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4년 아든(The Arden)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저본으로 하고, 옮긴이의 판단에 따라 더 적절한 원문을 선택하기 위해 2005년도 뉴 케임브리지(New Cambridge)판을 부분적으로 참조했습니다..
<리어 왕>은 <햄릿>, <맥베스>, <오셀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 왕은 나이가 들자 세 딸에게 효심 고백 대결을 시켜 왕국을 나눠주고 자신은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러나 가장 멋진 고백을 하리라 예상했던 막내딸 코딜리아는 입을 다물어 리어 왕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효심 고백을 한 두 딸은 아버지를 배신한다. 리어는 왕의 권위와 자녀 등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한 채 광야를 헤매게 된다. 마침내 자신이 매몰차게 내쫓았던 막내딸과 재회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지만 이내 막내딸의 주검 앞에서 울부짖으며 리어 왕도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개인의 문제부터 가정, 국가, 그리고 자연과 운명이라는 문제, 그리고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대한 문제 등 문학 작품들에서 다룰 수 있는 광범위한 주제를 한 작품 속에 집약하고 있다. 따라서 시적 표현의 탁월함뿐 아니라 주제의 폭에서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심오하고 진지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1. 출전과 제작 시기
출전
리어 왕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전적인 창작물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기존의 여러 출전에서 자신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리어 왕과 세 딸 이야기는 고대 영국의 신화나 영국의 초기 역사에 대한 기록들에 자주 등장한다. 가장 잘 알려진 출전은 라파엘 홀린셰드(Raphael Holinshed)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연대기(The Chronicles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1577)에 나오는 레어(Leir) 왕의 이야기다. 레어 왕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 이야기와 거의 유사하지만, 결말은 비극이 아니다. 막내딸을 찾아간 레어 왕을 도와서 막내 사위가 두 딸과 일으킨 전쟁에서 승리하고 레어 왕은 자신의 왕국을 되찾게 된다는 해피엔딩이다. 셰익스피어가 크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출전은 1594년 로즈 극장에서 공연된 기록이 남아 있는 작자 미상의 <레어 왕과 세 딸의 연대기(The True Chronicle History of King Leir and his three daughters)>라는 극작품이다. 이 작품의 시작은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사뭇 다르다. 레어 왕에게 세 딸이 있다는 점은 같으나 효심 경쟁의 이유가 다르다. 레어 왕은 왕비를 여의고 세 딸을 빨리 출가시키기로 마음먹었으나 막내딸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효심 경쟁을 시켜 막내가 사랑 고백을 하면 그걸 핑계로 아버지가 골라준 남편감을 선택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다음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거의 유사하지만 결말은 오히려 홀린셰드와 비슷하게 레어가 왕국을 되찾는 해피엔딩이다. 이 밖에도 많은 유사한 스토리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홀린셰드나 1594년의 극작품처럼 리어가 막내딸의 도움으로 왕국을 탈환하는 해피엔딩이고, 일부는 코딜리아의 자살과 같은 비극적 결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출전들을 토대로 셰익스피어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에서 리어가 실성하는 장면, 리어가 추방한 헌신적인 인물인 켄트, 리어의 실상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어릿광대, 간신배 오즈월드 등과 같은 독창적인 인물이나 상황을 창조해 낸다. 덧붙여 또 다른 출전에서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빌려와 리어의 이야기와 병치시키는 이중 플롯 구조를 만들어냈다. 특히 극의 결말을 교살되는 코딜리아와 이에 절망해서 숨을 끊는 리어 이야기로 맺어 매우 조직적이고 독창적인 비극을 창조했다.
집필 시기
<리어 왕>은 그 성숙도나 깊이에서 셰익스피어의 작가로서의 완숙기이자 비극 작품 창작 시기인 17세기 초 작품임에 틀림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몇몇 기록이 이를 입증해 준다. <리어 왕>은 당대의 ≪서적출판조합 기록부(The Register of the Stationer's Company)≫에 1607년 11월 26일 날짜로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부에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 1606년 12월 26일 화이트홀 연회장에서 제임스 1세가 보는 가운데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적어도 집필 연대가 1607년 이전임을 말해준다. 작품의 1막 2장에서 작은아들 에드먼드에게서 큰아들 에드거의 음모 소식을 전해들은 글로스터 백작은 자식의 배반에 애통해하며 “근자의 일식과 월식”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이는 1605년 9월과 10월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식과 월식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리어 왕> 이야기 구성에 분?히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위에서 언급한 작자 미상 극작품 <레어 왕과 세 딸의 연대기>도 ≪서적출판조합 기록부≫에 1605년 5월 8일 날짜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여타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리어 왕>은 대체로 1605년 겨울에서 1606년 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다.
