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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강상중의 조용한 각오

강상중 저/노수경 | 사계절 | 2019년 12월 16일 리뷰 총점9.2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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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9년 1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10g | 124*188*20mm
ISBN13 9791160945263
ISBN10 116094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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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명)

저 : 강상중 (Kang Sang-jung,カン.サンジュン,姜 尙中)
1950년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戰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펼치며 시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를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와세다대학에 다니던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나는 해방되었다”라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 1950년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戰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펼치며 시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자리 잡았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를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와세다대학에 다니던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나는 해방되었다”라고 할 만큼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뉘른베르크대학에서 베버와 푸코, 사이드를 파고들며 정치학과 정치사상사를 전공했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 도쿄대학 현대한국연구센터장, 세이가쿠인대학 총장을 거쳐 현재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위험하지 않은 몰락』,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구원의 미술관』, 『마음의 힘』,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 『도쿄 산책자』, 『마음』 등이 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 강상중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만년의 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구원의 미술관』 등이 있다.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브래디 미카코의 『아이들의 계급투쟁』, 강상중의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만년의 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구원의 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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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37~238

출판사 리뷰

청춘의 방황과 결기, 중년의 성취와 상실, 노년의 자족과 관조
이 모든 것을 품은 내 인생의 마지막 집

일본어에 종활終活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잘 끝내기 위한 활동’이라는 뜻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긴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단지 장례 절차나 유산 처리 방식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소중한 사람들과 어떻게 이별하고 싶은지, 남은 날들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등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일련의 활동을 가리킨다. 1950년생으로 일흔을 앞둔 강상중 교수도 오랫동안 도시 안에서만 움직이던 삶의 궤도를 바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생활의 작은 습관과 규칙까지도 새로 마련하면서, 달라진 시각으로 70년의 인생을 돌아본다.

한쪽 발은 생생한 하계의 삶에 담가두고 다른 한쪽은 고원의 녹음에 숨긴 채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을 응시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세상과의 딱 좋은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 나는 지금 어머니가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 덕분에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절묘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소에서 인생의 가을, 그 끝 무렵을 보낸다.
- 7~9쪽

고원의 집에서 맞는 계절의 변화는 각 계절에 얽힌 인생의 모든 장면을 소환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가 카페에 앉아 연행되는 광주 시민의 사진을 보았던 1980년의 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으로 살기로 결심한 1972년 서울의 여름, 고원의 가을 하늘에 흔들리는 자작나무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뻗은 하얀 자작나무가 좋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와 러시아에 대해 품었던 알 수 없는 낭만, 벚꽃처럼 눈송이가 흩날리는 군사경계선 양쪽의 남북한 병사들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분단의 비극. 계절마다 확연히 다른 고원의 풍경처럼, 저자의 인생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와 굴곡이 있었다. 이제 그는 고원의 집에서 이 모든 것을 돌아보며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간단히 풀리지 않는 역사의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서울은 마치 피부가 벗겨져 혈관과 신경이 밖으로 다 드러난 채 발버둥치는 생물처럼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커다란 목소리와 진지함에 압도되었다. 그 박력에 튕겨나갈 듯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그리운 광경이 이어지던 서울이었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전부 다 드러내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거친 솔직함에 움찔움찔 놀라면서도 가면과 두꺼운 의상을 벗어던지고 본성 그대로 있는 편안함을, 나는 난생처음 몸으로 느꼈다.
…… 나는 모순덩어리처럼 느껴졌던 어머니를 낳은 근원에 도달한 듯했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내 안에서는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천천히 싹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키운 이 세계를 전부 받아들이자. 그리고 운명처럼 이 세계를 스스로 선택해 보이자.
…… 여름은 내가, 바로 내가 된 계절이다.
- 34~35쪽

