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1850년 12월 16일 오후 1시 15분 15초.

만 31세의 한 청년 작가가 자신의 소설(초고의 절반을 넘어간 시점이다)에 이 시각을 기록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게다가 그는 이 시각을 ‘이 축복의 순간’이라고 쓰며,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가 정말로 물인지 아니면 수증기인지 의문이라는, 엉뚱한 화제로 글을 시작했다.

이 엉뚱한 작가의 이름은 허먼 멜빌이다. 그의 대표작 《모비딕》의 어느 장(章)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은 이슈미얼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선원으로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보고 들은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어린 시절 축약본으로 접해보았을 이 소설은 사실 방대한 서사를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완역본을 읽은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어내는 일은 포경선을 타는 일 만큼이나 험난하게 느껴진다. 내가 읽은 판본은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 록웰 켄트의 그림들이 곁들여진 일러스트판 《모비딕》이다.  일러스트판을 읽는 내내 멜빌이 던져놓은 텍스트의 그물을 건져올리며 강렬한 그림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기에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계인으로서의 이슈미얼】

소설은 유명한 문장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로 시작한다. 장로교파의 청년으로 나오는 화자, 이슈미얼은 이미 상선에서 선원으로 바닷물을 맛본 인물이다. 작가 허먼 멜빌은 구약성경에서 ‘아랍인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이슈메일을 소설의 화자로 삼았다. 성경에서 이슈메일의 이미지는 ‘추방자’, ‘사회에서 버려진 자’를 암시한다. 결국 소설의 화자인 이슈미얼은 이 이미지에 걸맞게 한 곳에 정착하는 붙박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떠돌이’로 나온다. 달리 말하면 사회의 관습과 구속에서 보다 자유로운 자로 볼 수도 있다. 구속에서 자유로운 자는 ‘물’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로, 육지에서 바다로 향하기 마련이다. 이슈미얼이 바다로 나가게 되는 당위성을 화자의 작명에서부터 세심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이슈미얼은 사회에서 소속이 명확하지 않은, 물과 같이 유동적인 존재다. 아울러 멜빌의 분신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며 느낀 것은 이슈미얼이 멜빌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표출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슈미얼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낯설게 보기’, ‘뒤집어 보기’를 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식인종 작살잡이 퀴퀘그와 한 침대에서 자게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기독교 문명-백인의 시선을 대표하는 이슈미얼이 이교도-유색인을 대변하는 식인종 퀘퀘그를 인간이자 동료로 바라보게 되는 장면은 19세기 중반의 보편적인 인식을 고려할 때 놀라운 ‘시선/고정관념 뒤집기’를 보여준다. 멜빌의 뒤집기는 여기서 나아가 성경의 가르침(이웃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내가 이웃에게 해줄 것)을 그대로 따라 ‘숭배의 의미’를 되묻고, 이교도 퀴퀘그가 자신의 신을 숭배하는 의식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슈미얼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이교도의 신을 숭배하는데 참여하는 이율배반을 보여주었다. 

이슈미얼은 어느 하나의 대상 혹은 현상에 대해 표면적인 모습과 그 이면의 모습 모두를 대등하게 놓고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작가 자신이 현상의 두 측면 위에 발을 딛고 서서 양쪽을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경계인’으로 부르겠는데, 이 역할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떠돌이 이슈미얼에게 제격으로 보인다.

소설에서 드러나는 ‘경계인’ 이슈미얼은 기독교도이면서도 신성한 ‘성경’구절을 패러디하여 풍자하거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주목하기도 한다.  

