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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The Beatles,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George Martin, 브라이언 엡스타인, 데릭 테일러 저 외 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오픈하우스 | 2010년 12월 10일 | 원제 : The Beatles Anthology 리뷰 총점9.5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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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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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0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2,915g | 260*348*30mm
ISBN13 9788993824445
ISBN10 899382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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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7명)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 < 1부 세계정복을 향한 혹독한 고행 > 비틀스에 대한 오해가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있다. 그들이 최고의 곡조를 선보였을지 몰라도 연주력과 가창력은 제1이 아니라고. 기타 연주를 에릭 클랩튼과 비교하고 노래를 프랭크 시내트라와 비교하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것은 록을, 대중음악을 테크닉과 기능주의 관점으로만 들이대는데서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의 중심은 결코 연주나 작곡에 있어서 천부적 재주에 위치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자세와 조화를 향한 열정,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자연적 ‘감성’에 무게가 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음악은 감성이 지성을 만든다. 비틀스가 그런 그룹이다. 비틀스는 바로 피와 땀으로 세계정복의 열매와 천재라는 칭송을 획득했다. 그들의 성공은 천재성 아닌 가혹한 고행의 결과물이다. 천재성도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것이다. 결코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존 레논과 폴이 만난 게 1957년이고 존이 ‘Hey little girl’을 쓴 게 1958년이며 가장 멋진 밴드명인 비틀스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1960년이다.

그들은 1964년 세계를 휘몰아치기 전 최소 4-5년 밑바닥생활을 했다. 이 점에서 비틀스는 그들이 꽃을 피운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호시절을 타고 졸속으로 결성된 다른 그룹들과는 종이 달랐다. 그들은 그동안 무수한 오디션 실패와 해외 투어로 연주력을 다졌으며 오로지 세계정복이란 목표를 위해 눈물과 배고픔을 삼켰다. 정말 그들 말대로 손이 아프도록 기타를 쳤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다. 리버풀 캐번과 저 멀리 독일 함부르크 클럽을 왕래하며 연주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구촌 석권을 위한 숨가쁜 열정이자 가혹한 훈련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리버풀에서 길러졌지만 함부르크에서 성장했다”는 존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영화 < 백비트 >에 잘 묘사되었듯 그들은 이곳 클럽무대에서 댄서들 뒤에서 반주를 했고 비좁은 단칸방에서 집단 기식했다. 그들은 그러면서 당시 서구권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열심히도 챙겼다. 모르는 게 없었다. 1950년대 블루스와 로커빌리, 모타운 R&B, 틴 팬 앨리 팝, 라틴 음악 등 갖가지 계열의 곡들을 골라 커버 연주했다. 아이슬리 브라더스 ‘Twist and shout’, 스모키 로빈슨 ‘You really got a hold on me’, 캐롤 킹 ‘Chains’, 리틀 리처드 ‘Long tall Sally’, 척 베리 ‘Rock and roll music’ 등이 그 파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흡수해 자신들의 독창적 스타일로 빚어낼 줄 알았다. 거기서 ‘Love me do’가 ‘From me to you’가 ‘A hard day’s night’가 ‘I feel fine’’이 나왔다. 스펀지 같은 흡수력이 길러낸 창조성, 이를테면 노력에 의해 축적된 내공의 폭발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남들 곡의 템포와 볼륨을 업그레이드했고 그 작업을 통해 이후 그들만의 코드 진행감각 즉 독자적 화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비평가 그렉 쇼(Greg Shaw)는 말한다. “비틀스는 단지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초의 그리고 첫째가는 로큰롤 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음악에 대한 지식과 헌신이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감성에서 지성으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환상적 퓨전! 비틀스의 이 무명시절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나온 앨범 < The Beatles 1 >에서 초기 곡인 ‘Love me do’에서 ‘Help!’까지는 이 출발 이전의 워밍업 시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실상 비틀스 초기 작품은 이 준비기를 떼어놓고는 논할 수도 없다. 하긴 연습 없이 실전을 잘 치른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비틀스는 나중 실전을 연습처럼 해야한다는 진리도 잊지 않았다. 제2부 < 지구촌 전체를 손에 넣다 > 1964년 2월7일 영국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비틀매니아’의 시작. 그것은 이후 음악의 중심이 ‘젊은이들’과 ‘대중음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했다. 어른과 고전음악은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야 했다.

