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검색


어깨배너

3월 전사이벤트
마니아 북클럽 무료이용권
에어프라이어 기획전
BTS 신보 예판
편의점픽업 500P 적립
L포인트 50% 캐시백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상품권
한용운과 그의 시대
미리보기 공유하기
소득공제

한용운과 그의 시대

[ 양장 ]
고재석 | 역락 | 2010년 12월 22일 리뷰 총점10.0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5점
편집/디자인
5점
회원리뷰(1건) | 판매지수 12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정가 30,000원
판매가 28,500 (5% 할인)
YES포인트
결제혜택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카드/간편결제 혜택 보기/감추기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 4천/8천원 캐시백 (5/10만원 이상 결제시, 누적금액 기준)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팝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L포인트 L포인트 50% 캐시백 (2천P 이상 사용시 1천P 캐시백) 자세히 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1/4
광고 AD

출판사 추천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0년 1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800g | 160*232*30mm
ISBN13 9788955568639
ISBN10 8955568630

관련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2개)

책소개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저자 소개 (1명)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근대문학지성사』『일본문학 사상명저사전』『좋은 글을 쓰는 34가지 기술』『숨어있는 황금의 꽃』 『한용운과 그의 시대』 등이 있고, 역서로 『근대 일본인의 발상형식』『사상사의 방법과 대상』『일본현대문학사』상,하『일본 메이지 문학사』『일본 다이쇼 문학사』『일...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 『한국근대문학지성사』『일본문학 사상명저사전』『좋은 글을 쓰는 34가지 기술』『숨어있는 황금의 꽃』 『한용운과 그의 시대』 등이 있고, 역서로 『근대 일본인의 발상형식』『사상사의 방법과 대상』『일본현대문학사』상,하『일본 메이지 문학사』『일본 다이쇼 문학사』『일본 쇼와 문학사』등이 있다.

만든 이 코멘트

저자, 역자, 편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코멘트 쓰기
접수된 글은 확인을 거쳐 이 곳에 게재됩니다.
독자 분들의 리뷰는 리뷰 쓰기를, 책에 대한 문의는 1:1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출판사 리뷰

지금까지 출간된 한용운 평전의 틀을 뛰어넘다!

1. 일그러진 기억의 거울에 비추어보다


“글쎄, 우리 아버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정치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혈육,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내림이며 피할 수 없는 표정인가. 약간 도드라진 광대뼈, 자그마하지만 다부진 골격, 온화하면서도 서늘한 눈빛……. 한용운의 서거 48주기를 맞아 마련한 ‘만해 추모 문학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홍성으로 내려가는 일행의 한 명임을 모를 리 없는 그녀의 친절에 용기를 낸 저자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느냐는 외람된 질문을 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차안에서 한영숙 여사가 저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자신의 회고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한용운이 입적할 당시 열 살에 불과했을 그녀가 아버지를 정치가로 기억하고 있는 건 뜻밖이었다. 혹시 성장하는 동안 주변 어른들의 회고담을 듣고 관련서적도 읽으면서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일까. 아니다.

선친은 서책을 보시다가 가끔 어린 나를 불러 세우시고 역사상에 빛나는 의인 걸사의 언행을 가르쳐 주시며 또한 세상 형편, 국가 사회의 모든 일을 알아듣도록 타일러 주시었다. 이러한 말씀을 한두 번 듣는 사이에 내 가슴에는 이상한 불길이 일어나고, 그리고 나도 그 의인 걸사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하는 숭배하는 생각이 바짝 났었다. ―「나는 왜 중이 되었나」

