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서 빠져나온 8개월간의 기록
『멍게가 될 뻔했다』는 단순히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 성격의 책이 아니다. 우울증이 주제라고 해서 마냥 어둡고 칙칙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저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은 글에는 독자를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담겼다. 추락-상승-강화로 이어지는 책의 흐름은 마치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저자를 응원하며 책장을 넘기게 한다. 우울에 빠진 사람에게, 주변 사람이 우울에 빠진 사람에게 『멍게가 될 뻔했다』가 저자의 바람처럼 작은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사전독자 후기
내가 아는 HG는 ‘추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있었던 일과 그걸 풀어내 공유하는 일에 힘이 되고 싶었다. 책 읽기보다 책 ‘소유’에 욕심이 있는 내가 HG의 책을 다 읽고 후기를 남길 수 있을까? 스스로 장담하지 못하던 채 원고를 받았고 난 그날 바로 HG가 되어 추락과 다시 상승, 그리고 단단해지는 경험을 했다. 사실 나도 최근에 머릿속이 오만가지의 생각들로 가득 차고 욕심과 현실의 괴리에 무기력과 우울감이 몰려온 상태였다. 물론 코로나도 한몫했지만. 이 책에서 말한 미노타우로스가 사는 동굴에 나 또한 고개를 내민 것이다. HG의 글이라는 보호장구를 차고 동굴로 같이 들어갔고 다시 또 빛을 보았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고개를 내민 정도라 다행이다 싶은 안도감이 있었다. 특히 ‘2부 : 상승’에서, 그중에서도 ‘가족’ 챕터에서 큰 공감을 했다. 요즘 부쩍 가족은 내 눈물 버튼이었고 어김없이 이 챕터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HG와 그 가족의 마음이 내게 닿았다. 눈물을 닦아내며 글을 다 읽고 나는 이제 창문을 활짝 열고 차를 끓이고 청소를 시작한다. 동굴에서 고개를 빼낸다. 우울할 때 가이드와 일반법칙이 아니라고 명확히 표했지만, 나에게는 도움과 힘이 되었다. 활자를 통해 어두움을 경험하고 다시 빛을 볼 수 있는 책, 생각 많아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책이다.
- 초냐
“그 사람의 관점에 서보지 않으면 정말이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안에 들어가서 머물러 봐야 안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하퍼 리가 남긴 말.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내가 두꺼운 색안경을 끼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그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겨우 버텼던 사람, 심리적으로 실향민 같은 상태로 살아갔던 사람이 다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살게 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말 멍게가 될 뻔했던 그. 잘 버텼다고 안아주고 싶다. 그의 유일한 과거가 이렇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일 줄이야.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들이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를 대신해 말해주는 거 같아서 흥미롭고 속 시원하게 읽었다. 그의 부스터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부스터가 되길 바라며.
- 니퍼
저도 멍게가 될 뻔했습니다. 내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시간, 매일 그저 버텨내기에도 벅찼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난 왜 이러지? 하는 의문들을 ‘사는 건 원래 다 그런 거야.’라는 말들로 덮어 두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어떤 삶을 위해 고민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지 물어봐 주고 또 그 일을 같이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고민합니다. 더 건강한 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 예슬
서른을 넘겨 살다 보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한 기간을 보내는 듯하다. 나도 그랬고, 내 친구도 그랬고, 저자도 그런듯하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우울함은 누군가의 응원으로 대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는 우울함에서 빠져나와야 했고, 우울한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이 세계에 남아 ‘나도 그랬어’라고 공감을 건네줄 뿐이다. 저자도 종이에 몸을 입혀 그런 공감을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 엘리
나는 우울의 망망대해에서 섬처럼 쪼그려 앉아 있다. 저자는 나의 무인도에 정박해, 다른 섬을 찾아 나서는 방법을 알려준다.