비틀스가 먼저 1963년 영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광풍은 당시 내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성추문 이른바 ‘프로퓨모 스캔들’도 잠재워버렸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정치 판에 관심을 깡그리 잊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온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비틀스가 오자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비틀스는 이처럼 정치 사회적 회오리마저 제압하는 엄청난 팝 폭발(pop explosion)현상이었다. 비틀스 초기 음악은 한마디로 경쾌한 로큰롤이었다. 1950년대 미국 로큰롤에 영국 특유의 셔플 리듬과 보컬 하모니를 덧입힌 스타일로, 강했으되 느낌은 밝았다. 기본 코드를 이용한 로큰롤만의 단순한 진행이었지만 1950년대의 로큰롤보다는 훨씬 템포도 빠르고 볼륨도 컸다. 본격적인 밴드중심 로큰롤의 개막이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그들처럼 기타를 치고 드럼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틀매니아 시대의 음악은 이처럼 ‘로큰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영국에서 1963년 ‘From me to you’는 7주간 1위에 오르면서 당시로 볼 때는 경이적인 65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그것은 비틀스가 이후 발표한 11장의 싱글이 모두 정상에 오르는 ‘넘버원 퍼레이드’의 서막이었다. 다음 싱글 ‘She loves you’는 선(先)주문만도 31만장에 달하면서 영국에서만 160만장이 팔려나갔다. 이 기록은 폴 매카트니의 1977년 ‘Mull of kintyre’에 의해 깨질 때까지 무려 14년 간 ‘영국 최고판매의 싱글’ 타이틀을 지켰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I want to hold your hand’는 ‘She loves you’로부터 1위 자리를 승계하며 선주문 94만장에 총 15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들의 꿈이던 미국정복을 이룩해낸 곡도 바로 이 노래였다. 이 곡은 전미차트 7주간 정상을 차지했다.

1964년 미국에서 ‘Can’t buy me love’는 판매 신기원을 이룩했다. 선주문 170만장에 발매와 동시에 모두 200만장이 팔려나간 것이다(영국에서도 첫 주 122만6천장). 굳이 판매고를 거듭 언급하는 것은 비틀스광풍을 설명하기에 그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공할 행진은 직접 출연한 영화의 주제곡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두 번째 영화에 삽입된 ‘Ticket to ride’ ‘Help!’로 이어진다. 이 때까지 넘버원 싱글 가운데 느린 곡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들은 당시 세대와 호흡하는 로큰롤의 대중성을 신뢰했다. ‘Help!’ 만해도 존 레논은 "원래 느린 곡조로 썼으나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빠르게 불렀다"고 밝혔다. 그 속도감을 갖춘 로큰롤에 소녀들을 미치게 한 곡 중간의 함성 ‘yeah yeah yeah’(비틀스 시대의 상징어가 됐다)으로 그들은 영국의 침공을 견인하며 지구촌을 손아귀에 넣은 것이다. 성공하기 전 그들이 주로 커버했던 곡을 골라 녹음한 폴 매카트니의 1999년 앨범 < Run Devil Run >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I got stung’를 부른 경위에 대한 폴의 설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엘비스 레퍼토리는 아니었으나 인트로가 맘에 들었고 난 엘비스보다 조금은 더 난폭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터뜨리고 질러대는 로큰롤을 가지고 그들은 마침내 ‘최강의 로큰롤밴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비틀스는 더 나아가 ‘최강의 팝 밴드’가 되고자 했다. 그 비상을 알리듯 1965년 가을 때마침 현악 반주의 ‘Yesterday’가 나왔다. 제3부 < 거리의 록을 전당의 예술로 >(중기 비틀스) 엄밀히 말해서 로큰롤은 거리의 젊은이들 음악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그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은 어른들이 듣는 이전의 스윙 재즈와 스탠더드 팝 발라드와 완전히 ‘분리와 독립’의 선을 그었다.

