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신의학 입문서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책이 ‘가장 쉽다’거나 ‘가장 재미있다’는 식의 수사를 표제로 내건다. 이 책 역시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하나 눈여겨볼 것은 저자들이 다루는 내용과 정보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정신의학 교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정신의학 관련 청소년책 가운데 가장 본격적이면서 폭넓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비슷한 주제의 청소년책이 심리학, 뇌과학, 정신의학 등을 한꺼번에 다루고, 보통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성인 데 반해, 이 책은 오로지 정신의학에 집중하면서 대표적인 마음의 병들을 총망라하고 질병 하나하나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 사회적인 맥락 등을 분석한다. 발달장애, 히키코모리, 대인 공포와 사회불안 장애, 섭식 장애, 해리, PTSD, 인격 장애, 우울증, 조현병 등을 차례대로 다루면서, 단 한순간도 질병을 외따로 떼어 내서 이야기하지 않고 질병 너머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럼으로써 정신의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돕는다.
정신의학,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머리말’에서 사이토 다마키는 정신의학이 여전히 ‘미개척 분야’라고 고백하면서 오히려 그 때문에 ‘재미있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지금도 이 일이 재미있다. 왜냐고? ‘밝혀지지 않은 것’이 이처럼 많은 분야도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책에 나오는 병 가운데 ‘진짜 원인’이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말하자면, ‘결과적으로 잘됐어’ 같은 면이 있다. ‘왜 이 약이 듣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효과가 있으니 일단 됐네’ 하는 식이다.
-본문 7쪽(머리말)
저자들은 마음의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울 때 외에는 어떤 경우도 단정하는 법이 없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무엇이 병이고 무엇이 증상일 뿐인지 단정하지 않으며, 이분법적인 선을 긋지 않는다. 그 대신에 정신의학이 여전히 미개척 분야로서 많은 한계를 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연구에 매진할 만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정신의학은 인간의 다양성에 다가가는 학문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저자들의 시각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정신의학이 ‘인간의 다양성’에 다가가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것이 다 다르고, 다 달라서 좋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지적한다. 정신의학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벽’과 ‘부자유’를 인정하고, 그 부자유함을 통해 다양성을 긍정하는 데로 나아가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뿐만 아니라 저자들은 우리가 병이나 장애라고 부르는 증상들을 다르게 볼 여지는 없는지 묻는다. 예컨대 ‘발달 장애’를 다루는 1장에서 야마토 히로유키는 “발달 장애란 그 자체로는 병이 아니다. 장애라는 말도 부적절할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남들만큼 “잘할 수 없”을 뿐 “각자 나름으로 할 수 있게” 되고, “지니고 있는 힘은 착실히 발달한다”는 것이다. ‘지적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 장애와 비장애의 기준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진다. 그러면서 ‘장애’라는 것을 당사자들이 복지를 누리는 데 필요한 증명서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지적 장애는 자세한 지능 검사를 해서 지능지수(IQ)를 산출해 그것으로 정도를 나눈다. IQ 70 미만을 지적 장애라고 정했다. 정하기는 했지만 우리 사정일 뿐, 당사자는 “70이라는 선은 누가 그은 겁니까?”라고 반문할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왜 그렇게 분류되어야만 해?”라고 말이다. 내가 처음에 장애라는 말이 부적절할지 모른다고 한 것은 발달 방식이 다른 소수의 사람을 다수의 형편에 따라 장애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실제로 장애인 지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쓰지 말자는 움직임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재로는 장애라는 명칭이 여전히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이것이 없으면 교육과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애라는 것을, 장애를 지닌 사람들(지금은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증명서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 pp.21~22, 1장. 「남들만큼 잘할 수 없어: 발달 장애」
정신의학, 소수자·약자 곁에 서는 학문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곧 소수자·약자에 대한 존중으로 나아간다. 사이토 다마키는 ‘머리말’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점점 소홀히 여기는 듯 보이는 현실을 지적하며,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뭐라고 할까, ‘인간의 다양성’ 같은 가치가 점점 소홀히 다루어지는 듯한 생각이 든다. 분위기 좀 못 읽는다고, 남들과 가치관이 다르다고, 의사소통 능력이 낮다고 등의 소소한 일로 비난받거나 동료에게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실제로 그런 소소한 일로 좌절하여 몇 년이나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사람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곤란한 것은 돌고 돌아 자기 자신을 덮치기 때문이다.
--- p.8, 「머리말」
약한 이들을 보듬는 저자들의 태도는 책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2장 “나의 동굴 속에서: 히키코모리” 편에서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강인함’ 따위보다도 ‘때로는 타인에게 응석 부릴 수 있는 강인함’을 소중히 여겨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3장 “너무 큰 세상, 너무 작은 나: 대인 공포와 사회 불안 장애” 편에서는 학교라는 공간이 대인 공포의 새로운 근원이 되어 가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학교 카스트’라는 교실 내 신분제에 물들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격려한다. 4장 “먹을 수도 없고 먹지 않을 수도 없다: ‘섭식 장애” 편에서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거의 전적으로 ‘여성의 병’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여성들이 처한 폭력적인 현실에 대해 환기한다. 9장 “의외로 흔한 마음의 병: 조현병” 편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차별과 배제와 공포의 대상에 머물러 있는 ‘조현병’이 100명 중 0.85명이 걸릴 만큼 흔한 병이고, 이미 1980년대부터 병의 증상이 가벼워지고 있으며, 완치율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나아가 완치에 이르지 못한 경우라도 ‘의료와 복지’의 힘을 함께 빌려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의학으로 읽는 사회
이 책의 또 하나 장점은 저자들이 시종일관 사회적인 관점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마음의 병이 환경과 시대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같은 병이라도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거나 문화권에 따라 심각하게 대두되는 정신과 질환이 다르다는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컨대 우울증은 30, 40년 전엔 “모든 면에서 질서를 중시하고 꼼꼼하며 타인에게 지극히 신경을 쓰는” 성실한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에게서 많이 발병했던 반면에(멜랑콜리아형 우울증), 21세기 들어서는 자칫 무책임하고 불성실해 보일 수도 있는 우울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발병하고 있다고 말한다(미성숙형 우울증).
