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바이올린 음악 모음집 Best Of Violin
유럽의 대표적인 찰현악기(擦絃樂器)인 바이올린은 16세기 전반에 북이탈리아의 브레시아와 크레모나 등의 악기 제작자가 당시 사용되고 있던 현악기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라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이올린의 기원은 정확치 않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각종 현악기가 비올족으로 불렸고, 16세기 초부터 바이올린, 비올라, 비올론첼로, 콘트라베이스가 바이올린 족으로 지칭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또, 최근의 바이올린은 1568년 나폴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1535년 경 페라리가 그린 사르노 성당 둥근 천정의 프레스코 벽화에 바이올린족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비롯 로마노가 1550년 그린 그림에도 바이올린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 이미 바이올리니스트의 계보가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허나, 이때 어떤 연주자가 두각을 나타내고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료에 근거해 볼 때 최초의 바이올린 명인은 코렐리였고, 바이올린 연주 기법이나 테크닉을 발전시킨 것은 몬테베르디 예하 만토바 악파의 롯시, 마리니, 파리나 등에 의해서였다. 한편, [사계]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도 바이올린의 대가로 불리웠다. 한 기록에 의하면 "비발디의 연주는 놀라웠으며, 그의 즉흥 연주에 의한 환상곡은 무척 감동스러운 것이어서 그런 연주는 들어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감히 누군가와 비교할 수 없는 경탄스러움"이었다고 한다. 비발디는 연주 테크닉 측면에서도 높은 음역에서의 운지법을 새롭게 개발해내는 등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그것은 이후 바흐, 헨델, 텔레만의 음악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허나, 16세기 바이올린은 대부분 성악음악을 반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 테크닉도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반면 17세기는 바이올린에 대한 실험과 변화가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시대다. 이 때 바이올린에 관한 많은 용어가 탄생했고, 장식음법과 음계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바이올린의 테크닉과 악기로서의 기능도 보완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18세기 중엽부터 대형 음악홀이 만들어지고 그만큼 많은 청중이 공연장을 찾게 되자 보다 크고 화려한 소리를 내기 위해 바이올린은 개량을 거듭한다. 먼저 바이올린의 목과 지판은 길어지고 줄받침은 높아졌으며, 옆판은 두꺼워지고 공명판은 얇아졌다. 또, 높은 피치에 대응하기 위해 목 부분이 뒤로 젖혀졌다. 한편, 활이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된 것은 18세기 말이다. 18세기 바이올린의 성과는 이 때 비로소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의 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음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는 것. 그러면서 로카텔리, 타르티니, 만단레디니, 테사리니, 푸냐니, 제미니아니 등 많은 명인을 배출해냈다. 이어 18세기 후반 음악계에는 근대 바이올린 음악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비오티가 등장했다.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하며 최고의 기량을 펼쳐보였다.
그의 출현은 합주 협주곡이 오늘날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데 하나의 분깃점이 되어주었다. 이후 불세출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혜성처럼 나타난다. 그는 지금까지의 바이올린의 개념을 뒤바꿔놓으며, 바이올린을 모두가 경탄하는 대상으로 위상을 확고히 해준 존재다. 특히,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은 당대 모든 음악인들을 고개 숙이게 했고,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피아노의 신이라 불렸던 리스트마저도 파가니니에 대해 "그것은 인간이 낼 수 없는 무한의 경지였다."고 극찬했다. 파가니니에 이어 근대 4대 바이올리니스트 즉 비외탕, 비에냐프스키, 사라사테, 요아힘이 19세기 음악계를 뜨겁게 달구며 바이올린의 화려한 역사를 열어나갔다. 이 중 사라사테는 파가니니 이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미 10살 때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앞에서 연주하여 세인을 감동시켰을 뿐 아니라 28살 때에는 파리 악단에 데뷔해 이후 바이올린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그런 그에게 브루흐, 생상, 비에니아프스키, 랄로 등이 앞다투어 바이올린 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한편, 여러 세기에 걸쳐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체코, 헝가리에서 배출된 연주자들은 나름의 계보를 형성하며 만개했다. 이들은 하나의 바이올린 주법만을 고집하지 않았고, 서로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새로운 주법들을 개발하면서 진화했다.
