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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24일 리뷰 총점9.1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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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4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68쪽 | 605g | 145*210*25mm
ISBN13 9788954633994
ISBN10 8954633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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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1968년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 밴드 ‘각시탈’을 결성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어린 시절 친구 등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했으며, 1988년 12월 24일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무한궤도 1집을 발표하고 잠시 활동했으나, 곧 밴드가 해체되었다. 1990년에 첫 솔로 음반을 발표해 수록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 솔로 2집을 발표해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과 세태를 짚어내면서도 감성적인 가사로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이후 록밴드 ‘넥스트(N.EX.T)’를 결성, 밴드 활동을 재개했다. 1992년에 발표한 넥스트 1집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곡들로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1994년 발표한 넥스트 2집, 그리고 1995년 발표한 3집은 음악성은 물론 가사에 담긴 깊은 사유를 통해 대중음악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시기에 동료 뮤지션의 음반 프로듀싱, 객원 보컬, OST 작업, 프로젝트 밴드 ‘노땐스’ 활동 등을 병행했으며 1995년 4월부터 1997년 10월까지 MBC 라디오 의 초대 DJ로 활동하며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1997년 발표한 넥스트 4집을 끝으로 넥스트는 해체했으며,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하며 그곳에서 쌓은 테크노 장르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년 《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한다. 이듬해에는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 동명 타이틀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00년에는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 실험성이 강한 음반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그가 진행한 대표적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을 시작했다. 2003년 4월까지 선보인 이 방송은 거침없는 언변과 진심어린 진행으로 마니아 청취자층 ‘고스족’을 양산했고, 그의 별칭 ‘마왕’도 이때 얻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을 벌였으며,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간통죄 폐지체벌 금지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화제를 낳기도 했다. 2003년 10월 <고스트네이션> 방송을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새 라인업으로 재결성한 넥스트 정규 5집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싸이렌’을 설립했으며 이듬해 넥스트 리메이크 음반 5.5집을 발표했다. 2008년 넥스트 6집을 발표하는 한편, 이해 3월부터 10월까지 SBS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방송을 다시 진행했다. 2011년 5월에는 MBC 라디오에서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재개했으며 2012년 10월 방송을 끝냈는데, 이로써 11년간 이어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을 완전히 종료했다.

2014년에는 새 솔로 음반 준비를 본격화해, 싱글 〈A.DD.a〉를 공개했으며 이어 EP 《Reboot Myself》를 발매했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故 신해철의 정확한 사인은 의료사고 의혹 속에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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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영원한 마왕, 우리 시대 불멸의 뮤지션 신해철
그가 우리에게 남긴 단 한 권의 책


