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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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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 나무연필 | 2018년 12월 07일 리뷰 총점8.8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4점
편집/디자인
4.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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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8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58g | 140*210*30mm
ISBN13 9791187890126
ISBN10 11878901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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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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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과학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과에서 문과로 ‘개종’한 후 사회학과에 들어가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떠나라”는 명령을 듣고 한동안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때 자본의 전 지구화에 의해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이를 인권의 언어로 증언하는 일에 몰두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태어나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과학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과에서 문과로 ‘개종’한 후 사회학과에 들어가 문화연구를 공부했다. 유학을 준비하다가 “떠나라”는 명령을 듣고 한동안 국제단체에서 일하며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때 자본의 전 지구화에 의해 소외받은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며 이를 인권의 언어로 증언하는 일에 몰두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며 사회를 구축하는 역량에 대한 방법론으로서의 페다고지에 관심이 많다. 《단속사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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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고통스러운 사람들, 그리고 곁을 위하여
도서1팀 강서지 (seojikang@yes24.com) | 2019-01-24
옛말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하지만 내 안의 슬픔이나 고통을 나누기란 말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있을 때, 무엇이든 좋으니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그 순간, 항상 내 말을 잘 들어주던 친구 앞에서조차 나의 문제가 오롯이 나만의 것임을 실감하는 바로 그런 때가 있다. 아무리 그가 아픔을 공감해주고 다독여주어도 가슴 한 구석에 풀어지지 않은 감정의 실타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나마 작은 실타래라면 "그래, 들어줘서 고마워"라며 한숨 한 번 내쉬고 집으로 돌아가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내일의 일상에 휩쓸려가기라도 한다. 하지만 당장의 실존을 위협할 정도로 큰 문제라면? 숨 쉬기도 힘들만큼 오장육부를 압박하고 있다면? 결국 이런 말을 내뱉고 말 것이다. "아냐, 그게 아니야. 넌 결국 몰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봤을 일이다. 어쩌면 이야기를 듣던 사람, 고통스러운 이의 '곁'으로서 경험했던 일일 수도 있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통을 겪는 이가 어떻게 고통을 겪고 곁과 고통을 나누려 하는지, 고통을 나누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 왜 고통을 나누기를 포기하는지, 고통이 나눌 수 있는 것이기는 한지. 함께 살아가는 곁은 또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까지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결국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된다.

고통이라는 것은 대체로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포함한다.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고는 한다. "넌 몰라", "말을 말자." 이런 상황에서 종종 내뱉는 말이 아니던가. 또한 고통은 당사자에게 절대적이다. 지구 반대편에 전쟁으로 고통 받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지금 당장 내가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의식주 해결이 어려울 일은 없다 한들 자신의 문제 앞에 담담해질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미디어에서 다루는 국가적인 대재난 소식에 공감하고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뒤돌아서면 나의 불행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가끔 이 지점에서 자기혐오로 빠지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일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성토대회가 열리고 이런 말이 꼭 한 번씩 나오기도 한다. "야, 너는 낫지. 나는 말이야…" 제3자의 눈에 고통의 경중이 어떠하건 간에 당사자에겐 하나하나가 삶을 짓누르는 것인데, 자신의 고통의 크기가 가장 크다는 것을 증명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SNS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전국 불행 대회에서는 1등을 하고 싶어하는 이 기이한 행태를 나는 ‘불행 배틀’이라고 부르곤 한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이 개개인에게 절대적이고 쉬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이런 의문을 던진 듯 하다. 저자의 대답을 아주 일부만 발췌하자면 이렇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 과정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서로가 고통받고 있음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 1부 6장 아무리 말해도 말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고통은 절대적이기에 소통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절대성은 보편적이다. 그렇기에 고통은 사람을 나’만’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그 절대성이 바로 나’만’을 나’만’에게만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내가 외로운 만큼 너도 외롭다는 것을 알게 도리 때 사람은 서로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다.
-- 1부 7장 나만 외로운 줄 알았는데 아픈 사람은 다 외롭더라