인생의 겨울을 함께할 세 동반자
어머니, 아내 그리고 고양이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룬 중장년기에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저 추억의 실마리나 ‘옛날 물건’처럼 여겼던 저자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점차 자신의 건강한 몸과 낙관적 태도, 깊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삶 쪽으로 방향을 트는 강인한 생명력이 어머니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는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食道’라고 믿었던 어머니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입으로 넣어서 뒤로 빼는 거라 안 카나”라며 차별당했던 나날에 대한 울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했다.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 그러니 사람 사이에는 정情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인간관은 지식과 학문의 세계에서 ‘리理’만 잔뜩 키운 아들이 그나마 균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싶었다. 검은 태양으로 닫힌 세계에서 나는 반만 살아 있는 껍데기였다. 죽음이 삶을 침식해가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 느낌 속에서도 삶이 죽음에 승리했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너무 슬퍼 물 한 방울, 쌀 한 톨 삼킬 수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먹고 있었다. 살아가는 기력을 잃었음에도 입을 움직이고 이로 씹으며 질긴 섬유질 음식마저도 목구멍 안쪽으로 삼켰다.
“인간은 어떤 때라도 묵어야제. 살아 있으마 마 묵는 기라. 묵으마 뒤로 나오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 있으마 그런 기라.”
마치 귓전에서 속삭이듯, 어머니의 가르침이 되살아났다. 의기소침한 내가 어머니에게는 한심하고 불쌍해 보인 모양이다. 내 인생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는 내 안의 교만과 긍지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저 불쌍한 아버지가 되었음을 뜻했다.
그럼에도 나는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배설 또한 멈추지 않았다. 삶의 의욕이 죽음에의 유혹을 이겼다.
- 240쪽

몸과 마음의 바탕이 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저자와 인생의 마지막 집을 함께 지키는 건 아내 그리고 두 마리 고양이다. 저자는 식성도, 취향도 다른 아내와 수십 년 고락을 함께하며 어느새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되었음을 느낀다. 아내와 살면서 머윗대조림과 두릅튀김의 맛을 알게 되었고, ‘강아지파’를 고수했던 일평생이 무색할 만큼 어느새 고양이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아첨을 하는 ‘고양이파’가 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는 아내와 도란도란 땅을 일구고, 맛있는 음식에 군침을 흘리며, 도도한 고양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강상중 교수의 색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비판적 지식인’이자 ‘우리 시대의 사상가’는 어딜 가고, 어리숙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집사’로 등장한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 짓게 된다.

인간과 역사의 문제를 해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 것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갈 담담한 각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뜨거운 여름에 태어난 저자는 “살육의 해, 통곡과 비탄의 계절에 생명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줄곧 집착해왔다.”(138쪽) 그리고 마치 자신의 운명이 한반도의 평화와 긴밀히 얽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줄곧 남북 화해와 통일 문제에 주목해왔다. 노년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이 책에 김대중 대통령 이래로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최근의 북미정상회담, 한국전쟁의 종결 가능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이유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낸 북미정상회담. 이는 단순한 국제정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좀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내 일생의 의미와 관계가 있다. 한국전쟁의 해에 태어나 그 전쟁의 종결을 이 눈으로 확인한다면 나는 전쟁과 평화 사이를 산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용한 고양감이 내 안에서 퍼져 나가는 걸 느낀다. 이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시시포스의 굴레’가 계속되리라는 달관을 동반한 각오 같은 것이다. - 235쪽

남북 관계에 대해 줄곧 ‘신중한 낙관론’을 펼쳐온 저자에게 사람들은 “아주 머릿속이 꽃밭이시네요” 하고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이든, 한 나라의 역사든 도저한 낙관을 품고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비관하는 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지만, 끝끝내 낙관하는 자는 그 낙관의 실현을 보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를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고원의 마지막 거처에서, 최후의 날을 준비하는 지금도 그는 세상의 부름에 부지런히 응답하며 인간과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그 삶의 집적인 역사 또한 하나의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정해진 해답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역사란 결국 그런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상대화하지 말 것.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해명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 것. 거기에 인간의 존엄이 깃들어 있다.
나는 그렇게 여겼다.
일본과 한반도가 안은 역사적 갈등과 질곡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칼에 딱 잘라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어려운 문제를 감히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대담한 방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의 인생조차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그저 포기하지 않고 인생과 역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삶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 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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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품격 있는 에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강상중, 만년의 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별*니 | 2020-01-03