이렇게 지난날을 회고하던 한용운은 이 글의 말미에서 현실 정치를 할 수 없는 식민지 상황이었기 때문에 승려가 되었다는 회한을 솔직하게 토로한 바 있다. “우리 앞에는 정치적 무대는 없는가. 그것이 없기에 나는 중이 된 것이 아닐까? 만일 우리도……”
하긴 그동안의 그에 대한 많은 인물평 가운데 공격적인 개성의 소유자, 기질적으로 파토스적 성향을 짙게 타고난 사람, 또는 사회로 향한 관심이 컸던 인물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자기반성의 절차를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정치적 사회적 제구조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해방적 관심을 생리로 간직한 인물이었다. 동시대를 살면서 그를 지켜보았고, 『조선불교통사』(1918)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던 상현尙玄 이능화(1869~1945)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한용운의 주된 뜻은 은일하여 머무는 듯하면서 변화를 꾀하는데 있으니, 문득 Marthin Luther가 구교를 개혁할 때의 견해도 있고, (일본의) 신란親鸞이 진종眞宗을 제창한 데에서 얻는 바도 없지 않아, 파괴를 앞서 한 뒤에 건립(을 주장)하였다.
그 마음은 매우 모질고 그 성정 또한 급하였다.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하여 개량사상을 발표하였으며 『불교대전』을 역술하여 포교(를 위한) 재료를 준비하였다. 위(이야기)는 백담사 한용운(에 관한 것)이다.

위의 평 가운데 “표무은변豹霧隱變(은일하여 머무는 듯하면서 변화를 꾀한다)”과 “기심대고其心大苦(그 마음은 매우 모질고) 기정역급其情亦急(그 성정 또한 급하다)”이라는 구절이 눈에 띤다. 전자가 산과 도시, 이상과 현실, 성과 속, 고요한 세계와 움직이는 세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던 한용운의 운명의 형식forms of life 그 정중동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이런 운명을 이끈 내면의 동력 즉 해방적 관심과 혁명적 열정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만해에 대한 논의는 “강철 같은 의지로, 불덩이 같은 정열로, 대쪽 같은 절조로, 고고한 자세로,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최후일각까지 몸뚱이로 부딪쳤고,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굳세게 결투했다.”는 찬탄과 “한용운은 순수승려가 아니다.”는 비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만해학卍海學’이란 용어까지 나오고 있는 2,000년 말 현재 한용운에 관한 대소논문은 500여 편을 상회한다. 다만 민족사의 새로운 진로를 생각하던 1970년대 이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평가의 축이 후자보다 전자로 기울어져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2. 숨어있는 황금의 꽃을 찾아서
공판정에서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며, “독립은 남을 배척함이 아니라.”는 통렬한 최후진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는 민족의 사표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요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 현실과 불교를 지나치게 관념적인 차원으로 설정하면서, 그의 삶과 문학을 소문의 벽과 감상의 바다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아니, 부인하기 어렵다.
저자가 제2부에서 살펴본 바로도, 그와 관련된 많은 논란 가운데 하나인 중추원과 총독부에 제출한 승려 결혼에 관한 건백서는 ‘과열된 유신론’의 하나이기는 하나 파천황적인 주장은 아니며, 한일불교동맹조약을 ‘분쇄’했다고 평가되는 임제종운동은 성공한 종지수호운동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를 비롯한 애국계몽기의 지식인들이 승려들의 결혼을 인구 증산론의 일환으로 지지했고, 임제종운동은 사찰령, 아니 총독부라는 현실의 권력을 부정하지 않는 한 ‘수포’로 돌아가고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한용운전집』에는 “미美에 대한 사고思考의 완옥頑玉”이 깨어지는 심미적 인식 전환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고서화의 삼일」(「매일신보」 1916.12.7~15)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와 같은 민족주의자가 총독부 기관지에 글을 쓸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누락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을 발표하면서 1910년대 지식인 사회의 중심에 선 그는 『유심』(1918.9~12 총3호)을 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3.1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대인관계를 확보하게 된다. 뿐인가. 『한용운전집』에는 3.1독립운동으로 수감된 이후 일본경찰과 검찰 및 판사들에게 받은 심문조서 가운데 일부가 축소·삭제·의역되어 있으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긴 전집 간행위원들이 전거로 삼고 있는 책부터 그랬으니 누구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이런 일련의 사례는 우리가 그를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문화기억 또는 민족 정체성의 상징, 아니 동상으로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지 모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도리이며 후손들을 위한 의무라고 외치며 과거사 규명과 청산의 의지를 불태운다. 돌아다보고 싶지 않은 초라한 근대사를 갖고 있는 만큼 성급한 척결의지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강박관념은 혹시 살아남은 후손들의 오만함은 아닐까.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는 불가능한 과제일 수도 있다.
총체에 대한 인식은 부분적 사실들에 대한 지식과 함께 진보하며, 모든 부분적 사실들은 그 총체 속의 위치에 의하여 진실을 부여받는다. 사람은 그 자신이면서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문학 역시 닫힌 의미구조이자 특정한 사회집단의 구조들과 유사하거나 그것들과 비교하여 이해할 만한 관계 속에 있는 열린 의미구조다. 당대를 둘러싼 정치, 경제, 제도적 상황이나 틀, 요컨대 역사지평에 대한 논의와 참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시대의 불운과 운명의 행운 사이에서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혁명가이며 선승인 한용운에 대한 평가는 대상에 입각한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풍란화 매운 향내’로 대표되는 그에 대한 찬탄과 긍정. 그리고 “한일합방 조약이 말 그대로 ‘잉크도 마르지 않았던’ 시기(1910.9)에 만해 같은 훌륭한 민족 지도자가 이런 건백서를 일본의 식민 통치 책임자에게 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인들의 현실 인식을 충격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는 의문과 회의……이 두 개의 축을 아우른 지점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바라볼 때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를 이룬 그의 진면목은 잘 드러나리라 믿는다.

