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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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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의 미로

가난의 경로 5년의 이야기

이문영 | 오월의봄 | 2020년 05월 18일 리뷰 총점9.6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7점
편집/디자인
4.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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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0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580쪽 | 520g | 128*188*35mm
ISBN13 9791190422307
ISBN10 119042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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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MD 한마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이주는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다. 건물주가 요구하면, 응당 나가줘야 한다. 쪽방 건물에 사는 45명에게 갑자기 불어닥친 강제퇴거. 이 책은 강제퇴거 이후 45명의 삶을 5년 동안 추적하며, 한국에서 가난이란 어떤 모습인지를 기록했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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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웅크린 말들》(2017)을 썼다. 필명(이섶)으로 동화 《보이지 않는 이야기》(2011)와 《뜻을 세우면 길이 보여》(2005)를 냈다. 《침묵과 사랑》(2008)에 글을 보탰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 있다. 《웅크린 말들》(2017)을 썼다. 필명(이섶)으로 동화 《보이지 않는 이야기》(2011)와 《뜻을 세우면 길이 보여》(2005)를 냈다. 《침묵과 사랑》(2008)에 글을 보탰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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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572

출판사 리뷰

쫓겨난 사람들의 ‘가난의 경로’ 5년을 좇다

『노랑의 미로』는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 중 한 곳에서 벌어진 ‘강제퇴거 사건’을 토대로 했다. 2015년 2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의 한 건물에서 45개 방마다 노란 딱지가 붙었다. 건물주는 한 달 열흘의 시간을 주고 모두 방을 비우라고 일방 통보했다. 1968년 완공된 그 건물에서는 한 평도 되지 않는 방마다 45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18년을 거주해온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이었다.

“주민 마흔다섯 명의 세계가 벼락에 맞았다. 강제퇴거 통보는 예고 없이 붙었다. 어제처럼 일어나, 어제처럼 밥을 먹고, 어제처럼 볕을 쬐고, 어제처럼 소주를 마시고, 어제처럼 자고 눈을 떴을 때, 주민들 앞엔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있었다. 길게는 20여 년을 살아온 방에서 어제처럼 문을 열고 나와 문을 닫았을 때 너무 화사해서 눈이 얼얼한 노란색이 문 위에 있었다.”(59쪽)

그로부터 몇 달 뒤 쪽방 건물이면서 45명의 주민이 사는 하나의 마을이 황폐한 철거촌으로 변했다. 방들은 해머에 맞아 깨졌고,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쫓겨나지 않으려 행정기관을 찾아다니며 호소하던 주민들은 결국 한두 명씩 방을 빼야 했고, 끝까지 버틴 사람들은 춥고 깜깜하고 물이 나오지 않는 건물의 부서진 방에서 폐허와 공존했다.

이 책은 저자 이문영이 2015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가난의 경로」를 씨앗으로 삼았다. 쪽방 건물을 리모델링해 외국인 여행객 대상의 게스트하우스로 용도 변경하려던 건물주가 그 방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퇴거를 통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건물주의 거듭된 공사 시도와 주민들의 저항, 단전·단수, 철거, 이사, 법정 다툼, 공사 중단, 노란집으로의 땜질, 귀가가 이어졌다. 법원이 주민들의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뒤 쫓겨난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건물로 돌아왔고 다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저자는 사건의 전 과정을 따라가며 1년 동안 ‘사건 이후’를 탐사보도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일은 일상이었다. 가난이 흔들 수 없이 견고해지고 공고화되는 ‘사태’는 ‘사건 이후의 일상’에 있었다. 누군가는 쫓겨나고 다시 쫓겨나는 일을 되풀이하며 가난해졌고,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 쫓아내며 누군가는 수익을 얻었다. 가난은 ‘사건의 순간’이 아니라 ‘사건 뒤 사태가 된 일상’의 누적 속에, 그 일상을 고립시키고 공고화시키며 이득을 얻는 구조 속에 있었다. 저자는 쫓겨난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얼마나 이동하고 그 시간 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했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의 ‘가난의 경로’가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가난한 일상’은 계속됐다. 사건 당시로부터 5년이 흘렀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난한 일상은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가난의 경로」 연재 종료 뒤 ‘이후 4년’의 변화를 계속 따라가며 시간을 쌓았다. 그 시간의 이야기들을 강제퇴거 1년의 이야기에 보태고 수정해 대부분 다시 썼다. 모두 5년 동안 45명의 이야기를 좇았다. 5년 뒤 45명 중 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남았다.

