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부터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고지도로
아름다운 우리 땅의 어제와 오늘을 읽는다”
30년 동안 옛 화가들의 진경산수화에 담긴 한반도 비경을 찾아
그림 속 풍경과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비교한 역작!
미술사가 이태호, 우리 땅을 그린 조선시대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은 삼십 년
2008년, 조선 후기 초상화와 카메라 옵스쿠라를 연결시킨 독특한 연구로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를 펴내 관심을 모았던 미술사가 이태호 교수(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가 30년 연구 생활을 아우른 역작을 내놓았다.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는 조선 후기에 독자적인 회화 양식으로 자리 잡았던 진경산수화를 다룬 예술역사서로, 저자가 1980년대부터 30년 동안 금강산부터 남도까지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조선 후기 산수화와 실제 풍경을 비교하고 연구한 기록이다.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는 중국 문화와 산하를 동경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언제 비로소 우리 것으로 눈을 돌려 스스로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산과 들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또 어떤 관점으로 조선 땅을 바라보고 비경과 흐름을 묘사했는지를 시기별, 작가별로 설명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풍부한 도판과 더불어 저자 이태호 교수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사진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산수화 속 풍경을 찾아가 수차례나 오르내리며 실제로 화가들이 붓을 들었음직한 위치를 찾아내고,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도판 150여 점과 나란히 배치했다. 진경산수화를 다룬 기존 책들과 차별화를 이룬 가장 강력한 매력이자 학자 본연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진경산수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조선 산수화의 경지를 이룩하다
조선 후기 화가들은 조선의 아름다운 산하, 한반도의 명승을 화폭에 즐겨 담았다. 실재하는 풍경을 그렸기에 이를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 일컬으며, 한국회화사에서 독보적인 업적으로 주목받는 영역이다. 조선의 화가가 조선 땅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진경산수화는 이상향을 중국에 두고 송과 명의 산수화풍을 기리던 조선 전기 화가나 문인들이 관념미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현실미를 찾았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저자는 조선의 문인과 화가들이 조선 사람이 사는 땅에 애정을 실어 그림을 그린 시점을 기준으로 조선시대를 전·후기로 가를 수 있다고 말한다. 15~17세기 조선 전기 문인들은 중국에서 소동파가 그랬던 것처럼 한강을 양분하여 마포 서쪽은 ‘서호西湖’, 동쪽은 ‘동호東湖’라 불렀을 만큼 강남열江南烈에 빠져 있었다. 조선 초·중기 산수화풍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안견은 〈몽유도원도〉를 그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을 형상화했는데, 동아시아 산수화의 이념과 형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이 작품 역시 중국 화북華北 지방의 험준한 지세처럼 뭉게구름 형태로 운두준雲頭?을 구사한 것이었다. 특히 17세기 중반은 전란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시기였으며 명에서 청으로 교체한 중국의 영향이 컸다. 만주족이 대륙을 차지하자 명 문화를 매우 숭상하던 조선의 문인들은 충격을 받았고 비로소 조선 안으로 눈을 돌려 우리 현실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우리 땅을 그린 우리 그림,
진경산수화의 중심 겸재 정선부터 1960년대 이상범·변관식까지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중심에 선 한국미술사의 거장이다. 금강산을 필두로 조선 땅의 아름다움을 일깨운 진경산수화는 겸재 정선과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 덕분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회화사조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산수화 형식에 매료되어 있던 기존 전통을 넘어서 개성적인 표현방식으로 한국산수화의 고전을 창출한 것이다. 겸재는 17세기 실경도와 산수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성 넘치는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했다. 중국 화풍이 정착하여 탄생한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후 근 40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진경산수화를 그린 작가들은 실경을 닮게 그리기 위해 사생에 충실했던 작가들과 변형을 모색한 작가들로 뚜렷이 구분된다. 감명과 기억에 따라 대상 공간을 연출한 정선은 ‘진경’이 지닌 ‘참된 경치’라는 의미에 신선경이나 이상향을 일컫는 ‘선경仙境’ 의미를 부여했다. 형태를 닮게 그리는 형사形似보다는 정신성을 강조한 것이다. 동아시아 회화에서 ‘산수화’가 근대 이전 문인들이 추구한 이상향과 관련이 깊은 만큼 겸재 역시 실제 풍경을 통해 성리학적 이상을 그리려 했다.
저자는 카메라의 화각을 예로 들어 인간의 보편적인 시각과 화폭에 담긴 산수의 시야를 비교하고, 겸재의 남다른 시지각을 분석하여 ‘관념’과 ‘진경’의 관계, 조선 후기 산수화에 겸재가 미친 지대한 영향을 설명한다. 또 진재 김윤겸, 지우재 정수영, 단원 김홍도, 설탄 한시각, 동회 신익성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산수화가를 비롯해, 20세기 들어서 진경산수화의 대표적 화제 금강산을 그린 청전 이상범이나 소정 변관식, 고암 이응노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산수화의 범주와 시대적 흐름을 꼼꼼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