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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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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 그르니에 서한집

CORRESPONDANCE 1932~1960

[ 양장 ]
알베르 까뮈, 장 그르니에 저/김화영 | 책세상 | 2012년 10월 30일 | 원서 : Correspondence, 1932-1960 리뷰 총점6.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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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2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58쪽 | 757g | 162*223*30mm
ISBN13 9788970138237
ISBN10 8970138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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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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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3명)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한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 나간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한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 작품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6세가 되던 때부터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방인』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만 29세이던 1942년 이 소설을 발표한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라 평가받는 『이방인』에는 살인 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으로,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부조리에 대한 추론을 시작으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 철학과 소설, 키릴로프 등 철학적 에세이를 엮은 『시지프의 신화』는 권위에 도전하였다는 벌로 큰 돌을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를 무한정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의 죄를 모티브로 하여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서 드러나는 부조리한 측면을 명쾌하게 분석한 철학 에세이다. 1947년 출간된 『페스트』는 그 해의 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 즉 감옥 속의 인간을 상징한다. 카뮈는 주인공인 의사 리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모순에 찬 삶 평온한 삶 위에 덮친 모순과 허망, 즉 부조리 속에서 그 상황을 직시하고, 낙관적 기대 없이 묵묵히 그 허망과 맞서서 대결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알베르 카뮈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책은 『반항하는 인간』이라고 한다. 카뮈의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성찰을 담은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반항하는 인간』은 『시지프의 신화』와 함께 카뮈의 대표적인 시론(試論)이다. 1951년 출간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했던 이 책에서 카뮈는, 폭력과 테러를 역사적·철학적·정치적 맥락에서 살피며,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프랑스의 사상가, 작가, 철학자. 1898년 2월 파리 출생. 부모의 이혼 후 모친을 따라 브르타뉴로 이주, 셍-브리유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곳은 ‘프랑스의 키엘케고르’라 불린 19세기 철학자 쥘 르퀴에가 태어나 죽은 곳으로, 이 인물은 훗날 장 그르니에의 박사 논문 주제가 된다.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해 교사로서의 이력을 시작, 소르본대학 미학 및 예술학 교수직을 떠나는 1968년까지 약 40년간... 프랑스의 사상가, 작가, 철학자. 1898년 2월 파리 출생. 부모의 이혼 후 모친을 따라 브르타뉴로 이주, 셍-브리유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곳은 ‘프랑스의 키엘케고르’라 불린 19세기 철학자 쥘 르퀴에가 태어나 죽은 곳으로, 이 인물은 훗날 장 그르니에의 박사 논문 주제가 된다.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해 교사로서의 이력을 시작, 소르본대학 미학 및 예술학 교수직을 떠나는 1968년까지 약 40년간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파리 등지를 편력하며 가르쳤다. 고대 지중해, 인도사상에 경도되어 방랑의 철학교수 생활을 보내고, 알제리에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쳤으며, 그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N.R.F」지에 기고하면서 집필활동을 시작했고, 1927년 “사물의 안쪽”이란 서정적 에세이를 NRF에 기고한 이래 잡지 정기 기고자가 되었고, [철학들], [철학리뷰], [남부수첩], [코뫼디아], [꽁바], [까예 드 라 쁠레이야드], [렉스프레스], [프뢰브] 등 상당수 잡지들에 정기 기고하거나 창간에 관여했다. 1936년 『쥘 르퀴에의 철학』과 유작들을 편집한 『자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과 텍스트는 쥘 르퀴에 철학에 대한 표준 입문서로 간주되며, 1952년 펴낸 『쥘 르퀴에 전집』 역시 필수 참고서로 꼽힌다. 까뮈의 스승으로 실존주의의 관심사를 공유했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실존주의를 비롯한 당대의 철학 운동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고, 전통 형이상학 안에서 인간의 한계와 무한자를 사유한 철학자였다.