보는 것, 바르게 보는 것. 이는 깨달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견성은 보는 행위의 정상이며 그 넘어섬이다. 그러나 눈과 말을 빌려서 사물을 이해하는 우리들은 원근법 ― 비록 환영幻影에 불과하긴 하지만―을 통해서 사물의 실체를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출가를 결심하고 ??님의 침묵??을 간행할 때까지의 행적을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이는 제한된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임에 분명하지만, 알려진 사실에 대한 지루한 확인보다는 거만무쌍하면서도 다정하고, 비분강개가 심하고 다정다한多情多恨의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고독 그대로였고 파란 그대로였던 일생을 살았던 그의 맨얼굴과 육성을 보고 듣고 싶은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한용운도 ‘일색지재일색외一色知在一色外(한 빛은 빛도 없는 바깥에 있으면 더 잘 알 수 있다)’라고 했다.

4. 정지된 시간과 움직이는 삶
한용운이 3.1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은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이기 전에 불교계의 타성에 대한 도전인지 모른다. 독립운동에 대한 한용운의 신념과 확신의 안팎을 살펴본다.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한용운; 그렇다. 계속하여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며 일본에는 중에 겟쇼月照가 있고 조선에는 중에 한용운이가 있을 것이다.
문; 피고는 일본에 간 일이 있는가?
한용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불교를 수련하기 위하여 동경에 가서 조계종(주:조동종) 대회(주:대학)에 들어갔으나 학자學資를 계속할 수 없어 반년 만에 돌아왔다. (중략)
문; 이 선언서에서는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폭동을 선동한 것이 아닌가?
한용운;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사람은 한 사람이 남더라도 독립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중략)
문;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한용운; 그렇다. 어디까지라도 그 뜻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유 없는 생존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본승려 겟쇼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목이 잘려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기에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나는 겟쇼 이상의 존재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33인의 대표 가운데 이렇듯 당당한 답변을 한 사람은 한용운 외에도 우정 임규, 은재 신석구, 남강南岡 이승훈 등이 있다. 그런데 『3.1운동비사』와 이를 수록한 『한용운전집』은 위의 별색 지문 부분을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진다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로 의역하고 있는데, 이는 겟쇼月照(1813~1858)라는 일본 승려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일본문법학자이자 한글학자인 우정偶丁 임규(1867~1948)와 감리교 목사 은재殷哉 신석구(1875~1950)는 5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가 일본에 합방된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처음부터 부정했다고 단호히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의 감성적인 논리는 정부를 조직하고 법률을 제정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병합을 반대했다는 한용운의 정치적인 논리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요컨대 겟쇼가 일본의 근왕파 승려였고, 더구나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동반자살心中을 시도했다가 죽은 인물이기 때문에 의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고등법원 예심판사 남상장楠常藏 조서는 지방법원 예심판사 영도웅장永島雄藏 조서와 동일하므로 약함”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우고 생략한 「한용운 고등법원 예심심문조서」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본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용운 고등법원 예심심문조서