이 책의 세 가지 성격

1) 사건이 지나간 일상 추적한 탐사 뒤의 탐사


『노랑의 미로』는 탐사보도에 쌓아올린 이야기의 집이다. 쫓겨난 사람들의 5년을 따라가며 확인한 ‘가난의 경로’는 이 세계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가두고 고립시키는지를 확인시킨다. 저자는 강제퇴거당한 주민들의 이주 경로를 따라가며 이사한 거리를 하나하나 측정했다. 주민 45명 중 30명(66.6퍼센트)이 직선거리 100미터 안에서 이사했다. 몸에 100미터짜리 밧줄을 묶고 밧줄이 허락하는 거리 안에서 맴돈 것 같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동자동 안에서 움직였다. 딱 그만큼이 그들에게 허락된 이동거리였다.

100미터 이상 1킬로미터 이내로 이주한 사람은 1명(2.2퍼센트)이었다. 1~5킬로미터를 움직인 주민과 5~20킬로미터 거리로 이사한 주민(매입임대주택으로 옮겨간 사람들과 사망해 무연고 납골묘에 안치된 사람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은 각각 5명(11.1퍼센트)씩이었다. 20킬로미터 밖으로 나간 사람(충북 음성 노숙인 요양 시설)은 1명(2.2퍼센트)뿐이었다. 3명(6.6퍼센트)은 이주 지역이 확인되지 않았다. 쪽방에서 쫓겨난 그들이 찾아간 새 방도 여전히 쪽방이었다. 31명(68.8퍼센트)이 쪽방으로 옮겨갔다.

“가난한 자들에겐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나뉘어 있었다. 무형의 장벽이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508쪽)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는 자유를 살 돈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자유란 사실이 확인됐다. 같은 동네의 한 건물에서 쫓겨난 그들은 같은 동네의 다른 건물에서 다시 만나 또 이웃이 됐다. 이동거리가 극도로 제한된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만났다. 흐르지 못하고 퇴적되는 가난이었다.

5년이 흘렀다. 『노랑의 미로』는 강제퇴거 사건이 종료된 이후의 시간(2020년 2월까지)을 계속 따라가며 ‘탐사 뒤의 탐사’를 이어갔다. 그동안 45명 중 9명이 사망했다. 강제퇴거에 휩쓸렸던 주민들이 다섯 해 만에 5명 중 1명꼴로 세상에 없었다. 그들이 가난의 경로에서 이탈하는 길은 죽음뿐이었다. 『노랑의 미로』는 죽었으나 그 집을 떠나지 못하는 망자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강제퇴거당한 뒤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한다.(546쪽)

2) 기록되지 않은 기억으로 본 역사 밖의 역사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과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들 틈에 박혀 있다.”(211쪽)

가난의 경로는 특정 건물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새 거처를 찾아 이동하며 그리는 경로인 동시에, 서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 서로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한 건물에 도착해 이웃으로 만나는 경로이기도 하다. 가난한 동네에 살아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므로 가난한 동네로 올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노랑의 미로』는 그들의 목소리로 복원한다. 그 경로를 밟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 한 칸’으로 찾아든 사람들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누구보다 아프게 겪어왔다. 정치와 사회가 불의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목격된다. 책은 묻는다.

“역사는 누구의 기억인가.”(109쪽)

『노랑의 미로』가 복원한 목소리들에는 ‘역사가 흘린 기억들’이 있다.
“역사는 시선이고, 위치며, 태도다. 역사는 기록하는 권력의 시선이고, 권력이 글을 쓰는 위치이며, 권력이 사실(fact)을 선택·배제하는 태도다. 그 시선의 멀고 가까움과, 그 위치의 높고 낮음과, 그 태도의 완고함과 유연함에 따라 역사는 객관적 기억과 주관적 기억 사이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모습을 띤다. 역사로 인정받지 못한 시선과 위치와 태도 밖에도 각자의 삶을 지탱해온 시선과 위치와 태도가 있다. ‘안’의 기록 권력들이 어떤 기억이 참이냐를 두고 논쟁할 때 ‘밖’의 사람들에겐 ‘안의 기억’이 과연 내게도 참이냐를 질문한다. 기록을 남기지 못한 자들의 역사는 기록을 지배하는 자들의 기억으로 대체돼왔다. 그들에게 역사란 대한민국의 기억일순 있지만 나의 기억은 아닐 수도 있다. 누락당한 개인들에게 역사는 검증되고 인증된 역사책이 아니라 그들의 뒤틀리고 편향된 몸의 기억 속에서 훨씬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그들의 공인받지 못한 기억 속에서 정의와 불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감각되기도 한다.”(110쪽 각주)