비틀스도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인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버디 할리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로큰롤(전에 지적한 듯 좀 더 강하긴 했지만)을 구사했다. 초기에 그들은 기타로 곡을 썼고 그래서 그 때의 곡들은 업 비트의 장조계열 곡들이었다. 그러나 ‘제5의 비틀’이라는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나면서, 그로부터 피아노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들은 느린 단조계열의 발라드 팝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의 록은 완전히 근사한 전당의 예술로 ‘신분상승’했다. 그것을 상징하는 곡이 ‘Yesterday’ ‘Eleanor Rigby’ 그리고 앨범 < Rubber Soul > < Revolver >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였다. 또 하나의 변화는 가사였다. 이전의 그들의 신나는 로큰롤에 담긴 노랫말이라곤 고작 젊은 남녀의 풋사랑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내용이 주종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포크와 통기타의 영웅 밥 딜런(Bob Dylan)을 경험하면서 그들은 가사의 중력을 절감했다. 특히 존 레논에게 이 부분의 충격은 절대적이었다. 갑자기 비틀스 노래는 사랑타령에서 ‘사색과 인생’으로 바뀌어갔다. 중기의 대표적인 노래들인 ‘Girl’ ‘In my life’ ‘Eleanor Rigby’는 이전 노래와는 확실히 깊이가 달랐다. 비틀스는 싱글 중심이 아닌 앨범 중심으로 음악작업의 축을 전환했다. 곡도 커버 버전은 완전히 걷어치우고 철저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콤비(더러 조지 해리슨)의 자작으로 앨범을 채우기 시작했다. 평자들이나 대중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비틀스의 최고 명반으로 중기작품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런 저간의 상황이 있다. 물론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도 우수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영국인들 2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권위 있는 ‘버진 올 타임 톱 1000 앨범’ 여론조사가 말해준다. 이 리서치에서 < Revolver >가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 Sgt. Pepper’s.. >는 3위, < Rubber Soul >은 34위에 올랐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 미국 문화계 인사들과 히피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간 싸이키델릭(psychedelic) 풍향이다. 환각과 약물로 이미지화된 이 흐름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기를 들고 문화적 대안(代案)을 찾고자 한 일종의 ‘문화운동’이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의식확장을 위해 약물 LSD를 실험했고 동양종교를 탐색했고 갖가지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적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평화’였다. 버진 조사에서 1등을 뺏겼지만 여전히 팝 역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1967년 앨범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는 바로 싸이키델릭과 히피의 ‘안티’ 성향을 농축해낸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다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타임에 커버로 두 번 등장한 대중가수는 비틀스밖에 없다). < The Beatles 1 > 앨범은 넘버원 곡들만 수록해 싱글을 내지 않은 이 앨범의 레퍼토리들이 수록되어있지 않지만 대신 ‘Yellow submarine’ ‘All you need is love’로 그 메시지와 분위기를 희미하게 맛볼 수 있다. 중기의 포크와 싸이키델릭 시대를 통해 비틀스는 ‘자기 음악중심’을 확립했다.

단순한 성공공식으로 일관하면서 실험을 배제하는 여타 그룹들과는 달랐다. 초기에 그토록 흔하던 히트싱글 발표도 가급적 자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음악의, 소위 얼터너티브를 찾아 실험하고 탐구했다. 오늘날에도 비틀스가 최강의 그룹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이 시기의 ‘음악혁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비틀스의 이러한 성과의 뒷면에는 그룹의 결속력의 약화라는 음지가 존재했다. 4인 각자의 개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서적으로 하나의 그룹 아닌 ‘존 폴 조지 링고’로 흩어지면서 비틀스는 말기를 맞는다. 물론 그러면서도 그들은 명반 생산을 게을리 하지는 않지만.. 제4부 < 미래의 기약-4분의 4는 역시 하나! >(말기 비틀스) 1968년 자신들의 음반사 애플(Apple)을 설립했을 때, 그리고 애플의 첫 싱글 ‘Hey Jude’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때 비틀스의 웅대한 새 출발은 이상하게도 그룹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졌다. 비틀스라는 우산 아래 뭉쳤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독자 영역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그룹을 대표하던 존은 비틀스 아닌 필생의 동반자 오노 요코와의 관계에 빠져 들어갔으며, 폴은 그룹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넷 가운데 단연 최강자로, 실세로 솟아났다.

