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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시리즈
CD

여유 6집 -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음악 42곡

Ennio Morricone 작곡/Vince Giordano, Conal Fowkes, Il Divo, Il Volo 노래 외 4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7년 08월 11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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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17년 08월 11일
시간, 무게, 크기 220g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확인 중
인증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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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의 이벤트 (1개)

음반소개

디스크

Disc1
  • 01 Manhattan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 Vince Giordano & The Nighthawks
  • 02 This Can't Be Love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 - Conal Fowkes
  • 03 1984 CD 최초 발매 - Chris Botti
  • 04 Sunday Morning - Fourplay
  • 05 Night Rain - Jim Brickman
  • 06 The Wedding Song - Kenny G
  • 07 May It Be [영화 '반지의 제왕'] - 2Cellos
  • 08 Gladiator Rhapsody (From "Gladiator") [영화 '글래디에이터'] - Lang Lang
  • 09 A Piano String in Es Dur (Es Durのピアノ線) (Es Dur의 피아노 선) - X JAPAN
  • 10 Serenade, D. 957, No. 4 (Schubert: Schwanengesang) (슈베르트: 세레나데 연가곡 백조의 노래 中) - Joshua Bell
  • 11 Ave Maria (Bach) (바흐: 아베 마리아) - Yo-Yo Ma, Kathryn Stott
  • 12 Toccata (Khachaturian) (하차투리안: 토카타) - Xavier De Maistre
  • 13 Comptine D'un Autre ete: L'apres-Midi (Yann Tiersen) [영화 '아멜리에'] - Lavinia Meijer
  • 14 Moscow Nights (모스크바의 밤) - Jozsef Lendvay
  • 15 Tres Lindas Cubanas (세 명의 아름다운 쿠바 여인) -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
  • 16 Kitto Mata Itsuka (きっとまたいつか) (분명 다시 언젠가) - Depapepe
  • 17 Beautiful Days [애니메이션 '은혼' 오프닝 테마] - Gontiti
  • 18 Nostalgia - Kotaro Oshio
  • 19 It's Never Too Late - Tommy Emmanuel
  • 20 Irlandaise (Claude Bolling) (클로드 볼링 곡) - James Galway
  • 21 On Earth As It Is In Heaven (From `The Mission`) [영화 '미션'] - Ennio Morricone
Disc2
  • 01 Musica ['팬텀싱어' 무대곡] - Il Divo
  • 02 Grande Amore ['팬텀싱어' 무대곡] - Il Volo
  • 03 Cathedrals - Ramin Karimloo
  • 04 Somewhere Out There [애니메이션 '피블의 모험'] - Susan Boyle and Michael Bolton
  • 05 Say Something ['월드비전' 광고 삽입곡] - A Great Big World
  • 06 Now We Are Free (From "Gladiator") [영화 '글래디에이터'] - Leona Lewis
  • 07 Beautiful Thing - Grace VanderWaal
  • 08 Apocalypse - Jackie Evancho
  • 09 Por Ti Sere (You Raise Me Up) [시크릿 가든, 웨스트라이프 곡] - Paul Potts
  • 10 I Dreamed A Dream [영화 '레미제라블'] - Collabro
  • 11 Il Libro Dell` Amore ['팬텀싱어' 무대곡] - Jonas Kaufmann
  • 12 Yesterday [비틀즈 원곡] - Placido Domingo
  • 13 Imagine [존 레논 원곡] - Pentatonix
  • 14 Dark Cloud - Kat Edmonson
  • 15 If I Had You - Stacey Kent
  • 16 Doxy - Branford Marsalis Quartet & Kurt Elling
  • 17 Same Kind Of Crazy - Bria Skonberg
  • 18 Cafe De Flore [드라마 '소울메이트' 삽입곡] - Silje Nergaard
  • 19 On Ne Change Pas [영화 '마미'] - Celine Dion
  • 20 Les Yeux Ouverts [영화 '프렌치 키스'] - Enzo Enzo
  • 21 Clair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삽입곡] - Laurent Voulzy

아티스트 소개 (46명)

작곡 : Ennio Morricone (엔니오 모리코네)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11월 10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항상 손을 놓지 않았던 절대 음악부터 표제음악까지 넓은 영역에서 창작활동을 펼치며 오케스트라 편곡가이자 야외 공연장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연극, 라디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1946년 트럼펫 전공으로 졸업, 1947년 영화 음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후 1953년에 처음으로 라디오 시리즈의 편곡을 담당했다. 1954년에는 ... 엔니오 모리꼬네는 1928년 11월 10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항상 손을 놓지 않았던 절대 음악부터 표제음악까지 넓은 영역에서 창작활동을 펼치며 오케스트라 편곡가이자 야외 공연장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연극, 라디오, 영화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1946년 트럼펫 전공으로 졸업, 1947년 영화 음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후 1953년에 처음으로 라디오 시리즈의 편곡을 담당했다. 1954년에는 예술학교에서 작곡학위를 받았다. 1958년 이탈리아 국영 TV방송사인 RAI에서 음향 담당 차장 자리를 얻었으나 출근 첫날 사직했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시작한 작품은 루치아노 살세(Luciano Salce)의 1961년 작, 서기(Il Federale)지만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시작한 건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인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건맨2(1966),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 석양의 갱들(1971)을 거치면서다.

