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더 이상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니다!
철학자들이여, 전사?파이터가 되자!
2009년 4월 6일,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 뒷산 홀에서 “나는 어떻게 철학을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지난날 그가 스승들에게서 수업을 들은 곳이자 특히 자크 라캉이 강의를 한 곳. 몹시도 상징적인 이 장소에서 그는 대단히 민감한 주제, 즉 오늘날의 철학 풍경을 서술하면서, 어떤 점에서 자신이 몇몇 현대 철학자들과 대립하는지를 명시하는 한편,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책은 바로 그 강연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그는 철학에서 대화가 덧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여론의 독재와 단절하려고 할 때는 적敵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상의 영역에서는 합의의 추구가 환상이라고 공격한다. 또한 다른 어느 때보다도 바로 이 니힐리즘의 시대에 진리가 존재한다는 쪽에 판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태도에서 어느 모로 보나 오늘날의 철학자는 전사戰士일 수밖에 없다. 반反체계의 시대에 ‘체계’로서의 철학에 대한 신념을 전하면서, 또한 자신이 어떻게 철학을 하는지 ‘자신의 수를 드러내 보이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그는 이 작은 책에서 앞으로 도래할 형이상학의 초석들을 배치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의 인문ㆍ교양ㆍ대중 지향 브랜드인 ‘사람의무늬’에서 펴내는 ‘인간과시각’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이래도 지적 사기꾼, 캐비어 좌파라고 부를 텐가?
사르트르 이후 현실 참여에 가장 적극적인, 행동하는 철학자의 자서전
강렬한 선전물 같은 이 책에서 레비는 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철학자가 된 직접적인 동기, 철학의 의의와 그 역할, 철학 전통과의 관계, 철학하는 방법, 독서 방법, 진리의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레비 자신이 직접 쓴 일종의 ‘철학적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 자체가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에 관련된 것이어서, 이 책은 일종의 ‘철학 입문서’로 읽힐 수도 있겠다.
레비는 철학자로서의 지위가 문제될 때 종종 논쟁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어떤 이들은 그를 본격적인 철학자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1977)으로 이른바 ‘신철학’의 기수라는 별명을 얻은 후, 이렇다 할 본격적인 철학서를 집필하지 않았고, 이런 이유로 자기를 철학자로 소개하는 그를 두고 ‘지적 사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자들도 없지 않다. 특히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그가 가난하고 억압 받는 자들의 편에 서려는 자세를 두고, 그의 위선을 말하는 자들도 있다. 이른바 ‘캐비어 좌파’라는 조롱 섞인 표현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레비를 철학자, 그것도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명으로 간주하는 자들도 역시 없지 않다. 이들은 그에게서 사르트르 이후 현실 참여에 가장 적극적인, ‘행동하는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본다.
이와 같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것일까? 어쨌든 레비는 이 책에서 자신이 여전히 철학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지금까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을 해왔으며, 따라서 자기에게는 고유한 철학이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철학을 해나갈 것이라는 점을 유감없이 밝혀 나간다.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나는 어떻게 철학을 하는가
철학의 탐구 대상은 전쟁 중인 세계로서,
철학은 일종의 대사회적인 투쟁이다.
철학자는 죽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사는, 게릴라적이며 흡혈귀적인 투사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싸움을 잘 하는 ‘깡패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적 대화라는 생각은 단지 오만일 뿐,
철학자는 사유의 일치라는 착각에 대적해야 한다.
진리 추구와 세계에 대한 수리를 위해,
행동하는 철학은 개념을 제조하고 체계를 새로이 정립시켜야 한다.
니힐리즘이 거의 승리를 거둔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리의 존재’에 희망을 건다.