피고인 심문조서 제1차
피고인 한용운
다이쇼 8년(1919) 8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예심판사 구쓰 쓰네조楠常藏 서기 미야하라 에쓰즈구宮原悅次
문; 성명 연령 족칭 직업 주소 본적지 및 출생지는?
한용운; 이름은 한용운. 40세 7월 20일생. 직업은 승려. 주소는 경성부 계동 43번지. 본적지는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신흥사. 출생지는 충청남도 홍성군.
문; 작위 훈장 기장을 갖고 연금, 은급을 받았으며 또 공무원의 직에 있었던 적은 있는가?
한용운; 없다.
문; 지금까지 형벌을 받았던 적은 없는가?
한용운; 없다.
문; 피고는 본년 2월 20일경 최린에게 이번 조선 독립운동 기획을 듣고 여기에 가맹하여 3월 1일 명월관 지점에서 회합하여 선언서를 발표하고, 그 곳에서 체포된 것이 틀림없는가?
한용운; 그렇다.
문; 그동안 피고가 백상규(백용성)를 동지로 가입시켰고 기타 행동을 한 일에 대해 지방법원에서 진술한 바는 틀림없는가?
한용운; 모두 맞다.
문; 독립운동 방법은 어떤 것인가?
한용운; 선언서를 배포하여 독립을 발표하고 강화회의 대표자에게 발송하고 또 미국대통령 윌슨에게도 발송하는 한편 일본정부에도 청원서를 보내는 것이다.
문; 선언서를 인쇄하여 배부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한용운; 일반인민 조선인에 대해 우리가 독립을 했다고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문; 독립선언을 하면 조선은 전부 독립된다는 것인가?
한용운; 독립선언과 동시에 정신상에서 독립이 되지만, 일본국 승인을 얻지 못하면 형식상 완전한 독립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는 것은 그대가 말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조선민족 일동이 독립의견을 발표하도록 권유한 것은 아닌가?
한용운; 나는 오로지 우리들이 발표했으니까 승낙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문; 그러나 선언서 취지는 그렇지 않지 않은가?
한용운; 선언서 공약 3장 제2항은 우리가 독립의사를 발표하고 우리들이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뒤를 이은 사람이 그 의사를 이어 독립하도록 하라는 의사를 썼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 강화회의나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한 의사는 무엇인가?
한용운; 그것은 누구든 우리들이 독립선언을 했으니 승인하여 달라는 의미로 발송했던 것이다.
문; 피고들은 독립선언을 하면 정부나 강화회의에서도 곧장 그것을 인정할 것으로 생각했나?
한용운; 그것은 즉시 승인하리라 생각했다.
문;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로 독립이 얻어질 수 있다고 피고들이 생각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나?
한용운; 나는 그 정도로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 그것은 독립선언서로 하여 조선 전체를 소요시켜 그 반향을 강화회의에 제출하고 그 결과 열국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게 하려는 방법은 아닌가?
한용운; 그렇지 않다.
문; 이게 선언서인가? (이때 330호의 3을 보여줌.)
한용운; 그렇다.
문; 여기에는 불온과격한 문구가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민족을 이로써 선동할 의사는 아니었는가?
한용운; 특별히 과격한 문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생각으로 했던 일은 아니다.
문; 선언서를 작성한 사람은 그런 선동의 의견은 없어도 문장에는 선동적 문구가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생각한 자는 자극을 받고 끝내는 폭동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한용운; 선언서에는 대개 온당한 문자만 사용되고 있으며 추호도 불온한 문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 때문에 불온한 행동을 취할 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 실제로 피고들이 발표한 선언서에 선동되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등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일이 있는데 어떤가?
한용운; 전에 예심결정에서 그 일을 알았으나,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문; 피고는 예심에서 이승훈에게 각 지방 교회에서 3월 1일에 독립선언을 발표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는데 그것은 틀림없는가?
한용운; 틀림없다.
문; 그 때 어떤 방법으로 발표한다고 들었나?
한용운; 그것은 듣지 못했다.
문; 피고는 평소 지사로서 자임하고 있는가?
한용운; 그렇지 않다.