『노랑의 미로』는 역사가 버린 기억들에 귀 기울이며 그 기억으로 ‘역사 밖의 역사’를 쓴다.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과 허구가 등을 맞댄 곳만 진실의 거처는 아니다. 이 책은 ‘안의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안의 역사가 인정하지 않는 밖의 이야기를 쓴다. 기억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보다 그들이 몸으로 통과해온 ‘다른 역사’를 다만 전하고자 한다.”(110쪽 각주)

한국전쟁 때 산산이 깨져 거리에 부려진 어린아이의 삶이, 거리에서 살다 ‘후리가리’(일제 단속)당해 끌려간 섬(선감도)에서 겪은 지옥도가, 요정에 틀어박혀 ‘의리’를 도모하는 정치인들과 주먹들을 시중 들며 지켜본 ‘권력과 깡패가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전쟁의 공포를 이용해 내부를 누르고 권력을 다지는 정치 공학이, 적대함으로 공생하는 남북이 서로를 겨누며 창설한 특수부대(북한의 김신조 부대와 남한의 HID)의 내부가, 민주도 공화도 없던 민주공화 시대의 부정부패와 부실 공사의 상징(와우아파트)의 붕괴가, 깨끗하지 못한 권력이 ‘사회정화’의 주체가 되자 오염돼버린 말의 비극이, 그 비극 아래에서 청소되고 소탕돼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힘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국민을 전쟁터로 내보내 달러를 벌고 빌딩을 올리며 경제지표를 끌어올린 국가가, 그 국가로부터 ‘산업역군’과 ‘역전의 용사’로 호명됐으나 오로지 그 ‘역군’과 ‘용사’에게 떠넘겨진 성장의 이면이, 누군가의 집을 부수며 성장해온 토건 자본주의의 이면과 그들 대신 손에 피를 묻히는 철거용역들의 ‘이뤄지지 않을 꿈’이, 그 시간들을 끌어안고 살아온 45명의 기억들이 동자동의 한 건물에 와서야 지친 몸을 눕혔다. 가난했으므로 그 건물에 와서야 쌓이는 가난한 기억들이었다. 『노랑의 미로』는 그들의 기억으로 역사를 쓴다.

1968년 사용 승인을 받은 그 건물의 시간 위에 그해 태어난 한 주민의 시간도 포개진다(83쪽 ‘천국’).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그 건물을 낳은 동네의 시대적 변천, 광복 이후부터 그 땅에 찾아든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 그들을 제거하며 ‘정비’하고 ‘정화’하고 ‘개발’하고 ‘재개발’해온 도시의 욕망, 그 욕망에 길들여진 채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들의 가난한 몰아내며 부를 쌓는 재산 증식 시스템, 그 핏빛 순환을 ‘발전’이라 부르는 이 세계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3) 문학의 자리와 경계를 묻는 문학 곁의 문학

‘표준’이 배제한 은어·조어·속어로 대韓민국이 가린 대恨민국을 드러내며 ‘2017년 판 난쏘공’이란 평가를 받았던 전작 『웅크린 말들』(후마니타스, 2017)에서 이문영은 이렇게 썼다.

“말해지지 않는 자의 저널리즘은 이야기였다. 왕조의 언어가 ‘실록’의 지위를 독점할 때, 백성의 언어는 ‘야사’로 버려져 떠돌았다. 말해질 기회를 소유한 사람들의 韓국어가 언로(言路)를 획득하고 기록으로 쌓일 때, 말해질 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恨국어는 누락되고 기록 없이 새어 나갔다. 권력자들의 기록이 역사[正史]의 자리에 앉는 동안, 권력 없는 자들 의 비역사는 ‘이야기’로 전파됐다.”