그는 1965년 누오바 콘소난차 (Nuova Consonanza)에 합류했으며, 동료 작곡가들과 함께 I.R.TE.M(뮤지컬을위한 연구소)를 창설하기도 했다. 1960년 이후 모리꼬네는 4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질로 폰테코르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줄리아노 몬탈도, 리나 베르트뮐러, 쥬세페 토르나토레, 브라이언 드 팔마, 로만 폴란스키, 워렌 비티, 애드리안 라인, 올리버 스톤, 마가 마가레테 폰 트로타, 헨리 베르누이, 페트로 알모소사, 로랜드 제프 같은 수많은 이탈리아 감독 및 세계적인 감독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알제리 전투, 사코 앤 반젯티 (Sacco and Vanzetti), 시네마 천국,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언터처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유턴 등이 있다. 그는 100곡이 넘는 절대 음악을 작곡했는데 대표작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1957), 에로스의 파편(1985), Rag in Frantumi(1986), 유럽을 위한칸타타(1988), 트럼펫과 타악기를 위한 UT(1991), 멀리 있는 그림자, (1997), 침묵의 소리(2002), 시실리의 파편(2002), 비어있는 영혼(2008)등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산타 세실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극장 합창단, 로마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오페라 하우스오케스트라,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ONE), 브라질 국립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라디오 독일 뮌헨 방송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불가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페인 텔레비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다. 모리꼬네는 이탈리아 및 세계 각지에서 로마 신포니에타 오케스트라와 여러 차례 콘서트를 열었으며, 함께 영화 음악 작업도 하고 있다.
노래 : Vince Giordano (빈스 지오다노)
멤버 : 카를로스 마린 (Carlos Marin), 세바스티앙 이장바르 (Sebastien Izambard),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 우르스 뷜러 (Urs Buhler) 멤버 : 카를로스 마린 (Carlos Marin), 세바스티앙 이장바르 (Sebastien Izambard), 데이비드 밀러 (David Miller), 우르스 뷜러 (Urs Buhler)
노래 : Il Volo (일 볼로 (팝페라 트리오))
멤버 : Piero Barone, Ignazio Boschetto, Gianluca Ginoble 멤버 : Piero Barone, Ignazio Boschetto, Gianluca Ginoble
이란계 캐나다인으로 록 밴드에서 활동하다 뮤지컬 배우가 된 라민 카림루는 이국적이면서도 선 굵은 외모와 독특한 음색으로 뮤지컬 계의 천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컬 제작가 캐머론 매킨토시 등 많은 뮤지컬 관계자들과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20대 후반부터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 자리를 꿰차며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이란계 캐나다인으로 록 밴드에서 활동하다 뮤지컬 배우가 된 라민 카림루는 이국적이면서도 선 굵은 외모와 독특한 음색으로 뮤지컬 계의 천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컬 제작가 캐머론 매킨토시 등 많은 뮤지컬 관계자들과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20대 후반부터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 자리를 꿰차며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2005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 역을 맡은 인연으로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특별공연'에서 '팬텀' 역을 열연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그러나 가장 천대받는 가수 이처럼 극도로 엇갈린 가수는 없다. 미국의 대중 주간지 < 피플 >은 92년 “그는 팝 음악의 창공에 독특한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며 “팬들로부터 그처럼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 동시에 음악 비평가들로부터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받는 아티스트도 드물 것이다”고 기술했다. ‘이 시대의 스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 1990년 신년 벽두에 ‘그대없이 어떻게 살아가리?(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1990년대 첫 슈퍼스타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메가톤급 히트 앨범 < 영혼의 공급자(Soul Provider) >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기록적인 판매로 대중적인 명성을 구가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철저히 외면 당했다. 평론가들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에게 호된 질책으로 일관했다. 그것은 거의 ‘두들겨 패는’ 수준이었다. 일례로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지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힐번’은 그를 가리켜 창조성 없이 악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단계에 그친다는 의미에서 ‘팝의 썰매’라고 규정짓고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이 돌파 할 수 없는 노래에 결코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틀 속에 안주하려 한다. 그와 음악과의 관계는 스티븐 시걸과 영화와의 관계나 같다” 말이 그렇지 이것은 모욕이나 매 한가지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가 평자들로부터 아티스트란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볼튼이 소울의 고전을 비롯해 흘러간 명곡을 멋들어지게 재해석해 노래해도 그들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구동성으로 “원작의 기품을 버려 놓았다”고 질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 롤링 스톤 >지의 평가였다. 이 잡지는 1993년 43명의 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 그를 ‘최악의 남자 가수’로 선정했다. 또한 빅 히트작 < 불후의 고전(Timeless, The Classics) >를 ‘최악의 앨범’으로 뽑아 미국에서만 5백만 장 이상이 팔려 나간 대중적 인기를 무색케 해 버렸다. 그가 이처럼 비평계의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물론 그의 보컬 스타일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핏줄을 솟게 하고 마치 토해 내는 듯한’ 창법을 구사한다. 4옥타브를 충분히 넘나드는 넓은 음역, 이것이 팬들에게는 환상이었지만 평론가들의 귀에는 높고 답답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창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금방 눈치챌 정도로 ‘작위적’이어서 곧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그들은 예술적 고뇌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없는 그 작위가 결국은 상업성을 노린 것임을 경계한다. 로버트 힐번이 지적하는 ‘안주적 자세’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를테면 대중적 성공에 떠밀려 아티스트적 실험 정신을 휴지화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볼튼은 < 영혼의 공급자 > 이후 앨범들인 < 시간, 사랑 그리고 부드러움(Time, Love And Tenderness) >과 < 불후의 고전 >에서 새로움을 선사하기보다는 전작의 성공패턴을 답습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옛 곡의 리메이크가 성공하자, 줄줄이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았으며 더구나 보컬 스타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변명의 여지없이 전작의 성공 재창출에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말해 팔리는 음반을 만들기 위해 모험을 가능한 배제한 채 빅히트된 음반(Soul provider)을 모델로 그 스타일을 철저히 쫓는다는 얘기다. 비평가들이 이처럼 유난히 그에게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 데는 그가 곡을 만들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평론가들은 노래만 하는 싱어일 경우 그가 대중적 호응만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에 따라 그들의 정서를 위무해 주는 팝 가수도 나름대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곡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 즉 싱어송라이터의 경우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가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에 얽매여 있을 때는 가차없이 장사꾼으로 매도해 버린다. 만약 볼튼이 단순한 싱어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그처럼 잔인한 혹평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과연 이러한 비평가들의 철저한 외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비평가들이 뭐라 떠들어도 압도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대중이라는 ‘응원군’을 내세워 여유를 잃지 않았고 앨범의 높은 판매고를 ‘비평에 견디는’(Critic-proof) 방파제로 제시하곤 했다. 사실 그의 노래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진 음악 관계자들도 적지 않다. 우선 그가 1988년 ‘만의 부두에 앉아(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를 리메이크했을 때 이 곡의 원작자인 오티스 레딩의 미망인 젤마 여사로부터 극찬을 받은 사실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볼튼에게 편지를 써서 또는 공개석상에서 그의 노래가 “지금까지 나온 남편 곡의 무수한 버전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며 “만약 지하에 있는 남편도 들었다면 흡족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볼튼의 강력한 후원자인 어머니 헬렌 볼로틴(볼튼의 본명은 Bolotin) 여사는 “내 아들이 노래하는 것을 비명을 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라며 비평계의 시각을 몰지각으로 단정한다. 그와 곡을 함께 쓰는 오랜 친구 다이안 워렌(Diane Warren)은 한편으로 볼튼에 대한 평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오히려 대중의 호응을 증폭시켰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의 주장은 “한 남자가 혹독하게 비판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게 노래할 때 여성들은 오히려 그를 사랑해 준다. 여성들은 거기서 녹아 버린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평론가들의 무차별 공격이 도리어 여성 특유의 모성본능을 자극해 그를 감싸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음악팬들은 절대 다수가 여성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처럼 비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엾은(?) 남자가-더구나 수려한 외모를 갖춘 남자가!-애절하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노래할 때 대부분이 여성들은 이성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이클 볼튼과 비평과의 대치는 곧 ‘감성적인 여성 팬들’과 ‘날카로운 평론가들’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의 측면도 가세된 셈이다. 하지만 아티스트란 어떤 형태로든 비평가들의 눈초리를 암암리에 의식하게 된다. 그는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던지 1991년 그래미 최우수 남자 팝 가수상을 받던 날 밤 기자들에게 “무례한 사람들은 내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퍼붓기도 했다. 여기서 무례한 사람들이란 마구 펜을 휘갈기는 저널리스트나 비평가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그런데 1993년 하반기에 그가 내놓은 앨범 < 한가지 >는 상당히 비평가들을 의식해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보컬의 톤도 많이 낮추고 자작곡의 비중을 높였으며 비판의 핵이었던 리메이크 남발도 자제, 옛곡은 빌 위더스의 ‘내게 기대어(Lean on me)’ 한 곡으로 대폭 줄여 버린 것이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이제까지 볼튼의 앨범 중 최고’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대가로 대중적인 음반 판매 실적은 과거에 비해 저조해 두 마리 토끼를 사냥하지는 못했다. 그의 상업성이 유달리 지적 받게 된 데는 또한 그의 ‘눈물겨운 과거’도 한 요인이 되었다. 7살 때 섹스폰을 잡고 11살에 기타를 치는 등 음악 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그의 청년기는 지극히 불우했다. 발표하는 음반마다 실패해 야간 업소 출연으로 겨우 연명해 나갈 정도였다. 1975년 레코드점 여직원인 모린(Maureen)과 결혼한 이후에도 생활은 개선되지 않아 노래 과외와 아이 돌봐주는 일, 즉 베이비시터로 집세를 충당하곤 했다(참고로 그가 봐 준 아이 중의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폴라 압둘이었다.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악연으로 발전해 1990년 마이클 볼튼의 ‘그대 없이 어떻게 살아가리?’를 1위 자리에서 끌어내린 곡이 폴라 압둘의 ‘오포지츠 어트랙트(Opposites attract)’였고 이듬해 앨범 1위를 볼튼과 바통 터치한 주인공도 폴라 압둘이었다). 그의 술회에 따르면 당시 볼튼 부부와 세 딸은 마카로니와 치즈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며 볼튼은 허구한 날 식탁에 앉아 “어떻게 집세 내고 자식을 먹여 살릴 것인가”만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터널의 끝에서도 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36세가 되어서야 성공했을 때(그는 1954년생으로 미국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 출신) 주변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스타가 된 케이스’라고 하자 “무슨 소리냐. 성공하기까지 대략 3천6백42번의 밤을 보냈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비평가들은 그가 바닥 생활을 청산하자마자 곧바로 상업적으로 치달은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럴수록 과거의 고난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작품에 구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의 성공은 사생활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 영혼의 공급자 >가 수면 위로 부상하던 1989년 아내 모린과 15년 결혼 생활을 청산하게 된 것이었다. 그 시점이 볼튼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그 무렵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필 가장 잘 나가는 때에 성공을 축하하는 전화가 걸려 오는가 하면 이혼 증언 서류에 대한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너무 아이러니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이듬해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리하여 방문하는 관계로 매듭짓긴 했지만 세 딸들 아이사(20), 홀리(18), 타린(16)과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성심 성의껏 딸들을 보호하는 자상한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들이 인정하는 가운데 1992년부터 TV배우인 니콜레트 셰리단(Nicollette Sheridan)과 건전한 연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 마이클 볼튼은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과 비평계간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이를 생각하게 한다. 앨범이 많이 팔려 나갈수록(진지함이 없을 경우) 비평가들로부터 매질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그처럼 실감나게 보여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는 성공과 함께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 스스로도 “성공하면 할수록 그것은 네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비디오 게임처럼 첫 번째 스크린을 통과하고 나면 너를 쏘려고 레이저 미사일을 단 비행접시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대가는 쓰디쓴 법이다.