1968년 국가에서 수여하는 문학대상을 받았다. 리세 알제의 교수를 거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미학을 강의하였다. 존재에 대한 기쁨과 절망을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의 작품은 시사성이 풍부하다. 주요 작품으로 「섬」, 「카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일상적인 삶」, 「지중해 영감」, 「모래톱」 등이 있다. 이외에도 30여 권의 철학서 및 시적 명상과 풍부한 서정으로 가득 찬 에세이집이 있다. 1971년 3월에 사망하였다.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삼십여 년간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삼십여 년간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했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저서로는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지중해, 내 푸른 영혼』, 『문학 상상력의 연구 -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프로베르여 안녕』, 『예술의 성』, 『프랑스문학 산책』, 『공간에 관한 노트』, 『바람을 담는 집』, 『소설의 꽃과 뿌리』, 『발자크와 플로베르』, 『행복의 충격』, 『미당 서정주 시선집』, 『예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흔적』, 『알제리 기행』,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프랑스 현대시사』, 『섬』, 『청춘시절』,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노란 곱추』, 『침묵』,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짧은 글 긴 침묵』, 『마담 보바리』, 『예찬』,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최초의 인간』, 『물거울』, 『걷기예찬』, 『뒷모습』,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이별잦은 시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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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치고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가서 미친 듯이 읽고 싶다는 일념으로 내 방까지 한달음으로 뛰어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섬》을 펼쳐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이를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장 그르니에의《섬》을 알베르 카뮈의 저 빛나는 문장들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한 작가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 할 그 글에는 카뮈의《섬》에 관한 각별한 애정은 물론, 스승인 장 그르니에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담겨 있다. 그러나 카뮈를 통해 그르니에에게 입문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라도 이 두 작가에게는 확실한 ‘선후 관계’가 있었다. “장 그르니에가 없었다면 알베르 카뮈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쥘 루아의 말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더라도, 알제 빈민구역의 병약한 소년에게 젊은 교사 장 그르니에가 없었더라면 카뮈의 인생은 퍽이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와 ‘따뜻한 회의주의자’ 장 그르니에
알제 빈민구역의 병약한 소년과 젊은 교사로 만나
공감과 차이 사이로 난 길을 함께 걸으며,
평생토록 서로의 생을 빛으로 채워주는 대화를 나누다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로 카뮈를 작가의 길로 이끈 이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도 20세기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였다.《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은 서로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 두 작가가 각각 열아홉 살과 서른네 살이었을 때부터 카뮈가 마흔일곱 살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주고받은 235통의 서신들을 모아 묶은 책이다. 카뮈가 112통, 그르니에가 123통이다. 어떠한 이유로 카뮈가 그간 모아온 서신들을 모두 불태워버려 그르니에가 보낸 편지는 스물일곱 번째에야 이르러 등장하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나눈 내밀한 대화의 총체와도 같다.
거의 일 년 내내 안개와 비로 칙칙한 브르타뉴 출신인 그르니에와 태양과 바다 그 자체였던 알제 출신의 카뮈는 두 지방의 기후만큼이나 달랐다. 저 너머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스승과는 달리, 카뮈는 이 지상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다.《카뮈-그르니에 서한집》에서 카뮈와 그르니에의 애독자들이 제일 기쁘게 발견하는 것은 이 상이한 두 작가의 지적 운명이 맞물리면서 발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카뮈의 지적, 문학적 작업의 산물들도 처음부터 그 자체로 독자적이면서 높은 완성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예술가의 창작이 지극히 개인적인 고독의 산물이라고 해도, 하물며 존재감이 확실한 스승을 통해 문학의 세계로 입문한 카뮈의 세계관이 어떻게 완성되었을까를 생각했을 때 장 그르니에라는 작가/철학자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카뮈는 스승에게 입은 은혜에 대해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제자의 존경과 감사에 그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은 언제나 내게 변함없는 우정의 증표를 보여주어 나를 자꾸만 놀라게 합니다. 내가 그런 우정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이 내게 신세진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나이가 아주 어렸었다는 이유 바로 그것밖에 없습니다.”

스물여덟 해 동안 위대한 두 지성이 주고받은 영감과 자극,
지적, 예술적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책