이야기는 기록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전하는 수단이다. 가난의 경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경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으로 얽힌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주요 인물이 나올 때마다 그의 다음 등장 위치를 표시했다. 표시된 쪽수를 따라가면 해당 인물의 이야기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노랑의 미로』는 그 이야기들을 문학의 언어로 쓴다. 사실을 담담하게 쓰지만 담담한 문장 안에 격렬한 정서를 응축하는 이문영 문체는 『노랑의 미로』가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읽히게 한다. 픽션과 논픽션의 작법을 넘나들고, 문학적인 것과 문학적이지 않은 것의 차이를 흔들며, 문학의 자리와 경계를 질문하는 그의 글쓰기는 다만 무엇이 쓰여지고 말해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험한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책을 읽는 키워드

노랑


색칠한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는 가난을 상징한다. 주민들을 퇴거시키고 리모델링을 시작한 건물은 법원이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뒤 쪽방으로 다시 땜질된다. 노란 벼락(퇴거 통보 딱지)이 친 잿빛 건물에 노란색 페인트로 건물 외벽과 방문을 칠했지만 그 안의 가난한 삶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책은 노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노랑. 가시 스펙트럼 576∼580나노미터의 빛깔. 가장 눈에 잘 띄는 원색. 방문마다 붙어 강제퇴거를 통보한 날벼락. 잿빛 건물이 보수공사를 거친 뒤 껴입은 헌 옷 같은 새 옷. 무채색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홀로 도드라진 건물 한 채. 리모델링을 멈추고 땜질한 부실의 결과물. 있음이 없음을, 많음이 적음을, 위가 아래를, 안이 밖을,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경로’. 잘라내고 끊어내도 다시 얽히고 묶이는 이야기의 혼돈. 환하게 칠한 건물 안엔 정작 없는 무엇. 덧칠만 하면 찬란한 세계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징그러운 환상. 머지않아 벗겨지고 말 껍데기. 비릿한 검정의 속임수. 노랑의 미로.”(544쪽)

미로

출구 없는 가난을 상징한다. 쫓겨난 주민들은 직선거리 100미터 안에서 움직이며 가난이 세운 무형의 담장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들어가기는 쉽지만 빠져나오기는 어려운 미로 안에 가난이 갇혀 있다. 이야기의 미로를 뜻한다. 강제퇴거된 주민들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자아내는 이야기들에 얽혀 끌려들어간다. 각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인 주민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다시 얽히고설키며 이야기의 미로를 만들어낸다. 한국사를 흔든 역사적 사건들이 그들의 이야기와 물리며 또 다른 이야기와 연결된다.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난의 미로 안에 끝내지 못한 가난한 이야기가 갇혀 있다.”(573쪽)

강제퇴거의 무한궤도

노란집 주민들에게 닥친 강제퇴거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퇴거와 철거는 자석처럼 붙어다녔다.

“누군가 쫓겨납니다. 다른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흘러와 앞서 쫓겨난 자의 자리를 채웁니다. 쫓겨난 누군가는 간신히 정착한 공간에서 다시 쫓겨나 과거 쫓겨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한 번 쫓겨난 사람은 쫓겨간 곳에서 자신이 쫓겨났던 이유와 동일한 상황에 놓이며 다시 쫓겨납니다. 9-2×의 주민 다수가 강제퇴거를 중복 경험했습니다. 10년 전 강제로 쫓겨나 9-2×로 왔던 지하5호 서혜자는 10년 뒤 그 방에서 다시 퇴거당해 자신을 쫓아냈던 그 건물로 돌아갔습니다. 9-2×에 닥친 강제퇴거는 109 호 조만수가 평생 세 번째로 겪는 강제퇴거였습니다. 9-2×에서 내쫓긴 205호 박기택은 이사 간 건물에서 9-2×에서와 같은 이유로 퇴거 통보를 받습니다. ‘안전을 위한 보수공사’는 가난을 쫓아내며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논리로 거듭 소환됐습니다. 가난은 철거와 강제퇴거의 무한궤도 속에서 순도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45명

‘노란집’ 주민들은 예외 없이 자신만의 엄청난 이야기들을 안고 살아왔다. 어마어마한 삶의 이야기를 몸에 쌓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한 건물에 모였을까 싶을 만큼 그들이 노란집의 45개 방에 깃들었다. 마치 신이 그들을 특정해 거대한 핀셋으로 집어올려 그 건물로 옮긴 것 같았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보다 드라마틱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노랑의 미로』에서 펄떡이며 스토리를 이끈다.

