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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재조명

서중석 | 돌베개 | 2010년 06월 14일 리뷰 총점8.5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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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2010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654g | 153*224*30mm
ISBN13 9788971993910
ISBN10 89719939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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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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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3사건...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상임 공동대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한국 근현대 민족문제 연구』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 1·2』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남북협상: 김규식의 길, 김구의 길』 『조봉암과 1950년대』(상·하) 『비극의 현대 지도자』 『배반당한 한국 민족주의』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이승만과 제1공화국』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6월항쟁』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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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2010년 한국근현대사 100년을 조망하며 던지는 질문.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 했고, 어떤 나라를 세워왔는가’


강제병합 100년, 한국전쟁 60년, 4월혁명 50년, 광주항쟁 30년을 맞는 2010년,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선두에서 이끌어온 서중석 교수가 지난 강제병합 이후의 한국 근현대사를 균형 잡힌 관점에서 깊이 있게 조망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각각 일제 시기에서 시작해 해방공간에서 경합한 여러 정치세력들의 국가구상, 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 이승만의 단정운동과 반공주의, 여순사건, 4월혁명과 혁명입법, 박정희의 유신국가, 부마항쟁 그리고 최근의 과거사정리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중요한 고비들을 짚어가며 살펴보고 있다. 기존의 현대사 분야 책들은 주로 통사가 아니면, 소재를 중심으로 한 강의 유들이다. 이렇듯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대사를 재서술한 책은 드물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학문적 완결성을 토대로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는가?’ 각각 다른 시기에 씌어진 이 글들을 단단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것이다. 이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며, 각각의 장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물음들로 변주된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어떤 나라로 만들려 했는가?’‘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은 어떤 나라였는가?’‘친일파들은 해방 후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가?’‘군부 독재가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4월혁명에 참여한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
이 책은 100년 전 강제병합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근현대사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공동체를 예속시키려는 힘과 그에 맞서 참된 해방의 나라를 만들려는 힘 사이의 길항이었음을,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의의’라는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쟁점이 지닌 오류를 간단하게 정리해준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진 ‘건국절 논란’이나 뉴라이트의 비틀린 역사관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준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건, 외세를 등에 업은 독재정권이건, 군부 독재정권이건 자신들이 내세우는 억압적 통치가 근대적 국가를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향이라고 주입해왔지만, 실은 독립운동 세력이야말로, 혹은 해방 후의 민주화운동 세력이야말로 근대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또 4·3항쟁, 4월혁명, 부마항쟁 등의 혁명을 통해서든, 선거를 통해서든 민중·인민·시민들은 한국 사회가 좀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되도록 주문하고, 경계해왔다는 점이 설득력 있게 주장된다.

2010년의 한국 사회와 겹쳐 보는 역사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 중 상당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과 겹쳐져 있기도 하다. 가령 해방 직후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조선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제시한 정책들과 노선들을 읽노라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얼마 전 치른 지방선거의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장면들도 많다. 가령 최초의 자유·보통선거인 5·10 선거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해방과 민주화에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저자는 이 선거에서 당선된 소장파 의원들이 당시 민중들의 염원을 받들어 반민족행위자 처벌 문제, 토지개혁 문제, 지방자치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의정 활동을 한 점을 강조한다. 이는 이 선거의 의미를 단순히 남한 단독 선거로서의 한계, 이승만 일파의 부정선거 시도로 제한하는 것보다 한층 설득력 있다. 4월혁명 이후 치러진 7·29 총선에서도 같은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총선 이후 들어선 장면 민주당 정권이 체질적으로 ‘민주적’인 정권은 아니었지만, 부정선거 원흉 처단,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 부정축재자 처벌 등 ‘혁명입법’을 제정해 4월혁명의 정신을 현실화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온당하게 평가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강하게 특징지어온 이념적 갈등에 대해서도 참조할 만한 부분이 많다. 가령 여운형과 박헌영/조선공산당은 대중성과 조직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 미군정·우익과 대항하는 데 공조해야만 한다는 점을 상호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 장의 내용

