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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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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386g | 125*191*20mm |
ISBN13 | 9788960532250 |
ISBN10 | 8960532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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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시를 쓰는 게 위안이란다. 시는 짜내는 게, 창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오는 거란다. 그래선지 그의 시는 직선적이다. 단순 서술형이다. 다듬어지지 않았다. 시의 본성이랄 수 있는 운율이 없다. 헌데, 적신다. 가슴을 때린다. 대가의 사유가 모양을 드러내는 면면에서 절로 끄덕여진다. 작가는 외롭다. 외로워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시대를 탓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근본은 자초한 일이다. ‘인생의 끝의 끝’까지 엿보는 이는, 외롭다. 삶의, 세상사의 비의를 홀로 읽어내는 이에게 고독은 숙명이다. ‘무기 없는 자가 무력함을 위안 삼아’, ‘문학을 삶의 방패로 삼아 책상과 원고지 앞에서 자신을 부숴버리’는 일만 남았다. ‘영광도 사명도 아니며 단지 살아내기 위하여 글 기둥 하나 붙들고’ 평생을 산다. ‘사무치게 사람이 그립지만 배신과 욕심, 낯설음’과 함께할 수는 없어, ‘해벽에 부딪쳐 죽은 도요새의 넋을 그리워하며 나의 불행’과 동일시한다.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기도 하지만 ‘예쁘게 춤추고 신명내어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싶다’. ‘일체중생 모두 고달픈 팔자’이기에 새삼 슬퍼할 이유는 없다. ‘쌀 보리 서너 줌과 뜨거운 커피 한 잔이면 족’한데 ‘꽤 큰 원작료가 들어온 날’, 뜬금없는 ‘소유욕에 부끄러워 한다’. ‘비정한 눈동자, 염치없는 손들’로부터 작가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개인에 머물지 않는다. ‘소나무야 미안하다 인생도 또한 너와 같단다. 우주만상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한恨이로구나’. 어찌할 수 없는 고립과 은둔에 힘겨워하면서도 작가의 순정한 정신은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본다.
박경리의 시를 읽으며 할 말을 잃는다. 할 말이 삐죽삐죽 솟아 정리가 안 되고 그저 부글부글 끓는다. 한 편을 읽으며 오래 멈추다가 재독하며 처연해지는데 다음 장을 넘기고는 또 우뚝 멈칫거린다. 그러다가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친 사람처럼 킬킬 거린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엔돌핀이 솟구친다. 웅장한 작가의 섬세한 모성에 닿으며, ‘세상은 진작부터 외롭고 쓸쓸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여인이 자본주의를 두려워하며 통일을 열망하는 게 소름 돋게 가슴을 친다. 그래봤자 우주의 티끌이다. 가녀린 생태주의자의 눈물에 안쓰러우면서도 숙연해진다. 시집을 이렇게 열심히 읽은 게 참 오랜만이다. 작가는, 시인이라는 남의 명칭을 도용한 것 같다며 부끄러워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쌤은 천상 시인입니다”, 라고, 다가가 속삭이고 싶다. 그의 저작에 문외한이지만, 이 시집 한 권만으로도 작가의 심상이 훤히 내비친다, 손에 잡힐 듯 만져지는 것 같다.
하늘 아래 아파트가 하얗게 떠있고 / 조박지 같은 공간의 나무들 / 밤비에 젖는다 / 하얀 아파트 / 그것들이 안개꽃이면 좋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하소설과 마주하며 부조리한 세상과 맞장 뜨는 작가는 개인의 실존을 지나 역사를 움켜쥐며 몸서리친다. 그리고 꾸짖는다. 그렇게들 하지 마라 / 사람이 살면 몇백 년을 살겄는가 / 청산에 가서 보아라 / 우리들의 모습은 백골이다. 낮은 목소리로 지식인을 준엄하게 나무란다. 자유를 포기한 권력지향자들, 슬프다 / 어차피 식자는 떠돌이별인 것을 / 무궁한 우주의 떠돌이별인 것을 / 진실, 그 영원한 수수께끼 / 별을 따려는 아이처럼 / 방랑이 숙명인 것을 / 왜 힘에 발 묻으려 하는가. 그러면서 동지를 그리워한다. 시인인 사위를 두고도 모자랐던 걸까. 진짜 시인을 애타게 찾는다. 무진장 자유의 나라 대한민국에도 / 수천 명 시인의 명단이 있다는데 / 남루한 몰골 하고서 / 하늘 우러러보고 / 땅 굽어보며 / 가슴 치고 울부짖는 시인은 없는가 / 예수의 재래처럼 눈부실 텐데 / 아아 시인이여! / 보석 같은 시인은 없는가.
시집을 사들고 만족했던 적이 별로 없다. 유명 작가의 단편집을 읽은 후 잘 샀다고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시집 한 권에 대략 80편의 시가 있다면 그 중에 건질만한 건 고작 몇 편이었다. 한 권의 단편집에 8편의 작품이 있다면 그 중에 가슴으로 와 닿은 건 한두 개였다. 이 시집은 두고두고 펼쳐봐야 할 진짜 시집이다. 이번 달 지출이 워낙 많아 최대한 책 주문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소심하게 다섯 권만 주문한다. 그녀는 82세에 세상을 버렸다. 작가는 오래 살기 어려운 직업인데 그래도 80은 넘겼구나. 26년생. 내 부모님보다도 출생이 훨씬 빠르지만, 문득,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고 싶어진다. 내 손 잡아주면 그녀의 체취 가득한 원주 단구동 거닐 것이고 부드럽게 뿌리치면 뒷모습 바라보며 웃어도 좋겠다. ‘그 무엇인가에 사랑을 나눠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여인이었다.’ 그녀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면 글이 잘 써진다던데 밥 한 번 얻어먹지 못한 게 아쉽다. 아니, 그보다는 내 쪽에서 먼저 한 상차림 대접해도 좋았을 것이다.
박경리의 책을 다 읽기 전엔 쓰는 것을 말아야 할까보다. 아래, 몇몇 詩를 발췌했다가 지워버렸다. 일부만 소개하느니 그만두는 게 낫겠다. 게으르지 않다면 거의 모든 시를 다 소개해야 할 판이다. 시인이 우주를 끌어안으며 풀과 새와 나무와 고양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 구입하여 읽어보는 게 좋겠다. 내 지향점이 작가 박경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읽으며 내내 달떴다. 이런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 님이 이 책을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나도 이 책을 누군에게든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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