-슥슥슥슥 10센티미터씩 발을 끌고 수백 미터 거리의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은 뒤 슥슥슥슥 되돌아온 자신의 방에서 ‘어떤 죽음’을 발견한 지하4호.
-쪽방 건물에서 혼자 죽어간 사람들의 방을 정리하고 죽음의 흔적을 닦은 뒤 그 방에 남은 살림살이를 고물로 수거해 되파는 지하7호.
-과거 기록을 지우고 쪽방에 은거하면서도 퇴거 사태 때 법조문을 줄줄 외우며 법적 대응 논리를 제공해 ‘검사 출신’이란 소문이 무성했던 지하8호.
-어렸을 땐 미군부대의 하우스보이였고, 젊었을 땐 정치주먹 김두한·이정재를 서빙했고, 늙었을 땐 금붕어장수를 하며, 또래가 공부할 때 술값 수금 다닌 일이 가장 쓰렸던 지하10호.
-“웬수들”이라고 거친 욕을 하면서도 아픈 사람들과 홀로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는, 자신의 작고 가난한 방을 매일 쓸고 닦으며 ‘마지막 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하는 장의사 출신 201호.
-낮엔 인자한 ‘나눔이웃’이지만 밤이면 검은 선글라스에 자근자근 짓밟히는 꿈을 꾸고 심한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머리에 각인된 어떤 수칙을 비밀처럼 읊조리는 204호.
-국제발명대회에서 입상한 ‘발명왕’이자 ‘쪽방 돈키호테’이며 ‘백도라지’이자 ‘김가나다’로서 이웃들에게 ‘알아 몰라?’를 물으며 자신의 ‘일렉트릭 볼케이노’로 에너지 혁명을 꿈꾸는 301호.
-젊은 날 악명 높은 철거 기업의 선봉대로 철거민들을 내쫓으며 방값을 벌었으나 이제 그 자신이 철거민처럼 내쫓길 처지에 놓인 303호.
-방에 초록 막걸리병으로 초록 들을 만든 뒤 평생 가져본 적 없는 푸른 논밭을 꿈꾸며 엄무우엄무우 우는 누렁소 따라 엄마아엄마아 우는 307호.
-팔뚝에 새겨진 용인지 이무기인지 거머리인지 모를 검은 문신 때문에 끌려간 삼청교육대에서 호랑이, 표범, 여우, 너구리, 오소리와 한 우리에서 두들겨 맞았던 311호.
-중동의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왔으나 바다의 전쟁터로 다시 보내지며 자신의 불운이 어디서 비롯됐을까 자책하는 401호.
-강제퇴거가 벌어지는 골목을 뛰어다니며 바닥에 코를 묻고 귀를 쫑긋거리면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강아지 ‘마로’.

가난의 속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가난의 속’의 일단이 『노랑의 미로』에서 펼쳐진다.

그놈

-노숙 시절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고 명의 도용당한 뒤 바퀴벌레 알처럼 증식하는 채무와 불법의 책임을 떠안고 죽을 때까지 추심업체에 쫓기는 403호. 그의 명의를 도용한 ‘최초의 그놈’부터 이후 새끼를 까듯 셀 수 없이 늘어난 ‘그놈들’이 셀 수 없는 종류의 불법과 위법을 403호에게 떠넘기며 빨아먹을 수 있을 때까지 빨아먹는 ‘집요한 흡혈’의 실상.(352쪽~)

순례

109호가 새벽마다 오르는 ‘짤짤이’(구제비 지급 기관을 찾아다니며 무료 식사와 적은 액수의 돈을 받는 행위) 길.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밥을 찾아 오랜 세월 걸으며 구축한 짤짤이 코스. 수십 년간 당대의 상황과 기관들의 형편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조금씩 코스를 변경하며 후대로 전수해온 길. 그 길을 걸으며 가난을 전시해서라도 부끄러움보다 무서운 배고픔에 맞서는 격렬한 순례.(400쪽~)

한양

연고의 기초인 성과 본(本)이 없는 사람들의 영토. ‘공식 한국인’이 될 서류상 자격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들에게 국가가 본으로 내리는 실재하지 않는 땅. 가족과 소속과 출처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든 가상의 공간. 가장 가난한 자들의 도읍.(464쪽~)

쌍생

동자동과 길 건너 남대문로5가에 살지만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사람. 22년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쌍둥이 같은 삶을 산 그들. 국가의 묵인 혹은 조장 아래 어린 시절 어디론가 끌려가 감금되고, 폭행당했고 어떤 사건에 휘말려 젊은 시절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며, 어느 날 방문 앞에 퇴거 통보 딱지가 붙은 뒤 그 방에서 쫓겨나 그 언저리로 옮겨간 ‘가난의 판박이’.(451쪽)

입구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손쉽게 찾을 수 없는 가난. 건물 입구로 들어간 이야기는 그 안의 미로를 맴돌며 사건이 지나간 일상 안에 갇혀 있다. 『노랑의 미로』가 이야기를 끝내도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입구 앞을 서성이고 있다.