제1장 일제가 만들려 한 국가, 한국인이 세우려 한 나라
저자가 2001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조직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회에서 청탁을 받아 작성한 글. 1부는 유럽,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하고, 각 식민지에서의 상황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정, 의회의 존재, 총독의 권한 등 구체적인 기준을 놓고 비교, 분석하고 있다. 나아가 일제가 강점 초기부터 채택했던 내지연장주의, 내선일체 등의 동화정책이 프랑스 초기 식민정책인 동화정책과 출발부터 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는가를 살펴본다. 더불어 동화정책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동화정책의 진면목이었던 차별정책의 실상을 조선총독부나 일본정부의 공식자료, 특히 구체적 제도나 수치를 가지고 제시한다. 또 중일전쟁 이후부터 전개된 황국신민화운동이 동화정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해체시켜 천황제 파시즘 또는 군국주의 파시즘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운동이었다는 점을 역설한다. 일견 동화정책에 가까운 일제 말의 초등학교 입학률 증가와 참정권 논의 등은 사실 강제동원, 징병제처럼 일제의 군국주의 침략전쟁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2부는 독립운동에 대해 다룬다. 먼저 여타의 피식민국과 달리 한국의 독립운동이 주로 국외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일제의 가혹한 지배정책과 연관해 설명한다. 또 한국인은 3·1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그 과정에서 한국인이 꿈꾸었던 나라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본다.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과 국외의 독립운동이 시민적·자주적 근대인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3·1운동은 무단통치에 의해 저지당했던 인간의식·민족의식을 일깨워, 한국인들을 침체와 무기력에서 벗어난 능동적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1920년대의 활발한 사회·문화운동, 국내외의 민족운동은 이처럼 근대인으로 깨어난 개인, 계층, 민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인은 이미 1910년대 독립운동에서 공화국을 세우려 했고, 3·1운동 직후에 세워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보통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나라를 구상했다. 1920년대 중후반 국내외 항일운동세력의 국가구상은 더욱 구체적으로 다듬어졌고, 1930년대에 이르면 독립운동계에서는 그러한 국가구상이 보편화된다. 글의 말미에는 한국인이 1945년 8·15해방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맞으려 했는지, 또 실제로 어떻게 맞았는지도 비중을 두어 서술하고 있다.

