이민정(ladyinred@yes24.com)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모으는 친구에게 그 중에 꼭 한권만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선뜻 『몽고반점』이란다. 왜냐는 질문에 ‘야하니까’라는 다소 싱거운 소리를 내뱉는다. 형부와 처제의 정사라는 소재만 보면 이 싱거운 소리가 수긍이 갈 법도 한데, 무미건조하고 존재감을 내뿜는, 그러면서도 지극히 탐미적인 문체를 읽다보니 그저 주인공 영혜의 차가운 손발과 드러낸 상체가 주는 담담한 해방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의 화려하고도 관능적인 이미지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 좋았어. 근데 왠지 이야기가 더 있을 거 같아.” 라고 대답을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몽고반점을 포함한 연작소설 전체가 담긴 『채식주의자』가 출간되었다.

『채식주의자』는 10년 전 저자의 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변주로,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 영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1부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각에서 아내가 점차 육식을 거부해 가는 과정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인과, 사회,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는 처제의 몸에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에 욕정을 느끼고, 이 욕정을 평소 머리 속에 그리다 못해 각인된 관능적 이미지와 결합시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으로 전환한다. 3부인「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그녀는 떠나버린 남편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생계의 부담, 동생의 부양을 몸으로 겪어낸다. 또한 점점 나무가 되려고 하는, 세상의 시선에서는 점점 구제할 수 없이 미쳐가는, 영혜의 모습을 담아낸다.

몽고반점을 덮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주인공 영혜가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점이었다. “꿈을 꿔서……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아요.” “무슨……꿈을 꾼다는 거야?” “얼굴.”(-「몽고반점」중에서)” 1부인「채식주의자」에서는 그 꿈과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개에 물린 상처가 나으려면 먹어야 한다는 말에 나도 한입을 떠넣었지. 아니, 사실은 밥을 말아 한그릇을 다먹었어. 들깨냄새가 다 덮지 못한 누린내가 코를 찔렀어. 국밥 위로 어른거리던 눈, 녀석이 달리며,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나를 보던 두 눈을 기억해. 아무렇지도 않더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채식주의자」중에서)

세 단편은 육식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영혜와 대립되는 주변인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평범하게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욕망과 몽고반점을 모티브로 한 관능적 이미지와 색채로 표현되는 예술에 집착하는 형부, 삶에 내부가 말라가면서도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언니. 이 대립성에서 식물로 대표되는, 인간이 잃어버린 태고의 순수성에 대한 동경과 어쩔 수 없이 욕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동물적인 욕망이 함께 쏟아진다.「몽고반점」에서 영혜는 육체에 바디 페인팅으로 꽃을 담으면서 욕망이 배제된 식물을 지닌 육체가 되고, 그 식물성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지독히 동물적인 욕망의 행위로 태고의 순수성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영혜의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갈망은 남을 해치지 않는 소극적인 면에서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채식주의자」중에서) 궁극적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지지하며 소멸하는 회귀로 발전해 간다 -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나무 불꽃」중에서)

삶에 치이는 순간순간, 일상의 끈을 놓아버리고 궁극적으로 소멸에 가까운 자연으로의 회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또한 지독히 세속적인 욕망으로 삶에 집착하고 조용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영혜는 그 극단에 서 있고, 우리는 범인으로 그 중간을 헤맨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은 하나하나의 단편으로도 충분히 완결적이며, 연작이라는 형식으로 소설의 폭을 다시 확장하고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면서 또 다른 완결 작을 만들어 간다.

책 속으로

--- 「채식주의자」중에서

출판사 리뷰

[채식주의자]

상처, 욕망, 그리고 죽음


『채식주의자』의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 남편인 ‘나’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죽이는 장면이 뇌리에 박힌 영혜는 어느날 꿈에 나타난 끔찍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한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집들이에서 영혜는 또 육식을 거부하고, 이에 못마땅한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2부 「몽고반점」은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아티스트 ‘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동생을 측은해하는 아내 인혜에게서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영혜를 찾아가 비디오작품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청한다.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을 해서 비디오로 찍지만, 성에 차지 않은 ‘나’는 후배에게 남자 모델을 제안한다. 남녀의 교합 장면을 원했지만 거절하는 후배 대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영혜와 교합하여 비디오로 찍는다. 다음날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을 아내가 발견한다.