부끄러움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노랑의 미로』를 “실패의 기록”이라고 썼다.
“부끄럽습니다. 이 책이 가난을 소비하고 대상화해온 시선을 극복했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가난의 겉’만 핥아 편견을 강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사태 뒤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강제퇴거로 내몰렸던 주민 마흔다섯 명 중 아홉 명(20퍼센트)이 사망했습니다. 생존해 있는 주민들은 변함없고 어김없이 가난합니다. 그 가난을 흠집 내지 못하고 구경하기만 한 이 책은 그러므로 실패의 기록입니다. 이 세계가 퇴치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가난의 속’은 이 부끄러운 기록을 딛고 계속 탐구돼야 합니다.”(5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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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서울의 한 공간, 그들은 생존하면서 죽음을 기다렸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나*이 | 2020-06-18

서울의 한가운데, 퇴거 명령이 내려진 곳, 곳 사라질 공간에 꾸역꾸역 모여들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화두는 가난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흘러 들어온 곳이 이곳 작은 건물, 그들은 이곳에서 죽지 못해 살았다. 죽어도 누가 치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시신으로 이곳에 기거하다가 결국 무연고자로 죽음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이야기다. 이 화려한 세상, 어둠이 가득한 공간에 그들은 어깨들을 걸치고 그렇게 죽음을 기다렸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 건물의 이야기다. 허구라고 이름은 붙어 있으나 현장르포 같은 느낌을 준다. 그곳에서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어 갔고, 그런 사연들이 있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기이한 생활들이 그들을 거기 불러 모았고, 그렇게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일 같은 기록물이다. 이곳에 어느 날 딱지가 붙었다. 강제 퇴거 명령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가면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길거리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생존을 위해 저항한다. 하지만 건물주는 요지부동이다. 경제논리를 펴고, 보건 논리까지 편다. 책은 말한다. 그들에게 <강제퇴거>란 사건은 하나의 일상이라고. 참람한 인생들의 모습이 언어를 통해 그려진다. 정말 이러한 삶이 있을 것인가? 우리들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의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건은 그들의 목소리만으론 알려지는 이야기는 되지 않는다. 정치가 들어가고 언론이 문제 삼을 때 비로소 기사화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선거철 같은 때 정치인들이 이런 곳에 들러 나이 드신 분들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선거만 끝나면 가난한 일상이 그대로 전개 된다. 기업인들이 그들의 상품을 홍보할 때 잠시 들리는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또 바삐 그렇게 가난하고, 그렇게 궁굴며 살 수밖에 없다. 또 쫓겨나고 다른 살만한 곳을 물색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 개인적으로 혜택을 입는 주거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냥 이런 공간에서 부대끼다가 쓰러져 가고 흔적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그려진다.

 

쪽방 건물은 방이 한 가구다. 9-2x는 마흔 다섯 가구가 살고 있는 건물이다. 강제 퇴거가 이루어지면 지하 1, 지상 4층 건물은 한 채의 철거 촌이 된다. 지난 시간 북쪽에서 폭파한 연락사무소의 규모보다 훨씬 작은 건물에 45 가구가 산다. 그 가구들이 모두 집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의 삶 그 자체가 가난의 경로. 더러는 다시 노숙자로 전락할 것이다. 더러는 비슷한 공간으로 다시 찾아 들 것이다. 흔히 고시촌 같은 공간이 변하면 이런 삶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시의 한가운데, 지질이도 가난한 삶이 침투한 곳, 그들의 공간은 그렇게 노여워진 삶이 머무는 세상의 공간이 된다.

 

이 글은 이 공간에 흘러 들어온 45인의 삶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으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여실하게 담겨져 있다. 그들의 그 삶 속에 시대의 굵직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삼청교육대, 실미도 사건, 한국동란, 김신조 사건 등의 역사적 사건에 얽혀 찌그러진 인생들의 이야기도 있다. 가난 때문에 원양어선을 타고, 감옥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들의 삶이 모여 9-2x의 공간을 만들고 있고, 그 속에서 가난을 등에 지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강제 퇴거란다. 그들이 갈 곳은 없다. 막다른 삶이다. 그들이 노엽지 않을 수 없다. 그 노여움은 무리의 모임으로 세상을 향한 절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가난과 무지는 힘을 모으는 데도 능력이 부친다. 결국은 쫓김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들이 어디로 가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참람하다. 그들의 삶은 절절한 생존이다.

