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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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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16쪽 | 128*188mm |
ISBN13 | 9791197332401 |
ISBN10 | 1197332405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황석영 『철도원 삼대』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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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2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아마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이런 제안에 솔깃했을 것 같다. 무언가(누군가)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누구라도 당장 세 가지 소원을 고민하느라 머릿속이 바쁘지 않을까? 이런 기회 언제 또 올까 싶어서, 주저하는 사이에 기회를 놓칠까 봐 애가 타겠지.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말해야지. 내가 간절히 바라는 세 가지를 얼른 입 밖으로 쏟아내야지. 하늘에서 돈다발이 떨어졌으면 좋겠고, 죽는 날까지 아프지 않게 잘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또 뭐가 있을까. 아, 막상 말하라고 하니까 모르겠다. 어떤 걸 제일 먼저 말해야 하는지 마음만 급하고 생각나는 게 없어. 어떡해!!
화이트 씨 가족에게 모리스 상사가 찾아온다. 그는 인도로 파견 갔던 신임 부사관으로, 화이트 씨와는 21년 만에 만났다. 반가운 이와의 재회도 잠시, 그는 이 가족에게 ‘원숭이의 손’을 꺼내놓는다. 그것은 늙은 수도승의 주술이 걸려 있었고, 운명이 이끄는 인생을 거역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였다. 세 사람이 각자 세 개의 소원을 빌 수 있다고 한다. 모리스 상사가 원숭이의 손 두 번째 주인이었고, 첫 번째 주인 역시 소원을 이뤘다. 앞선 사람의 마지막 소원은 자기를 죽여달라는 것이었다니,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던 것일까 궁금해질 무렵, 모리스 상사의 소원까지 덩달아 궁금해졌다. 무슨 소원을 빌어서 이뤘는지 모르겠지만, 모리스 상사는 자기 소원을 화이트 씨 가족에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더 궁금해지는 이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참, 인간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세 가지 소원을 빌면서 위험을 경고했던 것도 무시하고, 화이트 씨는 모리스 상사에게 ‘원숭이의 손’을 건네받는다. 소원을 빌기 위함이 아닌 그저 호기심 때문에 받아놓고 한쪽에 그냥 두었을 뿐이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이 가족에게 간절한 소원은 없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원숭이의 손’을 손에 넣는다. 그걸 호기심에 받아두었다니 어쩔 수 없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을 것을. 모리스 상사가 차마 다 말하지 못한 경고를 이 가족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장난처럼 농담처럼, ‘원숭이의 손’을 들고 소원을 빌었다. 200파운드만 있다면 집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외쳤다. “내 소원은 200파운드야!” 이상하다. 도깨비방망이 뚝딱하는 것처럼 눈앞에 200파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에이, 좋다 말았네. 아쉽지만 ‘원숭이의 손’은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었구먼.
거기까지였다면 다행인데, ‘원숭이의 손’ 이야기가 처음 모리스 상사의 입에서 나왔을 때부터 다가오던 불안의 정체는 곧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 씨 가족의 첫 번째 소원인 200파운드. 곧 그 돈은 그 가족 앞에 나타났다. 되돌릴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나서 말이다. 이쯤 되니 살아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더냐. 주술을 걸어놓은 수도승의 말처럼, 인생을 이끄는 운명을 거스르려고 하니 고난이 찾아오는 거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또 이렇게 생각하겠지. 이 가족의 불행이 200파운드 때문이었다면, 남은 두 가지 소원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만 된다면야 간단하겠지만, 인생이 어디 또 그렇게만 흘러가지도 않는 거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만 완성되는 게 삶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겠지. 주술인지 우연인지, 저주인지 기적인지 모를 선물 하나에 평온했던 오늘은 달라졌다.
단순하게 본다면 단순하겠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 많은 메시지가 담긴 듯해서 한참을 읽었다. 당신의 소원이 이뤄진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묻는다. 바라는 소원이 없는데도 호기심에 손에 쥔 것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또 한 번 묻는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왜 우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비밀에 다가서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거다. 화목하고 적당히 잘 지내는 화이트 씨 가족에게 정말 당장 소원은 없었다는 게 진실이다. 그런데도 모리스 상사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고 기어코 달라고 징징거리는 화이트 씨. 호기심이 이긴 결과는 어땠을까.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예상했겠지만, 그들이 향했던 호기심을 결말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었다. 물론 되돌릴 수도 없었다. 중요한 것을 잃고 나서 후회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끝이 없는 그 호기심에 또 다가설 것 같은 이 불길함은 뭘까.
비극이다. 소원을 빌 기회가 생겼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니. 이 소설의 결말까지 보고 나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소원 말하기는 어려울 거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웃으면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떤 소원도 함부로 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본인의 노력과 의지가 아니라면, 바라던 바가 이뤄져도 기쁘지 않으리. 호기심이 일으킨 좋은 결과물도 분명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은 항상 오래 가지 못했다.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언젠가 들어온 것보다 더 크게 뺏길 것 같은 불안함. 정말 이런 기회가 온다면 도박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수밖에 없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자유를 누리며 사는 인간이고, 우리는 그 자유 의지로 모든 순간을 선택하곤 했다. 어떤 결정이든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기회가 찾아와서 소원을 빌어도, 어떻게 치를 대가인지 몰라서 소원을 빌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기회를 얻고 기회를 놓치는 건 똑같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원숭이의 손’을 들고 소원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무서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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