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在朝)일본인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기록!
70억에 가까운 세계 인구를 국경으로 민족으로 ‘카테고리’를 나눈다면 잘 나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공간을 넘어서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느 특정한 시간에 국가나 개인적 상황으로 월경(越境)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는 식민지 시대에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족이 있고,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이 있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으로 간 고려인이 있다. 또 세계 각국에 여러 이유로 흩어진 이민자도 있다. 그들을 한국인(남한 또는 북한)이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은 건, 오랜 세월 그들만이 형성한 새로운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카테고리를 정한다는 건, 더 나아가 소수 월경자의 아이덴티티를 말한다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다. 출생, 가계, 거주 기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조건이 일차적으로는 그들을 규정하는 기준이 되겠지만, 자의식과 같은 주관적인 조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월경의 기록』은 식민자로서 조선에 살았던 재조(在朝)일본인의 정체성에 다가간다.
식민 문학과 언어 권력
Ⅰ부는 ‘식민 문학과 언어 권력’이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다섯 편의 글이다. 박광현의 「재조일본인 잡지의 문예란과 식민지 일본어 문학의 기원-『韓半島』와 『朝鮮之實業』의 문예란을 중심으로」는 일제 식민 시대 조선 내 일본어 문학의 시작과 전개된 과정을 보이고 있다. 조선으로 넘어온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위한 인쇄매체를 출현시킨다. 가장 먼저 신문을 그리고 『한반도』와 『조선지실업』이라는 잡지가 탄생한다. 당시 조선으로 넘어온 일본인 수가 많지 않음에도 두 잡지에 굳이 문예란을 두는 건, 그들의 자기표현 욕망을 표출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지점이 재조일본인의 이중적 자기 동일성의 발견이라 한다. 이러한 성격의 두 잡지의 전개과정을 살피면서 재조일본인의 문학이 일본 ‘내지’ 문학에 대한 동시대성=동일지향과 비동시대성=차이화의 교합을 통해 이뤄졌음을 밝히고 있다.
신승모의 「일한서방(日韓書房)과 ‘일본어’ 권력」은 재조일본인 뿐만 아니라 신지식과 문명개화에 목마른 조선인이 서적을 구입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었던 일본인 경영 서점에 대해 논의한다. 일본인 경영 서점은 지금까지 자료나 연구 방법상의 제약 등으로 거의 검토되지 못했기에 가치 있는 논의로 여겨진다. 특히 이 글은 제국의 ‘외지서점’이 ‘일본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조선에 대한 ‘知’와 표상을 재조일본인 사회와 식민 본국에 발신, 유통해가는 양상의 한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박영미의 「재조일본인의 조선 한문학 연구와 식민지 지배 이데올로기」는 마쓰다 고(松田甲), 다다 마사토모(多田正知), 후지쓰카 지카시(藤塚)를 중심으로 재조일본인 한문학자의 조선 한문학 연구를 분석한다. 1908년 이후 조선 고서 총서 간행의 의미와 더불어 재조일본인 학자들이 조선통신사 연구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조선 한자의 외래성을 부각해 조선의 문화가 중국으로부터 이식된 것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이들의 연구가 근대적 학문 방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한문학을 정립하는데 일조했음을 말하면서도 결국 이들의 연구가 향하는 곳이 ‘내선동화’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김계자의 「재조일본인 잡지 『조선시론』과 동시대 조선 문학의 번역」은 일본어 번역으로 구성된 ‘조선’이 의미하는 바와 ‘일본어’로 생성·번역되는 ‘조선’의 문제를 도출해서 논의한다.
박광현의 「조선문인협회와 ‘내지인 반도작가’」는 1939년에 결성된 조선문인협회를 중심으로 논하면서 그들 중 스스로 ‘내지인의 반도작가’라고 불렀던 재조일본인 작가들이 제국 안에서 ‘조선적인 것’을 그리는 행위의 의미와 정치성에 관해 규명하고 있다.
식민의 아이덴티티, 기억의 전유
Ⅱ부는 ‘식민의 아이덴티티/기억의 전유’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다섯 편의 글이다. 조은애의 「식민자와 만나는 법, 그 불편한 재현의 장소들-염상섭 소설을 중심으로」는 염상섭 소설에서 식민자를 경성이라는 상징적 공간과 연결하여 읽어내고 있다.