2. 주제
<리어 왕>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비평은 리어가 겪는 고통의 과정과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어는 여러 가지 입장이 된다.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개인적 입장, 한 국가의 군주로서의 입장,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대결에서의 남성의 입장 등이 그것이다. 아버지로서 리어가 겪는 고통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효심 경쟁에서 시작된다. 리어 개인에게 성격적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자신의 관점으로만 보는 독단적인 사고방식이다. 리어는 세 딸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버지에게 무한 공경을 바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리고 효심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일이 내면의 효심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게다가 가장 간절하게 효심 고백을 하는 딸에게 가장 좋은 영토를 주겠다고 공언함으로써 효심이라는 정서적인 개념을 물적 보상의 개념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 이기적 태도, 물질주의적 사고방식 등이 아버지로서의 리어의 문제점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내 표면으로 드러나고 리어를 실성케 할 정도로 괴롭힌다.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리어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되고 닫혀 있던 눈을 뜨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에서 리어는 정신적 분열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역설적으로 리어에게 정신적 각성을 가져다준다. 리어는 인간의 외적 상황은 ‘무(Nothing)’일 뿐이라고 깨닫는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가 ‘무(無)’의 의미다. 첫 장면 효심 고백 대결에서 막내딸 코딜리아가 자신의 차례에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Nothing)”라고 대답하자, 이에 리어는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Nothing will come of nothing)”라고 답한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막내딸을 냉혹하게 내쫓아 버리고 결국 그 막내딸의 진심을 알게 됐을 때 리어가 안게 되는 것은 딸의 싸늘한 시신뿐이었다는 리어의 비극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전부일 수도 있고, 가장 소중한 전부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리어는 실성한 채 폭풍우 속의 황야를 헤매면서 의상철학을 통해 인간의 외적 권위의 허구성을 깨닫는다. 리어는 지금껏 아버지로서의 권위뿐 아니라 왕의 권위, 왕관, 제복 등이 자신의 실체라고 생각해서 소중히 여겨왔다. 그러나 결국 리어의 실체는 황야를 헤매는 반라의 몸뚱이일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외적 꾸밈에 지배를 받는다. 리어는 같은 죄악도 그 죄인이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으면 아무리 강한 징벌의 창도 뚫지 못하지만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면 지푸라기도 쉽게 뚫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실체를 외적 치장이 왜곡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리어는 비바람에 괴로워하면서도 누더기를 걸친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이 이런 날씨에 얼마나 고통을 겪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의 정의는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부가 공평하게 분배될 때 이뤄진다는 평등사상도 갖게 된다. 독단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상대적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리어의 고통은 단순히 한 개인의 불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리어의 가정 비극은 브리튼이라는 국가의 비극이며, 리어가 겪는 혼란은 개인의 혼란을 넘어 국가의 혼란이자 더 나아가 자연계의 혼란이다. 리어 가정의 분열은 국가 영토의 분열과 프랑스와의 대외 전쟁 그리고 자연계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특히 리어가 황야에서 혼란 내지는 정신적 분열을 겪을 때 자연현상은 이에 호응한다. 즉 맹렬히 몰아치는 비바람, 온 세상을 밝히고 울리기라도 할 듯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은 리어의 심리적 혼란을 반영하는 자연현상이다. 셰익스피어는 리어라는 한 인물의 비극을 사회, 국가 그리고 자연의 혼란으로까지 확장해 가면서 비극의 정서와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확대 과정에서 한 국가의 군주로서의 실책 또한 강조된다. <리어 왕>의 배경은 고대 브리튼 왕국이지만 이 공연은 17세기 초 관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인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까지 영국의 통치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곳곳에 도사린 내란의 위협이었고, 이러한 내란의 위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 대립이었다. 16세기 초반 종교개혁 이후 영국은 신교와 구교 간의 극심한 대립에 시달렸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중요한 국가 정책 중의 하나가 두 종교 간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 사후 영국의 군주로 등극한 제임스 1세는 1605년에 급진주쟀적인 구교도 단체의 화약 음모사건(The Gunpowder Polt)으로 시해당할 위험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리어의 국토 분할과 왕권 분할은 동시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군주의 우선 정책은 지방 귀족 세력들을 약화시켜서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통일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굳건히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어는 우매한 정책을 시행해서 왕권을 약화시키고 국가를 분할한다. 절대 권력을 상실한 리어는 1막 3장에서 어릿광대로부터 “지금의 리어”는 “리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받는다. 이러한 견지에서 리어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또 다른 원인은 리어의 군주로서의 실책이라 할 수 있다.
