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현재진행형인 모던 보이 이상(李箱),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되살아나다
― 서울대학교 국문과 권영민 교수의 현대적 해석, 상세한 주석과 해설이
이상의 문학 원문과 함께 엮인 『이상 전집 』 4권과,
『이상 텍스트 연구―이상을 다시 묻다』 출간.
일찍이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은, 한국 문단이 낳은 문제적 작가인 이상의 전집(총4권)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됐다.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가, 이상이 생전에 발표한 글과 유고로 소개된 글, 그리고 이상의 습작 노트 등으로 기발굴 소개된 자료들을 총망라해 이상 문학의 정본을 새로이 확립하고자 엮어낸 전집이다. 이상의 시, 단편소설, 장편소설, 수필 및 기타 등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전집은, 권영민 교수가 이상의 초기 일본어 시의 오역을 바로잡기 위해 니카타대학 후지이시 다카요 교수 등의 자문을 받고자 일본을 수차례 오가는 등, 원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새로이 해석한 현대문을 수록했다. 또한 이상이 작품을 발표하던 당시의 텍스트와 서지 사항 등을 철저한 대조 정리 작업을 통해 원전에 충실히 수록해 이상 문학의 텍스트적 위상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의미 구조를 총괄적으로 파악하는 ‘해석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 원문에 상세한 각주를 달고 엮은이의 〈작품 해설 노트〉를 부가해, 문학 전공자와 더불어 일반 독자까지 아우르는 가장 현대적이고 친절한 이상 전집이 완간되었다. 전집에 이어 발간되는『이상 텍스트 연구―이상을 다시 묻다』(권영민 지음)를 통해서는, 이상이라는 이름과 문학에 덧씌워진 신화와 우상을 넘어서서 이상의 시와 소설 텍스트에 대한 보다 세밀한 궤적과 분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독자들을 위한 새로운 해석, 이상 문학 텍스트의 정본화(定本化).
1. 이상 문학 텍스트의 완벽한 원전 복원과, 해석적 주석을 통한 의미 탐색.
이 전집은 이상 문학 텍스트의 원전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각각의 성격에 맞는 텍스트적 위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이를 위해 모든 작품은 발표 연대 순서로 배열하였고 발표 당시 원문을 조사 정리하고 여러 판본을 치밀하게 대조하여 원전의 확정 작업에 힘을 썼다. 특히 부분적인 어구 풀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기왕의 주석 방법을 벗어나 작품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상의 사실적인 행보와 창작 동기,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 텍스트의 의미 구조를 파악하는 이른바 ‘해석적 주석’이라는 새로운 주해 방법을 채택하여, 그동안 난해 어구로 방치되어온 대부분의 구절들의 의미를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해석적 접근을 위한 주석의 개수는 『이상 전집 1 시―오감도 외』의 경우 998개, 『이상 전집 2 단편소설―날개 외』의 경우 981개, 『이상 전집 3 장편소설―12월 12일』의 178개, 『이상 전집 4 수필―권태 외』의 491개 등, 전집 전체에 걸쳐 2,600여 개에 달한다.
해석적 접근의 한 예를 들자면, 기존의 여러 판본에서는 시「且8氏의出發」(차8씨의출발)의 제목에서 ‘차(且)’라는 한자와 ‘8’이라는 숫자를 남성 성기를 암시하는 일종의 성적 기호(phallic symbol)로 확대 해석하고 있다. 특히 본문 속에 등장하는 ‘곤봉(棍棒)’이라는 말 자체도 남성의 상징으로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작품 내용 전체를 자연스럽게 ‘섹스 시’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분명 오독이다.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且8氏’는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의 ‘구(具)씨’를 의미한다.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된 ‘8’을 한자로 고치면 ‘팔(八)’자가 되고 ‘차(且)’ 자의 아래에 ‘팔(八)’를 붙여 쓰면 그것이 바로 ‘구(具)’ 자임을 알 수 있다. 결국 ‘且8氏’는 ‘남성의 성기’를 말한 것도 아니고, 입에 담기 어려운 ‘X팔 씨’라는 욕설을 말한 것도 아님이 분명해진다. ‘구(具)’라는 한자를 ‘차(且)’와 ‘팔(8)’로 파자(破字)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은 여기서 이 문자놀이를 시각적 기호로 환치시키기도 한다. ‘차(且)’ 자와 ‘8’ 자를 글자 그대로 아래위로 붙여보면 그 모양은 구본웅의 외양을 형상적으로 암시한다. 구본웅이 늘 쓰고 다녔다는 높은 중산모(且)와 꼽추의 기형적인 형상(8)을 합쳐놓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2. 이상 문학 텍스트의 현대어본 확정과 상세한 작품 해설
또한 이 전집은 이상 문학 텍스트를 전문 연구자와 일반 독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작품의 원전 텍스트와 함께 현대 국어의 표기법에 따라 고쳐 쓴 텍스트를 덧붙였다. 그리고 이 현대어 표기로 된 새로운 텍스트에서는 상용도가 높은 한자어의 경우 한자를 과감히 생략하여, 이상의 문학을 조금 더 현대적인 시선으로 흡수하고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일본어 작품들의 경우는 원래의 번역문 이외에 현대 표기에 맞춰 일부 번역을 다시 손질하여 번역 텍스트로서의 성격을 살려보려고 하였다.
이 전집에 수록된 시와 소설의 경우에는 모든 작품의 말미에 「작품 해설 노트」를 붙임으로써 이상 문학 텍스트의 기초적인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작품 해설 노트」에서는 각각의 작품의 서지 사항과 함께 그 의미 구조의 전반적인 성격을 간략하게 제시하였다. 때로는 원전 주석 작업의 미비점을 보완하기도 하고, 기존 연구자들의 작품 해석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바로잡는 데에도 「작품 해설 노트」를 활용하였다.
