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철학의 아포리아를 해결하려는 치열한 투쟁의 산물들”
벤야민, 데리다, 레비나스 등이 기존 철학의 모순에 직면해 모색한
새로운 해결책과 이론적 틀을 면밀하게 살핀다!
현대철학은 고정 불변한 것을 회의하고 해체하며 등장했다. 하지만 데리다, 레비나스, 아감벤 등 현대철학자들의 ‘종교적 전회(轉回)’는 철학 저변에 다시 초월적이고 해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가 움트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설은 기존 철학의 존재론적 토대주의를 극복하고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의 새로운 탄생을 도모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후설에게 기존 철학의 존재론적 성향을 극복하고 사물이 드러나는 현상을 다루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모든 것을 초월론적 의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본질론적인 형상에 고착되는 한계를 가진다고 본다. 후설이 존재 자체의 시간성과 타자성을 근본적으로 포함하는 모델 대신 단순히 둘의 변증법적 융합을 통해 기존 철학의 아포리아를 해결하려 했다고 본 것이다. 비평가 질리언 로즈는 헤겔이나 키르케고르 철학도 바로 이러한 아포리아를 헤쳐 나오려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본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는 현대의 여러 철학자가 역사성과 의식 간의 이러한 아포리아에 직면해 모색한 새로운 해결책과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적 틀을 살펴 나가는 9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신명아는 2012년 한국라캉과현대정신분석학회(현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2015년 한국 비평이론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가톨릭교수협의회 경희대학교 대표이기도 하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의 정신분석학자 노먼 홀랜드의 영향을 받아 귀국 후 프로이트와 라캉을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비평 연구에 심취했고, 이후 현대철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벤야민과 숄렘을 접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해왔다.
현대철학의 윤리성과 종교성에 대한 탐구
이 책의 핵심적인 맥락은 가타리에서 시작해 네그리와 하트, 랑시에르, 레비나스, 벤야민, 데리다, 아감벤, 들뢰즈 등의 논의를 통해 현대철학의 윤리성과 종교성을 탐구하는 여정에 있다. 가타리의 분자혁명 개념과 자본주의의 분자파시즘에 대한 1장에서는 현대에 파시즘이 생활의 미세한 분야까지 침범하게 됨을 논의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적 파시즘’이라는 모순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민중은 미시정치학적 분자혁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장에서는 하트와 네그리의 글로벌시대에 요구되는 주체성을, 3장에서는 랑시에르의 ‘지성적 평등’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를 논의하며, 4장에서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철학이 그의 종교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린다.
레비나스가 의미하는 타자는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자아인 에고를 초월하는 외계이다. 결국 타자는 자아상을 넘어서는 절대신과 떨어져 생각될 수 없다. 5장에서는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주의를 다루고 있다. 벤야민의 약한 메시아주의는 종교적 의미에서 메시아의 일상 현실에서의 도래가 아니다. 완벽한 보통 타당성의 충만함에서 비롯되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순수성의 현현을 가리킨다. 6장은 ‘데리다의 해체론에서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다. 데리다는 1960년대 후반 미국 대학에서의 해체론 강의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말년에 언어에서 ‘윤리로의’ 전회를 하여 ‘환대’ 등의 주제에 천착한다. 데리다의 윤리적 전회는 도덕률의 정립이 아니라 순수한 ‘윤리’로의 전회이며 종교적 전회는 타자성에 깊이 연루되어야 하는 상태인 ‘메시아적 정치학’를 가리킨다.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7장에서는 지젝이 죽음충동의 긍정적 양상을 통해 예수의 ‘비움’의 미학, 즉 죽음충동의 해방적 기제를 제시하는 양상을 살펴본다. 8장에서는 아감벤의 생명정치 이론을 다루면서 미약한 주체를 통한 아감벤의 새로운 해방의 정치학을 살펴본다.
부산대학교 이재성 교수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정치와 사회, 윤리, 해체론, 생명정치 이론 등의 여러 철학적 사유들에 천착하며 저자가 여정의 결론점으로 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들뢰즈의 초월적 존재론(경험론)’이다.” 들뢰즈를 통해 만물이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생명의 힘을 영위하는지를 살펴보는 9장에서는, 그러한 생명의 내재성을 위해 기독교전통의 신학적 담론을 비정통적으로 다시 읽는 작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저자 신명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들뢰즈가 말하는 진정한 메시아는 시공, 언어와 모든 것에 대한 분별력 이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 분별 이전의 차원은 모든 분별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이다. 이러한 궁극적 현실의 ‘보편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철학에서 ‘종교성’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벤야민, 데리다, 레비나스, 아감벤 등 철학자들의 이론적 틀을 살핀 9편의 글
1 세계화, 분자파시즘(네오파시즘)과 저항 : 가타리와 분자혁명
가타리를 통해 오늘날의 파시즘을 살펴보면서 그런 현실에 맞선 저항의 주체는 혼자가 아니라 다수의 집합소며, 서로의 삶 속에서 긴밀히 연결된 ‘분자적’ 차원에서의 혁명, 즉 분자혁명임을 논한다.
2 글로벌시대의 주체성 : 하트와 네그리
제국이라는 초국가적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먼저 홀의 ‘정체성정치(학)’을 통한 도전을 살피고, 반대로 하트와 네그리가 제시하는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존재 형태를 논의한다.
3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와 ‘인민’ : 지성적 평등과 『프롤레타리아의 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가 ‘지성적 평등’ 개념을 통해 논의된다. 특히 통제 위주의 경찰권력과 그에 대항하는 ‘몫 없는 자’들의 정치행위의 필요성을 살피고, 예술적 능력과 배움의 능력이 인류 보편적 능력임을 살펴본다.
4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과 메시아니즘
주체가 타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을 다룬다. 레비나스를 향한 여성주의자들의 불만 등의 맥락을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이해에 균형을 맞추어본다.
5 벤야민의 정치신학과 약한 메시아주의
벤야민의 정치신학적 입장을 ‘약한 메시아주의’ 개념으로 다룬다. 벤야민은 아감벤과 데리다 등에게 신학과 철학의 접목 가능성을 보여준 철학자로, 특히 카프카의 세계관과 연결하여 그에 대해 논의한다.
6 데리다의 해체론에서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
데리다의 해체론에서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이라는 주제로 ‘도래할 민주주의’가 제시되는 양상을 살피면서, 해체론적 혹은 자기- 성찰적 사고의 필요성을 논한다.
7 지젝의 정치신학 연구 : 성 바울 읽기를 중심으
지젝이 성 바울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체성을 제시하면서 예수의 ‘비움’의 미학, 즉 죽음충동의 해방적 기제를 제시하는 양상을 살펴보고, 바울은 물론 욥을 통한 새로운 신학적 읽기와 철학의 접목 양상을 논의한다.
8 아감벤의 생명정치 이론에서 메시아적 약한 정치학
아감벤의 생명정치 이론을 다루면서 무젤만의 ‘헐벗은 삶’이 권력의 주권자보다 더 고귀한 인간성의 보유이며 희망인가를 살펴보면서 미약한 주체를 통한 아감벤의 새로운 해방의 정치학을 살펴본다.
9 신학적 전회 시대의 들뢰즈
들뢰즈를 통해 만물이 어떻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생명의 힘을 영위하는지를 살펴보면서 그런 생명의 내재성을 위해 기독교전통의 신학적 담론을 비정통적으로 다시 읽는 작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