“토요일 밤에 정육 시장에 가서 살아 있는 두발짐승 무리들이 죽은 네발짐승들이 길게 내걸린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 좀 보라. 식인종도 입을 쩍 벌리게 만들 광경이 아닌가? 식인종? 식인종이 아닌자, 그 누구란 말인가?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 야윈 선교사를 소금에 절여 지하실에 저장해둔 피지 사람들이 더 참아줄 만하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일이 닥쳐오면, 거위를 땅에 못으로 박아놓고 간이 터질 정도로 배불리 먹여 만든 파테드푸아그라를 포식하는 문명화되고 개화된 그대 대식가들보다 그 검약한 피지 사람들이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472면)

이처럼 허먼 멜빌은 이슈미얼의 입을 통해 서양인들과 이들 문명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대목들은 소설의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멜빌이 이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멜빌의 가정환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스코틀랜드계 집안(아마도 카톨릭 집안) 출신의 아버지와 네덜란드 칼뱅파 집안의 후손이었던 어머니가 일군 가정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듯하다. 멜빌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멜빌은 은행원, 학교 교사 뿐만 아니라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상선의 선원, 포경선 선원, 해군으로 입대하여 배를 타게 되었던 것. 소설의 피쿼드호에는 흑인, 북미 원주민(인디언), 마닐라 배화교도를 포함하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몰타, 시칠리아, 아조레스, 중국, 동인도, 타이티, 포르투갈, 덴마크, 영국, 스페인, 산티아고, 벨파스트 등에서 온 다양한 선원들이 승선하고 있다. 멜빌이 실제로 상선과 포경선을 탄 경험은 당시 19세기 중반의 평균적인 미국인들과 비교하면 지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멜빌의 독특한 시각은 아마도 이런 폭넓고도 예외적인 경험을 통해 자라나지 않았을까.  아래 문장은 이슈미얼의 입을 통해 멜빌의 관점이 잘 드러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물과 현상을 공정하게 바라보려는 경계인의 시선에서 말이다.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천상의 어떤 것에 대한 직관, 이 둘을 겸비한 사람은 신자도 불신자도 아니게 되며, 그러한 사람은 양쪽 모두를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579면)

공정한 시선을 바라보려는 멜빌의 의지는 소설 전반을 통해(몇 군데를 제외하고)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해브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

이슈미얼이 타게된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은 에이해브다. 화자 이슈미얼이 지난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것과 다르게, 에이해브는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방향을 결정하고, 사건의 진행을 추동하는 중심인물이다. 작가는 선장의 이름(에이해브) 역시 《구약성경》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폭정을 일삼았던 왕 ‘아합’에서 가져왔다. 이슈미얼이 피쿼드호에 오르기 전에 피쿼드호의 선주 펠레그 선장과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펠레그 선장) 그는 에이해브란 말이지. 그리고 그대도 알다시피 옛날에 에이해브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었겠나!

(이슈미얼) 게다가 몹시 나쁜 왕이었죠. 그 사악한 왕이 살해됐을 때 개들이 그의 피를 핥지 않았던가요

(149면)

소설에서 이슈미얼이 퀴퀘그와 마치 부부처럼 운명의 밧줄로 연결되어 있다면, 에이해브와 같은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은 마닐라의 이교도 페달라이다. 베일에 가려져 있고, 말이 없는 페달라는 존재감이 미미해 보이지만  페달라는 소설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본다. 은폐된 페달라의 존재는 피쿼드호의 선장을 맡은 에이해브 자신의 내밀한 목적을 대변한다. 페달라는 바로 에이해브의 한 쪽 다리를 앗아가고 자신의 존재를 밟아버린 ‘모비딕’을 쫓기 위해 고용된 용병인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추격하는 일에 잠시 고뇌하고 머뭇거리지만, 페달라는 선장을 파멸의 길로 흔들림없이 안내하는 죽음의 안내인이자 선장의 운명을 예언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페달라는 1인칭 화자로 서술되는 소설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한편 에이해브 선장은 피쿼드호의 폐쇄된 공간 내에서 왕과 같이 군림하려 든다.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선장이 모든 선원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선동을 시작하자, 일등항해사 스타벅만은 모비딕에 복수하려는 선장의 계획에 의문을 제기한다. 스타벅은 《모비딕》에서 집단의 양심을 대변하며 에이해브 선장과 온건하게나마 대립한다. 스타벅은 잠든 선장 앞에서 머스킷 총을 들고 에이해브 선장의 지휘권을 무력화한 다음, 모비딕을 추적하는 일을 중단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벅은 조심스럽고 양심적이지만,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런 인물형은 아닌 것 같다. 스타벅은 집단 속에서 고뇌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우유부단한 인물로도 보인다. 에이해브가 자신의 복수에 눈이 멀어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처럼, 스타벅도 피할 길 없이 선장과 한 배를 타며 피쿼드호의 운명에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에이해브 선장을 중심으로 대립 혹은 보강하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비극을 암시하는 상징들】