그르니에의 회상에 따르면 카뮈는 공적인 개입, 선언문이나 기사를 쓸 때는 격렬했던 반면 오히려 대화나 편지에서 초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르니에야말로 그런 카뮈가 가장 내밀한 모습을 편안하게 내보일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다. 응석을 부리듯 스승에게 의견을 구하는 카뮈와 그런 제자를 시종 다독이는 그르니에의 편지들을 보면 카뮈에게 그르니에가 얼마나 커다란 존재, 거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카뮈는 갓난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와 같은 이유로,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에는 이제 막 문학에 눈을 떠 글을 써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한 청년이 큰 작가가 되기까지의 내적 성찰과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감내했어야 할 외부의 비판과 저 유명한 사르트르와의 논쟁에 대한 카뮈의 속내, 그리고 무엇보다《이방인》,《페스트》,《시지프 신화》등의 역작들이 씨앗의 모습에서 열매로 영글기까지의 과정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세계에 대한 카뮈와 그르니에의 입장이 늘상 일치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근본적 세계관이 달랐던 만큼 둘의 대화에는 차이에서 기인한 대립이 존재했다.《시지프 신화》이래 반항을 통한 한계 설정을 모색함으로써 작품 세계가 더 깊어져간 카뮈는 원천적으로 무관심의 법칙과 절대의 탐구를 전제로 하는 그르니에의 철학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카뮈와 그르니에는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내어놓고 토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들은 그 솔직함과 인간적인 면들로 인해 더욱 감동적이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에는 장장 스물여덟 해 동안 위대한, 그러나 또 그만큼 달랐던 이들 두 지성이 주고받은 메아리들이 깃들어 있다. 둘의 대화에는 사랑과 신의가 가득했고, 그로 말미암아 그 사이에는 공감과 차이 사이로 난 우정의 길이 열렸다. 그리하여 그렇게 쌓인 사랑과 신의로 둘은 사제 관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세상에 둘도 없을 지적/문학적 동반자가 되었다. 문학사상 가장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이들 사제의 관계를 카뮈는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요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생각을 웅변이라도 하듯《안과 겉》,《반항하는 인간》을 스승에게 바쳤으며, 그르니에가 자신의 저서인《섬》의 서문을 부탁하자 기꺼이 아름다운 글을 써주었다. 그것은 카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스승에게 한 마지막 보답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문학의 길을 열어준, 마치 계시와도 같았던 책에 부친 자신의 서문이 스승의 글과 나란히 인쇄된 책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편지에 붙은 편집자 주석은 독자의 눈을 오래 붙들며 긴 여운을 남긴다. “루르마랭으로 보낸, 알베르 카뮈의 서문이 붙은 장 그르니에의《섬》(갈리마르, 1959)은 카뮈가 사망한 뒤에 배달되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이제 이 책은 내 것이라기보다는 당신의 것이라고 해야겠어요. 건강하시오. 1960년 1월 1일, 장 그르니에.”

열일곱의 소년과 서른두 살의 젊은 교사로 만나
프랑스 지성사의 큰 인물들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긴 235통의 편지


1930년 가을 그르니에는 이미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알제로 돌아와 고등학교 입시 철학반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베르 카뮈와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카뮈의 폐결핵 발병으로 두 사람의 교유는 이듬해로 유예된다. 건강상의 이유로 재수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카뮈는 다시 한번 그르니에의 반에서 공부를 하게 되고, 둘 사이에는 문학을 기반으로 한 우정이 싹튼다.
그르니에의 에세이와 그가 빌려준 몇 권의 책을 통해 문학에 눈을 뜬 카뮈는 스승의 독려로 알제에서 발간되는 잡지들에 글을 발표한다. 그르니에는 종종 그런 식으로 몇몇 제자들을 독려했는데, 그중 베르그송의 철학을 소재로 에세이를 쓴 카뮈는 단연 발군이었다. 바다와 여자아이들, 그리고 축구에만 열광하던 소년 카뮈는 그런 식으로 문학에의 개종을 경험하게 된다. 서한집의 편지는 그런 카뮈가 대학에 들어가고 난 1932년 봄부터 시작된다.
첫 편지에서 카뮈는 벌써부터 자신의 ‘첫 작품’을 언급하고 스승에게 소감을 부탁한다. 그는 스승의 평가에 따라 계속 글을 쓸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한다. 카뮈가 처음 쓴 에세이들은 불가피하게 스승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 장 그르니에는 ‘알제의《N.R.F.》(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발간했던 문학잡지)’와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카뮈에게 스승 말고는 별다른 본보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르니에는 그런 제자에게 도스토옙스키, 니체,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을 알려주고, 저명 문인들과의 접촉을 주선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토론을 벌임으로써 제자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그리고 카뮈는 1933년, 그에게 철학적 개종의 기회였다고 하는 그르니에의 산문집《섬》을 읽고 “고독이라는 바로 그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섬》은 카뮈의 내면에서 스승을 닮고 싶다는 모방 욕구를 발동시키는 동시에 독자적인 세계관을 일깨워〈가난한 동네의 목소리들〉이라는 글을 탄생시켰고, 훗날《안과 겉》,《행복한 죽음》,《결혼》같은 저작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1936년에서 1937년, 카뮈는 스승이 자신을 저버렸다고 느낀다. 그는 스승의 권유에 따라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탈당한다. 그르니에가 정치적 참여를 비판하는 일련의 강연들을 행하는 것에 배신감과 혼란을 느낀 것이다. 카뮈가 석사학위 과정의 논문을 끝낸 뒤 작가로서의 존재를 확고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다. 이전까지 아주 사소한 코멘트라도 부탁했던 것과 달리, 그는 스승의 충고와 무관하게 집필 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스승의 영역이었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알제, 티파사, 제밀라 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뮈의 글들이다. 사람들은 그르니에가 이전에 그에 관한 글들을 발표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1938년 그르니에가 방브의 미슐레 고등학교에 부임하게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카뮈에게는 이제 알제에서 그의 글에 관해 코멘트를 해줄 사람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 년여 둘 사이의 연락은 뜸했고, 카뮈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그때부터 훨씬 활발해지고 중요해진다. 당시의 편지들에서는 그들의 문학적 계획뿐 아니라 연극계에 데뷔한 카뮈의 수련 과정, 정치적 상황,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보내주어《시지프 신화》를 위한 일련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될 서적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언급된다. 그리고 전쟁 중의 프랑스와 알제의 상황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 어려운 형편에 두 사람은 서로를 더욱 애틋하게 생각하게 된다. 카뮈는 스승을 생각해 먹을 것이 떨어진 프랑스 본토로 식료품 따위를 보내고, 그르니에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제자에게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도 존경과 신의를 바탕으로 하여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로 서로의 삶을 가득 채워준 영원한 대화