작가는 고희(70)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 되뇌고 자연의 모양을 관찰하며 지난 삶의 순간을 회상한다. 앞에 펼쳐진 것을 매개로 과거를 불러내어 곱씹고 다시 미래를 향한 다짐으로 마무리한. 70세의 다짐은 젊은 날의 패기 넘치는 다짐이 아니다. 많은 실패와 낙담으로 점철된 '달관을 동반한 각오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보고 싶고,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고, 느끼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많이 보고 알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는닳아빠진 속물 되었다. p.234


책의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위와 같. 하지만 책은 그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 능란함, 과하진 않지만 화려한 생동감 있는 세밀한 묘사, 삶에 대한 통찰력 등이 눌러 담겨있어 쉬이 읽히면서도 쉽게 책을 덮을 없게 만든다.


또한 작가의 독특한 정체성이 책이 흥미있는 북돋는다. 작가는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1950년), 일본에서 한국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일본인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인 작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 살다 1972 한국을 방문한 이래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경계인의 삶의 종지부를 의미하진 않았다. 이 후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작가는 치열하고 잔혹한 현장 속에서 함께하지 못한다는 부채 의식과 함께 일본에 '기생'하는 '자이니치 코리안'이란 인식에 억눌린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취가 오묘하게 결합하여 글 전반에 풍긴.


우리 유대인은 기꺼이 땅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강제되었다. 그러니까 농업에 종사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p.95


이런 흥미로운 점에 덧붙여 책의 좋았던 가지를 적어 남기고 싶다. 하나는 '자연에 대한 묘사'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이다. 먼저 작가는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표지와 비슷한 모양일) 어느 고원에 자리 잡은 이후 책을 집필했다. 따라서 책에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나도 지금 시골집에 있기 때문에 이런 묘사에 지극히 동감했다. 초원과 하늘의 모양, 제비꽃이나 인동덩굴의 꽃이 풍기는 자태, 도회지와는 다른 날씨의 느낌들이 내가 경험한 그대로, 아니 이상으로 세세하게 그린다.


내가 좋았다고 느끼는 책의 공통점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한 것을 뛰어난 필력으로 표현해주는 책에 애정이 간다. 예를 들어 책엔 '인동덩굴' 대한 묘사가 나온다. 산기슭과 바위 사이사이에서 재스민과 비슷한 향긋한 향을 풍기는 인동덩굴은 좋아하는 식물 하나다. 작가가 향을 묘사해주진 않았지만, 자태와 성품을 묘사해주어 감동적이었다.


초여름의 강한 햇살이 위에 빛과 그늘의 문양을 만들어낼 즈음, 인동덩굴은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하얀 꽃을 피운다. 가느다란 통처럼 생긴 꽃부리는 씩씩하고 고난을 견뎌낸 사람처럼 겸손하고 차분하다. 처음에는 하얗게 피웠던 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가지에 꽃과 노란 꽃이 함께 있다. 외골수에 한결같아 보이는 인동덩굴이지만 의외로 위트가 있어 은근히 삶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혹독한 겨울을 견딜 때도 꽃과 노란 꽃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걸며 농을 나눌 것만 같다. 인동덩굴의 다른 이름은금은화'이다. p.178~179


번째로 작가의 어머니가 생전에 했던 말이 주는 감동이 대단하다. 일본어로 사투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할 정도로 정감있게 표현된 어머니의 말에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통찰이 담겨있다. 책의 원제가 <어머니의 가르침>' 만큼 책의 뼈대를 담당하고 있다.


니는  데만 본데이 데만 보면 넘어진데이발밑도  봐야 된데이.” p.45


편식하면  댄데이영양이 있으마 머든지 무야 하는 기라그카고 좋아하는  없는 그것도  좋다좋아하는  먹고 싶은  건강하다카는 증거라묵고 싶은기 없어지마 고마 그거는 큰일이제.” p.104