어쩌면 이 책은 고통 대신 외로움을 나누기 위한 하나의 창구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너무 힘든 사람에게 문장 하나하나가 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을 딛고 일어서거나 고통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사람에게, 오랜 시간 그 곁을 지켜오며 지쳐버린 사람들에게, 이제 막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려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주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책 속으로

--- p.249

출판사 리뷰

고통의 지질학 _고통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곁의 풍경에 대하여
남편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선아는 집단 상담을 받으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잡았던 그의 마음은 무너져버린다. 친정 부모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그는 혼자 끙끙 앓으면서 아이들을 건사하고 일을 하며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백혈병 진단을 받은 승우는 사람들이 자신을 문병하러 찾아오는 것이 귀찮으면서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외롭고 원망스러운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돈독한 이였지만, 그럼에도 하필이면 왜 자기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알 길이 없다며 절망하고 있다.

젊은 시절 집안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잘 키워냈고 사회 활동도 왕성하게 했던 재희 어머니에게는 일흔을 넘기면서 온갖 노인성 질환이 찾아들었다.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그는 가족에게 하소연과 비난을 반복하고 있다. “너넨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병원을 전전한다.

대학 교수이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덕룡 아버지는 노년에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별을 겪은 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덕룡 아버지는 동생을 통해 접하게 된 신흥종교에 기대 주문을 외우며 자신의 고립감을 떨쳐내고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준석은 실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에서도 상처받았다.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문제의 원인이 ‘순진한’ 그에게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손대기 시작한 것은 식물이었다. 그에게는 말 못하는 식물이 오히려 사람보다 정직하게 느껴졌다.

영화 [공동정범]에 등장하는 이충연의 경우, 자신의 실존적 고통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는 고통의 실존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나눈 뒤, 후자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명망가들과 이야기하며 자신이 겪은 참사를 세상에 이야기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차갑게 바라보기도 한다.

대안 학교 교사인 태석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학생들의 질긴 무기력을 깨트릴 수 없었고 자신의 좌절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결국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전도사’가 된 태석과 점점 거리를 둔다.

고통의 언어학 _고통과 대면하고 그것을 말하는 언어에 대하여
이 책의 1부에는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자극적이랄 것 없는 모습들이다. 엄기호가 묘사하고 드러내는 이 고통의 풍경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언어가 어떻게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응답을 할 수 없는지, 그리하여 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고통에 갇힌 이들은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운다. 물론 고통을 겪는 이에게는 주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종교에 ‘주문’이 있는 이유는, 그것이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견디게 하는 ‘방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문이 방편을 넘어서서 실체가 되면 ‘곁’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된다. 잠시의 고통을 잊게 해줄지 모르지만 결국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의 노예가 되게 한다. 고통에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을 방해한다.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이들에게 감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문을 함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게 만든다.

내면적 언어나 사회적 언어에 기대더라도 고통의 모든 것을 명료하게 말할 순 없다. 고통은 그렇게 하나의 언어로 ‘봉합’되지 않는다. 고통을 겪는 이에게 이는 절망이다. 어떻게 말하더라도 온전히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고통에 찬 사람들은 그 무의미함으로 인해 울부짖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언어의 가능성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언어가 결국 허무하기에 시도조차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는 세계의 파국만이 있고 새로운 구축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파국적 결론은 ‘주문’의 기만과 짝패를 이룰 뿐이다. 엄기호는 당사자가 고통을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기만을 경계하되 고통을 말할 필요가 없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장벽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불가능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과 대면하고 싸움으로써 이를 기록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의 사회학 _고통을 소비하고 전시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이 책의 2부에서 살펴보는 지점은 고통의 사회학적 측면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오로지 고통의 비참함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참의 전시를 통해서만 사회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잊힌 존재가 되어버린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존재감이 전혀 없는 유령이 되어 이 사회를 배회하게 된다. 이 유령들이 죽었을 때만 오로지 그 존재를 눈치 채는 잔인한 사회다. 그렇기에 유령이 되지 않으려면 고통의 참담함과 비참함을 강조하고 전시해야 한다. 고통을 당하고서 그것을 보여주는 사람으로서만 겨우 사회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 이게 이 사회의 정치이자 경제가 되었다.