그 중 프랑스의 바이올린 계보는 현대 바이올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비오티로부터 형성되어 독일과 러시아 바이올린 악파로 뻗어나갔다. 프랑스 악파에는 아브넥, 레오나르, 알파르, 레오나르, 마르시크, 티보, 프란체스카티, 플레쉬, 셰링, 느뵈, 이다 헨델, 메뉴인 등 위대한 명연주자가 즐비하다. 반면 레오폴트 모차르트 때부터 시작된 독일의 바이올린 계보는 슈포어, 다비트, 요아힘, 빌헬미로 이어지면서 바이올린 음악의 확대와 세계화에 기여했다. 독일 악파도 그렇지만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린 계보는 프랑스 악파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악파의 대부 헬메스베르거가 기초를 다졌기 때문인데, 그를 비롯해 3대에 걸친 헬메스베르거 가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빈을 대표하면서 오스트리아 악파의 틀을 다졌다. 20세기에 빛을 발한 오스트리아 악파는 슈나이더한, 아돌프 부쉬, 멜쿠스, 로스탈, 체트마이어, 무터 등을 배출했다. 한편, 프랑스 악파에서 분파된 벨기에의 바이올린 계보 중심에는 비외탕과 소레, 이자이, 그뤼미오 등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있다. 또, 16세기부터 융성했던 이탈리아 바이올린 음악의 계보는 생각보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바이올린 역사상 불세출의 연주자였던 파가니니가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끝으로 가장 짧은 역사를 지닌 러시아의 바이올린 계보는 20세기 바이올린 명인사라 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것이다. 러시아 바이올린의 위대한 스승 아우어로부터 얀켈레비츠-얌폴스키-밀스타인-엘만-짐발리스트-다비드 오이스트라흐-트레차코브-코간-시트코베츠키-크레머-민츠-뮬로바-벤게로프 등의 흐름이 이를 입증한다. 그리고 이 흐름 안에 있는 또 한 사람 하이페츠. 그는 20세기 레코드 시대가 낳은 최고의 비르투오소였다. 그의 카리스마적인 연주 기량은 실로 초인적인 수준이어서 독설가로 유명한 버나드 쇼마저 그를 [바이올린의 신]으로 칭송했다. 또, 러시아 악파와 프랑스 악파의 전통을 두루 체득한 이반 갈라미안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줄리어드 악파를 낳았다. 펄만, 주커만, 정경화 등이 그가 배출한 비르투오소.
뒤를 이어 줄리어드 악파의 대모 도로시 딜레이는 민츠, 초량린, 미도리, 사라 장 등을 길러냈다. 한편, 20세기에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파월을 시작으로 비토, 모리니, 딜레이, 느뵈, 마르치, 파이네만, 오클레르, 밀라노바, 마르코비치, 무터, 뮬로바, 정경화, 미도리, 마이어스, 장영주, 조세포비치, 힐러리 한, 피셔까지 여성들도 바이올린 역사의 한 축이 되었다. 현재는 뚜렷한 강자가 없는 가운데 펄만, 크레머, 뒤메이, 주커만, 샤함, 레핀, 체트마이어, 테츨라프, 침머만, 마르코프, 에네스, 조슈아 벨 등 중견과 신진 세력이 함께 공존하며 바이올린의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 이 [베스트 오브 바이올린] 음반에는 비발디, 바흐, 비탈리,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파가니니, 사라사테, 마스네, 생상, 랄로, 브루흐, 시벨리우스, 차이코프스키, 소르,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바이올린의 명곡들을 20세기 대표적 비르투오소들의 명연으로 담고 있다. 비르투오소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초호화 진용을 자랑한다. 파가니니의 재래라는 찬사를 받았던 살바토레 아카르도와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 무터를 위시해 바딤 레핀, 토마스 체트마이어, 삐에르 아모얄, 알렉산더 마르코프, 피에로 토소, 앨리슨 버리, 미셀라 패취, 그리고 막심 벤게로프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주름잡았고, 또 주름잡고 있는 명인들이다. 그런 즉 이 음반은 바이올린 음악의 진수를 만끽하게 해줄 최고의 콜렉션 음반이라 할 것이다.
이헌석 [음악평론가, '열려라 클래식','이럴 땐 이런 음악'의 저자. TBS FM '방은진의 밤으로의 여행', TBS E FM' On The Pulse', PBC FM '명동연가'의 음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