제2장 해방 직후 여운형의 국가 건설 방향
2007년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학술회의를 위해 썼지만 회의가 무산되어 발표하지 못한 글. 저자는 해방 60년을 넘긴 시점에서 우와 좌, 남과 북이 해방 직후 어떻게 단추를 잘못 끼웠기에 60년 동안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을 겪었는가를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차분히 생각해본다.
좌의 여운형과 우의 안재홍이 이끈 건국준비위원회가 해방된 그날부터 자주적·자율적으로 ‘나라 세우기’에 착수했다는 것은 한국인의 뛰어난 정치적 잠재력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1945년 9월 초 임시정부봉대운동과 인민공화국 지지가 맞서면서 좌우대립은 점차 심해졌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진보적 지식인이 거의 다루지 않았던, 인민공화국 문제를 둘러싸고 여운형과 공산당이 빚은 갈등에 주목한다. 그러한 갈등 속에서 여운형은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할 독자적 정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인민당을 창당했다. 이 무렵 여운형은 독점자본독재와 프롤레타리아독재 양자를 반대하고 노동당이 집권한 영국의 의회민주주의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탁통치에 대한 여운형의 태도 역시 간과되어온 주제인데, 이 글에서 심층적으로 다루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여운형은 1945∼1946년의 숨막히는 ‘반탁 정국’에서 침묵을 지켰다. 똑같이 침묵을 지켰던 이승만과 달리, 그는 연합국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분단이라는 비극을 초래하지만 그 결정에 들어 있는 신탁통치는 따를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고심했다.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6년 1월 7일 한민당, 국민당, 인민당, 공산당 등 남한의 4대 실세 정당이 합의한 대로, 삼상회의의 정신과 의도는 존중하되 신탁은 장래 수립될 정부가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방안을 따르면 되었다는 것. 그러나 극우·극좌(특히 이승만의 단정운동세력)는 신탁통치 문제를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동원하는 측면이 있었으며, 이는 분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 논리였다. 이 글에서 저자는 이러한 극한적 대립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운형이 신탁통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고 또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3장 해방 후 남북 중요 정치세력의 국가 건설 방안
저자가 1992년에 발표한 글로, 당시만 해도 진보적 학계는 해방 직후의 연구에서 좌우합작운동을 기회주의 운동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 글은 이 시기에 좌익이 지나치게 극좌의 방향으로 나간 것이 단독정부 수립이나 그 이후의 남북 갈등에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글은 해방공간에서 남북 주요 정치세력의 국가 건설 방안을 살펴보기 위해 1947년 5월 재개된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주요 정당, 사회단체에 요구한 답신안을 비교, 분석한다. 민권, 임시정부 형태, 중앙정부 기구, 지방정권 기구, 사법기관, 일제 잔재의 청산 문제, 경제정책, 산업조직 등 포괄적인 주제를 명시하도록 되어 있는 이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특히 극우정치세력이나 중도우파안보다, 북조선노동당안과 남조선노동당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나 유사성이 일제강점기의 공산주의운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해방 후 남과 북의 새로 조성된 정세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제4장 이승만의 단정운동·반공국가와 여순사건
2008년 10월 여순사건 60년 기념학술회의 발표문. 당시 ‘뉴라이트’는 ‘이승만 건국’을 찬양해 건국절을 제정하고 건국공로자를 서훈하자는 제안에 뒤이어, 검정 역사교과서에서 일제 식민주의와 박정희 군부 독재가 지나치게 나쁘게 서술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당시 역사학계가 이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고 날카로운 비판과 반론을 펴지 않은 데 대해 암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이 글에서 단정운동이 어떠한 자들에 의해서 일어났는지, ‘건국절’ 주장이 순국선열과 독립운동 공로자를 얼마나 모독하는 일인지, 그것이 왜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뒤집어엎는 행위인지 지적한다. 또 친일파들이 꿈꾼 국가가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로부터 이어진 수구냉전 논리로 무장한 반공국가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반공국가는 권력 쟁탈, 억압과 독재, 부정·부패·비리로 얼룩진 국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여순사건은 제주4·3 주민 집단학살, 보도연맹원 집단학살과 함께 엄청난 주민 희생을 치른 한국사 최대 비극의 하나였다. 저자는 여순사건에서 남로당 프락치가 저지른 무모성을 간과하지 않지만, 주 원인은 분단에 대한 두려움, 그것과 직결된 분단―단정운동, 친일 경찰의 횡포에 대한 울분 등이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한국은 세계사에서 아주 드물게 천년 이상 단일국가를 그것도 중앙집권적 형태로 경험한 데다가, 분단이 오면 필연코 극좌·극우가 외세를 등에 업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널리 퍼져 있어, 악질 친일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한국인이 분단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승만의 단정운동은 통일정부를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편협한 파당의식과 수구냉전 논리로 조급하게 전개되어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친일 경찰 등 친일파들이 적극 앞장섰다는 점에서 더욱더 미움을 샀다. 나아가 남한에 단독정부가 들어선 것은 미·소의 냉전 때문이지 이승만의 단정운동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함으로써, 이승만에게 건국의 공로를 돌리는 것이 얼마나 사실과 다른 일인지 지적한다.
저자는 또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해석과 달리, 5·10 선거의 긍정적인 의미를 조명한다. 남한 단독선거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선거라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또 이 선거가 미국·국제연합의 영향하에 치러지기는 했지만, 선거의 주체는 엄연히 유권자, 곧 한국인이었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한국인에게 있었다. 따라서 조봉암처럼 이 선거에 참여해 자신이 구상했던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단정운동세력과 싸우는 것은 중요했다. 5·10 선거 결과 예상을 크게 뒤집고 한민당이 29석, 이승만 지지자가 많은 독립촉성국민회가 50석인데, 김구·김규식 지지자가 많은 무소속이 85석이었다는 것도 역사의 순리를 말해준다. 또 제헌국회에서 훌륭한 헌법을 제정하고, 무소속―소장파 전성시대가 열려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고, 농민 본위의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지방자치제를 실현하는 등 민주주의를 확립하려 한 것은 해방의 대의에 부응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제5장 4월혁명 이후 새나라 건설 방향과 혁명입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하고 2008년 출간된 『한국민주화운동사』 1권에 실린 글이다. 저자에 따르면 4월혁명 직후의 민주화 이행 작업은 6월항쟁 이후처럼 여야가 여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함께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의원에서 내각책임제 개헌과 언론·집회 등의 기본권 관계법 개정, 국가보안법 개정 등이 이루어졌다. 이어 치러진 7·29 총선은 비록 ‘자유당 잔당’이 상당수 당선되었지만, 집권자의 부정선거 등의 방해행위만 없으면 한국인은 상당한 수준으로 공명선거를 치를 수 있는 정치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7·29 총선으로 장면 민주당정권이 들어서자 ‘혁명입법’으로 부정선거 원흉 처단,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 부정축재자 처벌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체질이 보수적인 장면정권은 ‘혁명입법’ 실현에 소극적이었으나, 박정희정권의 중앙정보부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악명 높은 사찰경찰에 대해서는 대폭 수술을 했다.
저자는 이 장에서 4월혁명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큰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진상규명·명예회복운동의 가시화, 통일운동과 사회운동 등의 전개, 국토개발사업 등 경제 건설, 정부수립 후 최대 규모의 공무원 공채, 경찰·관권의 남용과 횡포의 현저한 감소, 법치주의의 일정한 실현, 각종 사회·문화·경제단체의 자율성 제고, 대미·대일관계와 비동맹세계에 대한 국제적 시야의 확대 등이 그 예이다.