영미 문학의 대표적인 비극으로서 《모비딕》의 곳곳에서는 피쿼드호의 파멸과 죽음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피쿼드호의 ‘피쿼드’는 ‘절멸한 매사추세츠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소설에는 물론 ‘백인들에 의해’ 피쿼드족이 절멸했다는 언급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이해브의 이름을 따온 성경의 아합왕은 폭정으로 살해되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다. 피쿼드호의 출항 직전 이슈미얼 일행은 불길한 느낌을 주는 낯선 사내의 예언과도 같은 횡설수설을 듣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낯선 남자의 이름이 일라이자였다. 이 이름은 성경에서 아합왕의 파멸을 예언한 엘리야를 말하는데, 이 것은 에이해브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소설에서 죽음과 관계 있는 상징으로서 ‘관’의 이미지가 여러 번 등장한다. 첫 번째 장에서부터 관이라는 단어가 보이는가 하면, 뉴베드퍼드항의 여인숙 주인의 이름은 ‘관’을 연상하게 하는 피터 코핀이기도 하다. 또 페달라의 예언에 의하면 두 가지 관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는 모비딕, 다른 하나는 피쿼드호가 되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떠올려보면 퀴퀘그가 갑자기 열병에 걸려 죽어갈 때 목수가 만들어 주었던 관이 있다. 그런데 이 퀴퀘그의 관은 ‘죽음’과 파멸을 암시하는 관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관이었다. 목수가 관을 밀봉하여 구명부표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피쿼드호가 침몰했을 때, 유일하게 떠올라 이슈미얼을 구해주었던 것이 바로 이 퀴퀘그의 관이었다. 퀴퀘그의 관은 예외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관이다.

멜빌은 소설에서 색채를 활용하여 ‘죽음’의 이미지와도 연결시킨다. 무엇보다 에이해브가 추격하려는 향유고래는 ‘흰’ 고래다. “무엇보다 나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고래가 흰색이라는 점이었다”(311면) 이슈미얼은 흰색이 지니는 고귀한 우월성과 기쁨 같은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백색이 주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감미롭고 명예롭고 숭고한 연상들에도 불구하고 흰 색의 가장 내밀한 관념 속에는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가 숨어 있어서 공포스러운 피의 붉은 색보다 영혼에게 더욱 극심한 공포를 안겨준다”(312면)

여기에 더하여 이교도 페달라의 ‘흰색 터번’, 그리고 앨버트로스의 흰색 등이 불길한 분위기를 더한다. 한 편 망망대해에서 피쿼드호가 목격한 거대 오징어 역시 ‘크림색’이었다. 이등항해사 스터브는 이 오징어를 보며 ‘오징어를 본 이들이 살아서 항구로 돌아간 이가 거의 없다’는 불길한 믿음을 전한다.

【에필로그】

일러스트작가 록웰 켄트의 그림이 곁들여진 《모비딕》을 읽는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독서 경험을 준다는 의미다. 소설에 등장하는 켄트의 그림은 그가 주로 작업하던 목판화가 아니라 붓과 펜으로 그려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켄트의 작업은 강렬한 흑백대비를 보여주는데, 이런 분위기는 빛과 그림자(어둠)를 통해 모비딕에 대한 복수라는 맹목적인 광기와 우울감을 더해주는 듯하다. 실제로 이슈미얼은 빛과 어둠의 대조를 말하기도 하다. 

