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가 태어난 후, 서양의 미술사를 관통하는 절대미가 태동했다
그 절대미를 그려내야 하는 아담들의 숙명
*로마보다 피렌체보다 나는 나폴리를 사랑했다.
로마에서 나는 라파엘로를 사랑했고, 피렌체에서는 마사초를 사랑했으며,
나폴리에서는 사랑을 했다. 나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 p.58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는 역사에서 사라진 그림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를 그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독백에서 출발한다. 신고전주의의 거장으로 불리는 화가, 긴 등뼈를 지닌 여인의 나신을 그린 「그랑 오달리스크」를 통해 인체의 정비례한 아름다움보다 ‘보이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앵그르. 그는 자신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삶에 척도가 되어온 ‘나폴리의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을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자신의 뮤즈를 붓으로 옮긴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는 지금까지도 그 행적이 묘연하다. 도대체 그 그림은 언제 어디서 누구의 손에 의해 사라진 것일까? 지금까지 많은 화가와 미술 애호가들이 그 작품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그림은 그 모델이었던 여인과 함께 베일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는 총 3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를 그린 앵그르 자신의 독백으로, 2장과 3장은 앵그르의 화풍과 대척점에 서 있던 화가들, 사실주의 풍경화가 카미유 코로와 낭만주의 화풍의 선구자였던 테오도르 제리코의 이야기로 각각 풀어나간다.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아름다움’을 그리려 했던 아담들에게 절대미를 선사한 이브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 과연 아담은 이브를 찾아내 그녀를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녀가 지닌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진정한 내 인생의 비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최초의 여인뿐이라는 것. 그 여인은 열정을 가지고 내가 예술을 통해 찾고자 했던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스승들에게서도 다비드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던 것, 그때까지 겨우 어렴풋이 볼 수 있었던 것, 사는 동안 내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어느 한 시대나 우리 시대 취향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 나 자신에 의해 여인의 모습으로 구현된 아름다움이 그것이었다. 그중 첫 번째가 나폴리의 여인이었다. --- p.26
*오달리스크가 상상이었다면 이 여인은 현실이었다.
오달리스크가 동양이었다면 그녀는 서양이었다.
그녀는 내 노년을 비추어줄 빛이었다. --- p.31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는 실제 앵그르가 그렸지만 나폴레옹의 지휘관이자 누이 카롤린의 남편이기도 한 조아생 뮈라의 몰락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 아드리앵 고에츠는 이 사라진 그림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노출하여 독자의 궁금증을 부추긴다. ‘핑크빛과 푸른빛으로 그려진 여인’이라는 불친절한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독자는 그림을 추측해야 한다. 과연 여인은 어떤 자세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눈으로 그려져 있단 말인가. 미스터리를 다루는 저자의 손놀림은 빠르지도 기발하지도 않지만, 갈증 난 땅에 조금씩 물을 축여주듯 천천히 서둘지 않고 단서의 퍼즐 조각을 던져준다. 그 퍼즐 조각을 집어든 순간 독자는 작가가 펼쳐놓은 미스터리의 그물에 걸려 세 인물과 함께 ‘이브’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불친절하지만 숨은 재미를 찾는 즐거움,
현실로 되살아난 역사 속 인물과 예술 작품과의 만남
역사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기폭제가 존재한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 안에서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는 그것을 팩션이라고 부른다.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는 루브르와 오르세, 우피치 등 유수한 미술관의 벽에 걸린 서양 미술작품들을 소설의 세계로 끌어와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예술작품만이 아니다. 로마 황제를 꿈꿨던 나폴레옹과 그의 지휘관이었던 조아생 뮈라, 사제지간이자 고전미를 함께 찬양했던 다비드와 앵그르, 딱딱한 선에서 벗어나 화폭에 마음껏 색채를 펼쳐놓은 제리코와 들라크루아, 환상이 아닌 사실에 더 집중한 작가 에밀 졸라와 발자크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에는 근현대 예술사조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그들이 일으킨 날선 스파크가 읽는 이의 몸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런 연유로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주변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스?로마시대에서 출발한 서양미술사는 물론, 19세기 프랑스사와 예술사조 등의 사전 지식 없이 가볍게 읽어내기에는 장애요소가 즐비하다. 각 장별 말미에 다소 많은 옮긴이 주를 배치한 것은 그 지적 간극므 좁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혹여 꽤나 까다로운 소설이라는 선입견을 가질지도 모를 독자를 위해 덧붙인다면, 옮긴이 주 역시 소설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재미에 한몫을 한다. 중간 중간에 마주하는 그림도 소설 속 화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화가 저마다의 자유분방한 작품 세계를 펜과 잉크만의 무채색의 세계로 옮기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터, 이는 미술평론가인 작가 자신이 가장 첨예하게 고민한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활자의 세계에도 상상의 힘은 막강하다. 고에츠는 그림 한 점 한 점을 묘사하지 않고도 언어를 절제하면서 문장에 여운을 남겼다. 설령 대상이 되는 그림을 본 적이 없는 독자라 해도 선명하게 그림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작가의 힘이다. 『나폴리의 잠자는 미녀』를 통해 지적 상상의 여행을 즐긴 독자라면, 이후 관심의 폭을 넓혀 각각의 대상을 화집으로 혹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실제로 만나는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당시대의 아름다움을 온몸, 온 감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랭은 석양이 지는 들판에 좀 더 머물고 싶도록 하는 법을 안다. 숲을 그리려 할 때마다 나는 그의 그림들에서 본을 받았다. 극적인 연출도 없고 멋을 부린 것도 아닌, 저녁 무렵과 별이 떠오르는 하늘은 아름다운 시와도 같았다. 나는 내 습작이 하나의 작품이 될 때까지 정성을 들였다. 때로는 행인 하나 없이 우물가의 여인 하나 없이 건물만 그리기도 했고, 때로는 나무와 바람만 그리기도 했다. 구름이 가득한 푸른 그림들. 그것이야말로 우리 예술의 정수이고, 나머지는 단지 효과를 위한 것일 뿐이다. --- p.78
*난간이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게 하려면 어느 부분에 흰색 반죽을 입혀야 하는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구름 아래 있는 언덕에 굴곡을 주기 위해서는 구름 떼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도 알고 있다. 나는 포카스 기둥의 초록색 그늘이 사투르누스 신전의 금빛 들도리를 몇 시에 어루만지는지도 알고 있다.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