노래 : A Great Big World (어 그레이트 빅 월드)
노래 : Leona Lewis (리오나 루이스)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 2006년에 방송된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 < X Factor >의 시즌 3 우승자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장점을 겸비한 21세기 형 섹시 디바다. 파워풀한 가창력은 기교를 앞세운 머라이어 캐리보다는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고 라틴 혈통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의 핏줄을 이어받은 구리 빛 피부와 뇌쇄적인 외모 그리고 파마기 있는 헤어스타일은 머라이어 캐리를 떠올린다. 시장성과 성장성을 자체 프로세스한 이 두 강점은 리오나 루이스가 빠른 시간에 비상(飛上)할 수 있는 날개였다. 1985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오나 루이스는 10대 때부터 스스로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 송라이팅 기술을 습득하면서 접수원이나 웨이트리스의 피곤한 일상을 극복해나갔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가 < X Factor >에 지원하면서 리오나 루이스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 X Factor >에서 ‘Over the rainbow’, ‘Hero’, ‘Without you’처럼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들을 불러 우승을 차지한 리오나 루이스는 곧바로 메이저 데뷔 싱글로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해 인기가도에 박차를 가했고 대세를 이어 2007년에 데뷔앨범 < Spirit >를 공개했다. ‘Apologize’를 부른 그룹 원 리퍼블릭(One Republic)의 리더 라이언 테더(Ryan Tedder)와 ‘Beautiful soul’과 ‘She's no you’로 친숙한 아이돌 가수 제시 매카트니(Jesse McCartney)가 공공으로 작곡한 ‘Bleeding love’는 20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탑 텐에 머물며 4주간 정상을 차지하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고 두 번째 싱글 ‘Better in time’도 11위에 랭크되었다. 이제 리오나 루이스는 2008년에 대중들의 시선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런던을 알리기 위해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함께 무대에 올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명곡 ‘Whole lotta love’를 불러 평생의 영광을 메모리 했으며 2008년 브릿 어워즈에서 4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고 2009년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레코드와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등 모두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노래 : Grace Vanderwaal (그레이스 반더월)
팝페라 가수 팝페라 가수
멤버 : 제이미 램버트(Jamie Lambert), 토머스 J 레드 그레이브(Thomas J Redgrave), 마이클 오거(Michael Auger), 매튜 패건(Matthew Pagan), 리차드 해드필드(Richard Hadfield) 멤버 : 제이미 램버트(Jamie Lambert), 토머스 J 레드 그레이브(Thomas J Redgrave), 마이클 오거(Michael Auger), 매튜 패건(Matthew Pagan), 리차드 해드필드(Richard Hadfield)
노래 : Jonas Kaufmann (요나스 카우프만)
성악가 (테너) 성악가 (테너)
노래 : Placido Domingo (플라시도 도밍고)
성악가 (테너) 성악가 (테너)
멤버 : 미치 그래시(Mitch Grassi), 스콧 호잉(Scott Hoying), 아비 카플랜(Avi Kaplan), 커스티 말도나도(Kirstie Maldonado), 케빈 올루졸라(Kevin Olusola) 멤버 : 미치 그래시(Mitch Grassi), 스콧 호잉(Scott Hoying), 아비 카플랜(Avi Kaplan), 커스티 말도나도(Kirstie Maldonado), 케빈 올루졸라(Kevin Olusola)
노래 : Stacey Kent (스테이시 켄트 )
재즈 보컬 재즈 보컬
노래 : Bria Skonberg (브리아 스콘버그)
트럼펫연주자, 재즈보컬 트럼펫연주자, 재즈보컬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등과 함께 1990년대 중 후반의 팝 시장을 천하 삼분했던 셀린 디온(Celine Dion)은 디바(diva)의 정점을 대표하는 여가수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머라이어 캐리에게 밀려 만년 2등 가수의 한을 삭였던 그녀는 영화 < 타이타닉 >의 테마송인 ‘My heart will go on’을 통해 단숨에 넘버원 팝 싱어의 반열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불어를 쓰는 퀘벡 지방의 작은 집에서 1968년 첫 울음보를 터트린 셀린 디온. 그녀는 합계가 무려 16명인 대식구의 막내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부모님 모두 노동자 출신이었기에 물질적으로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부모님의 우산 아래 셀린 디온의 음악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맘껏 틔웠다. 5살 때부터 부모님의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12살 때에는 ‘It was only a dream’이라는 최초의 자작곡을 썼다는 등의 후일담들이 잘 증명해준다. 오빠와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 하에 상기한 곡을 테이프화(化)했던 셀린 디온. 그녀는 그것을 매니저인 르네 앤젤릴(Rene Angelil)에게 보낸 뒤, 답변을 기다렸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허나 독촉 전화를 받고 그제서야 셀린 디온의 숨은 재능을 발견한 르네 앤젤릴은 그 날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그녀는 정식 데뷔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셀린 디온의 노래를 직접 들은 순간, 르네 앤젤릴은 그녀가 곧 인터내셔널 슈퍼 스타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1983년 15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음반 < D’Amour Ou D’Amite >을 통해 캐나다 출신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고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야마하 작곡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이후 셀린 디온의 행보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다. 또한 그녀는 그 즈음 조우했던 베테랑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의 인연 덕에 걸프 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기획 앨범 < Voices That Care >에 참여, 수많은 팝 필드의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문’뿐인 듯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우선 음악 외적인 면에서 파격적 변신을 단행했다. 팝 계의 별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만큼이나 이미지 메이킹 또한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 동시에 셀린 디온은 영국의 랭귀지 스쿨에서 언어 교육을 받으며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틴에이저에서 성숙미를 내뿜는 여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드백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1990년에 발매했던 처녀작 < Unison >(74위)이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와 4위를 기록한 ‘If there was (any other way)’와 ‘Why does my heart beat now’의 선전에 힘입어 꽤 괜찮은 성적표를 받았던 것. 허나 정작 그녀를 꼭지점으로 견인했던 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테마였던 ‘Beauty and the beast’였다. 차트 1위를 단박에 꿰찬 곡은 그녀에게 1992년 그래미의 팝 듀오/그룹 부문 트로피를 안겨주며 이후의 성공 시대를 예감케 했다. 또한 2집 앨범인 < Celine Dion >(1992)에도 수록되어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수는데 일등 공신의 역할을 해주었다. 곡 외에 다이안 워렌(Diane Warren) 작곡의 ‘If you asked me to’(4위), ‘Nothing broken but my heart’(29위), ‘Love can move mountains’(36위) 등이 팬들의 애정 공세를 한 몸에 받았다. 같은 해에 내놓았던 영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의 주제곡인 ‘When I fall in love’(23위) 역시 대박이었다. 2년 뒤인 1994년에는 셀린 디온의 인생에 있어 중대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매니저였던 르네 앤젤릴과의 결혼이 바로 그것. 1988년부터 비밀리에 연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둘은 6년 뒤인 1994년에야 그 사실을 발표하고 몬트리올의 노틀담 성당에서 결혼, 세간을 놀라움 속에 빠뜨렸다. 정확이 배가 되는 나이차도 화제거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은 덕분인지 셀린 디온의 정상을 향한 질주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간, 무려 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는 사실이 주는 양적 포만감부터가 남달랐다. 1993년의 < Colour of My Love >(4위)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제니퍼 러시(Jennifer Rush)의 곡을 리메이크한 ‘The power of love’(4주간 1위), 그리고 ‘Misled’(23위) 등의 히트 넘버들을 배출했다. 1994년과 1995년에 셀린 디온은 두 장의 불어 LP를 내놓으며 음악적 본령을 되새김질하는 기회를 가졌다.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팝 클래식인 ‘Calling you’를 수록한 < Live A L’olympia >와 장자크 골드만이 프로듀스해준 < D’eux >이었다. 특히 후자는 지금까지 800만장을 세일즈, 가장 많이 팔린 샹송 작품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절정의 순간은 단연코 1996년의 팝 마스터피스 < Falling Into You >였다.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집계된 판매량이 1100만장인 작품은 그 해 그래미에서 ‘팝 앨범’과 ‘올해의 앨범’, 두 개 부문을 석권하며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 업 클로즈 앤 퍼스널 >의 테마송이자 다이안 워렌이 써 준 ‘Because you loved me’(1위)를 위시로 팝 고전을 다시 부른 ‘All by myself’(4위), ‘It’s all coming back to me mow’(2위) 등이 차트에 핵 폭탄을 마구 투하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같은 해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블록버스터 무비 [타이타닉]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14주 연속 1위)은 더했다. 또 다시 그래미 두 개상을 차지하는 등, ‘셀린 디온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의 상황을 연출했다. 곡이 수록된 1997년의 앨범 < Let’s Talk About Love >(1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두 음반의 합산 판매고가 무려 6000만장을 상회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그녀는 실로 당대에 무적, 팝 계 최고의 디바 자리에 우뚝 섰다. 그간 참여했던 뮤지션들을 포함해 새로 가세한 조지 마틴(George Martin), 비지스(The Bee Gees), 캐롤 킹(Carole King),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등, 후자에 참여한 초특급 아티스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당시 그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셀린 디온은 크리스마스 스페셜 반인 < These Are Special Times >(1998, 2위)와 샹송 앨범 < S’il Suffisatt D’aimer >(1998)를 선보이고 베스트 컬렉션인 < All The Way: A Decade of Song >(1999, 1위)을 내놓는 등,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남편의 후두암 투병이라는 절망적 사건이 발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 비극이 종결되고 셀린 디온에게 행복이 찾아왔던 때는 2001년이었다. 체외 수정에 성공하며 그토록 소망했던 아이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편의 증세도 나날이 호전되는 등, 셀린 디온이 가정에서 본업으로 컴백할 기운이 날로 충만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무려 5년 만에 출시했던 정규작 < A New Day Has Come >은 그녀의 디스코그라피 중 최초로 발매 첫 주에 정상에 등극하며 변함없는 팬 베이스를 과시했다. 허나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전성기 시절에는 많이 못 미치는 결과를 얻고 말았다. 현재 셀린 디온은 1년 만에 신작 < One Heart >를 내놓으며 팬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003/04 배순탁(greattak@izm.co.kr) 오이뮤직 머라이어 캐리가 있고 휘트니 휴스턴이 있지만 이들 못지 않게 지난 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가수가 셀린 디온(Celine Dion)이다. 흔히들 이들을 오페라의 주역가수에서 나온 말로 최고 인기의 여가수를 의미하는 어휘인 디바(diva)로 일컫는다.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팝 음악계의 디바 시대를 이끌었다면 셀린 디온은 디바 시대의 정점에 선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셀린 디온은 같은 음반회사 소니 뮤직에 소속된 머라이어 캐리에 밀려 90년대 중반까지 만년 2등 가수였다. 하지만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곡 ‘나의 마음은 영원할 거예요(My heart will go on)’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그 동안 명실상부한 공동 1위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모두 셀린 디온의 밑으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급기야 ‘셀린 디온 격파’를 외치며 함께 듀엣 곡을 내놓는 공동 대항전선을 펴기도 했다. 근래 셀린 디온의 위풍당당한 기세를 이보다 잘 말해주는 단서도 없을 것이다. 1998년 연말호에서 영국의 잡지 ‘Q’는 소니 뮤직의 통계를 빌어 “지난 30개월 동안 셀린 디온은 매 1.2초마다 한 장의 앨범을 팔았다”고 보도했다. 96년 발표한 앨범 < 너에게 빠져 (Falling into you) >가 그때까지 세계적으로 2500만장, 97년 말에 나온 후속 앨범 < 사랑을 얘기합시다(Let`s talk about love) >가 2400만장이라는 경이적 판매고를 수립한 것을 두고 시간당 수치를 계산한 것이다. ‘1초당 한 장’의 파죽지세는 이후에도 변함없어 현재 두 앨범은 모두 3000만장을 돌파했으며 이어서 프랑스어 앨범과 히트곡 모음집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셀린 디온이 이처럼 가공할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설명이지만 가장 확실한 분석이다. 