3부 「나무 불꽃」은, 처제와의 부정 이후에 종적없이 사라진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가족들 모두 등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영혜가 입원한 정신병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나고,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려는 의료진의 시도를 보다못한 인혜는 영혜를 큰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 영혜의 남편?형부?언니의 시선으로 구성되는 3부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가족 모임에서 영혜가 손목을 칼로 긋는 장면이다. 아내의 육식 거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남편으로서는 그 충동적인 행동이 그저 끔찍한 장면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피를 흘리는 처제를 들쳐업고 병원에 간 형부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비디오작업이 송두리째 모멸스럽고 정체 모를 구역질을 느끼고 그후로 전혀 다른 이미지(바디페인팅)에 사로잡힌다. 어린시절부터 가까이서 본 동생 영혜가 죽음을 불사하고, 식물이 되기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언니는 그 장면을 안타깝고 원망스럽게만 기억한다.

동일한 장면을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영혜’와 ‘아버지’에게서도 발견된다. 어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어 끌고다니다 죽이는 아버지에게는 개의 살육이 그저 부정(父情)의 실천이었을 뿐이겠지만, 모두에게 ‘불분명한 동기’인 영혜의 육식 거부가 실은 그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육체적인 욕망과 예술혼의 승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수작으로 극찬을 받으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2부 「몽고반점」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전체 줄거리에 연결되면서 이 소설의 차원을 확장하고 심화한다. 각 부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되는 욕망의 근원은 결국 영혜라는 주인공의 상처와 기억의 문제로 수렴된다.

숨막힐 듯한 식물적 상상력의 궁극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작가가 10년 전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내 여자의 열매』, 창비 2000 수록)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궁극의 경지까지 확장시킨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내 여자의 열매」의 주인공은, 어린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와 통한다.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나무 불꽃」 중에서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르는 영혜는 생로병사에 무감할뿐더러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는, 인간 아닌 다른 존재로 전이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더 나아가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채식주의자」)라고 믿는 영혜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고, 공격받지 않는 순결한 존재가 되는 듯하다.
반면 영혜 주위의 인물들은 육식을(영혜 남편), 혹은 영혜의 몸과 몽고반점 그리고 자신의 예술혼을(영혜 형부) 지독하게 욕망한다. 그들의 욕망은 결국 누군가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고 끔찍한 기억을 남긴다. 인간의 욕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 그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욕망할 수밖에 없는 동물적인 육체로 살아가야 하는 정체성을 포기한 영혜는 결국 죽음에 이르는 길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영혜로 표상되는 식물적인 상상력의 경지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는 소설 미학이며, 이야기로서든 상상력으로서든 감각으로서든 우리 소설의 차원을 확장시키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추천평

존재의 숙명적 상처와 세상의 근원적 어둠에 대한 처연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식물적 상상력으로 그에 대응해온 작가가 도달한 이 새로운 미적 차원은 놀랍고 신선하다. 상처와 어둠의 극한까지 밀어붙여 존재의 처음과 끝, 그 신비로운 근원을 엿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도달한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는 우리 소설을 일상과 탐욕의 저잣거리로부터 끌어올려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황도경 (『문학사상』 2005년 2월호)

작가는 상처와 치유의 지식체계를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해온 신비로운 사관(史官)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은 일상의 트랙을 벗어나 증발해버린 타인을 찾아나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그린다. 이런 여러 탐색담은 대상을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들을 찾아나선 ‘정상적’인 인물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처럼.
― 허윤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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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타인에 대한 책임이 오히려 우리가 바라는 자유와 안정을 가져다 준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봄*****리 | 2016-06-19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맨부커상을 탔다고 하니, 워낙 신뢰하는 상이기도 해서 읽어본 것이다. 그래서 더욱 놀라고 말았다. 설마 이런 이야기일 줄이야. 3편의 소설로 묶여 있다. '채식주의자','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이야기는 모두 '채식주의자' 영혜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하지만 영혜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보여지는 대상, 즉 객체에 불과하다. 3편의 소설은 관찰자를 달리하며 그에 눈에 비친 영혜를 담는다. 처음은 남편이며, 두번째는 형부고, 마지막은 언니다.(형부는 언니의 남편이다.)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모두 다르다. 영혜의 남편은 갑자기 채식을 시작하고 점차 나무로 되어가는 그녀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낸다. 영혜의 형부는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동경의 시선을 보낸다(내가 보기에 그가 영혜에게 보이는 이상 성욕은 분명 존재론적 합일을 향한 것이다. 그는 새를 즐겨 찍는데, 그것엔 자유에 대한 그의 간절한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영혜가 바로 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원한다. 그녀를 취함으로써, 그녀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같이 구가하고 싶은 것이다.) 영혜의 언니는 동생의 모습에 자신의 과거 모습을 투영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타자에 대한 책임을 느껴간다. 이렇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모두 똑같은 영혜를 바라보지만, 얻게 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 남편, 형부 그리고 언니 모두 이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영혜만큼 지속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보다 '나'로 더 많이 읽게 된다. 고유명사로 존재하는 것은 영혜 뿐이다. 다른 이들은 대부분 보통 명사로 존재한다. 작가는 왜 이렇게 한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보통 명사의 존재는 독자가 감정 이입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혹시 작가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투영하도록 만드는 장치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반응이란 우리 역시 타인의 변화를 보면서 얼마든지 보일 수 있는 모습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며 객관적인 관찰자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뛰어든 나를 깨닫게 되었다. 영혜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감정 이입되어 현실 속에서 정말 영혜와 같은 존재를 만난다면 나는 어떡할 것인가를 자문하고 있었다.