더구나 이것이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불길하다.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자기의 고통을 전시하며 주문을 외우는 동안 곁은 빠르게 파괴된다. 대신 고통의 곁에 선 이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가만히 있어주기를 기대한다. 심지어 이것은 “비를 맞는 이에게 가장 좋은 사람은 같이 비를 맞는 사람”이라는 말로 윤리화되고 미학화되어 있다.
이런 미학과 윤리학에서 그 곁에 선 이는 그저 ‘현존’하는 존재여야 한다. 현존이란 그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말을 들어야 하고, 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응답해야 한다. 고통을 겪는 이가 고통을 전시하는 것을 통해 겨우 유령을 면하고 그나마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 곁에 선 이는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그저 유령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현존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이렇게 곁에 현존을 강요함으로써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에서 ‘모든 것이 끝장남’이라는 파국을 맞이한다.

이 파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회’라는 말로 기대했던 것은 반대였다.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다. 고통의 곁에 선 이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버틸 수 없을 때 안전하게 물러날 수 있어야 한다. 물러남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고통을 겪는 이를 돌볼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곁에 선 이가 ‘독박’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나 지금 사회는 어떠한가.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파괴하고 그 비참을 전시하는 것을 통해 관심을 끌려고 하는 ‘관종(關種)’들이 활개 치는 세상이 아닌가. 이들이 사람들을 발가벗김으로써 세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신상털이 카니발을 벌이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일을 더해질수록 관종들의 명망은 더더욱 올라가고, 심지어 피해자조차 관종으로 만드는 선정적 플랫폼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사회가 아닌가.

엄기호는 이를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에 빗대어 설명한다. 한편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고 와 사자 밥이 되게 하는 노예 상인, 즉 관종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비참과 고통을 밀쳐내며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는 검투사, 즉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콜로세움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팝콘을 들고 와 가장 안전한 자리에서 이 모든 것을 구경하고 소비한다. 때로는 값싼 동정을 보내지만, 이들의 관심은 곧 새로운 구경거리로 넘어간다. 이 시대의 공론장은 해상도 높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좀더 세밀하게 읽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콜로세움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다.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콜로세움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관종의 먹이가 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객석에 있으면서 고통의 당사자들이 펼치는 참혹함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키기 위해 ‘사라짐’을 택하는 것이다.

고통의 윤리학 _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곁에 대하여
마지막 3부에서 짚어보는 지점은 이러한 사회에서 고통을 어떻게 다뤄내야 할지의 윤리적 문제다. 이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가 아니라 그들의 옆에 있는 고통의 ‘곁’이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곁의 역할은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 고통에서 빠져나와 그 곁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이는 대체로 바깥은 붕괴하고 자기에게 함몰되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매개하는 간극과 시야다. 지금 당장 자신의 고통을 타인과 소통하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또한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없다는 그 외로움을 통해서 비로소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고통을 겪는 이에게 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희망의 근거가 된다. 이 곁의 존재를 보며 고통을 겪는 이는 드문드문 주문에서 벗어나 자기에게 돌아갈 자리가 있고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록 그것이 산발적인 찰나일지라도 말이다. 일이 잘 진행된다면 곁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기가 그 함몰된 구덩이에서 나와 스스로 자기의 곁에 설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곁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곁의 현존을 착취하고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곁이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바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언어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고 또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이 자리다. 또한 고통이 머무는 ‘그라운드 제로’의 자리 옆에 있는 고통의 곁에게도 또 다른 곁이 필요하다. 그럴 때 고통의 곁에 있는 이는 고통받는 이의 옆에서 기약 없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묻는 지점은 고통의 콜로세움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그것을 드러내는 윤리적 방법에 대한 것이다. 굳건한 콜로세움의 메커니즘을 경계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은 과연 정당한지 되묻는 것이다. 엄기호는 타인의 주목을 끌기 위한 경쟁과 인간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사라짐의 기술’을 대체해야 할 것은 세상을 보좌하기 위해 ‘신중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는 ‘고통’의 문제가 사회 속에서 고민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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