이 책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게도 우리 곁을 갑작스레 떠난 뮤지션 신해철이 오랫동안 틈틈이 써온 글을 모은 유고집이다. 생전에 출판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book’이라는 제목의 파일 안에 차곡차곡 쌓인 글들을 엮은 이 유고집에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 이야기, 그리고 그의 음악관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내밀한 고백들이 담겨 있어, 우리 대중음악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한 인물의 자전적 기록으로서도 그 가치가 소중하고 특별하다. 책은 고인이 1988년 MBC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로 참여해 그대에게를 불러 대상을 수상하고 정식 데뷔한 12월 24일에 맞춰 출간했다.
그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 거침없는 언변, 세상을 보는 정의롭고 따뜻한 눈과 마음을 지녔던 뮤지션 신해철. 그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삶과 사회의 가식을 걷어내고 그 진면목을 보고자 했던 예술가의 비타협적 정신이 형형하게 숨쉬고 있었기 때문임을 그의 글들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1부에는 개인사와 더불어 음악 활동과 관련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2부에는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문화계 인사로서 그가 우리 사회에 서슴없이 던졌던 메시지들이, 3부에는 그를 추모하는 문화예술계 인사, 지인, 가족의 애도의 글들이 담겼다.
책의 수익금은 전액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쓰일 예정이며, 오는 12월 24일에는 유고집 출간과 동시에 그의 유작인 베스트 앨범이 발매된다. 베스트앨범은 4CD로 구성됐으며 그의 대표곡들과 신곡 핑크몬스터가 수록된다. 12월 27일에는 그간 넥스트를 거쳤던 뮤지션들과 그를 기리는 여러 뮤지션이 모여 추모공연을 연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삶을 살았던 걸출한 뮤지션
혜성처럼 등장해 90년대 이후 우리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흔든, 한 시대를 풍미한 뮤지션의 생은 화려하기만 할 것이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역시 평범한 그래서 넉넉지 못했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맘껏 뛰놀던 사내아이였으며, 집안 살림을 걱정하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학업성적을 고민하고 인기 없는 남자애가 될까 속앓이하던 착하고 귀여운 소년이었으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죽도록 록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시대의 부름 앞에 머뭇거리지 않고 거리로 나가 짱돌을 던질 줄도 알았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내가 중학생 때 집안 살림이 어려워져 끼니 잇기가 곤란하자, 어린 마음에 가세에 씨알만한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 군밤 장사와 신문배달 같은 아르바이트로 답이 나오질 않자 나는 보리차 장사를 벌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동대문 이스턴호텔 뒤쪽에는 유령회사처럼 보이는 수상한 사무실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곳엘 가면 보리차 봉지, 수세미, 비누 등을 가방에 꽉꽉 담아주었다. 나는 그 가방을 메고 아파트촌이나 가정집을 돌며 초인종을 누르고는 “고학생인데요, 보리차 좀 팔아주세요~” 하며 돌아다녔는데, 쉽게 말하자면 약간 자율적 형태의 앵벌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초인종을 누르고 “누구세요” 하며 현관으로 나오는 주인집 딸내미의 목소리를 듣고는 너무나 쪽팔려 왕따시만한 가방 두 개를 옆구리에 끼고는 헉헉대며 기냥 하이방을 쳐버렸다. _본문 46~47쪽

나는 왜 하필 운 나쁘게 87학번이 되어 대학만 들어가면 딴따라나 실컷 하리라는 기대와 달리 의식화 교육이나 받고 짱돌이나 던져야 한단 말이냐. 게다가 저 돌대가리는 왜 날 좀 조용히 살게 내버려두질 않는 거냐. (…) 1987년에는 거의 전교생이 길거리로 나갔으며 나 역시 과 룸에서 열라 기타를 치고 있다가 선동대의 메가폰 소리가 들리면 아쉽게 악보를 접고 대가리 숫자라도 채워주려고 최루탄이 눈처럼 덮인 캠퍼스로 씹퉁거리며 나가야 했던 거다. 최루탄이 눈처럼 덮였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게, 실제로 우리는 데모가를 부르다가 중간에 가끔씩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 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곤 했는데, 데모대와 전경 양쪽에서 폭소가 나왔었다. 여태껏 살면서 그런 초대형 용량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쓴웃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 _본문 84~85쪽

어릴 적부터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록음악을 연주해오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각시탈’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여전히 아마추어이긴 했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 시절의 활동은 그가 무한궤도를 결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한궤도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자, 음악 신에서는 그가 고가의 음악장비와 인력 지원을 받아 그대에게를 완성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까지 들어볼 수 없던, 곡 자체가 환기하는 혁신성이 그 원인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검열을 피해서 기타를 뚱땅거려야 했던 나는 ‘심야 작곡 세트’를 갖고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기타줄 사이에 스펀지를 끼워넣은 기타와 문방구에서 파는 멜로디언이었다. 그걸 갖고 이불을 뒤집어쓴 후, 이불 속에서 헉헉 숨을 몰아쉬며 곡을 쓰는 거다. 잠시 작업하다보면 이불 안에 습기가 차고, 머리가 어지러워 네 마디 이상 연속으로 작업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아부지한테 안 걸리고 이것저것 소리를 내볼 수 있는 것만으로 대만족이었는데, 우리가 상을 탄 후 ‘무한궤도는 심지어 자동 작곡장치도 있으며 그대에게는 코치들이 써줬다더라’는 얘기까지 들었으니…… 나…… 울까 웃을까. _본문 114쪽