한용운은 “피고는 평소 지사로 자임하고 있는가?被告は平素志士をして自ら任じて居る譯か.”라는 일본 판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左樣でありません.”고 대답하고 있다. 앞서 열린 검사심문조서(1919.3.11)에서는 “일본에는 중에 겟쇼가 있고 조선에는 중에 한용운이가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고, 지방법원 예심심문조서(1919.5.8)에서도 예심판사 나가시마 오조永島雄藏에게 “겟쇼 이상의 존재라고 스스로 자부한다.”고 장담했던 그로서는 치욕적인 답변이며, 옥중에서의 수많은 일화들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뿐인가. 그는 “피고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독립이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其樣な話にならぬ事で獨立が得られようと被告等が思って居たものとは思われぬ.”는 예심판사 구쓰 쓰네조의 힐난대로 요령부득의 답변을 하고 있다.
독립선언은 정신상의 독립일 뿐 일본의 승인을 받아야 완전한 독립이 된다거나, 독립선언을 했으니 일본 정부나 파리강화회의에서 곧장 승인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는 등 전략적 위장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순진하고 때로는 굴욕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공약삼장 추가설의 진설
한용운 역시 ‘인간’이었다. 다만 그는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했고,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는데 누구보다 용감했던 진정한 의미의 ‘표변’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능화의 ‘표무은변豹霧隱變’이란 그에 대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인물평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가 지루한 예심 기간 중 일제로부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가혹한 고통을 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의 진술을 액면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데도 그가 초인이기를 바랐던 후학들은 구차한 이유를 내세우며 2회에 걸쳐 진행된 피고인 심문조서를 삭제했다. 「고서화의 삼일」의 출전을 『시대일보』로 변경한 것과 동일한 의미의 왜곡이며 신화 만들기이다. 풍란화 매운 향내라는 문화적 기억 또는 우리의 보상심리로 창조된 이미지 때문에 그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결코 희망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는 우리의 미망이며 아집인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위의 진술을 꼼꼼히 살펴보면 한용운이 공약삼장을 추가했다는 것 또한 하나의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선 이 오해는 「독립사건의 공소공판 한용운의 맹렬한 독립론 제4일 오전의 기록」과 무관하지 않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문; 그 서류를 보고 독립에 찬성하였나? 답; 그것을 보고 찬성한 것이 아니라, 다소 나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서 내가 개정한 일까지 있소.” 그러므로 문면대로만 본다면 ‘개정’은 명백하다. 아니, 최남선의 독립선언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용운이 공약삼장을 추가했다는 설정은 너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심문조서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용운은 위에서 보듯 2월 24일경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초안을 보고 “선언서에 기재된 것은 내 생각대로 쓰고 있었으나 윌슨에게 보내는 건 너무 탄원적이라 나는 동의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는 곳에는 연필로 정정했으나, 이미 상하이의 현순(1880~1968)에게 보낸 뒤라 부동의를 주장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뿐인가. 최린은 “선언서 기타 서면은 최남선이 기초한 것을 그대가 받아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에게 보여주고 찬동을 얻었으며, 이를 함태영에게 교부하여 기독교측 유지들의 동의를 얻은 다음 불교측의 한용운도 이의가 없다고 하므로 천도교측 15인, 기독교측 16인, 불교측 2인 도합 33인이 각각 서명하고 기타 서면에도 33인이 서명 날컀했다고 하는 것인데 틀림없는가?”라는 재판장 쓰카하라 도모타로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따라서 한용운이 말한 ‘내가 개정한 일’이란 연필로 수정했던 것을 가리킬 뿐 공약삼장을 추가했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2부 제1장에서 신석구를 취조하는 과정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일본검사와 판사들은 한용운에게만 공약삼장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한 시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공약삼장의 제2항이 갖고 있는 선동성을 입증하여 3.1독립운동 대표자들을 내란선동죄로 기소하기 위해 피고 전원에게 집요하게 질문하고 있다.