3. 이상 문학 텍스트의 양식적 재분류 작업
한편 시와 소설과 수필의 영역을 넘나들며 혼동을 가져왔던 문제의 산문들, 즉 '최저낙원(最低樂園)', '실낙원(失樂園)', '공포(恐怖)의 기록(記錄)', '불행(不幸)한 계승(繼承)' 등을 이 전집에서는 모두 수필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이들 작품이 지닌 자기 체험의 고백적 기록으로서의 성격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0년대에 조연현 교수가 발굴한 창작 노트의 작품들은 모두 ‘발굴 자료’로 별도 구분하여 수록하였다. 이 자료들은 기존 전집에서 각각의 작품을 시 또는 수필로 분류하여 놓았지만, 여기서는 이러한 구분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작품 구상을 위해 여러 단상들을 정리해 둔 노트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4. 기존 연구의 오류를 바로잡는 작업을 통해 완전한 원전을 복원.
이 전집에서 기존 연구의 오류를 바로잡은 사항의 예를 추가로 들면 다음과 같다. 시 「매춘(買春)」의 경우 기존의 전집에서 ‘매춘(賣春)’으로 표기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그 해석도 글자 그대로 여자가 돈을 받고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파는 것으로 의미하는 ‘매음(賣淫)’이라든지 ‘매색(賣色)’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실은, 이상이 ‘매춘(賣春)’이라는 익숙한 단어에서 ‘매(賣, 팔다)’라는 한자를 ‘매(買, 사다)’로 바꿔놓음으로써 ‘매춘(買春, 젊음을 사다)’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상 자신이 즐겨 사용한 파자(破字)의 방법을 그 제목에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소설 「동해(童骸)」의 제목을 두고 기존 연구자들은 이 작품의 제목인 ‘동해(童骸)’를 ‘童孩’라는 말(아이라는 뜻을 가짐)을 변형시킨 것으로 풀이하였으나, 이러한 해석은 작품의 내용과 전혀 무관하다. 여기서 ‘동해(童骸)’라는 말은 ‘동정(童貞)의 형해(形骸)’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소설 텍스트에서 이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는데, 의미상으로는 ‘동정을 잃은 여자’ 또는 ‘헌 계집’이라는 뜻을 가지기 때문이다.
소설 「지도(地圖)의암실(暗室)」에 암호처럼 표시되어 있는 ‘離三茅閣路到北停車場 坐黃布車去’ ‘'上那兒去 而且 做甚'’ ‘活胡同是死胡同 死胡同是活胡同’ 등의 중국어 문구는 기존의 연구에서 그 의미와 역할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으나, 이 새로운 전집에서는 이 문구들이 모두 텍스트 내에서 메타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이야기의 장면을 요약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소설「실화(失花)」는 패러디의 기법에 의해 기존의 작품의 특징적인 요소를 이 작품 텍스트로 끌어들이면서 상호 텍스트적 공간을 확충한다는 점을 새롭게 밝혀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아홉 개의 단락은 각각 이상 자신이 쓴 수필 「19세기식」, 「EPIGRAM」, 소설 「동해' 등의 중요 내용을 패러디하고 영국의 작가 아놀드 베네트(Arnold Benett 1867-1931)가 쓴 장편소설 「다섯 마을의 안나 Anna of The Five Towns」(1902)와 미국 헐리우드 영화 ‘ADVENTURE IN MANHATTAN’의 한 장면을 변형시켜 옮겨 놓은 것이다.
탄생 99년, 경계를 허문 이상의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와 현재적 의미
이상의 문학이 그의 사후 70여 년(1937년 사망)이 지나도록 여전히 ‘문제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유는, 그의 글쓰기가 어떤 양식과 정신의 흐름이라는 영역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 권위와 제도, 양식과 기법에 대해 반동을 시도하며 외관이 지니는 무의미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상상력의 하부구조를 열고자 작품 내외적으로 늘 고민하고 노력했다. 미술과 건축, 시와 소설 등 다재다능한 재능을 구가했던 이상은 경계를 넘나들며 그 의미를 무색케 하는 글쓰기를 통해 무한히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내었고, 그의 작품에 담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비평 분야에도 여전히 창조적인 접근과 도전을 허락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특이한 문단 진출 과정과 행적, 여성 편력, 동경에서의 외로운 죽음 때문에 그는 전위적인 실험주의자, 혹은 낭만적이고 신비한 천재만으로 포장되거나 각인되곤 한다. 그러나 1930년대 한국문단을 이끈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요절한 천재이며 광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수학·정신분석학·과학·철학·디자인과 회화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동시대의 하이퍼텍스트성을 구가해 문학에 접목하고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현대성. 이상의 작가적 존재 의미는 그 지점에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을 창작하는 도구적 수단이 다양화하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문화를 창조해 공급하는 자와 수요자의 경계도, 예술 장르 간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그러나 1910년에 태어나 불과 스물여덟 살에 스러진 이상은, 이미 그의 문학 속에서 과학과 문학, 철학, 건축, 타이포그래피와 시작(詩作) 양식의 경계를 허물었다. 자유, 감각과 충동의 우위, 표현 수단을 가로지르는 해방된 상상력을 통해 현대문명과 인간 실존을 물었던 이상이 형성한 동시적 질서는 여전히 그가 남긴 작품보다도 더 많은 논의와 해석을 동반한다. 근대에 나고 스러졌으나 여전히 현대를 살고, 미래에도 분명 현재진행형일 작품을 쓴 이상은, 그러므로 영원한 하이퍼텍스트성 모던보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