일례로 셀린 디온의 히트송 ‘이제 모두 나한테 되돌아오네요(It`s all coming back to me now)’를 들어보면 왜 때로 ‘질릴 정도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지 알게 된다. 셀린 디온은 엄청난 보컬의 파괴력이 주무기이다. 쉬지도 않고 20곡을 내리 한결같이 높은 음으로 질러대는 놀라운 힘을 보유하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여가수들과 바로 이 점에서 다르다.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무대는 정적이고 우아한데 반해서 셀린 디온의 공연은 열띠고 힘이 넘친다. 공연장은 그래서 어떤 헤비메탈 그룹의 무대 못지 않은 열광의 도가니를 연출한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감상하더라도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만끽한다. 한마디로 시원하다. 이런 에너지와 파워 말고도 그녀를 당대 톱 가수로 부상시켜준 또 하나 원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가사 해석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결코 억지로 질러대지 않는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미리 짜놓은 적은 없다. 노래 부르기란 기본적으로 첫 키스나 첫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키스나 포옹할 때 미리 리허설하는 사람이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치르는가?” 마치 실제처럼 가사의 감정을 충분히 살리되 정해진 공식대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셀린 디온은 철저히 백인 풍의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도 딴 가수와 차별화된다. 머라이어나 휘트니를 비롯해서 근래 디바들 노래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음악 즉 리듬 앤 블루스의 느낌이 녹아있다. 하지만 셀린 디온은 그러한 공통분모를 배격하고 철저히 백인 스탠더드 팝을 구사한다. 여전히 흑인음악이 친근감이 덜 한 유럽의 기성세대 음악팬들이 이 때문에 셀린 디온에게 열광한다. 캐나다 퀘벡 태생인 그녀는 캐나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가수이기도 하다. 캐나다 음반산업협회는 올해 초 셀린 디온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국내와 국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 캐나다가수라고 공식 발표했다. 1999년 말 캐나다의 음반판매고는 9백만장으로 어떤 캐나다가수보다 많았으며 해외에서는 1억1천장을 넘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근래 최고인 샤니아 트웨인과 브라이언 아담스도 그녀에게는 역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는 물론 특히 퀘벡과 같은 문화권인 프랑스도 셀린 디온을 ‘국민가수’ 또는 ‘국보급 가수’로 떠받든다. 프랑스 팬들에게 인기는 거의 절대적이어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이미 두 차례나 받았다. 셀린 디온도 이를 의식해 정기적으로 불어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셀린 디온의 지난 94년 말 결혼은 특급화제였다. 1968년 생으로 스물 여섯이던 그 해 그녀는 정확히 나이가 배인 52세의 매니저 레니 안젤리와 몬트리올 노틀담 성당에서 웨딩 마치를 거행했다. 어렵던 시절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가며 셀린의 음반작업을 주선한 매니저와 결혼하자 사람들은 사랑의 결실임을 인정하면서도 요즘 가수치고는 드물게 ‘의리형’ 인물이라고 셀린 디온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도 바쁜 스케줄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관계로 아직 레니와의 사이에 자식 소식은 없다. 남편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더욱이 사람들은 언제 그녀가 아기를 가질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다. 얼마 전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녈 인콰이어러’는 “셀린이 체외수정을 통해 현재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지만 셀린 디온 측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 신문에 대해 2천만달러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셀린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임을 웅변하는 에피소드들이다. 지난 91년 ‘지금 내 심장이 어디서 두근거리나요(Where does my heart beat now)’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은 이래 무수한 히트퍼레이드를 펼치며 그녀는 ‘90년대의 가수’로 영광의 나날들을 보냈다. 휴식 후 내후년에 신보가 나오게 되면 다시 광풍을 몰아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진형형이라 실감은 나지 않지만 분명 셀린 디온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노래 : Laurent Voulzy (로랑 불지 (보컬))
로랑 불지는 프랑스 대중음악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느림보’이다.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내놓은 정규 앨범은 다섯 장에 불과하다. 또한 가수라면 당연히 하는 콘서트도 가뭄에 콩나듯 아주 드물게 한다. 아니 거의 안한다고 보는 게 맞다. 요즘도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톱 뉴스다. 느림보를 자처한다는 것은 음악만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로랑 불지는 완벽주의자로도 유명하다. 몇 달... 로랑 불지는 프랑스 대중음악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느림보’이다.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내놓은 정규 앨범은 다섯 장에 불과하다. 또한 가수라면 당연히 하는 콘서트도 가뭄에 콩나듯 아주 드물게 한다. 아니 거의 안한다고 보는 게 맞다. 요즘도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톱 뉴스다. 느림보를 자처한다는 것은 음악만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로랑 불지는 완벽주의자로도 유명하다. 몇 달이 걸려도 노래가 마음에 들 때까지 스튜디오 밖을 나오지 않는다. 음반사와의 계약 관계, 인기에 대한 집착, 대중들의 요구로 서둘러 음반을 만들어 내는 많은 가수들과 달리, 로랑 불지는 스스로 OK할 때까지 곡들을 고치고, 예리하게 갈고 닦는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 음반의 양이 현저하게 적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탄생한 로랑 불지의 노래들은 음악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보석들이다. 30년 넘게 활동하면서 음악에만 올인하는 장인정신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로랑 불지는 어린 시절부터 비틀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비틀스의 수려한 팝 멜로디에 흠뻑 빠진 그는 1965년 영국으로 음악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967년에는 한 음악제에서 ‘Timide (수줍은)’이라는 곡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군입대를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접어야 했다. 군 제대후 로랑 불지는 르 뽀엥(Le Poing)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몇 차례 전국 투어를 다니는 등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지만, 음반을 내놓지 못하고 얼마 지나서 해체하고 말았다. 이후 로랑 불지는 모든 시간을 작곡하는데 만 쏟았고, 정성을 다해 만든 데모 테이프들을 메이저 음반사들에게 보냈다. 전달된 데모 테이프 중 하나가 < RCA > 레이블의 예술 감독에의 책상에 놓여졌고, 얼마 뒤 로랑 불지는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 1972년 첫 싱글 ‘l’Amour Est Un Oiseau (사랑은 새)’를 발표했는데 차트에서 별다른 반응도 얻지 못했고, 그 다음에 내놓은 몇 장의 싱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974년 네 살 많은 신인 가수 알랑 쑤숑(Alain Souchon)을 만나면서 로랑 불지는 음악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불지와 쑤숑은 서로 음악적 코드가 같음을 확인하고, 함께 곡 작업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공동 작업으로 그 해 말에 발표된 알랑 쑤숑의 데뷔 앨범 < J’ai 10 Ans (난 열 살이에요) >는 타이틀 곡과 ‘Bidon (통)’ 등 두 곡의 히트 싱글을 쏘아올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로랑 불지 역시 쑤숑과 함께 작업한 싱글 ‘Rockcollection’ 등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갔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의 데뷔 음반은 절친한 친구 알랑 쑤쏭이 두 장의 음반을 내는 동안에도 좀처럼 세상에 나올 기미를 안보였다. 불지는 주변의 우려섞인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스튜디오에서 나올 생각도 안하고 노래들을 손질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1979년 로랑 불지의 1집 < Le Coeur Grenadine (석류시럽같은 마음) >이 발매되었다. 음반사와 계약을 맺은 지 10년만에 나온 작품이었다. 한 곡 한 곡 마다 모든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기에 성공은 이미 예약되어있었다. 첫 싱글로 발표된 타이틀 곡은 싱글 차트 정상으로 직행했고, 두 번째 싱글 ‘Karin Redinger’ 역시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비틀스에게서 영향 받은 감미롭고 달콤한 멜로디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같은 코러스는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빠져들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명성을 얻었지만 느림보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수라면 앨범 발표와 함께 의례적으로라도 하는 각종 공연이나 콘서트도 거부했다. 곧바로 스튜디오로 들어가 음악을 친구삼아 은둔하기 시작했다. 1980년 알랑 쑤숑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노래한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4년 동안의 칩거 끝에 1983년 로랑 불지는 두 번째 앨범 < Bopper En Larmes (눈물의 바퍼) >를 내놓았고, 타이틀곡과 ‘Liebe’ 등이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후 로랑 불지의 세 번째 음반은 거의 십 년 뒤인 1992년에 나왔다. 그 사이에 로랑 불지는 자신의 최고 히트곡으로 기록되는 1985년도 싱글 ‘Belle-Ile-en-Mer Marie-Galante (바다의 아름다운 섬, 마리 갈랑뜨)’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1990년 3,000명의 프랑스 음악 산업 전문가들이 뽑은 ‘1980년대 최고의 노래’로 뽑히는 영광도 안았다. 3집 < Cache Derriere (뒤에 숨어서) > 역시 ‘Le Reve Du Pecheur (어부의 꿈)’, ‘Carib Islander’, ‘Le Pouvoir Des Fleurs (꽃들의 힘)’, ’Paradoxal Systeme (역설적인 시스템)’ 등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쏟아내며 히트제조기로서의 명성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1년 뒤인 1993년에는 팬들의 계속되는 공연 요청을 받아들여 파리에서 최초의 메이저 콘서트를 3주간에 걸쳐 성황리에 펼치기도 했다. 1994년은 로랑 불지와 오랜 친구이자 음악 동지인 알랑 쑤숑과의 연대가 더욱 확고해지는 해였다. 불지는 쑤숑의 새 음반 < C’est Deja Ca (이미 그랬어) >에 작곡 파트너로 참여해 힘을 보태줬다. 또한 아버지들간의 교류로 인해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로 지내온 불지와 쑤숑의 자식들인 줄리앙 불지(Julien voulzy)와 삐에르 쑤숑(Pierre souchon)이 그룹 레 셰르슈 미디(Les Cherche Midi)를 결성해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아버지 세대의 진한 우정과 음악적 유대가 자식 세대로도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부모, 자식간의 아름다운 동행은 이듬해인 1995년 로랑과 줄리앙 불지, 알랑과 삐에르 쑤숑 부자가 함께 에이즈로 고통받는 어린이와 그 가족들을 돕기 위한 어린이 에이즈 보호 연대(Sol En Si, Solidarit Enfants Sida)의 기금 마련을 위해 자선 음반을 발표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알랑 쑤숑과의 음악작업, 자선 활동 등을 제외하고 스튜디오에 칩거하다시피 하던 로랑 불지는 2001년 말 4집 음반 < Avril (4월) >을 십 년 만에 공개했다. 3년에 가까운 작업 기간이 걸린 작품은 로랑 불지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성과 카리브해의 시원한 바다 냄새가 담긴 리듬들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첫 싱글 ‘Une Heroine (헤로인)’, ‘La Fille d’Avril (4월의 소녀)’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5년 뒤인 지난 2006년 여름에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리메이크 작품 < La Septieme Vague (일곱번째 파도) >를 발표하며 여전히 뛰어난 음악 실력을 과시했다.
연주 : Chris Botti (크리스 보티 )
재즈 트럼펫 연주자 재즈 트럼펫 연주자
연주 : Fourplay (포플레이 (재즈 밴드))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계의 올스타(All-Star) 세션 맨 4인 방이 결집한 포 플레이(Fourplay)는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대중적인 재즈 연주음악을 표방하며 전 세계의 재즈 팬들의 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밴드 결성 이전부터 각기 활발한 솔로, 세션활동을 벌이고 있던 멤버들은 1991년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2년의 터울을 두고 꾸준한 앨범발표와 세계 투어를 통해 각자의 음...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계의 올스타(All-Star) 세션 맨 4인 방이 결집한 포 플레이(Fourplay)는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대중적인 재즈 연주음악을 표방하며 전 세계의 재즈 팬들의 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밴드 결성 이전부터 각기 활발한 솔로, 세션활동을 벌이고 있던 멤버들은 1991년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2년의 터울을 두고 꾸준한 앨범발표와 세계 투어를 통해 각자의 음악 활동과 병행하며 1980년대 토토(Toto) 이후 세션맨들로 구성된 밴드의 표상으로 군림한다. 키보드에 밥 제임스를 주축으로 기타에 리 리트너, 베이스에 나단 이스트, 드럼의 하비 메이슨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이 ’드림 밴드’은 오랫동안 재즈 퓨전계에서 잔뼈가 굳은 그들의 명성에 더해 내공이 집약된 독창적인 음악성을 선보이며 재즈 팬들은 매료시켰다. 이들이 등장했을 때 세간에선 ’앨범 2-3장 내다가 음악적 견해차로 해산될 것’이라는 다소 우려 섞인 예측도 없지 않았지만 내는 앨범마다 골드를 기록하고 그래미상 컨템포러리 재즈 부문을 수 차례 석권하며 이런 예측은 한낮 기우임을 증명했다. 1997년 개인 사정으로 팀을 탈퇴하게 된 리 리트너를 대신해 영입된 또 한 명의 세션 스타 래리 칼튼이 들어오게 된 것을 제외하고 이들은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팀 내의 이렇다할 굴곡 없이 컨템포러리 재즈 계에 굳건한 지존의 위치를 고수한다. 멤버들의 명성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밴드는 순조로운 출발을 이뤄낸다. 데뷔 앨범 < Fourplay >(1991)를 발표, ’101 Eastbound’, ’Wish you’re here’등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그 해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에 무려 33주간 1위 자리를 고수하는 대 성공을 거둔다. 앨범엔 엘 드바지, 패티 라벨, 필립 베일리와 같은 보컬리스트들이 밴드의 연주에 한층 팝 적인 색채를 입혔다. 1990년대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로 대변되는 팝 음악계의 R&B 리바이벌 열풍을 타고 포플레이는 멤버들의 깔끔하고 기량이 돋보이는 연주와 더불어 R&B 보컬 스타들의 열띤 조연에 힘입어 이들은 재즈의 영역을 뛰어넘는 폭넓은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다. 2년 후 발표된 2집 < Between the sheets >(1993) 역시 전작에 버금가는 호응을 얻으며 1집에서 들려줬던 4인방의 절묘한 연주화음을 재현시킨다. 