존과 폴 간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이러한 ‘헤쳐’ 상황은 비틀스를 ‘존과 폴의 그룹’에서 ‘폴의 그룹’으로 재편했다. 조지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액센트를 두기 시작했고 곡을 쓰지 못했던 링고도 마침내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과 같은 곡을 써내면서 자신감을 획득했다. 애플사에서 낸 첫 앨범 < 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는 불가피하게 ‘한지붕 네가족’의 앨범이 되어 나왔다. 자신이 쓴 곡을 녹음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룹동료가 아니라 거의 세션 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비틀스의 재정문제를 관장하는 사업고문 발탁을 놓고 존 조지 링고와 폴 간의 입장차이가 불거지면서 멤버들간의 갈등도 노출되었다. 존과 폴은 모든 면에서 가령 예를 들면 결혼날짜와 장소와 같은 문제에서도 사사건건 경쟁적 심리전을 전개했다. 말기에서 비틀스가 차지한 차트 넘버원 곡들은 존의 ‘The ballad of John & Yoko’ ‘Come together’, 조지의 ‘Something’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폴이 주도적으로 쓴 곡이었다. 폴의 작곡 감각은 이후에도 접하기 어려울 만큼 이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해산 직전에 나온 ‘Let it be’나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드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 곡들은 비틀스 작품이기보다는 폴의 솔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폴의 천재성은 말기의 앨범 < The White Album > < Abbey Road >에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굳이 싱글이 아니었어도 전자의 ‘Obladi oblada’ ‘Martha my dear’ ‘I will’, 후자에서는 ‘You never give your money’ ‘Golden slumber’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등 그가 주조한 곡들은 어떤 싱글보다도 사랑을 받았다.

기습적인 비틀스 해산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폴이었다. 전설의 4인들은 해산 후에도 각각의 길을 걸으면서 누구 할 것 없이 1970년대의 어떤 싱어 송 라이터나 팝 스타들보다 굵직한 행보를 보였다. 네 사람 모두 차트 넘버원 곡을 기록했다. 그룹 출신으로 솔로활동에서 멤버 모두가 1위 곡을 가진 그룹은 비틀스밖에 없고 이는 앞으로도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윙스(Wings)라는 그룹을 만든 폴의 히트행진은 비틀스 업적을 거의 재현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존 폴 조지 링고를 아무리 개별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비틀스라는 집합으로 기억한다. 말기 이후가 ‘4분의 4’이었을지언정 대중의 뇌리에는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영원히 하나임은 비틀스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깨고 1995년 폴 조지 링고가 투합해 존의 노래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다시금 입증되었다. 여기서 링고 스타의 비틀스론(論)을 들어보자. "우린 신비로웠고 그것은 텔레파시였다. 우리가 녹음실에서 작업했을 때…그걸 묘사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린 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언제나 동시에 움직였다." 신기하게도 비틀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 묻히지 않고 갈수록 위대성과 가치가 증대한다. 미국 브라질 쿠바 일본 그리고 한국을 가리지 않고 < The Beatles 1 >가 전 세계적으로 판매열풍을 일으키고있다는 사실은 뉴 밀레니엄 첫 스타가 비틀스라는 것을 말해준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1960년과 2000년 사이의 40년 세월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비틀스는 언제나 있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불로(不老) 불사(不死) 불패(不敗)의 그룹이다.
존 레논의 학교 동창으로 비틀즈 활동 초기 2년 동안 팀에서 베이스를 맡았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팀을 떠났지만 21세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존 레논의 학교 동창으로 비틀즈 활동 초기 2년 동안 팀에서 베이스를 맡았다. 미술가가 되기 위해 팀을 떠났지만 21세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저 : George Martin (조지 마틴,Ray Cathode)
세계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바꾼 비틀스의 앨범 대부분을 프로듀스한 인물로 역사에 우뚝 서있는 조지 마틴은 가장 성공한 음악 프로듀서로 꼽힌다. 그의 찬란한 위상은 ‘다섯 번째 비틀’이라는 별칭이 말해준다. 비틀스 곡을 포함해 지금까지 프로듀스한 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이 무려 23곡으로, 사상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위인 비지스의 배리 깁은 14곡). 192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음악적인 가정환... 세계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바꾼 비틀스의 앨범 대부분을 프로듀스한 인물로 역사에 우뚝 서있는 조지 마틴은 가장 성공한 음악 프로듀서로 꼽힌다. 그의 찬란한 위상은 ‘다섯 번째 비틀’이라는 별칭이 말해준다. 비틀스 곡을 포함해 지금까지 프로듀스한 곡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이 무려 23곡으로, 사상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위인 비지스의 배리 깁은 14곡). 192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음악적인 가정환경은 되지 못했으나 8살에 피아노를 독학하고 이후 길드홀(Guildhall) 음악학교에서 오보에와 작곡을 전공한 뒤 1950년 가을, 팔로폰(Parlophone) 레코드 오스카 프루스 사장의 조수로 음악계에 진출했다.