 그런 영혜는 결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건 영혜의 남편이 그랬듯이, 일상이 견고한 자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식과 인습으로 무장한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그 눈은 현상만 볼 뿐, 근저에 놓인 '왜'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지는 생활의 불편과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만 중요했다. 그러니 영혜의 채식이, 나무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결코 볼 수 없었다.


 이것은 어쩌면 일상인의 눈으로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영혜는 현재 일상의 궤도를 이탈한 존재.  이탈이 각도마저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다. 일상인의 눈에 비일상이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비춰지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일상이 그리 견고하지 않은 자들의 눈에는 어떨까? 영혜와 똑같이 일상의 경계 바깥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자들의 눈이라면, 영혜가 공감과 대화가 가능한 존재로 보일까?


 그 대답의 역할을 맡는 것이 바로 '몽고반점'의 형부다. 여기서 우리는 보통명사로 등장하는 세 사람이 모두 어떤 한 측면을 대변하는 존재란 걸 알 수 있다. 남편과 형부가 일상과 비일상의 시선을 대변한다면, 형부와 언니는 한 존재에 대한 착취와 공감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남편과 형부의 관계는 형부가 남편과 정반대의 존재라는 것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남편은 세속에 찌든 직장인이고, 형부는 현존재의 초월을 포착하고 싶어하는 예술가다. 남편은 일상에 굳게 머무르려 하기에 자신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배척하지만, 형부는 일상을 뛰어넘길 원하기에 자신에게 일상을 강요하는 것은 무엇이든 혐오한다.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영혜)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이외의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둔감한 그는 그녀의 몽고반점을 알기나 했을까. 알몸의 두 사람을 상상한 순간, 그것은 모욕이라고, 더럽힘이라고, 폭력이라고 그는 느꼈다.(p. 93)


 그런 존재이기에, 형부의 일상은 불안하다. 현재의 일상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위에서 그는 늘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런 면에서 형부는 영혜와 동류(同類)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부가 영혜를 대하는 태도는, 그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남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영혜의 폐부 깊숙이 존재하는 아픔은 보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영혜의 외부만 취한다. 그녀를 카메라로 찍는 그의 작업은 이 사실을 드러낸다. 그의 일방적인 요구와 그가 원하는 부분의 촬영만 있을 뿐, 그녀의 내면을 헤아리는 대화는 없는 것이다. 형부에게 영혜는 자신이 작업하는 사진과 똑같다. 2차원 평면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혜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혜가 누리고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었다. 영혜는 그에게 평면 거울이었다. 그것도 진실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거짓을 들려주는 거울.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면 자기가 원하는 모습이 진실처럼 나타났다. 그가 영혜의 육체 위에 꽃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상이 영혜에겐 실체가 되었다. 그의 거짓이 영혜에겐 진실이 되었다. 영혜에겐 경계 자체가 없었다. 가상과 실체도, 거짓과 진실도 하나였다.  당연했다. 외부가 나누는 어떤 경계도 영혜에겐 통용되지 않았으니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경계는 가볍게 무시되고 그녀에겐 오로지 자신의 질서만 있었다. 두려움도, 의심도 없었다. 무한의 신뢰만 있었다. 현실 세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주체. 형부가 영혜에게 본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육식에서 채식으로, 사람에서 식물로 거침없이 변화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조금의 두려움 없이 훌쩍 넘나들었다. 영혜는 그런 주체만 누릴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 자유가 한없는 안정 또한 보장하고 있었다. 어찌 매혹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무임승차만 하려 한다. 영혜가 어떻게 해서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보려 하지 않는다. 지금 현존한 결과만 취하고 싶을 뿐이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원하는만큼만.

