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제자리를 맴도는 그녀들을 위한 10편의 시와 9편의 만화
여성들에게 세상은 종종 발에 맞지 않는 구두 같다. 고달픈 생계, 부당한 차별, 불공평한 결혼생활, 원치 않은 임신… 그뿐이랴.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목에 생기는 생채기처럼, 여성들의 꿈을 주저앉히고 옭아매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그렇게 구질구질한 삶 속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관한, 여성들을 위한 아홉편의 단편만화다. 각각의 만화는 기형도, 박정만, 허연, 오규원, 최영미, 최승자, 황지우, 신현림 등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시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여태까지 시가 만화에 인용되는 경우는 있었으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화라는 장르 안에 새롭게 녹여낸 방식은 처음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라 할 만하다. 채민 작가는 시를 읽고, 자기 나름대로 시를 해석해서, 그림으로 된 또하나의 시를 썼다.
왜 하필 시인가. 만화의 해설을 쓴 북칼럼니스트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시는 삶을 노래하는 한 방식임과 동시에 삶의 남루를 드러내는 한 방식이고,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는 깊은 눈이며, 아무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억눌린, 그러나 트인 목소리이기도 하다. (…)
채민은 ‘시처럼 산다는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시 속의 삶이 남루하기 때문에 작가가 그려낸 그림 속의 삶 또한 남루하다. 담담하지만 절박하게. 초연하지만 답답하게.
때문에 “시에는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낡은 사람들”(오규원 「용산에서」)이나 해피엔딩을 향해 쉽게 쉽게 흘러가는 순정만화의 문법에 익숙한 이라면 다소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언어도, 달달한 로맨스도, 극적인 반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리 흔들 저리 뒤뚱/그래도 악! 생각할 한뼘 공간 찾아/두 눈 흡뜨고 아둥바둥 무게 잡는”(최영미 「지하철에서 2」) 우리의 삶이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그러니까 여기에는 삶이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나름 열심히들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은 평범한 여성들. 어쩌면 나, 혹은 너일지도 모를.
어제 왜 전화 안했어?
오래된 연애의 끝물, 이제 애인은 섹스파트너일 뿐 더이상의 감정도 애착도 없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강희정
같이 살자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죽음의 순간,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뛰어든다
78세 독거노인 김발근례
이러다 아빠랑 나,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니겠지?
어린 그녀에게 일은 고되고 세상은 모질다, 종아리의 하지정맥류처럼
백화점 판매원 박윤정
내가 어머님댁 가정부야?!
식모처럼 부려먹는 시어머니, 우유부단한 남편, 원치 않은 임신
전업주부 정지은
아니요. 선생님 첨 뵙습니다
툭, 하고 일상이 끊어진 순간, 생면부지의 남자와 관계를 맺는 순간
출판사 편집자 김미영
말만 좋은 프리랜서일 뿐이야… 한심한
지리멸렬한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일러스트레이터 양수현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저마다 회색 삶 속에 갇혀 있기는 매한가지다. 벗어나보려 하지만,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전화를 안 받는 것, 노래방에 숨어들어가 우는 것, 돌아눕는 것,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다. 작가는 끝내 우리 앞에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우리 삶을 핍진하게 그려 보인다. 때문에 읽다보면 바쁜 일상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아니 잊고 싶던 암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왜, 굳이, 새삼스레, 이 비루한 삶을 꺼내놓는 것일까.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도, 그것이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삶의 어두운 면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 희망이 없다고 해서 짐짓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는 것. 대신 절규해주는 것.”
그러나, 점점 각박해지는 현실과 정반대로 막장드라마와 싸구려 판타지가 난무하는 지금, 거짓으로 희망을 지어내지 않는 이 만화야말로 진짜 희망을 노래하는 게 아닐까. 도망간다고 해서, 외면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는 신인 만화가의 뚝심
그렇기에 지금 이곳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의 출현은 참으로 반가운 것이다. 특히 여성의 삶을 그린 만화는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만화비평가 깜악귀는 채민에 대해 이렇게 평하기도 했다.
성인여성의 현실이라는 부분은 현재 한국 여성만화에서 의외로 전무한 영역이다. 그리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현실성 면에서 실망몽러운 수준이 대부분이다. (…) 여성만화의 가능성에서, “자기체험의 근저에 있는 유사체험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영역 내에서는 상당한 성취가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대부분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너무 쉽게 순정만화의 공상적 영역과 타협하고 순응한다. 대결의식을 보기가 힘들다. 이런 점에서 채민은 돋보인다.
깜악귀의 표현대로 작가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다. 미세한 감정변화나 일상의 소품까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리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참 어려운 만화다. 갈등을 만드는 것도 그 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참 쉬운 요즘, 이런 뚝심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늦은 나이에 만화가라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택한 이 신인 만화가의 외롭지만 용감한 발걸음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