샤카 칸, 샨테 무어, 필 페리, 필립 베일 리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 특히 샤카 칸의 보컬이 참여한 ’Between the sheet’가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등장하며 순조로운 밴드의 여정은 계속된다. 2년을 터울로 앨범을 발표한 포 플레이는 3집 < Elixir >(1995)에선 멤버들의 농익은 연주에 한층 그 무게를 실으며, 밥 제임스의 명곡 ’Westchester lady’(1976)의 주요 멜로디를 따온 ’Play lady play’와 리 리트너의 기타 연주가 압권인 ’Magic carpet ride’가 주목을 얻는다. 필 콜린스, 패티 오스틴, 피보 브라이슨과 같은 팝 가수들이 참여한 밴드의 3집에선 특히 노장 팝 아티스트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보컬 곡 ’Why can’t it wait till tomorrow’에서 들려준 그의 감미로운 보컬 연주는 앨범의 백미이다. 1997년 밴드의 전반기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의 베스트 앨범을 를 끝으로 기타리스트 리 리트너는 솔로 활동과 자신이 설립한 ’i.e’ 레이블 일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게 된다. 그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물색하던 중 밴드는 래리 칼튼(Larry Carlton)을 영입하게 되었고, 그는 리 리트너에 못지 않은 블루지하며 세련된 연주 감성을 밴드에 이식한다. 4집 < 4 >(1998)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증명한 포플레이는 기존의 스무드한 재즈 연주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연주는 한층 세련됨을 더했다. 90년대 흑인 음악계의 ’마이더스의 손’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섹시한 보컬이 주목받은 마빈 게이의 역작 ’Sexual healing’을 비롯, 하비 메이슨의 펑키 리듬 제조 술이 흥분을 자아내는 ’Rio rush’, 래리 칼튼의 감칠맛 나는 어쿠스틱 기타연주가 들리는 ’Swamp Jazz’는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크리스마스 앨범 < Snowbound >(1999)에 이어 발표한 5집 < Yes, Please >(2000)는 게스트 보컬의 참여 없이 그들의 연주에 보다 비중들 둔 작품으로 멤버들의 공작 ’Blues force’, ’Go with your heart’를 통해 한층 블루지한 느낌을 연주로 담아낸다. 어느 덧 결성 10주년을 훌쩍 뛰어넘은 2002년, 밴드는 따끈따끈한 신보 6집 < Heartfelt >를 발표하며 세계 투어에 나섰다. 이미 국내 재즈 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포 플레이는 오는 9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역사적인 국내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짐 브릭만은 우리 가요 ‘새노야’, ‘홀로 된다는 것’을 수록한 음반 BALLAD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연주자 겸 작곡가인 짐 브릭만은 세련되거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푸근하고 감성이 깊이 밴 연주로 뉴에이지 팬들을 사로잡았다. 피아노로 들려주는 ‘사랑’의 숨결과 달콤함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에 충분한 미덕이었다. 그는 특히 뉴에이지 뮤지션이라고 해서 연주곡만 고집하지 않는다. ‘연주음악만이... 짐 브릭만은 우리 가요 ‘새노야’, ‘홀로 된다는 것’을 수록한 음반 BALLAD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피아니스트다. 피아노 연주자 겸 작곡가인 짐 브릭만은 세련되거나 화려한 기교보다는 푸근하고 감성이 깊이 밴 연주로 뉴에이지 팬들을 사로잡았다. 피아노로 들려주는 ‘사랑’의 숨결과 달콤함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에 충분한 미덕이었다. 그는 특히 뉴에이지 뮤지션이라고 해서 연주곡만 고집하지 않는다. ‘연주음악만이 뉴에이지’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가사가 있는 보컬 곡을 도입한 것이다. 근작들은 하나같이 객원 가수들을 참여시켜 곡을 노래부르도록 하고 있다. 가사가 없어 자칫 지루함으로 흐를 수도 있을 연주곡의 허점을 보완해 ‘얼터너티브 뉴에이지’를 일궈낸 셈이다. ‘순수주의자’ 입장에서 어찌 보면 상당한 파격이고 이단(異端)일 수 있다. 그러나 앨범을 들어보면 그것은 기우(奇遇)에 불과했음을 금방 알게 된다. 연주곡은 연주곡대로 흐름을 잃지 않으며, 보컬 곡은 보컬 곡대로 조화된 매력을 지닌다. 보컬이 쓰였다고 해서 그의 연주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당한 상승효과를 발휘하며 색다른 맛을 팬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 라이브 앨범도 물론 보컬과 연주의 기묘한(?) 동거를 감상할 수 있다. 짐 브릭만은 미국 클리블랜드 출신으로 현재 정상급의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우뚝 섰지만 처음부터 뉴에이지 음악에 뛰어들었던 건 아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학교에서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보다 친숙한 대중음악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우선 징글(jingle: 광고나 각종 캠페인에 사용되는 짧은 음악) 작곡가로 처음 데뷔했다. 맥도날드, 밀러 맥주, 유명 의류 브랜드 GAP, 장거리 전화 회사 AT&T 등 굵직한 광고 음악을 담당하며 대중친화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메인 게임에 들어가기 위한 몸 풀기 정도였다. 징글 음악으로 공력을 쌓은 브릭만은 1994년 < 윈댐 힐(Windham Hill) > 레이블을 통해 연주 음반 < No Word >를 발표하며 비로소 뉴에이지 음악계에 공식 데뷔했다. 광고 음악에서 이미 대중에게 다가가는 감각을 획득한 그답게 이후 출시하는 앨범마다 성공을 거뒀다. 2집 < By Heart >는 골드(50만장), 3집 < Picture This >와 4집 < The Gift >는 플래티넘(100만장)을 기록했으며, 보컬 곡으로만 채워진 5집 < Vision Of Love >과 작년에 발표된 6집 < Destiny >도 히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만 발매된 스페셜 음반 < Ballad >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세노야’를 편곡해 수록하며 국내 음악시장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2000년에는 여러 동료 뮤지션과 협연한 첫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연주 : Kenny G (케니 지 (재즈 색소폰))
쉬운 음악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선율로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 아티스트들과 평단에서는 연주자의 영혼과 정열이 담겨있는 ’고급 음악’ 재즈를 팝화시켜 ’천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 쉬운 음악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에 대한 시각은 언제나 양극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부드럽고 낭만적인 선율로 세계 시민권을 획득한 색소폰 연주자 케니 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버린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 아티스트들과 평단에서는 연주자의 영혼과 정열이 담겨있는 ’고급 음악’ 재즈를 팝화시켜 ’천한 음악’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독설을 퍼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대중들에게 케니 지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접하기 어려운 재즈라는 장르를 친숙하게 만들어준 가치있는 아티스트였다. 특히 2,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그는 잘 생긴 외모와 더불어 ’멋지고 달콤한’ 음악을 들려주는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1959년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케니 지(본명:Kenneth Gorelick)는 1976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소울, 디스코 음악의 거장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러브 언리미티드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 일원이 되면서 화려한 음악 캐리어의 막을 올렸다. 그의 초기 음악은 펑키(funky) 스타일이었던 듯 하다. 배리 화이트 밑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이후에 가담한 밴드 역시 로컬 펑키 그룹인 콜드, 볼드 앤 투게더(Cold, Bold & Together)였다. 재즈 악기로 통하는 색소폰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진 팝 음악을 연주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케니 지의 음악관은 다소 바뀌어 있었다.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Grover Washington Jr.)의 음악에 매력을 느꼈고, 제프 로버스 퓨전(Jeff Lorber’s Fusion)을 거치며 진정한 재즈 뮤지션으로서 성장해 나갔다. 제프 로버스 퓨전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1982년 < 아리스타(Arista) >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 < Kenny G >를 발표했다. 하지만 솔로 데뷔와 함께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귀를 확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데뷔작은 물론이고, 1983년 < G Force >, 1985년 < Gravity >을 내놓을 때까지도 케니 지는 팝계에 충격을 줄 만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케니 지의 대중적 성공은 1986년 작품 < Duotones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흐르는 소프라노 색소폰의 유려한 선율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수록곡인 ’Songbird’는 연주곡임에도 불구 차트 톱 텐에 진입하는 힘을 과시했다. 앨범은 300만장 이상 팔려 나갔고, 이후 그의 활동은 승승장구였다. 1988년 음반 < Silhouette >에서는 동명 타이틀인 ’Silhouette’이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으며, 1989년 발표한 < Kenny G Live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케니 지는 자신의 음반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lanklin),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나탈리 콜(Natalie Cole) 등 흑인 디바들의 앨범에 참여하였으며, 1989년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의 < Soul Provider >에도 가세하여 볼튼의 때늦은 성공에 한 몫 거들었다. 그는 또한 1991년 걸프전 참전 군인들에 대한 걱정을 담은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프로젝트 앨범 < Voices That Care >에도 이름을 올려놨으며,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 Dying Young >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하여 ’Theme from Dying Young’, ’Hillary’s theme’ 등의 낭만적인 곡들을 히트시켰다. 케니 지는 < Voices That Care >의 인연으로 데이빗 포스터가 프로듀서를 맡은 1992년 앨범< Breathless >로 이전까지의 성공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 행진을 펼쳤다. 음반은 미국에서만 8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 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수록곡 중 국내 토크쇼 등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사용되어 친숙한 ’Forever in love’이 히트했고, 걸출한 흑인 뮤지션 아론 네빌(Aaron Neville), 피보 브라이슨(Peabo Bryson)의 보컬이 담긴 ’Even if my heart would break’, ’By the time this night is over’ 등도 사랑 받았다. 한 번 점화된 열기는 이후에도 식을 줄 몰랐다. 1994년 발표된 크리스마스 앨범 < Miracles: The Holiday Album >은 캐롤 음반임에도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고, 현재까지도 시즌마다 사랑 받으며 꾸준히 팔려 나가 미국에서만 1,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1996년 발표한 < The Moment >는 당시 흑인 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었던 두 명의 아티스트 토니 블랙스턴(Toni Braxton)과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각각 ’That somebody was you’, ’Every time I close my eyes’에 참여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명타이틀의 연주곡 ’The Moment’, 이국적 느낌의 ’Havana’ 등도 인기를 누렸다. 1999년 내놓은 < Classics In The Key Of G >는 팝의 클래식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스탠다드 팝 ’Stranger on the shore’,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곡으로 영화 ’접속’에 삽입되기도 했었던 ’The look of love’, 조지 벤슨(George Benson)이 함께 한 재즈 최고의 고전 ’Summertime’ 등이 수록되었고, 특히 컴퓨터 기술로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보컬에 케니 지의 연주를 덧입힌 ’What a wonderful world’가 실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거침없는 인기 행진을 보여주었던 그이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을 걷는 듯 하다. 새로운 싱글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1999년에 크리스마스 앨범을 디스코그라피에 하나 더 추가시켰을 뿐 별다른 창작 활동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글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영향을 받은 만큼 케니 지의 음악은 멜로디에 크게 의존해 왔다. 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임프로바이제이션, 즉 즉흥연주를 최소화하고 멜로디를 중요시 해 온 그의 스타일은 재즈 매니아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재즈 매니아들은 케니 지의 음악을 재즈적 향취 없이 상업성에만 물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고, 그의 음악을 재즈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재즈적 깊이가 어찌 되었건 케니 지가 이루 어 낸 기념비적 성공과 전 세계 대중에게 선사한 따스한 음악들은 ’케니 지’라는 이름을 음악사에 길이 남겨 놓을 것이다.
# 스테판 하우저 24세의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는 21개의 국제 대회에서 우승해왔고, 여러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로이스트로서 전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런던에서의 대학생활 당시에는 나탈리아 파브루츠카야(Natalia Pavlutskaya)에게 사사했는데, 당시 그는 명성 있는 그린위치 트리오(Greenwich Trio)의 멤버이기도 했다. 대학졸업 이후에는 맨체스터의 Rncm... # 스테판 하우저
24세의 첼리스트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는 21개의 국제 대회에서 우승해왔고, 여러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함께 솔로이스트로서 전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런던에서의 대학생활 당시에는 나탈리아 파브루츠카야(Natalia Pavlutskaya)에게 사사했는데, 당시 그는 명성 있는 그린위치 트리오(Greenwich Trio)의 멤버이기도 했다. 대학졸업 이후에는 맨체스터의 Rncm(Royal Northern College Of Music)에서 랄프 커쉬바움(Ralph Kirshbaum)에게,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가면서는 버나드 그린하우스(Bernard Greenhouse)에게 사사했다.