 

나환수는 9-2x에 퇴거 통지가 붙은 뒤 열흘 만에 사망했다. 췌장암이 복막에 전이됐다. 죽는 순간 죽을 수 있는 것도 죽은 자의 복이었다. 나환수가 숨이 멈췄을 때 그의 죽음은 시작되었다. 숨이 빠져 나가고 남은 몸까지 소멸해야 끝나는 것이 죽음이었다. 죽음이 시작되었을 때 나환수의 형태는 그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처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죽음 그것뿐이었다. 나환수는 눈을 감은 뒤에도 65일 동안 죽음의 절차를 마치지 못했다(p24)

 

퇴거 명령이 떨어지고 며칠 후에 죽은 사람이다. 죽음이 그들에게는 일상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어도 제대로 갈 곳이 없다. 피붙이가 있어도 시신을 거두기를 거부한다. 결국은 무연고자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생명의 존귀함이 어디에도 볼 수가 없다. 이곳에 머물면 시신도 그렇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세상에서의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소외되어 그들은 외롭게 이 공간에서 머물다 간다. 어쩔 수 없는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실상을 보는 듯해 노랑의 미로를 걷기가 힘들었다.

 

새벽이 되면 깡통을 들고 자갈치시장으로 갔다. 버려진 물고기 대가리와 창자를 주워와 끓여 먹었다.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배고픔을 이길 순 없었다. 사람들이 새빨간 드러냈으나 새빨간 뻔뻔함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p49)

 

그들 중 한 명의 살아온 과거를 그려주고 있는 부분이다. 한국동란 중 1.4 후퇴 때 가족들은 지킬 것이 있어 북쪽에 모두 남고 혼자 선생님께 얹혀 함흥부두에서 배를 타게 되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부산에서 선생님을 잃어버리고 홀로 서기를 한다. 어린 아이가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을 리가 없다. 그 처절한 삶의 한 토막을 그려주고 있다. 그리고 서울로 오게 되고 거리를 전전하다가 결국 병을 얻고 이리로 오게 된다. 이 책 속에 소개되는 인물들이 거의 이런 상황을 만나고, 극복되지 못한 삶이 되며 노랑의 미로로 오게 되는 것이다.

 

변호사를 대동한 건물주가 각 층마다 퇴거 거부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법적 대응 계획을 밝힌 지 닷새 뒤였다. 주민들은 이주비 200만 원씩 요구했다. 퇴거가 완료되면 이미 나간 사람들까지 모두 1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건물주는 고수했다. 의견은 모아지지 않았고 건물주는 이튿날 전기 차단기와 수도꼭지를 뗐다. (p318)

 

그들은 투쟁을 한다. 이곳을 떠나면 갈 곳이 없기에 목숨을 담보로 해서 퇴거 명령에 저항한다. 일부는 떠밀려 거리로 가기도 하고 일부는 비슷한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한다. 일부는 집을 비우지 않고 저항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퇴거가 된 건물부터 부수기 시작했다. 분진이 퇴거하지 않은 집까지 날아다닌다. 퇴거불응 주민들은 건물 밖에서 서성일 뿐 자기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다. 건물이 무너질까 두렵고,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다. 그러니 자연히 투쟁도 투쟁이 되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갈 곳 없는 그들은 공사가 끝이 나면 다시 자신의 거처로 기어든다.

 

고정국은 직접 밥을 해먹지 않고 서울 곳곳의 무료 배식처를 찾아다니며 식사를 해결했다. 연희동 집은 지하철역과도 한참 떨어져 있어 역 근처에 위치한 동작동이 그리웠다. 고정국은 연희동 동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동자동에 방을 얻었다. 9-2x에서 80미터 떨어진 건물 2층에 월세 15만 원짜리 방을 구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한 민태진이 새로 짐을 푼 방 옆이었다.(p381)

 

그들이 그 쪽방을 벗어나 다른 곳에 가더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없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그런 가운데 교회나 사회시설 중심으로 무료배식을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의 정보를 알고 찾아가 식사를 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기거했던 동자동 공간을 쉬 벗어나지 못한다. 고정국이 떠났다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동자동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다른 곳에서 살아갈 힘이 없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삶처럼 보여 진다. 인생들의 험로가 가난과 엮여 읽은 이를 고통스럽게 만들 정도다.

