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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등단한 나태주 시인은 새로운 반세기를 향하여 다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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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다정소감
김혼비 저 |안온북스
김혼비 작가의 다정한 세계
김혼비 작가가 다정에 대한 소감과 작고 소중한 감정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다정에 조금 유난스럽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잊혀지기 쉬운 희미한 것들이 보여준 다정은 작가에게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다정을 다짐하게 하는 김혼비의 다정한 세계에 천천히 빠져든다.
2021. 10. 19. 김태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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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4차 산업혁명적인 게 아니라 그냥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김솔통. 드디어 찾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두괄식을 만들어줄 첫 문장.
--- p.19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조상이 되는 순간 애정 결핍에, 밥 집착증에, 속 좁고 개념 없는 악귀나 괴력난신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거 어디 억울하고 무서워서 마음 편히 죽을 수나 있겠나. 내가 조상이라면 밥을 못 얻어먹는 것보다, 그깟 밥 좀 안 차려준다고 후손의 삶을 망가뜨리고 저주를 내릴 평균 이하 인격체로 취급당하는 것이 더 화가 나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 p.85

덕분에 첫 비행은 무사히 끝났다. 삿포로는 추웠고, 이륙할 때 기체가 많이 흔들려 조금 무서웠다는 것을 빼고는 너무 순조롭고 매끄러워서 오히려 인상적인 게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집 앞 하늘에 대뜸 나타나 ‘첫 비행’ 페이지를 펼쳐준 비행기가 지나가고도 한참 동안, 몇 대의 비행기가 더 지나가는 동안, 계속 내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첫 비행 자체가 아니라 그날 새벽의 풍경이었다. 빗질에 따라 당겼다 풀어졌다 움직이는 두피, 양쪽 눈썹이 똑같이 그려졌는지 비교하느라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던 친구의 검은자위, 분주히 움직이며 뺨을 쓸던 솔의 감촉, 윙윙대는 드라이기 소리, 공기 중에 떠도는 스프레이 냄새, 캐리어 바퀴가 시멘트 바닥을 구를 때마다 손에 전해지는 진동, 등 뒤로 느껴지는 친구들의 눈빛, 그제야 조금씩 밝아오는 사위, 어쩐지 당당하게 펴지던 어깨, 그런 것들.
--- pp.151~152

시작은 뼈였다. 뼈? 사골? 설마 직접 사골을? 그랬다. J는 사골을 물에 담가 몇 시간에 한 번씩 몇 번이나 물을 갈며 열 시간 동안 핏물을 뺐고, 그 사골을 깨끗이 씻은 후, 20시간 넘게 네 차례에 걸쳐 사골국을 우려냈다. 세상에…… 아니 이게 무슨 ‘비빔면’ 만든다면서 대뜸 빨간 고추들 사진으로 시작하더니 그것들을 말리고 가루로 빻아서 고추장을 담근 후 비빔장을 만드는 시추에이션인가. 사골을 처음 우려보는 J가 중간중간 헤맨 것까지 셈하면 육수를 만드는 데에만 거의 이틀이 걸렸다. 미쳤어 진짜. 게다가 가스 불을 켠 채 자는 게 불안해서 타이머를 맞춰놓고 자다 말고 확인하고 자다 말고 확인하느라 J는 이틀간 거의 못 잔 것 같았다. 미쳤어…… 진짜…….
“나 좀 쩔지! 너 이거 먹으면 기운 확 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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