운 좋게도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마지막 제자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스테판 하우저는 2006년 10월 이태리 플로렌스에서 열린 로스트로포비치 공연의 갈라 콘서트를 위해 선택된 유일한 첼리스트였다. 2007년 로스트로포비치가 서거하면서 스테판은 수많은 공연을 그에게 바친 바 있다고 한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 앞에서 버킹험 궁과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각각 공연했던 경력도 있다.

참고로 그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은 로스트로보비치, 버나드 그린하우스 이외에도 다음과 같다. 하인리히 쉬프(Heinrich Schiff), 아르토 노라스(Arto Noras), 프란스 헬머슨(Frans Helmerson), 필리페 뮐러(Philippe Muller), 스티븐 코바세비치(Stephen Kovacevich), 그리고 피아니스트인 메너햄 프레슬러(Menahem Pressler)와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Ivry Gitlis) 등을 언급했다.

# 루카 쉴릭
올해 스물 다섯 살인 루카 쉴릭(Luka Sulic)은 수많은 국제 공연과 경연대회를 통해 점점 명성을 쌓아 올려나갔다. 일단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명성있는 루토슬라브스키(Lutoslawski) 첼로 콩쿨에서 우승했고, 유럽연합 방송국 주최의 뉴 탈렌트(New Talent) 대회에서도 1위를 거머쥔다. 독일 라디오 필하모니, 바르샤바 필하모닉, 그리고 러시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의 유서깊은 공연장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세계를 순회하며 솔로이스트로서 공연을 완수해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세계적 혼 주자 라도반 블라코빅(Radovan Vlatkovi?), 그리고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던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Boris Berezovsky) 등과 함께 실내악 파트너로서 함께했던 바도 있다.
뉴욕타임즈가 “클래식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로 찬사를 받고 있는 랑랑은 파워풀하고 화려한 연주로 세계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1982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살 때에는 선양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첫 독주회를 가졌다. 또 열세 살 때에는 차이코프스키 영 뮤지션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랑랑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그리고 미국의 빅 ... 뉴욕타임즈가 “클래식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로 찬사를 받고 있는 랑랑은 파워풀하고 화려한 연주로 세계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 1982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섯 살 때에는 선양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첫 독주회를 가졌다. 또 열세 살 때에는 차이코프스키 영 뮤지션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랑랑은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그리고 미국의 빅 파이브라 불리는 모든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최초의 중국 피아니스트이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클래식 음악가로는 이례적으로 연주를 해 스타 파워를 증명했다. 그리고 2008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한국에서 라 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하였다. 한편 랑랑은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아프리카의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많은 어린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보냈으며, 2008년 중국 쓰촨성에 지진이 났을 때에는 자신의 피아노를 경매에 붙여 피해자들을 돕기도 했다. 현재 랑랑은 자신의 힘든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랑랑 국제 음악 재단’을 설립하여 세계의 재능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음악 할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첼리스트
연주 : Xavier De Maistre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음악가로서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섬세한 소리를 내고 그것을 환상적으로 들을 수 있음에도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전통적인 세계에서 하프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툴롱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 고향의 음악원에서 하프를 배웠으며, 파리에서 재클린 보로와 카트린느 미셸을 만나 음악적인 기술을 완성했다. 동시에 자비에르는 파리의 명망 있는 파리정치대학(?cole des Scien...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음악가로서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도 섬세한 소리를 내고 그것을 환상적으로 들을 수 있음에도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전통적인 세계에서 하프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툴롱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에 고향의 음악원에서 하프를 배웠으며, 파리에서 재클린 보로와 카트린느 미셸을 만나 음악적인 기술을 완성했다. 동시에 자비에르는 파리의 명망 있는 파리정치대학(?cole des Sciences Politiques, 시앙스포)과 런던정치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98년에는 세계 최고의 하프 콩쿠르 중 하나인 인디애나 블루밍턴 국제 하프 콩쿠르에서 2개의 특별상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4세의 나이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합류한 최초의 프랑스인이 되었다.