가난했던 시대에는 아이는 되도록 일찍 집을 떠나 스스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직해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사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온 나라가 윤택해진 덕분에 아이는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여 사회에 나오는 것을 뒤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젊은이가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청년기의 연장’이라고 하여 선진국에는 공통된 현상이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어른이 되지 않거나 될 수 없는 청년들이 앓는 마음의 병과, 그런 청년을 잔뜩 껴안아야 하는 사회 문제로 어느 나라나 머리를 싸매고 있다.
_본문 161쪽(8장.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우울증)
히키코모리나 대인 공포 등을 설명하면서 한중일 삼국을 서로 비교하거나 서양과 비교하는 대목은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특히 흥미로울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나 일본처럼 가족 동거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반면에,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서구에서는 홈리스나 반사회적인 행위가 문제라고 말한다. 또 체면과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에서는 대인 공포가 흔한 대신에 다중 인격은 무척 드물다는 점도 일러 준다.
옛날부터 일본인에게는 다중 인격이 적었다. 미국의 유행을 10년쯤 지나 뒤쫓는다는 일본에서 웬일인지 다중 인격만은 좀처럼 유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꽤 늘었지만 말이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일본인이란 원래 다중 인격적인 예법으로 살고 있어서 굳이 그런 병을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상대에 따라 경어를 사용하거나 반대로 잘난 체하거나…… 이것도 캐릭터를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드 전환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미국인처럼 병을 앓으면서까지 다른 인격을 만들지 않아도 어떻게든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초다중 인격’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는데, 원래 초다중 인격이므로 새삼스레 다중 인격 따위가 되겠냐 하는 이야기다. 꽤 설득력이 있다.
--- p.114, 「5장. 내가 아닌 나: 해리」
에반게리온은 경계성 인격 장애 창작물?
저자들은 문학, 예술, 대중문화 속으로도 거침없이 들어간다. 예컨대 『호밀밭의 파수꾼』『인간 실격』『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에서 ‘경계성 인격 장애’의 기미를 찾아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인간 실격』은 경계성 인격 장애와 대인 공포가 예전 일본에서는 상당히 비슷한 것이었음을 잘 보여 주는 소설로 매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즉 주인공은 계속 어릿광대짓을 하지만 그만큼이나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느라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좋고 싫은 것만은 묘하게 확실해서, 하는 짓은 홀든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놈은 아군’ ‘이놈은 적’이라는 분류 작업을 끝도 없이 한다. (……)
다자이를 넘어서는 경계성 인격 장애 창작물이라면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아닐까. ‘중2병’이라는 무구한 것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로봇이 불가사의한 적을 마구 쓰러뜨려 가는 이야기다.”
--- pp.145~147, 7장, 「골치 아픈 사람과 어떻게 사귈까?: 인격 장애」
마음의 병, 벗어날 수 있다
저자들은 독자들과 환자들에게 힘이 되는 메시지를 책 곳곳에서 전한다. 책을 시작하자마자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병 중 진짜 원인이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고 병과 증상의 경계도 불분명하다고 말했으면서도,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 마음의 병과 싸우는 이들에게는 꼭 나을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심어 주려고 애쓴다.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를 다루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괴로운 기억을 반복 재생해서 자기에게 친숙해지게 한다. 그런 과정을 반은 의사의 도움을 빌려서 하고 일부분은 혼자 테이프를 들으면서 한다. 이를 반복해 가면 정말 흥미로운 일이 점차 일어난다.
불안의 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본인이 느끼는 불안을 숫자로 바꾸어 보게 하는데 그 숫자가 차차 작아진다. 그런 형식으로 괴로운 기억에 대한 반응이 약해진다. 즉 떠올려도 끄떡없는 기억이 되어 가는 것이다. (……) 트라우마의 기억이 독을 지닌 기억이라 한다면 점점 그 독이 묽어져 가는 것을, 이 치료법으로 아주 잘 관찰할 수 있다. 치료하는 쪽도 왜 효과가 있는지 잘 알 수 있고, 본인도 왜, 어떤 방식으로 좋아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치료법으로서는 상당히 이상적이다. 왠지 모르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왜 좋아졌는지를 아는 편이 치료로서는 훌륭하다. 다른 병도 이렇게 낫는다면 정신과 의사도 좀 더 존경을 받을 텐데. 어찌 됐든 트라우마는 쉽게 보아서는 안 되지만, 말끔히 치료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트라우마만큼은 확실하게 알아 두기 바란다.
--- pp.129~130, 6장. 트라우마는 마음 어디에 있을까?: PTSD」
책 말미에는 정신과 병원에 언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부록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