1950년대 중반 그는 팔로폰 레코드사 사장이 된다. 여기서 그는 재즈, 카바레, 스코틀랜드 댄스음악, 스키플 그리고 마트 먼로(Matt Monroe)로 대표되는 발라드 등 다채로운 레코드 발매를 통해 장르 경험을 확대했다. 초기 팔로폰에 소속된 비틀스가 훗날 단지 록에 머물지 않고 다층(多層)화된 지평을 펼치게 된 것은 이 시절에 다양한 감성을 축적한 조지 마틴이 크게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비틀스 음악에 재즈, 클래식, 현대음악 그리고 영화 스코어의 요소를 풍부하게 불어넣었다. 비틀스로 인해 록 프로듀서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터전은 의외로 코미디였다. 당대 유명한 코미디언 피트 셀러즈(Pete Sellers)가 취입한 음악은 대부분 조지 마틴이 프로듀스한 것들이었다. 초기에는 비틀스와 음악적으로 약간의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Love me do’ 이후 ‘She loves you’ 대신 미치 머레이(Mitch Murray)의 ‘How do you do it’ 취입을 권했다가 반대에 부딪친 것이 그 일례. 비틀스의 드러머가 피트 베스트에서 갑자기 링고 스타로 바뀐 것도 조지 마틴이 워낙 피트 베스트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틀스의 앨범과 싱글이 발표하는 것들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1960년대 중반에는 비틀스의 우산 아래 있었던 제리 앤 더 페이스메이커스(Gerry & The Pacemakers)의 ‘Ferry across the Mersey’와 빌리 제이 크래머(Billy J Kramer)의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비틀스가 활동했던 리버풀의 캐번 클럽에서 일했던 여성 실라 블랙(Cilla Black)의 ‘Anyone who had a heart’ ‘Alfie’ 등의 프로듀스도 맡았다.

주 종목 가운데 하나인 영화음악 분야에서도 007 제임스 본드 영화 < From Russia with Love >(1963년)와 < Goldfinger >(1964년) 등 무수한 사운드트랙으로 족적을 남겼다. 상기한 영화의 주제가인 마트 먼로와 셜리 베시(Shirley Bassey)의 노래는 빅 히트를 기록했다. 비틀스 프로듀서의 인연이 작용해 1977년 과거 라이브 실황 < At The Hollywood Bowl >과 영화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의 음악 프로듀스를 맡았지만 음악적인 이유로 내심 그 작업을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틀스 멤버들이 갈라선 후에 링고 스타와 가장 먼저 제휴해 1970년 링고 스타의 명작 < Sentimental Journey >를 꾸려냈다. 누구보다도 코드가 일치했던 폴 매카트니와는 1973년 역시 본드 영화 < Live And Let Die >로 재결합한 것을 계기로 나중 ‘Ebony and ivory’가 수록된 < Tug Of War >(1982년)과 (1983년)에서 호흡을 맞췄다. 1997년 < Flaming Pie > 역시 두 강자가 힘을 합친 앨범이다. 비틀스 해산 후 비틀스 아닌 다른 아티스트 앨범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아메리카(America)였다. 포근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편곡의 ‘Tin man’과 ‘Lonely people’이 수록된 그들의 앨범 < Holiday >(1974년), 전미 차트 정상을 차지한 ‘Sister golden hair’와 ‘Daisy Jane’이 담긴 < Hearts >(1975년)는 바로 조지 마틴의 빼어난 프로듀싱 솜씨가 가져온 산물이다.