제6장 부마항쟁과 박정희 유신국가의 말로
2009년 10월 부마항쟁 30주년을 맞아 열린 학술대회의 기조발제문. 저자는 1960년 2차에 걸친 마산시위, 4·19시위, 1964년 6·3시위, 1970년대의 반유신민주화시위와 부마항쟁을 비교하면서, 부마항쟁이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게 폭발력이 컸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신 말기의 폭정, 심각한 경제 문제가 장기독재에 대한 염증과 절묘하게 중첩되었기 때문이었다. 시민과 학생이 완전히 의기투합하여 부산과 마산에서 밤낮으로 그것도 여러 날에 걸쳐 격렬한 유신체제 반대시위를 일으켜 계엄령과 위수령이 발동되고, 공수특전단이 출동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가 직접 유신 말기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비롯, 여러 자료를 살펴볼 때 박정희와 차지철 두 권력자는 김영삼제명사건 이후에도 위험한 정치적 폭주를 거듭했을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설 만큼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그리고 중화학공업 침체, 물가 급등, 세금 중압 같은 문제들 외에도 재벌의 비대화, 정경유착 등의 비리, 특수층의 향락 생활과 스캔들, 지나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저임금, 실업, 셋방살이 등의 암울한 생활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정치·경제·사회 제반의 문제와 중첩되어 일어난 체제저항운동은 부산·마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결국 당시의 상황으로는 박정희와 특별한 관계였고 충직하기로 유명했던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근거로, 박정희―차지철 권력의 성격이 4·19를 촉발시킨 이승만―이기붕 권력과 대단히 다르고, 광주 참극을 유발한 전두환―신군부 권력과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3자의 관계를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제7장 친일파가 만들려 한 국가
2006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주최한 국제학술회의 ‘과거청산의 보편성과 특수성’에서 한국 측 발제로 발표한 글. 저자는 기존의 해방 후 친일파 청산 활동에 관한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어째서 미군정·이승만정권에서 친일파 청산이 실패했나, 친일파들이 이승만·박정희정권에서 무슨 일을 하였나, 곧 어떠한 국가를 만들려 하였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운형의 주장대로 해방 후 정부를 꾸리는 데 있어서 일부 친일파들은 포용을 할 수도 있었고, 양심을 지닌 친일 행위자들도 소수 존재했다. 그러나 집단으로서 친일세력은 친일파 청산을 악랄하게 방해했고, 단정운동을 벌였으며, 이후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저해했고, 이승만·박정희 독재의 하수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6월항쟁 이후에도 퇴행적으로 이승만 살리기·박정희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극우반공체제를 형성한 장본인들이다. 또 1950년대의 여러 부정선거와 친일파와의 관계, 특히 그러한 부정선거의 결정판으로서의 3·15부정선거와 친일파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를 밝히고 있다.

제8장 과거사 청산과 새로운 출발
여러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이 중반기에 접어든 2007년에 씌어진 글. 저자는 당시 상황에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과 과제를 점검하고 무엇을 대비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장기간에 걸친 권위주의적 통치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병리현상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재조정해 통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집단학살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극우반공통치로 수십년간 통곡조차 할 수 없는 억압 상태에 있었을 경우 그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사회는 갈등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전제이다. 20세기가 다 가도록 과거사위원회가 탄생하지 못한 것은 단적으로 수구세력이 얼마나 막강하고,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의 얼음장이 얼마나 두꺼운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 글에서는 과거사위원회들이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집권할 보수정권과 관련해서도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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