독주자로서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유럽, 일본, 미국의 저명한 공연장에서 끊임없는 초청을 받고 있으며, 리카르도 무티, 앙드레 프레빈, 사이먼 래틀 경, 하인리히 쉬프, 베르트랑 드 빌리, 필리프 조르당, 다니엘라 가티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 협연 무대에 올랐다. 2002년 5월 그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역사상 협연자로서 최초로 무대에 오른 하피스트가 되었다.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또한 전 세계의 유명한 페스티벌이 환영하는 연주자이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잘츠부르크, 라인가우, 빈, 베르비에, 슈베르티아데, 부다페스트 봄 페스티벌, 그라츠 슈티리아르테, 뷔르츠부르크 모차르트 페스티벌 및 빈 오스터클랑 페스티벌에 참가해 왔다.

2001년부터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도쿄 토호 음악대학 및 런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도 정기적인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2008년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소니 뮤직과 계약했으며, 데뷔 앨범 Nuit d'Etoiles(별이 빛나는 밤)으로 2009년 에코 클라식 상 올해의 연주자로 선정되었다.
연주 : Lavinia Meijer (라비니아 마이어)
정상의 독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계 하피스트 2009년 네덜란드 음악상 수상 2000년 브리쉘 국제 하프 콩쿠르 우승 1997년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 1위 정상의 독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계 하피스트