어릴 느끼지 못하고 무시했던 어머니의 지혜가 삶에도 있다. 세상을 하나 모르는 나인데, 나보다 배웠다고 자신을 낮추는 어머니는 항상 옳았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어머니를 비롯한 인생 선배들의 경험적 지식은 어떤 배움보다 반짝이고 생생하다. 여러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내며 내린 투박한 지혜다. 나는 경험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시대에 산다. 타인의 이야기를 없이 들으며 그것이 경험과 지식인 치부하며 영혼 없는 지식을 뽐낸다. 그런 나에게 책의 '어머니의 ' 다시금 현실의 나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책을 읽고 품격있는 에세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품격을 논하지 않아도 품격을 논하고 싶었다. 저자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신중하고 진지한 언어의 선택에, 그리고 삶의 경험과 깊이 있는 통찰에 존경심을 느꼈다. 벌써 삶을 달관하며 방관자로 남고 싶어 하는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나는 나의 최후에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애썼다. 아주 수고했어."라고 말할 있을까. 이런 , 아니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마디를 남길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애썼다. 아주 수고했어."

고원의 마지막 거처에서 고독의 그림자를 느끼며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넬 때를 기꺼이 기다린다. p.238

*덧붙여 번역이 참 좋다. 표현의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읽다보니 일본어로 출간된 책을 번역한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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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만년의 집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모**자 | 2019-12-25


강상중 선생님께

 

  우연히 선생님이 나쓰메 소세키의 열혈 팬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관심작가가 되었습니다. 일종의 친밀감에 이끌려 편지를 써 봅니다. 만약 나쓰메 소세키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선생님과 함께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 친구가 되었을까 엉뚱한 상상도 했답니다. 작고 얇은 사이즈의 책을 받고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책 표지의 노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가 고원 숲 속 오솔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 평화로워 보입니다. 부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며 여름의 휴양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전부터 가보고 싶었거든요. 서문과 역자 후기를 읽어보다가 다 읽고 말았네요.


  서문에서 마마보이라는 단어를 접하며 웃음이 났고,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먹먹해졌습니다. 재일교포 1세의 삶에 대해서는 시대극이나 책에서 접한 정도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차마 짐작도 할 수 없겠지요.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수집한 고철이 조국의 형제들을 살상하는 탄약으로 바뀌는 아이러니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밤에는 눈물 흘리며 친척을 걱정해야 했다는 부모님의 삶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렸습니다. 당시 수많은 재일교포들의 삶이기도 했겠지요. 이런 혹독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라는 신념으로 가족들을 위해 제철음식을 마련하는 과정은,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생명력을 나눠주신 어머니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계시다고 하셨지요.


사람은 말이데이, 알몸으로 태어나가 알몸으로 죽는기라. 너거 아부지도 그랬고 나도 그렇데이.”

글자를 읽을 수 없었던 어머니가 남긴 말과 표정은아니, 어머니에 관한 모든 기억은 1만 권의 책 이상으로- 비유하자면 나쓰메 소세키나 막스 베버 이상으로- 지금의 나를 지탱한다. 닥쳐올 겨울을 어떻게 대비할지는 어머니에게 배우면 되는 것이다.(P9)

고난 속에서도 어머니의 헌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전에 읽은 선생님의 저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통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겪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역시나 이 글 곳곳에도 그 슬픔의 얼룩이 가득했습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기억도 나지 않는 언니가 있었다는 것을 철든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들렸던 엄마의 통곡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이 아닌가 합니다.


  한 땅에 온전히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쪽과 저쪽에 발을 걸치고 마음이 분산되는 삶, 고단하신 삶을 살아오셨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대 독일 유학중에 무고하게 희생되어 죽어가는 광주시민을 보고 마음 저리며, 이러저런 상황에 맞닥뜨렸던 차별을 견뎌야 했던 삶, 정치인들의 보복이 되풀이되는 한국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고, 한일관계, 남북관계 악화의 분위기에서도 마음을 졸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평생을 살얼음 위를 걷듯 살아오신 인생이 아닌가, 평범한 우리로서는 나라 걱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으면서도 나만 힘든 것처럼 무사안일하게 살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마치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틈에서 눈치를 보며 갈피를 못 잡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을 비롯하여 고국의 안위를 걱정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이 만큼 사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나쓰메 소세키와의 인연이 되었던 이야기는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소세키가 교직생활을 했던 제5고등학교(현 구마모토대학)에서 놀았고 산시로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연구실에서 15년을 보냈으며 같은 안과까지 다녔다니요. 저도 작년에 도쿄 대학의 산시로의 연못과 소세키의 산방 기념관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겨진 장소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중학교 친구들과 가출하여 도쿄를 보고 산시로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며 환희를 느끼고, 그리하여 소세키가 그린 주인공들과 동일시하면서 위안을 찾고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하셨지요. 구마모토의 오아마 온천을 무대로 했다는풀베개를 어렵게 읽은 적이 있는데 역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고 인정해주시니 읽었다는 자체만으로 뿌듯한 마음이 됩니다.