위대한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의 1975년 앨범 < Blow By Blow >와 이듬해 < Wired >에 재즈 빛깔이 감도는 것 또한 그의 프로듀싱 덕분이었다. 두 앨범은 지금도 제프 벡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비틀스 해산 이후 모든 앨범이 그의 손을 거쳤다. 1990년대 중반 선풍적이었던 < Anthology > 시리즈 1, 2, 3 편 그리고 1999년의 < Yellow Submarine >, 2003년의 < Let It Be...Naked >, 2006년의 < Love >도 비틀스의 음악을 누구보다도 잘 꿰뚫고 있는 그의 몫이었다. 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 Love > 앨범의 경우는 광고음악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그의 아들 자일스(Giles)와 함께 작업했다. 1996년 영국 왕실로부터 명예훈장과 함께 작위(Sir)를 하사받았고, 1977년에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에 부친 엘튼 존(Elton John)의 ‘Candle in the wind ’97’를 프로듀스하면서 영국 대중음악 사상 최고판매를 기록, 고희를 넘겨서도 하이라이트를 누렸다. 1999년에는 그가 스스로 곡을 골랐지만 후배 아티스트들의 경배가 담긴 앨범 < In My Life >이 나왔다. 2001년에는 그가 프로듀스한 곡을 집대성한 여섯 장짜리 CD < Produced By George Martin >가 EMI를 통해 발매되었고 2006년 < Love >의 발매 시점에 이것을 한 장으로 축소한 앨범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비틀즈 역사상 최초의 매니저이자 최고의 살림꾼. 매니지먼트 회사 경영자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비틀즈 역사상 최초의 매니저이자 최고의 살림꾼. 매니지먼트 회사 경영자로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지역 기자 출신으로 비틀즈의 언론 홍보를 담당했다. 애플사의 홍보관으로 활약하면서 레논 부부의 평화 캠페인을 홍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 기자 출신으로 비틀즈의 언론 홍보를 담당했다. 애플사의 홍보관으로 활약하면서 레논 부부의 평화 캠페인을 홍보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3년부터 해산 시까지 비틀즈의 로드 매니저로 활약했다. 경우에 따라 팀의 녹음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물론 배드핑거를 애플사로 영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3년부터 해산 시까지 비틀즈의 로드 매니저로 활약했다. 경우에 따라 팀의 녹음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물론 배드핑거를 애플사로 영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틀즈 활동 초기부터 로드 매니저로 일했으며 맬 에반스가 고용된 후로는 개인 비서 업무에 치중했다. 한동안 애플사의 경영을 감독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비틀즈 활동 초기부터 로드 매니저로 일했으며 맬 에반스가 고용된 후로는 개인 비서 업무에 치중했다. 한동안 애플사의 경영을 감독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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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비틀즈가 직접 이야기하는 그룹 비틀즈

『비틀즈 앤솔로지』는 비틀즈 멤버들이 직접 이야기한 그룹 비틀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인터뷰 당시 생존 멤버들과 관계자들은 비틀즈 활동 당시에 대한 증언을 아끼지 않았고, 이미 고인이 된 존 레논은 기존의 인터뷰 자료를 통하여 환생했다. 각 멤버들의 유년기부터 팀의 결성과 해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쫓아 유려하게 펼쳐진다. 당사자들이 입을 모아 완성된 자서전으로서 『비틀즈 앤솔로지』는 그 동안 네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의문들을 말끔히 해소시켜 준다.