- 혜린
저자를 보고 있노라면, ‘실은, 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라는 말이 마치 세상에 없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 글에서도 사람에 대한 절절함이 끓어 넘친다. 이토록 정제된 투에서, 이렇게나 사랑과 믿음이 느껴지다니. 나는 불행한 과거에서 미처 다 극복하지 못하고 남은 우울의 찌꺼기가 내 안에 은은하고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고, 이보다 조금 더 전에는 나보다 먼저 깨달아 앓은 사람들을 살핀 적이 있었다. 글을 1, 2, 3부대로 나눈 저자의 의도대로라면, 어쩌면 나는 이 글을 거꾸로 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라면
멍게가 될 뻔했다.
실은 이미 멍게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공간에 찾아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 를 나눌 때면-
집으로 돌아가 깊게 고요해졌다.
밥을 지어 먹는 일도 청소를 하는 일도 영영 미뤘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구부러진 몸을 일으켜 페이지를 넘겼다.
책을 덮고 난 뒤 청소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장에 갔다.
찬거리와 작은 모종을 샀다.
빗물을 받아 모종에 물을 주며 생각했다.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 리오
보이지 않는 상처에는 ‘보이지 않는 부축’이 필요하다. 안부를 묻는 말, 웃는 입, 한 번 더 쳐다봐주는 눈빛들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읽으면서 나의 상처를 글쓴이의 아픔과 견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우리는 겨루는 존재들이 아니라 같이 가는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난 아파, 너도 아파? 그럼 우리 같이 죽자.’가 아니라, ‘그러니 우리 같이 잘 살아 보자.’여서 좋다. 억지로 내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일으켜 세우는 닦달이 아니라, 옆에 잠시 같이 앉아주는 동행이어서 감사하다.
- 유리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은 나를 서서히 일으킨 책. 이 책은 저자가 우울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과정을 담고 있다. 대단한 ‘의지’나 ‘노오오오력’이 아니라, ‘우연한 계기’를 통해 ‘감사하게도’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 그래서 평범한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공감되고 힘이 되었다. 기력 없이 누워있는 사람 중에 진정으로 계속 누워만 있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저자의 바람처럼 내면의 불씨(거의 꺼져가는 희미한 불씨일지라도)를 발견하고 지켜내기를 바란다.
- 코나
인생에서 이정표로 삼을만한 글을 모은다는 건 또 다른 삶의 목적이자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다 깊숙이 가라앉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걸 글로 목격하게 되었네요. 저도 똑같습니다. 死境(사경)을 목도하고 무너져갈 때, 내가 기댈 곳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뒤틀린 삶을 다시 뒤틀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인생의 보조 바퀴 역할을 할 것 같네요. 자전거를 처음 탈 때 잘 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보조 바퀴죠. 어쩌면 그동안의 인생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를 때가 있죠. 그럴 때 이 책을 잡으세요. 나를 지지하고 연결하고 기대고 받칠 게 필요하다면 이 책을 잡으세요.
- 도도
열심히, 나쁘지않게, 무난하고 평범하게 종종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게까지. 이정도면 꽤나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다가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길 수 있는게 삶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20대의 HG가 꽤 잘 살아가고 있다가 단숨에 멍게가 될 뻔한 것처럼(사실 단숨에는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다는 사실을 20대를 지나온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다. HG가 직접 말해주는 것처럼 생생했다. 읽은 게 아니라 들은 것 같다. 상황마다의 심리적인 묘사가 현실감이 넘쳤다. 내가 겪은 것처럼 몰입됐다. HG의 상태 변화에 따라 긴장하면서 ‘그래서, 그래서? 그런 다음에?’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읽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무겁고 답답한 상태에 대한 무겁지 않은 비유적인 표현들이 피식 웃게 할 정도로 재밌기도 했다. 앉은자리에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했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를 지키는 방법은 쉽지만 쉽지않고 어렵지만 어렵지 않다. 결국 하루를 잘 지내는 것. 나와 나를 환경을 보살피는 것. 여기서 보살펴야 하는 나와 나의 환경에는 사람이 있다. 혼자서만은 절대 나를 보살필 수 없고 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HG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어떻게 잘 살아갈지에 대해. 어떨 때는 이토록 열심히, 애써야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버겁다.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나를 보살피며 산다.
- 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