세계대전이 끝난 후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은 뜸해진다. 카뮈는 작가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독자는 그에게 이제 더이상 스승의 의견이 필요 없음을 느낄 수 있다.《페스트》는 그르니에가 사전에 그 원고를 읽어보지 않은 채 출간된 카뮈의 첫 작품이다. 한편 그르니에는 이집트 푸아드 대학에 임용되어 프랑스를 떠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서신 교환이 재개되긴 하지만, 예전처럼 서로 지적으로 충실한 자극을 주고받지도, 흥미로운 의견 교환이 오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의 그리움은 그대로이다(그르니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카뮈를 이집트로 초청하지만, 이슬람 세력의 집결지인 이집트로 카뮈를 보내는 것을 저어한 프랑스 당국의 처사로 결국 그 계획은 무산된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와중에도 서신 교환을 계속한다. 그동안 카뮈는 연극 쪽의 경력을 계속 쌓아가고, 국내외 정치 상황에 대한 시사평론들을 발표하고, 소설《전락》을 발표하고, 그의 최후 역작이 될《최초의 인간》의 구상과 집필을 계속한다. 한편 그르니에는 예전처럼 집필을 계속하며 자전적 소설에 가까운《모래톱》과 후기 역작들인《불행한 실존》,《도의 정신》,《일상적인 삶》등을 발표한다. 그리고 1957년, 카뮈는 마흔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는다. “오늘날 인간의 의식에 제기되고 있는 제반 문제들에 빛을 던진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게 된 카뮈는 보클뤼즈 지방의 루르마랭에 시골집을 매입해 그곳에서 집필에만 전념하고자 한다. 어린 시절 얻은 폐결핵이라는 지병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던 작가가 난생처음으로 누리게 된 작은 안락함이었다. 1959년, 스승 그르니에가 새롭게 개정되어 출간되는《섬》의 서문을 부탁하자, 그는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인다. “《섬》의 서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회에 전과 다름없는 감동과 찬탄의 마음으로《섬》을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감동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뮈는 자신의 서문이 실린 스승의 책을 만져보지 못한 채 이듬해가 되자마자 교통사고로 급작스레 세상을 뜬다. 그 서문에는 장 그르니에를 향해 제자 알베르 카뮈가 평생 품어왔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감동적이다. “우리의 지식인 사회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어정쩡한 진리들 가운데는 저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원하는 저 자극적인 진리도 섞여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곧 우리 자신이 모두 스승이요 노예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말은 그와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 의미로 인하여 스승과 제자는 오직 존경과 감사의 관계 속에서 서로 마주 대하게 된다. 이럴 경우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의식과 의식의 투쟁이 아니고, 한번 시작되면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은 채 어떤 삶 전체를 가득 채워주게 되는 대화인 것이다.” 제자의 죽음 후 홀로 남겨진 스승은 8년 후 제자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책 한 권(《카뮈를 추억하며》의 원제는 ‘알베르 카뮈’이다)을 써서 그를 기렸다. 카뮈와 그르니에의 서신 교환은 한쪽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중단되었지만, 서로의 글 속에서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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