레비는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 제5구에 위치한 콩트르스카르프 광장에서 아이들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친독일 의용대의 집중 사격을 받은 사건 이후에 철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이 세계가 폭력과 악으로 인해 시름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철학자로서의 자신의 경력에 단초가 되었음을 밝힌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형이상학적 세계로 확대된다. 신도 인간도 죽은 세계, 이른바 니힐리즘이 지배하는 세계, 혼란한 상태에 있는 세계, 재앙에 직면한 세계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레비로 하여금 철학자가 되게 했던, 이와 같은 현실 세계와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인식은 당연히 그의 철학이 단순히 사변적 이론만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다보게 한다. 이에 걸맞게도 그는 라이프니츠의 좌우명인 “실천을 함께하는 이론theoria cum praxi”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정확히 이런 이유로, 철학이 언제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나타나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보다는 행동하는, 그것도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 행동하는 ‘암사슴’을 더 선호한다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 그는 철학이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그것을 반성하는 “사후의 예술” “체념의 예술”이기보다는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고, 될 수 있으면 그 폐해를 줄이는 데 일조하는 예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레비의 이와 같은 바람은 구체적으로 철학이 폭력과 악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수리修理reparer”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수리’로서의 철학에 대한 이와 같은 견해는 단순히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가고 또 착취와 억압이 자행되는 현실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견해는 형이상학적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세계에서도 유효한 것이다. 언어의 부족으로 인해 존재해체에 빠져들고 있는, 그 결과 철학이 위기에 봉착한 세계에서도 역시 철학은 ‘수리’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견해이다. 나아가 레비는 새로이 제조된 개념들이 유기적 결합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체계systeme’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는 체계를 옹호하는 자신의 주장이 체계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현대 철학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일반적으로 체계는 폐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폐쇄된 체계가 아니라 개방된 체계를 추구한다. 개방된 체계는 그 구성 요소들의 ‘유한성’과 ‘특이성’이 존중되는 체계이다. 개방된 체계는 부분들이 체계에 완전히 녹아들어 이른바 이타성을 가진 타자들이 동일자의 폭력에 희생이 되지 않는 그런 체계이다. 개방된 체계는 그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 해당하는 각각의 담론들이 고유한 의미를 갖는 그런 체계이다. 요컨대 개방된 체계에서는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이, 필연성보다는 우연성이, 당위보다는 개연성이 우세한 그런 체계이다. 그에게 이와 같은 체계의 정립을 통해 병든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철학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이 모든 것은 정확히 레비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 내세우는, 이른바 “깡패 철학자”의 논리로 집약된다. 철학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깡패’여야 한다. 하나는 명증한 이치와 논리로 다른 철학자와 화해하고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급소와 약점을 찌르면서 공격해서 항복시키는 싸움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그런 싸움에 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철학자의 본거지를 노략질하는 데 천재이어야 하고, 그를 존중하는 것보다는 이용하는 것에 남다른 솜씨를 가진 자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철학자는 싸움의 명수여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철학자는 깡패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깡패 철학자’라 선언하고,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철학적 관행들, 이념 관리인 겸 도형수로서의 그 관행들과 단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이 철학하는 비법과 수법을 모두 공개하면서 레비가 최종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철학의 가장 고귀한 과제란 바로 “진리의 추구”에 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서구의 철학 전통에서 무시되어 왔던 영역들에 대한 복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고정된 주체 개념의 포기, 이성에 의해 억눌렸던 감성, 정신에 의해 짓밟혔던 신체, ‘나’의 동일성 확보 노력에 의해 희생당한 타자 등과 같은 영역의 복원이 그것이다.
구경하지 말고, 나서서 수리하라! 깡패가 되라!
이 시대의 인문정신을 회복하는 가장 강렬한 방법
인간과시각, 그 첫 번째 책
이 시대 인문학의 야성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그 도저하던 상상력들은 또 다 어디로 떠나버린 것인가. 어느 침묵의 공장에 유폐되었는가, 어디서 ‘창조’라는 떠도는 유령의 치마폭에 휘둘리고 있는가.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담긴 비판이 소용되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며 다양한 인간의 시선들로 열띤 담론의 무대를 열어가고자, ‘사람의무늬[人文ㆍ人紋]’는 ‘인간과시각’이라는 새로운 총서의 문을 열고, 그 첫 번째 책을 세상에 보냅니다. 레비는 진리를 탐구하는 공부의 마당에서 야성 흡혈귀가 되어 편집적으로 많은 자료를 찾아 개성적으로 읽고, 체계에 도전하며, 니힐리즘에 대항하라고 역설합니다. 전 세계 부당함의 현장을 누비며, 이제 몇 남지 않은 실천가?학자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는 레비는, 안온에 빠진 철학자?인문학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분노하고 저항해도 곧 피로에 빠지며 삶의 시간은 짓밟히는 이때, 레비의 일갈은 견고해진 피로에 균열을 내고, 압축되거나 비루해진 시간에 윤기를 내고 향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무늬ㆍ인간과시각이 이제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