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단테의 영원한 고향
단테를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단테가 망명을 떠나기 전까지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피렌체와 그 주변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산고덴초, 카센티노, 카말돌리, 베네치아, 파도바, 볼로냐, 카라라, 리구리아 해안, 베로나, 라벤나 등 망명 이후 전전했던 피렌체 이북 지역이다. 먼저 피렌체를 찾아간 저자는 미켈란젤로광장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13세기 중후반의 풍경을 떠올린다. 단테가 태어난 1265년 무렵 피렌체는 르네상스 물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일찍부터 면직 산업이 발달하면서 번영의 토대가 되었고, 또한 신에서 인간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문 전통이 다시 소환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테는 대중 친화적인 프란체스코수도회 학교와 연구에 치중하는 도메니코수도회 학교를 오가며 서로 상반된 분위기의 신학적 전통을 익힌 한편, 당시 유명한 학자이자 공직자였던 라티니 밑에서 학문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성을 배웠다. 이로써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절제와 조화의 미덕을 내면화한 그는, 초월자를 향한 중세적 소망과 근대적 인간의 개별성을 동시에 긍정하고 종합하는 면모를 띠게 되었다.
또한 피렌체는 단테에게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곳이자, 청신체라는 문체를 통해 새로운 문학 운동을 주도한 곳이며, 정의로운 공동체 수립을 위하여 공직자로서 치열하게 그 길을 모색한 곳이기도 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딱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에 “사랑으로 구원을 행하는 존재”로서 깊이 각인되면서 평생에 걸쳐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마음은 청신체파의 중심 주제인 ‘사랑’과도 직결된다. 가슴속에 들어온 사랑은 부드럽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데, 마음을 모아 그 말을 받아쓰면 그것이 곧 시가 된다는 것이 청신체의 시작詩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단테가 오직 사랑만 노래하는 탈정치적 시인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며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하여 피렌체 최고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시민들이 이루어가는 공적 정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대립하다 끝내 추방 선고를 받고 말았다. 저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세월의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성곽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폰테산타트리니타, 단테가 세례를 받은 곳이자 종국에도 돌아갈 곳으로 지목한 산조반니세례당, 베아트리체가 묻혀 있는 산타마르게리타성당, 어릴 적에 공부한 산마르티노성당과 산타크로체성당과 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 등을 찾아가며 단테의 오래된 숨결을 되새긴다.
길 위의 단테
이제 저자의 발걸음은 방랑자 단테의 뒤를 따라간다. 그 방랑은 단테 나이 서른일곱 살에 시작되어, 끝내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하고 라벤나에 묻힐 때까지 20여 년간 이어진다. 유랑 길은 피렌체 동쪽에 위치한 카센티노의 숲에서부터 시작한다. 고대부터 은둔의 장소로 유명했던 이곳은 단테에게 어둠이면서도 부드러운 은신처였다. 그가 피렌체에서 보낸 시간과 쌓아온 애정을 떠나보내는 지리적 경계 혹은 심리적 문턱이자, 『신곡』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어두운 숲’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 숲에서 헤매다 올려다본 별은 구원의 상징처럼 단테를 인도했을 것이다.
카센티노를 벗어난 이후 단테는 베네치아, 트레비소, 파도바, 볼로냐, 사르차나, 루니자나, 루카, 베로나, 라벤나 등지를 전전했다. 더 이상 피렌체 공동체 건설에 참여할 수 없었던 그는 새로운 실천을 구상해야 했다. 처음에는 피렌체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더 보편적인 차원을, 즉 피렌체를 품으면서도 넘어서는 방식으로 보다 넓은 국면에서 인간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가 그의 강력한 실천 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망명의 회한을 달래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속어의 우수성을 정당화한 『속어론』,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는 것을 추구한 『향연』, 원만하고 정의로운 공동체 실현을 위한 지침을 담은 『제정론』을 썼으며, 궁극의 사랑과 구원을 노래한 『신곡』을 써서 죽음과 함께 끝을 맺었다. 길 위에서 단테는 쓰고 또 썼다. 망명자로서의 삶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불운이었겠지만, 그런 상황이 오히려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인간 삶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은 망명과 함께 활짝 피어났다.
저자는 망명지를 전전하는 단테의 구부정한 등을 떠올리며 깊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단테의 영혼과 목소리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나날의 작은 국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나 정의 같은 큰 차원에서도 믿음직스러운 지침을 준다. 하지만 그 지침은 정해진 대답으로 안내하기보다는 생각거리를 계속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앞장서서 이끌기보다는 나란히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반자의 느낌을 준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뇌하고 외로워하다 다시 일어선 그의 기록에서 삶의 친근한 동반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