 

쪽방은 몸을 누이는 집이었지만 반드시 돌아가야 할 집은 아니었다. 가난한 자들은 작은 충격으로도 흩어진 뒤 꼭 그 방이 아니라 그 즈음의 방으로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되돌아가야 할 본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의 흩어지는 방식이었다. 돌아갈 이유가 없으나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다는 것이 가난한 자들의 모임 방식이었다. 또 헤어짐의 방식이기도 하다.

 

가난은 감각적이었다. 시커먼 균사체가 엉킨 시각적이었고, 텁텁하고 툭툭한 후각, 촉각적이었다. 시끄러운 소리, 욕설이 많은 청각적이었고, 쓰고 짠 미각적이었다. 박세기의 방 안에서는 시각적이고 후각적이고 촉각적인 곰팡이와 싸우는 소리가 청각적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미각적으로 죽을 맛이었다. 온갖 감각이 득시글거리는 공간이 그들의 삶의 터다. 그것이 생사의 벗처럼 그들에게 눌러 붙어 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감각적으로 곳곳에 머물렀고, 아픔의 흔적이 된다.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곱 명이 더 사망했다. 강제 퇴거에 휩쓸렸던 노란집 주민들이 다섯 해 만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세상에 없었다. 그들이 가난의 경로에서 이탈하는 길은 죽음 뿐이었다(p545)

 

딱지가 붙은 후 10일 만에 사망한 나환수와 재입주한 열흘 만에 사망한 이수걸 등, 2015년 강제퇴거 통보가 있고 난 후 2020년 지금까지 사망한 인원만 해도 10명 가까이 되고, 그것은 입주민 20%에 해당된다. 그렇게 그들은 그곳에서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하면서 죽음을 기다렸고 죽어 갔다. 어쩔 수 없는 삶의 사각지대다. 이런 것들이 이제는 복지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져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가 된다. 물리적으론 도움이 조금씩 이루어질 수 있더라도 정신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삶들의 공허, 그렇게 그곳은 무너지는 삶들로 세상의 아픔이 된다.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공동체의 삶이 아닐까? 그것이 보호시설이든, 요양시설이든, 종교시설이든 조금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나 서혜자는 그 방에서 쫓겨난 지, 3년째 되던 날 죽었다. 나는 병원에서 죽었다. 갈 곳이 있었다면 나는 동자동을 떠났을 지도 몰랐다. 동자동이나 동자동 밖이나 외롭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한 달 수급지로 살 수 있는 곳은 동자동밖에 없었다. 딱히 반겨주는 사람 없는 내 영혼이 떠돌 수 있는 곳도 그 동네뿐이었다. 살아서 마음대로 옮겨 다닐 수 없었던 나는 혼이 돼서도 동자동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산 자에게나 죽은 이에게나 가난이 삼팔선이었다. 구청에서 조카 한 명과 연락이 닿았지만 나는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되었다. (p560)

 

마지막 장면에선 죽은 이들이 얘기하는 것으로 처리해 나간다. 소설적 요소가 강하게 제시되는 부분이다. 앞의 내용은 기록물로 보아도 될 듯하지만 이 부분은 그야말로 상상력이 동원 되었다. 물론 현실에 바탕을 두고 그려 나가지만 말이다. 영혼이 자신의 죽음을 얘기한다. 서혜자의 영혼 이야기다. 그 사람만의 얘기는 아니리라. 서혜자는 여기에서 그녀 혼자가 아니고 보편화된 인물이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다가,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그렇게 병이 가득히 안고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노랑의 미로에 갇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힘들게 그곳에 머물며, 그렇게 흔적을 지워갔다.

 

우리의 주변에 아직도 이런 공간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다가왔다. 그것을 정치인들은, 경제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있을 때만 찾고 도외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삶은 가난과 소외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 이 책은 그런 의문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아마 물질적으론 사회보장제도가 조금은 해결할 수 있으리라. 요즘 코로나 때 보니 국가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노동력이 없는 이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는 계산은 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의 정신적인 나눔과 자유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그것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글이 아닌가 여겨진다. 참람한 생존의 기록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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