“진흙으로 빚어진 우리 육신에는 빛이 더 어울리지만, 실은 우리의 본질을 이루는 진정한 요소는 바로 어둠이라는 듯이 말이다.”(111면)

이렇듯 빛과 어둠이 어우러진 켄트의 그림은 ‘수면 위’(인간의 세계/빛)와 ‘수면 아래’(고래의 세계/어둠)의 대비, 기독교 문명과 이교도 문명의 대비를 더욱 부각시켜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만의 상상인 것일까.

그 밖에 《일러스트 모비딕》에서 향유고래가 고래 추격용 보트를 공격하고 있는 장면(427면)과 사람들이 던진 작살을 그대로 몸에 꽂은 상태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등장하는 장면(601면)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무엇보다 소설 속 인물들, 특히 에이해브를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피쿼드호의 뒷갑판 위에서 성한 다리와 고래뼈로 깎아 만든(소설에서는 어디에도 왼쪽 다리라고 언급된 적은 없지만) 왼쪽 다리를 굳건히 내딛고 서있는 에이해브(264면)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한 손은 뱃전을 단단히 잡고, 다른 손은 일자코트에 찔러 넣은 채 모비딕에 복수를 다짐한 듯, 혹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는 듯 먼 바다를 응시하는 에이해브(345면)의 음울하고도 강렬한 눈빛을 담은 그림은 책을 덮어도 여전히 여운을 준다. 펜이 만들어 내는 날카로운 선과 붓이 완성하는 강렬한 흑백의 대비는 《모비딕》이라는 비극을 완성하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

이슈미얼이 침몰하는 피쿼드호에서 올라온 관을 구명부표 삼아 바다에서 수면 위, 인간의 세계로 귀환하는 장면은 다시 소설의 처음을 환기시킨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부터 이슈미얼이 인간의 세계에서 배를 타고 물의 세계, 바다로 나가는 순환적인 구조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건 끊임없이 회귀하고 반복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점에서 《모비딕》은 한 인간이 단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고래를 추격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그리고  방대한 고래학과 포경업에 대한 지식의 규모를 넘어서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멜빌의 통찰이 담긴 소설이기도 하다.

《모비딕》을 덮고 다시 1850년 12월 16일 1시 15분, 선장실 같은 자신의 서재에 앉아 글을 쓰다가 시계를 확인했을 법한 멜빌을 떠올려본다. 멜빌은 ‘이 축복의 순간’에 ‘웅장한 책’을 쓰고 싶은 열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았을까.  이슈미얼의 입을 통해 “고래를 요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695면)라고 말하고 있듯이, 멜빌은 이 고래 이야기와 정면대결하듯 글쓰기를 해나가며 고래가 내뿜는 물기둥을 상상했을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다가 예상치 못하게 만난 이 지점을 좋아한다. 작가는 이 순간 소설 속에서 자신의 손을 내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고, 2020년의 어느 독자가 그 손을 맞잡게 되었다. 내가 직접 멜빌과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지점이다. 소설이 끝나며 바다에서 구출된 이슈미얼은 육지로 나갔다가 언젠가 또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을까. 이제 《모비딕》이란 심연을 빠져나온 나는 언젠가 다시 《모비딕》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모비딕》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오오, 인간이여! 고래를 찬양하고 고래를 본받을지어다! 그대로 얼음 사이에서 온기를 유지하라. 그대도 이 세상에 살되 그 속에 속하진 마라. 적도에서도 냉정을 유지하고, 극지에서도 계속 피가 흐르게 하라. (…) 그 어떤 계절에도 그대만의 체온을 유지하라” (4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