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마음을 '들어보고서'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을 읽고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요즘 이를 주제로 다룬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나 역시 관련 책들을 몇 권 읽긴 했지만, 오롯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가 컸다. 바로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이라는 책이다. 우리집의 경우만 해도 지난 몇 달간 딸아이가 겨우 적응했던 유치원생활에 변화가 생겨 다시 퐁당퐁당 등원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는 매일 친구들과 만나서 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연신 "코로나 나빠!"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어른들부터 온전한 일상을 누리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쳐 가다보니 정작 아이들에게는 세심한 눈길을 보낼 여유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응당 누려야함에도 누리지 못하는 것들,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일깨우고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지난 주말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하고,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인근에 있는 다른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월요일부터 유치원을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이는 침대 위에 인형들을 하나씩 놓으며 유치원에서 친한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렀다. 그리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치원에 정말 가고 싶은데...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듣고 보는 순간,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그 사회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신학자)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현재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고, 코로나가 비단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아이들의 마음 속 상처와 불안, 우울 등 심리적 영향에 대해 어른들의 보다 많은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고 책제목처럼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건 아니다.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부대끼는 부모와 교사들에게도 발언할 수 있는 마이크가 주어진다. 지난 1년 가까이 가정과 학교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코로나가 결코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며, 어떠한 계층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까지 다다랐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마지막으로 책은 우리가 직면한 코로나 시대의 현실과 문제를 제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2020년 하반기 방역은 심리방역이 강조되어야 한다."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
참고로 책의 저자는 상처받은 청소년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치유형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19년간 운영해오고 있으며, 현재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 단장으로서 코로나 심리방역 업무를 맡고 있다. 코로나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개인방역을 철저히 해야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태껏 개인방역은 곧 신체방역만으로 한정지어 생각했는데, '심리방역'이라는 말에 아차 싶었다.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다스려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하다. 먼저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를 다섯 가지 트라우마로 규정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친구 좀 못 만났다고 인간이 죽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가족 없이 산다고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인간관계를 겪을 만큼 겪은 어른들은 이미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한 인간관계의 고통으로 인해 만남을 잠시 멀리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 막 친구관계, 또래관계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아이들은 물 없는 곳으로 실려가고 있는 물고기 같은 기분이라고 합니다. 물고기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거잖아요.(42~43쪽, 「01 새 학기가 사라졌다: 단절의 트라우마」 中)
코로나 시기에 집콕하면서 가족과 다양한 활동을 제안하는 여러 캠페인이 있었는데, 어린 자녀들과는 해볼 만한 것들이 있었지만 큰 아이들과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51쪽, 「02 무한 반복 도돌이표 잔소리: 규칙 트라우마」中)
학교에서 보낸 초기 원격 수업 시간표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등교 수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학교에 가는 날과 안가는 날의 법칙이 확립되기까지 일상이 흔들리고 생활을 감당하기가 벅찼다고 합니다. 이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벅찬데, 어떻게 규칙적으로 지나란 말인지. 규칙을 지켜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습니다.(57쪽, 「03 혼자는 어려워: 일상 유지 트라우마」)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불안해지는 아주 큰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 몸은 자라지만 머리와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는 것은 '아이의 발달이 정지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69쪽, 「04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결손 트라우마」)
스마트폰 조절과 관련된 모든 것은 관계에 기반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아이와 극단적으로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관계의 전환이 스마트폰으로 인한 싸움을 잘 해나가는 유리한 위치입니다.(79쪽, 「05 스마트폰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중독 트라우마」中)
우리는 그 경험 자체로 힘든 것이 아니다.
경험의 기억이 힘들게 하고
그 기억에 대한 해석이 힘들게 한다.
코로나에 관한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저자는 코로나로 인한 상징적 사건 중 하나로 '인천 라면 형제' 사례를 꼽는다. 휴교 이후 장시간 집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 증가, 돌봄의 위기, 그리고 학대와 방임의 거듭된 악순환이 결국 안타까운 결말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학교를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트머스대학의 스톨크 팀의 5세 유치원 아동에 대한 연구 결과는 두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하나는 아동의 가족 이외의 다양한 사회적 경험이 또래와의 경험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런 다양한 사회적 경험의 일시적 부재만으로도 아이들은 또래와의 상호작용이나 협력에 위축이나 소극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구와의 밀착된 경험은 아이들의 정신적 고통이나 방황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겠다. 또한 코로나 시기에는 중산층에서 빈곤층, 극빈층으로의 하향 이동이 늘어나 자칫하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취약계층 아동들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동수당을 확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기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바이러스가 아이들 몸을 어른들 몸만큼 파괴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미래를 파괴할 수는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아동 지원은 절실하다."(89쪽, 기자 제이슨 드팔)
코로나 시기의 온갖 대책과 수칙, 그리고 많은 중요한 정보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들리고 받아들여졌을까? 저자는 지난 어린이날을 맞아 정은경 질병관리청 청장이 어린이와 함께 가진브리핑 시간을 예로 들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개별적인 차원에서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기울인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겠으나 거시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어른들끼리만 이야기하고 결정했다는 성인 중심, 어른의 걱정은 오로지 학력뿐이라는 학력 중심, 학생들은 통제의 대상이라는 통제 중심, 그리고 돌봄에 대한 부담 중심, 이렇게 네 가지 담론으로 재구성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이들과 부모, 교사 모두에게 남겨진 것은 그저 상실감이나 패배감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뿐인 것일까? 이 책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각자에게 맞는 처방전을 지어준다. 우선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차단하거나 극복하게 해줄 심리 백신과 어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대화법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부모에게는 자녀와의 관계, 교사에게는 학생과의 관계에 대한 교육보다 자신들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기술[만성 누적 스트레스 과부하(신체 마모)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해야할 자기 돌봄의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파악한 뒤,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호흡에 집중하며 운동을 하면 전반적인 스트레스 상태가 완화되고 낮아진다. 끝으로 이 상태가 오래도록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주면 된다. 즉 자기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힘든 상황에 처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지십시오.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너무 시간을 허비하지 마시고, 원래 쓸 수 있는 기술을 더 풍부하게 활용하십시오. 기술에 집착하지 말고 접촉에 집착해주세요."(174쪽, 영국 국민 건강 관련 기관의 수석 디자이너 딘 비폰드)
원 헬스(One Health)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게 된다.
모두가 아프지 않으려면 서로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
저자는 책을 마치며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겪은 결핍과 과잉을 정리하고, 부재와 존재를 정돈하고, 쉬고 재충전하는 시간', 즉 '코로나 회복 패키지'를 다함께 꾸려야 한다고 제언한다. 어느 작가가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여러 태도들 가운데 언급했던 '회복력'과도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참 많은 걸 잃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반대로 얻은 것들도 꽤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교사가 코로나로 인해 잃은 것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고,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고 또 해나가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힘든 시간을 걷고 있을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다름아닌 '마음 돌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시작은 아이들을 걱정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될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확실히 아이들은 걱정이 늘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먼저 물어보고 잘 들어주고 안심시켜주고, 아이들이 지금의 상황과 생활을 잘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할 일입니다.(65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