20세기가 낳은 세계 최고의 밴드 비틀즈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이들 네 사람이 모이면 영국의 자랑이자 세계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그룹 비틀즈가 완성된다. 비틀즈는 거대하다. 이들의 활동기간이 대략 10년에 불과하고 팀이 해체한지도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비틀즈라는 이름의 세 글자는 음악 팬들은 물론 세계인의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비틀즈가 있어서 대중은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네 멤버가 만든 주옥같은 명곡들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른다. 지금까지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곡이 스무 곡이나 되고, 전 세계 총 음반 판매량이 10억을 넘는다는 사실만 봐도 비틀즈의 엄청난 인지도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물론 비틀즈의 기본적인 진가는 음악 자체에서 발견된다. 단순한 로큰롤 밴드로 활동을 시작한 비틀즈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음악에 미적인 요소를 더했고, 그들의 실험성은 언제나 새로운 결과를 낳았다. 비틀즈의 음악에서 팝, 록, 소울, 발라드 등 여러 가지 장르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음악의 대강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는 바로 비틀즈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틀즈가 남긴 작품들은 좋은 대중음악의 표본으로 자리했고, 그룹 안팎으로 전개된 멤버들의 개인 활동 역시 1960, 70년대의 문화, 사회, 정치 분야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야말로 비틀즈는 대중음악의 중심이자 대중문화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20세기 주요 인물 100선 중에 비틀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네 멤버들의 괄목할 만한 활약 덕분이 아닐까.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의 아성을 위협한 대중음악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2000년 가을, 비틀매니아들이 경험한 기적 같은 순간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0년 11월, 새천년을 맞아 비틀즈의 새로운 컴필레이션 음반 「1」이 발매되었다. 비틀즈의 영미차트 1위곡들이 담긴 이 음반에 전 세계의 음악팬들이 반색했고, 비틀즈는 순식간에 아이돌 가수에 맘먹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결국베스트 음반 「1」은 30여 개국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것은 물론 그 후 10년간 총 3천만 장이 넘는 경의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 달 전, 비틀매니아들에게는 더욱 뜻 깊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틀즈 앤솔로지』의 출간이었다. 물론 비틀즈가 탄생한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비틀즈 관련 서적은 수도 없이 쏟아졌다. 비틀즈 평전, 가사집, 악보집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비틀즈 멤버들이 언술한 내용을 그대로 담아서 구성한 책, 그야말로 자서전의 성격을 띤 비틀즈 책은 『비틀즈 앤솔로지』가 당시로선 처음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틀즈 이야기가 낳은 최고의 출판 미학

『비틀즈 앤솔로지』는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인터뷰 당시 살아 있었던 멤버들은 물론 조지 마틴, 데릭 테일러, 닐 애스피널 등 비틀즈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두루 담고 있다. 이미 사자(死者)가 된 존 레논 역시 기존의 인터뷰 자료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존 레논의 미망인인 오노 요코와 비틀즈의 생존 멤버들이 TV·비디오 시리즈로 나왔던 ‘The Beatles Anthology’의 스크립트 사용을 허락하면서 『비틀즈 앤솔로지』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획기적인 기획만큼이나 구성 역시 뛰어나다. 고급 미술 작품집에 버금가는 하드커버 초대형 판형에 글과 함께 실린 1천 3백여 장의 사진들은 이 책의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말해준다. 글과 이미지의 감각적인 지면 배치 또한 독자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야기는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틀즈 멤버들이 개별적으로 소개하는 ‘비틀즈 이전의 삶’을 지나면 1960년부터 1970년까지 이어진 그룹 비틀즈의 음악 여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함부르크에서의 무명 생활, 브리티시 인베이전, 「Sgt. Pepper」의 완성, 옥상 공연 등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순간들이 숨 가쁘게 꼬리를 문다. 이러한 비틀즈의 역사는 당시를 기록한 사진들과 맞물려 독자들에풰 생생하게 전달된다.

대한민국 비틀매니아의 절대적 염원, 그리고 10년의 기다림

2000년 당시 『비틀즈 앤솔로지』는 35개국에서 출간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중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지금까지 국내의 여러 출판사에서 『비틀즈 앤솔로지』를 번역·출간하기 위해 애썼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결국 이 책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데엔 10년이라는 긴 시간 필요했다. 계약 과정에만 1년이 걸렸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다루기 위해 번역 작업에는 13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번역자가 많았던 만큼 텍스트에 따라 여러 가지 번역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경우에는 번역자와 편집자 간의 의견조율에 따라 최종 번역을 결정했다. 국내 작업의 마지막 날까지 번역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다.
이제 한국어는 『비틀즈 앤솔로지』가 보유한 13번째 언어가 되었다. 원서 출간 10년 만에 공식 출간되는『비틀즈 앤솔로지』 한국어판은 원서의 빼어난 사양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이 책을 최초로 출간했던 미국 크로니클 사가 최종 편집과 인쇄를 담당하여 원서의 느낌을 한국어판에도 그대로 담았다. 『비틀즈 앤솔로지』 한국어판은 10년의 기다림을 한국 음악팬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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