  고원의 풍경 중 떠오르는 하나가 하얀 안개로 둘러싸인 몽환적인 세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짙은 안개를 싫어했는데 나중엔 안개 끼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언론매체의 난도질을 피해가지 못했던 거죠. 세상은 이미 관음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기는커녕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보도에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는 경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편 고원의 숲 속에 살게 된 이유도 알고 보면 마음 아픈 일을 겪고 나서 비롯되었다니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안개의 속성을 생각할 때, 마음의 피난처를 찾고 싶었던 선생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고원에 살면서 도심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박하게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면서 사유하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클레머티스라는 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장미처럼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꽃을 피우지만 결코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지 않으며, 그윽하고 고상하다. 그러면서도 나름 존재감이 분명하고 사람의 마음을 달래준다. 클레머티스는 실제로는 꽃잎이 없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변형된 꽃받침이 마치 꽃잎처럼 보이는 점도 내게는 매력적이다. ‘여행자의 기쁨이라는 꽃말은 현대식으로 보자면 이민과 난민을 비롯해 자신의 처소를 방문하는 에트랑제’, 즉 이방인을 따뜻하게 반기며 위안을 준다는 뜻이라고 할까.’(P161)


  꽃을 보면서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자의 기쁨이라는 꽃말처럼 이민과 난민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세계는 급변하고 몰려드는 이민과 난민들로 인해 시끄러운 상황입니다. 정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받아들이는 쪽의 조건 사이에 갭이 크기 때문에 팽팽한 형국이지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국적의 문제도 마찬가지겠지요. 살아오는 동안 겪어야만 했던 차별에 대한 아픔이 아련하게 전해집니다. 아첨하지도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를 떼지도 않는, 그저 가느다란 덩굴에서 하늘을 향해 담백하고 커다란 꽃을 피워낸다는 클레머티스처럼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그런 나라는 요원한 걸까요?


강상중 씨, 꽃이 왜 피는지 압니까? 인간이 10만 명이 죽든 100만 명이 죽든, 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피어날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말이에요.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들을 위로해준단 말이에요. 그저 그것만으로도 사는 의미가 있어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도 꽃은 피는 거예요.”(P186)

……

꽃은 핀다.

그저 사람을 달래기 위해 꽃은 핀다.

말기의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꽃이라면, 게다가 우리 집 뜰의 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고원에 살다 보니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정원 한구석에 뼈가 되어 흩어져 꽃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P187)


  꽃이 피는 이유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리 힘든 고난을 겪었더라도 온 인생이 고난 자체인 삶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평범한 우리에게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큰 힘을 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내와 채소를 가꾸며 땀을 흘리고, 커피를 마시며 함께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평화로운 정경이 보기 좋았습니다. ‘강아지 파였던 선생님이 고양이 루크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과정은 마음 따뜻해지는 한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그 고양이의 후손이 아닐까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떠났어도 산 사람의 마음을 통해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상기하는 것으로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자세를 곧추세우게 됩니다. 어쩌면 치열했다고 할 수 있는 삶, 잘 견뎌내며 훌륭하게 살아오셨습니다. 선생님의 70여 년의 삶을 돌아보는 여정에서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의 지난한 인생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표현은 당치 않으십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며 정신적인 지주이셨던 어머니 덕분에 건강한 몸을 물려 받으셨으니 선생님의 제2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숲 속의 보금자리 만년의 집에서 앞으로가 더욱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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