2009년 네덜란드 음악상 수상
2000년 브리쉘 국제 하프 콩쿠르 우승
1997년 네덜란드 하프 콩쿠르 1위
연주 : Lendvay (Jozsef Lendvay)
연주 : Klazz Brothers (클라츠 브라더스)
연주 :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 (클라츠 부라더스 & 쿠바 퍼커션)
멤버 : 도쿠오카 요시나리(?岡 慶也, 기타), 미우라 다구야(三浦 拓也, 기타) 2002년 11월, 고베 출신 도쿠오카 요시나리(?岡慶也)와 미우라 타쿠야(三浦拓也)로 결성된 인스트루멘탈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 어쿠스틱 기타 2대로 경쾌한 사운드와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며 마음 속 풍경이나 희로애락, 계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사 없이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 멤버 : 도쿠오카 요시나리(?岡 慶也, 기타), 미우라 다구야(三浦 拓也, 기타)

2002년 11월, 고베 출신 도쿠오카 요시나리(?岡慶也)와 미우라 타쿠야(三浦拓也)로 결성된 인스트루멘탈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 어쿠스틱 기타 2대로 경쾌한 사운드와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며 마음 속 풍경이나 희로애락, 계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사 없이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이 귀에 착 감겨 다양한 곳에서 곡이 사용되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는 어쿠스틱 기타 2대 만으로 연주하거나 밴드를 결성하는 등 장소에 맞춰 다양한 감동을 제공하고 있다. 대조적인 2명의 캐릭터, 절묘한 토크도 매력적이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Depapepe는 한국, 타이, 인도네시아, 타이완에서 Cd를 발매하고 아시아 각국에서 매년 콘서트를 열고 있다. 2012년 인도네시아의 페스티벌에서는 Depapepe만으로 10,000명 이상 (2일간)의 관객을 동원했다. 「인스트루멘탈 뮤직을 주류로!」를 기치로 의욕적으로 활동 중!

* 데뷔 앨범 'Let's Go!!!' - 보컬 없는 밴드의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 일본 오리콘 베스트 10에 진입!
* 2006년 일본 골드 디스크의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 수상!
* 2006년, 2007년 '인스트루멘탈 앨범 오브 더 이어'를 수상!
* 2008년, 2011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 및 단독 내한 공연을 통해 수많은 한국 팬들을 확보!
연주 : Kotaro Oshio (코타로 오시오 (기타))
오사카 출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오픈 튜닝과 태핑 주법을 구사한 독특한 기타 어레인지, 퍼커시브하고 박력 있는 연주와,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공존하는 무대는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2002년 07월 10일 메이저 데뷔. 그 해 10월 미국 메이저 데뷔를 이뤘다. 매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2002년부터 3년 연속 출연,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의 공연도 적극... 오사카 출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오픈 튜닝과 태핑 주법을 구사한 독특한 기타 어레인지, 퍼커시브하고 박력 있는 연주와,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공존하는 무대는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2002년 07월 10일 메이저 데뷔. 그 해 10월 미국 메이저 데뷔를 이뤘다. 매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2002년부터 3년 연속 출연,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의 공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국 투어 등의 라이브 활동을 중심으로 영화 음악, 프로그램 테마곡, CM 송 등의 작곡도 하고 있다. 장르를 초월한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로, 자신이 프로듀스한 이벤트 「GUITAR PARADISE」를 개최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연주 : Tommy Emmanuel (토미 엠마누엘 (컨트리 블루스 기타))
연주 : James Galway (제임스 골웨이 (플루트))
멤버: Mark Wenner, Mark Stutso, Paul Bell, Johnny Castle 멤버: Mark Wenner, Mark Stutso, Paul Bell, Johnny Castle
밴드 : X-Japan (엑스 재팬 (일본 락 밴드))
멤버: 스기조(기타, 바이올린), 요시키(리더, 드럼, 피아노), 파타(기타), 히스(베이스), 토시(보컬) 멤버: 스기조(기타, 바이올린), 요시키(리더, 드럼, 피아노), 파타(기타), 히스(베이스), 토시(보컬)
밴드 : Branford Marsalis Quartet (브랜포드 마샬리스 쿼텟 (재즈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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