꽉 막힌 한국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마다않던 자유로운 음악인
무한궤도 이후 솔로 시절을 거쳐 넥스트라는 밴드를 결성해 90년대 한국 록음악의 새로운 전성기를 일궜던 그는, 특유의 거침없고 신랄한 언변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쓴 가사들은 시대와 사회의 보수성, 위선과 가식을 폭로하는 것들이었으며 그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쏟아내는 풍자와 비판은 우리 사회의 그 어떤 방송인이나 예술인에게서 쉽사리 볼 수 없던 면모였기에 그만큼 그는 악의적인 비방에도 시달려야 했다. 특히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체벌 금지 등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이슈들에 대한 과감한 주장을 펼침으로써 화제를 낳기도 했는데, 이는 연예인으로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킨 그의 뚝심 있는 면모를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시사 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서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한 토론의 패널로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좀 황당하기도 했고 썩 유쾌한 기분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십수 년이나 세월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져가고 있는 나의 전력을 스스로 들춰내는 미친 짓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국민정서나 수준 등을 감안해보았을 때 백전백패가 분명한 ‘확실히 지는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지는 싸움’에 갑옷 입고 총칼 차고 나갈 바보는 없다. (…) 내가 토론에 나설 경우 ‘전력이 있는 연예인’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변명하기 위해 떠들어대는 모습에 불과해 보일 공산이 너무나 컸다. 그러니 공연히 쟁점을 흐리거나 오해를 사지 말고 나를 포기하시라 했는데, 한 시민단체 간부의 절규가 내 귓전을 때렸다. 오해고 육해고 간에 일단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보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 유명인도 연예인도 이 토론에 나서기를 극히 꺼린다는 것이다. _본문 251~252쪽

우리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마왕
자신의 신념에 따라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음악인으로서의 위험을 감수했던 용기, 대중음악의 유행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록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멀어질 때에도 자신의 음악적인 길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뚝심, 시대와 사회의 위선을 꿰뚫어보며 특유의 촌철살인적 일갈을 서슴지 않았던 칼날 같은 비판정신. 우리가 기억하는 신해철은 그런 예술가였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런 음악인을 만날 수 있을까?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통탄스러운 이유다. 사반세기라는 세월, 삶의 길목마다 우리의 어깨를 다독이던 그의 노래는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토록 울려퍼질 것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로커’였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무섭지 않냐고. 남들이 말하는 안전한 삶의 규칙을 자꾸 위반할 때마다 겁나지 않냐고.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무섭다. 나도 사람인데. 그렇지만 내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겁이 많기 때문에 나는 내 나름의 삶의 방식을 택했다. 남들이 똑같이 걷는 길에서 낙오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나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훨씬 더 엄청나게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나의 방식을 택했다. 공포로써 공포를 제압했달까. _본문 379~380쪽

추모의 글들

서태지(음악인)
신해철, 그 이름은 순수한 영혼과 진실된 의지로 우리를 이끌어준 진정한 음악인의 이름입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수많은 후배들도 신해철이라는 산을 올려보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우리 가요계는 그의 음악에 많은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비보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형이 그랬습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고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형은 이 보너스까지도 참 멋지고 훌륭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곳에서 또다른 산책을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마음껏 하시겠죠.
끝으로 형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항상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어 고맙습니다. 그런 형이 너무나 크고 멋졌는데 멋지다는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멋진 노래 계속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신해철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우리의 젊은 날의 많은 추억과 멋진 음악을 선물해준 그 아름다운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황석영(소설가)
자유분방하면서도 일관된 정직성과 자기 재간에 대한 겸손이 이 아까운 사람의 부재를 더욱 안타까워하게 만든다. 신해철은 자기 시대와 대중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들을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려고 했던 음악인이었다.

손석희(방송인)
100분 토론에서 저는 신해철씨를 다섯 번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섰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가수였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해서 논쟁할 수 있는 논객이기도 했습니다. 욕을 많이 먹어서 영생할 거라 농담으로 얘기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를 사랑했던 팬들의 마음속에선 영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중권(미학자)
“하도 욕을 얻어먹어 영생할 것”이라 늘 장담했던 그이기에,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오랫동안 우리를 통쾌하게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있을 때 잘해”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남긴 채 너무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떤 죽음이든 상실감을 남기기 마련이나, 그의 죽음이 남긴 상실감은 예외적이다. 이 남다른 상실감은 그의 빈자리가 그 밖의 다른 누구로도 채워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나는 그의 존재가 고마웠다. 그가 그저 이 땅에 우리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웠다. 해철씨, 고마워. 그리고 잘 가.

