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현대를 살면서 무수한 유혹과 끝없는 욕망의
그물망으로부터 피로를 느끼고 자유롭기를 갈망한 사람이라면, 이 신경증 권하는 사회에게
그 의문을 던져보았음 직하다. 이 책은 누구보다 예민하고 집요하게 상처의 근원과
욕망의 계보를 파고들었던 예술과 사상의 어깨 위에서, 다친 내면에 갇혀 있던
우리 시선을 역사와 사회로 확장하도록 이끈다. 무수한 시선의 교차점들 속에서
그 너머의 다른 삶을 사유할 힘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전 세계를 넘나들며 거침없이 독주하던 체제가 돌연 휘청하였다. 뭔가 이건 아니다 싶은 이 위태로운 시대에 대한 거시적인 분석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자기계발서’와 ‘심리치유서’를 들여다보며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견뎌오던 우리는 ‘고민하는 힘’을 고민하고 ‘자본론’을 기웃거리며 ‘거대한 변환’을 점쳐보기에 이르렀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그 무수한 우리들에게 자본주의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외면할 도리 없이 버티고 서서 우리 삶을 받쳐주기보다 외려 뒤흔드는 것만 같은 이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 일상과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체제의 요소요소를 파헤쳐보자는 것이다. 너무나 길들어 있어서 의심하기조차 어려운 ‘자본주의적 삶’을 낯설게 보지 않고서는, 이 의식하기조차 두려운 상처를 치유하기란 난망한 일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대한 원초적 느낌을 직관으로 포착해낸 예술과 그 복합적 메커니즘을 이성으로 분석해낸 사상이 짝패가 되어 인문적 치유를 모색한다. ‘화폐와 도시의 탄생’으로부터 ‘소비와 노동의 무한루프’ 궤적 그리고 ‘선물의 사회’에 대한 청사진까지, 20세기 자본주의의 노회한 역사를 관통해낸 인문학의 처방전을 만나보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욕망을 해체하다
“사람이 태어나면 당연히 욕구도 태어나고… 기쁘게 해줘, 새롭게 해줘…♬”를 흥얼거리다가,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최신 고급 차로 대답”하지 못해 우울한 우리들. 라캉의 질문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는 어쩌면 오늘날 이 땅에서 “뉴타운과 주가 5000 시대는 과연 누구의 욕망인가?”와 같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저자 강신주는 그 의문을 아래와 같은 여러 질문들로 세분화한다. “화폐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 “도시는 왜 즐거운 지옥일까” “유행은 어째서 돌고 도나” “로또의 행운은 왜 포기하기 힘들까” “가난한 이웃들이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절제와 사치 사이, 만족은 어디 있을까” “무엇이 서로를 구별짓는가” “호혜평등한 교환은 불가능한가” … 바로 이 책의 긴 여정을 떠나는 출발점들이다. 또한 자본주의를 단지 경제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그리고 문화와 관련하여 파고들었던, 근대 이후 철학과 사회학의 주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들 걸출한 철학자들을 우리 욕망의 근원을 추적할 안내자로 삼는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본주의에 상처받은 인간을 묘사한 문학가 네 명(이상?보들레르?투르니에?유하)과 마르크스 이후 자본주의적 삶을 폭넓고도 심층적으로 탐색한 사상가 네 명(짐멜?벤야민?부르디외?보드리야르)이 그들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낯설게 환기시키는 이들의 텍스트를 당대의 맥락 속에서 현재적 시선으로 다시 읽어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친절하면서도 매섭다. 집어등의 화려한 불빛에 사로잡힌 오징어 떼처럼, 소비사회 속 욕망의 집어등에 걸려 상처받고 병들어온 우리를 속속들이 파헤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을 명확히 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다면, 꿰뚫고 지나가볼 만한 고통이지 않겠느냐고 이 책은 격려한다.
상처의 뿌리를 좇은 예술과 사상의 어깨 위에서,
그 너머의 다른 삶을 사유하다
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 산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인간의 주요한 삶의 조건이 된 ‘화폐’라는 경제적 수단과 ‘대도시’라는 공간적 조건을 되돌아본다. 이들은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배하며 자본주의의 원초적 트라우마라 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두 키워드로 압축되는 현대의 삶을 탁월하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모던보이 이상의 작품을 살펴보고, 여기에 사회철학적 전망을 부여하는 게오르그 짐멜의 도움을 받는다. 이상의 작품 『날개』「권태」「동경」 및 그의 서신들, 짐멜의 논문 「현대 문화에서의 돈」「대도시와 정신적 삶」 등을 , 오사와 마사치나 라캉의 ‘욕망론’ 그리고 칸트와 니체의 ‘자유론’과 더불어 살펴본다.
2부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이 질문을 자본주의의 원?이 19세기 파리에, 그리고 자본주의로부터 상처받은 삶이 19세기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에게 함축되어 있다고 확신한 벤야민에게 던져본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과 조르조 아감벤의 노력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벤야민의 미완의 작품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어쩐지 불쾌하지만 지겹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는 테마인 도박?매춘?유행의 문제를 성찰한다. 이 세 테마를 관통하는 에로티시즘 논의에 에두아르트 푹스, 구키 슈조, 사르트르 등의 흥미로운 시선이 보태진다.
3부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 이는 주체 중심적인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타자 중심적인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바꾸면서 투르니에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가 아닐까. 주체에게는 행위와 사유를 규정하는 내적인 무의식 구조가 존재한다는 이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와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를 통해 부르디외가 해명한 아비투스의 내적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아비투스의 변화 없이 혁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뼈아픈 통찰을 바탕으로 잠재성을 넘어선 가능성을 내다보며, 이 아비투스가 사회에서 드러나는 가장 강렬한 방식인 ‘취향’에 대한 논의 또한 매우 신랄하다.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 자본주의가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포획하는 데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 해부하며 그로부터 자유를 되찾기를 노래한 시인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천일馬화』등에 나타난 소비문화에의 양가감정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할 사람이 바로 보드리야르이다. 그는 『소비의 사회』『생산의 거울』『불가능한 교환』『암호』 등을 통해 ‘기호’라는 소비사회의 내적 동인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였다. 베버와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논쟁, 바타유의 ‘일반경제론’, 가라타니 고진의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지역 교환 거래제도)’와 ‘생산-소비 협동조합’ 제안까지 시선을 확장하여 소비사회로부터 벗어날 전망을 모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