 그래서 그가 영혜에게 하는 모든 일은 착취와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영혜의 남편과 똑같다. 남편은 영혜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는 영혜의 존재 자체를 착취한다. 둘 다 영혜의 외양만 취한 결과다. 형부는 한계를 느낀다. 별 짓을 다하지만 영혜에게 조금도 다가갈 수 없다. 마지막까지 그는 결국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 베란다는 일상의 경계를 상징한다. 형부는 일상을 초월하기 위해 영혜를 욕망했으나, 결국 일상에 고착되고 만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자기가 영혜에게서 본 모습을 영혜의 실체로 규정하려 했을 뿐, 영혜라는 존재 자체를 헤아리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좌절은 우리에게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바로 영혜라는 존재 자체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3부인 '나무 불꽃'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우리가 형부처럼 영혜의 존재를 선망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영혜의 남편도, 형부도 결코 묻지 않았던 질문. 영혜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녀가 도달한 경지에 대해선 이미 앞에서 말했다. 모든 경계와 욕망을 초월한, 오로지 자신이 만든 경계와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순수하게 내면에서 자생된 욕망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절대적 주체라는 사실을. 그래서 온전히 자유롭고,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무한정 안정하다는 것을. 맞다. 그녀는 이미 나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그녀 존재의 정체가 아니다. 실은 과정이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었나?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이다.


 여기서 채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중요해진다. 그것이 오늘의 영혜를 만든 원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채식을 하게 되었나? 대답은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벗어난다. 왜냐하면 그녀의 채식은 정말 오랜 세월 해묵은 죄책감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아버지에게 일러바쳐 아주 고통스럽게 죽인 적이 있다. 개가 죽은 뒤엔 어른들과 함께 그것을 먹었다. 자신이 원인이 된 죽음. 그것도 자신보다 약자인 개를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이고도 그녀는 연민이나 애도의 시간도 없이 먹어버렸다. 아마도 그녀의 양심은 그것을 아주 무자비하다고 여긴 것 같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이기적이라 어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채색하지만 무의식은 그것의 진실을 제대로 따진다고 한다. 옳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의 마음이 상처 받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이다. 영혜도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무의식에서 비롯된다는 꿈이 그 기억을 환기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조용하고 느리지만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던 그녀.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어릴 때의 일을 꿈을 통해 기억하고는 더는 육식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녀는 말한다. 고기의 냄새를 맡을 때조차 자신의 뱃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온다고. 그건 과거에 자신이 먹었던 개의 육신이며, 거기 깃들어 있는 것은 분명 죄책감이다. 그랬기에 그 기억을 환기시킨 꿈은, 그대로 영혜에 대한 고발과 같았다. 네가 그런 짓을 벌이고도 잘도 편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비난이라고 해도 좋다. 남편에게 오래도록 보여준 침묵은 그 앞에서 그녀가 아무런 변호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상을 포기한다.


 채식은 그런 의미다. 더이상 예전 그대로 살 수 없다는 고백. 나아가 그녀는 나무가 되고자 한다. 소설에서 나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절대적 주체의 상징, 다른 하나는 죽음이다. 후자는 물론 인간 측에서, 일상의 눈으로 바라본 의미다. 그런 시선에게 나무는 움직일 수 없고, 현실 삶을 굴러가게 만드는 욕망도 없으므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비난 앞에서 나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죽음을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초래한 개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영혜가 과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3부, '나무 불꽃'이다. 여기서 영혜를 바라보는 자는 그녀의 친언니다. 

 

 언니는 영혜를 보면서 자신의 일상과 과거를 복기한다. 1편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언니는 3편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 역시 그저 고통을 참고 견디고 있을 뿐으로,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끝도 없는 삶의 무의미를 체감 중인 것으로 말이다. 그녀는 자살마저 하려고 했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그녀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영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녀는 남편과 똑같이 허무의 절벽까지 걸어 갔으나, 남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마지막이 그렇다. '몽고반점'의 마지막에서 형부는 영혜를 내버려두고 달아나려 한다. 그러나 '나무 불꽃'의 마지막에서 언니는 끝까지 영혜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영혜를 마지막까지 책임지려는 듯이.