배철수(방송인)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이미 음악적인 면에서 자신의 탑을 세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중 다행인 것은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함께 아파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해철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행 중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허수경(시인)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데도, 그때 우리는 정을 맞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서로 모난 돌이 되기를 부추겼다. 해철은 영원히 모난 돌이었다. 그래서 정을 맞았으며 그 순간을 안아 뛰어넘으며 노래했다. 해철아, 나는 우리가 나이순으로 가기를 소망했다. 나의 부고를 네가 먼 지인으로부터 듣고 한 잔의 소주로 부음하면서 우리가 벗들과 함께 보낸 좋은 시간을 추억해주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내가 너를 기린다, 독일이라는 머나먼 곳에서…… 그것이 원통하고 아프다.

문재인(정치인)
제가 아는 신해철씨는 불합리한 것에 앞장서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때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울려퍼지던 그대에게의 벅찬 음악은 제게는 평생의 고마움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문성근(배우)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다.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유쾌하게 살길 기도합니다.

허지웅(작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누구보다 충실했던 우리 형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모순적이었으나 그 모순과 싸워 이기려 끝내 분투하며 스스로를 소진했던 예민한 영혼의 소유자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다. 형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다. 누구나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인데 그걸 하지 못했다. 형이라서 말하지 못했다. 나라서 말하지 못했다. 간지러워서 하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해야 할 말을 제때 하지 않고 미루는 일이란 대체 얼마나 한심한가.
형 사랑해. 언제까지나 사랑해. 형 사랑한다.

임동창(음악인)
그대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한없는 사랑의 불꽃을, 그 여리고 섬세한 아름다운 불꽃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총명하기까지 해서 생긴 구차한 말들은 누가 개의치 않았던가. 그대가 온몸을 던진 것처럼 그대에게 온몸을 던진 것처럼 그대에게 온몸을 던진 이는 누군가. 아! 뜨거운 놈, 신해철.

강헌(대중음악평론가)
바보처럼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 인문학 도서를 무겁게 여기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가벼이 여기지 않은 사람, 무명 신인의 음반일지언정 한 가지라도 미덕을 찾아내고자 했던 사람, 아무도 관심 없는 삶이라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는 다양한 악덕에 대해 온몸으로 분노한 사람……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인문주의 예술가, 르네상스인이었다.

추천평

신해철, 그 이름은 순수한 영혼과 진실된 의지로 우리를 이끌어준 진정한 음악인의 이름입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수많은 후배들도 신해철이라는 산을 올려보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우리 가요계는 그의 음악에 많은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비보에 마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형이 그랬습니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라고요.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고 말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형은 이 보너스까지도 참 멋지고 훌륭하게 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좋은 곳에서 또다른 산책을 하면서 형이 좋아하는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 마음껏 하시겠죠.
끝으로 형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항상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어 고맙습니다. 그런 형이 너무나 크고 멋졌는데 멋지다는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멋진 노래 계속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신해철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우리의 젊은 날의 많은 추억과 멋진 음악을 선물해준 그 아름다운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서태지(뮤지션)

100분 토론에서 저는 신해철씨를 다섯 번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논란의 한가운데 섰고,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가수였지만 어떤 주제를 놓고도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해서 논쟁할 수 있는 논객이기도 했습니다. 욕을 많이 먹어서 영생할 거라 농담으로 얘기하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를 사랑했던 팬들의 마음속에선 영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손석희(방송인)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이미 음악적인 면에서 자신의 탑을 세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중 다행인 것은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함께 아파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해철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행 중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배철수(방송인)

제가 아는 신해철씨는 불합리한 것에 앞장서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가진,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때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울려퍼지던 그대에게의 벅찬 음악은 제게는 평생의 고마움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문재인(정치인)

지성을 갖춘 놀라운 ‘강심장’이었다. 지식인, 정치인의 허위를 광장에서 단 한마디로 날려보내던 신해철. 그 인격, 지성, 음악으로 스스로 시대의 예술가가 되었던 신해철. 당신은 그런 예술가였기에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유쾌하게 살길 기도합니다.
문성근(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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