기유정의 「모리타 요시오(森田芳夫)의 국체 논의와 식민 2세 아이덴티티론-『綠旗』(錄人) 소재 글을 중심으로」는 조선 식민자 2세 출신인 모리타 요시오의 아이덴티티를, 주로 녹기연맹이 발행한 『녹기』에 투고된 그의 국체 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살폈다. 특히 모리타가 조선을 일본 본토의 밖이자 ‘식민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국의 ‘구심’으로 위치시키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이 같은 문법은 모리타가 자신을 조선출신자(‘朝鮮っ子’)로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음을 검증한다.
에히메 대학의 나카네 다카유키(中根隆行) 교수의 「어느 재조일본인의 ‘인양’ 체험기-무라카미 교시(村上杏史)의 『수기 삼천리(手記 三千里)』를 읽다」는 일본 패전 후 가족과 함께 일본 에히메(愛媛)현으로 귀환한 하이쿠(俳句) 시인이자 식민자 2세인 무라카미 교시(村上杏史)의 경위를 검증하고 있다. 무라카미의 조선인양체험기인 『수기 삼천리(手記 三千里)』의 내용과 하이쿠 작품집 등을 분석하여, 그의 인양체험의 특징이 조선에서 하이쿠로 연결되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김혜인의 「식민자의 젠더화된 초상-두 개의 전후(戰後), 식민 기억의 재구성」은 해방 후 남아 있는 일본인에 대한 조선인의 기억과 표상을 당시에 실질적으로 전개된 ‘젠더화’라는 매개과정을 살피며 논의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후 냉전체제에서 식민 기억이 현실 정치 속에서 재구성되는 양상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신승모의 「‘전후’ 일본사회와 식민자 2세의 문학」은 식민자 2세의 문학이 전후 일본사회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라는 문제의식하에서, 이들의 문학이 전후의 일본사회에 등장하는 문맥과 그 시점의 의미를 동시대 일본사회와 문학계에서의 정황을 보조 동선으로 참조하면서 파악한다.
‘흥행’하는 제국의 극장·영화
Ⅲ은 ‘흥행’하는 제국의 극장·영화라는 타이틀로 구성된 세 편의 글이다. 양인실의 「제국-식민지를 이동하는 영화인들」은 ‘국경’을 넘어 일본 제국 영화공간의 일부를 구성했던 재조일본인과 영화의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재조일본인 사회에서 영화가 수행했던 역할을 살핀다.
강태웅의 「만주개척단 영화 〈오히나타 마을(大日向村)〉」은 1937년 ‘분촌(分村)’을 하여 만주에 이주한 나가노(長野) 현의 오히나타 마을(大日向村)의 사례를 영화화한 만주개척단 영화 〈오히나타 마을〉(1940)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영화와 만주영화협회(만영)의 영화, 그리고 검열자료 등으로 살피면서, 만영이 추구하고, 보여주려고 했던 영상이 무엇인지를 “만주스타일”이라는 용어로 수렴하여 이것과 영화 〈오히나타 마을〉의 차이를 분석하고 있다.
홍선영의 「재경성(在京城)일본인의 ‘극장’과 문화정치」는 식민지 시기 ‘경성’의 일본인 극장이 제국 권력의 문화적 파장 가운데 다양한 문화적 역동성을 생성되는 공간이라고 파악하고, 당시 핵심적인 근대 미디어로서 경성의 일본인 경영 극장을 실증적으로 고찰한다.
『월경의 기록』은 한국연구재단 지원의 연구로서, 한국학과 일본학을 넘나들고 또 아우르는 학제 연구를 지향하면서 재조일본인의 문화와 지식, 그리고 아이덴티티와 기억의 계보를 연구자 간, 분과 간, 논문 간의 상호 소통을 통해서 그려내고자 한 공동연구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식민 시기의 지식사회와 재조일본인에 관한 연구를 객관적이며 폭넓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결코 한 가지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재조일본인 정체성 연구에 깊이를 더해, 이 시기에 관한 생생한 지식을 전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