 3부에서 우리는 언니 역시 영혜처럼 책임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 전의, 남편과 형부가 보여준 모습과 정반대다. 사실 이러한 차이는 이미 '몽고반점'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는 '몽고반점'에서 형부와 언니 사이에 '지우'라는 아들이 있다는 것을 본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친자식을 가지고 있는 부부다. 하지만 형부는 자기 아들을 돌봐야할 때, 제대로 맡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반면, 형부가 방치한 아들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늘 언니다. 형부는 늘 작업 핑계를 대며 아들을 방치하지만, 언니는 아무리 바빠도 기꺼이 아들을 돌본다.


 바로 이 '책임을 지느냐, 안지느냐'의 차이가 영혜의 존재가 표상하고 있는 '주체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나무 불꽃'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소설이 세 등장 인물들 중 책임을 떠 맡는 언니만이 유일하게 영혜와 같은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을 입증하듯, '나무 불꽃'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눈부신 빛을 본다. 빛은 구원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어떻게 언니는 그럴 수 있었을까? 여기서 아들이 그녀에게 말한, 그녀의 사진이 새처럼 날아갔다는 꿈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사실 그 꿈은 남편의 소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구원 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 아들이 그 꿈을 꿨던 순간, 그녀는 자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 죽으려는 순간, 그녀는 아들의 웃음을 떠올렸고, 그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기적인 죽음보다, 이타적인 책임을 맡기로 한 것이다. 그 뒤, 돌아온 집에서 그녀는 아들에게서 꿈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을 끝까지 책임질 것을 결심한다. 바로 이 책임이 그녀를 구원으로 이끈 것이었다.


 '한 가지 결정적인 장면이 더 있다. 바로 언니가 보는 가운데 간호사들이 절식하는 영혜에게 튜브를 통해 억지로 음식을 먹이는 장면이다. 그것은 길고도 처절하게 묘사된다. 또한 이 행위는 영혜에게 오직 고통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은, 영혜에게 트라우마가 된, 아버지가 개에게 가했던 고통을 환기시킨다. 과거의 영혜처럼, 언니도 오래도록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고통의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과거가 반복되었다. 분명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치뤄야 할 시험이 있고,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수난이 있다. 이를 흔히 통과의례라고 부른다. 작가는 언니에게 바로 그것을 주려 한다. 영혜처럼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존재이긴 하지만, 과연 진정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마지막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영혜는 보고만 있었다. 그녀가 한 것은 가해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눈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니는 그러지 않는다. 그녀는 동생에게 손을 내밀고, 끝까지 잡는다. 마지막에 본 빛은 바로 이렇게 해서 찾아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된다. 영혜와 같은 절대적 주체는 오로지 책임을 떠 맡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절대적 주체가 무한의 자유와 안정을 구가한다면, 그것 역시 오로지 타인에 대한 무한 책임을 떠 맡을 때 도래 하리란 것을.


 이렇게 소설은 세 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궁극엔 타인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책임을 흔히 구속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부담을 느끼지만,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타인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자유와 안정을 가져온다는 것을, 소설은 놀랍도록 설득력있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을 읽기 전엔 결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충격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소설 속 인물에게 날 깊이 투영하고 읽고 있던 나는 한동안 깊은 여운에 젖어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꾸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시대는 아픔이 보편적인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강남역 묻지마 살인이 있었으며, 구의역 스크린 도어 기사 사망 사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흑산도 여교사 특수 강간 사건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충격적인 사건사고 소식을 들으면, 마치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만 더욱 배가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영혜의 남편이나 형부의 모습을 흔히 취한다.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며, 고치려 움직이지도 않는다. 마치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인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영혜의 형부와 똑같이 막연히 누군가 나보다 먼저 나서서 이런 상황을 고쳐주기만 기다린다. 하지만 한강은 '채식주의자'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통해 분명히 말한다. 그런 식의 태도로는 결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출구는 오직 하나. 타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기꺼이 맡는 것밖에는 없다고.


 소설을 통해 마음 깊이 설득 되었지만, 그래도 막상 실천하기 저어되는 것은 거기서 하게 되는 일도, 거기에 이르는 길도 내겐 너무 어렵고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쩐지 한강 작가에게 '너무 지나친 낙관 아닌가요?' 반발하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대놓고 무시해선 안된다는 속삭임이 자꾸 들려온다. 아마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작가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래,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보자면 솔직히 난 아직도 뿌리가 여리고 어린 나무에 불과하다. 한강의 조언에 깊이 통감했다면, 일단 뿌리부터 튼튼히 만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자극과 성찰을 위해 이 소설을 반복적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말하자. 솔직하게. 이것이 지금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는 태도이기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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