더구나 1920년 10월 30일 정동 특별법정에서 진행된 경성복심법원 판결공판에서 재판장 쓰카하라 도모타로는 최남선을 징역 2년 6개월에 처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피고 최남선은 스스로 붓을 잡고 앞의 피고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의 협의 결과로 이루어진 취지에 자기 의견을 더하여 해당 관헌의 허가를 얻지 않고 출판하게 되는 독립청원서의 기초에 착수했으며, 자택에서 피고 손병희 외 32명 명의의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조선민족은 독립국이며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함으로써 조선인은 그 독립을 위해 분기하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의 의사를 발표하고 맥진해야 한다.”는 뜻의 조선독립운동을 선동하여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취지의 문장을 저작하고, 2월 10일경 기초를 마치고 2월 15일경 피고 최린에게 교부했으며……

또한 3.1독립운동의 진행과정을 보면 공약삼장을 추가하여 다시 인쇄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보성사 공장장 김홍규는 33인의 이름 순서를 바꾸기 위해 이종일로부터 받은 활자조판 ― 최남선이 비밀이 누설될까봐 신문관에서 제작했다.―의 일부를 같은 활자로 고쳐서 인쇄 했을 뿐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더구나 최남선은 고등법원 예심심문에서 “이 최후의 일인이나 일각이란 전쟁에서 죽을 때의 최후의 일인 또는 일각이라는 식으로 모방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 정도로 극렬한 의미로 인심을 자극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가?”라는 구쓰 쓰네조의 질문에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번의 세계개조가 해결될 때까지 독립을 발표하라는 의사로 썼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재판자료를 집대성한 이치카와 마사아키 역시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의 초안을 채용하고 여기에 한용운이 공약삼장을 추가하여 완성했다.”고 기술하여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용운의 경우 제1부 제1장에서 보았지만, 재판장 쓰카하라 도모타로는 3년형을 선고하는 이유로 중앙학림 생도 오택언 외 수 명에게 선언서 약 3천매를 교부하여 반포했으며,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취지 연설을 하고 조선독립 만세를 불러 치안을 방해”했다고 적시했을 뿐이다.

결국 한용운의 공약삼장 추가설은 재판과정이나 심문조서에 대한 불성실한 천착은 물론이거니와 3.1독립운동 이후 한용운과 최남선이 걸었던 행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린이 “최남선은 학자로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정치에는 취미가 없기 때문에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내는 것은 재미없다고 했다.”고 증언했던 것처럼, 육당은 학자로서 너무 가혹한 시대를 만났던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이는 동기보다 결과를 중시하여 발생한 환원론적 오류 또는 한용운에 대한 우호적 관심이 빚어낸 감정론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근왕파 승려와 자신을 비교하며 지사를 자임한다고 했다가 일본판사 앞에서 부인하고, 심문과정에서 자치론적 발상을 보여주었으며, 공약삼장을 추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한용운의 위대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회원리뷰 (1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1명의 YES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리뷰 총점10.0/ 10.0
내용 내용 점수 편집/디자인 편집/디자인 점수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100% (1건)
5점
0% (0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편집/디자인
100% (1건)
5점
0% (0건)
4점
0% (0건)
3점
0% (0건)
2점
0% (0건)
1점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한광일 privacy@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친절상담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상품정보 문의 bookinfo@yes24.com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