리어의 군주로서의 실책은 한편으로는 남성으로서의 실책이라 할 수 있고, 리어의 비극은 이제 남성과 여성의 대립에서 남성의 패배로 인한 비극이기도 하다. 리어와 두 딸의 갈등은 부녀간의 갈등 이상의 성(젠더)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리어가 처음 등장할 때 그는 당당한 아버지요, 군주일 뿐 아니라 전통적인 남성성을 구현하는 가부장이었다. 여성인 딸들은?코딜리아를 제외하고?리어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을 맹세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식적인 여성들의 복종은 그녀들의 승리를 위한 것이었다. 이내 리어는 딸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위의 두 딸, 고네릴과 리건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고 남성의 권위를 취하려는 맹렬 신여성들이다. 셰익스피어 시대는 여성을 가정의 테두리 내에 묶어두고 남성 가부장의 권위로 억누르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인식과, 시대의 급격한 변화로 가정 밖으로 진출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담당하려는 여성들의 등장이 공존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전통적인 남성 가부장들이 후자의 새로운 여성들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도 당연하다. 고네릴과 리건은 아버지를 내칠 뿐 아니라 고네릴은 남편마저 내치고 스스로 새로운 남자를 선택하려 한다. 이러한 딸들의 모습을 리어는 온갖 짐승 이미지를 통해 묘사하고 비난한다. 딸들의 대결에서 패한 리어는 이제 자신이 남성의 권위를 상실하고, 여성화되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눈물을 흘리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건 바로 여성화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고 한다. 전통적인 사회가 남성 중심이기는 하지만 남성은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조되고 실천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우월한 남성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인식이 있다. 즉 남성은 여성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적으로 남성은 여성인 어머니의 모태를 두려워하고, 결국 구덩이, 커다란 아가리 같은 것들로 상징되는 그 모태로 다시 삼켜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딸들에게 배신당한 후 리어가 딸들에게 쏟아붓는 저주는 여성의 모태에 대한 저주나 여성의 가장 전통적인 기능인 자손 번식에 대한 저주로 초점이 모인다. 리어는 고네릴이나 리건을 향해 자연의 여신이 그들의 자궁에 불임을 가져다주고 모태의 씨를 말려버려 달라거나, 독기로 가득 찬 대기가 그들의 자식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천둥과 번개에게 인간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씨앗을 박살 내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리어의 저주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의 표현이다. 남성이 위험한 여성에 의해 모독을 받는 모습은 글로스터 백작이 리건에게 남성성의 상징인 수염을 뽑히는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리어의 비극은 한 개인의 또는 한 아버지로서의 비극이고, 한 국가의 군주로서의 비극이며, 맹렬 여성에게 내몰려 실성의 상태에 이르는 남성의 비극이다.
3. 현명한 바보 어릿광대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은 어릿광대(Clown)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바보(Fool) 또는 어릿광대(Clown)라 불리는 인물을 등장시켜 재치 있는 농담 구사를 통해 단순한 웃음 이상으로 현상의 이면까지 꿰뚫는 통찰력을 과시하게 한다. 어릿광대라는 인물은 보통 주인공에 고용되어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인공과 주변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인물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 예리하고도 거침없는 대사를 구사해서 관객들의 작품 이해를 돕는다. 따라서 주인공의 깨달음은 어릿광대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광대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광대가 아니라 흔히 ‘현명한 광대’(Wise Fool)라 불린다.
<리어 왕>의 어릿광대 역시 이러한 역할에 충실하다. 리어가 위의 두 딸에게 재산과 왕권을 다 나눠준 후부터 등장하는 어릿광대는 리어 옆에 늘 붙어다니며 리어의 우매한 행동을 끊임없이 지적한다. 어릿광대는 어리석은 리어를 오히려 자기보다 더 한심한 어릿광대 또는 바보라 놀려대고, 달걀 껍데기 반쪽을 왕관으로 쓰고 있는 사람이라 조롱하기도 한다. 그런 리어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자(Nothing)라고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 작품의 주제 중의 하나인 ‘무(Nothing)’의 의미를 예시해 주기도 한다. <리어 왕>의 어릿광대가 다른 작품의 광대보다 특이한 점은 막내딸 코딜리아와 여러 면에서 연결된다는 것이다. 코딜리아가 프랑스로 떠나면서 무대에서 사라지자 곧바로 어릿광대가 등장하고, 3막 6장에서 어릿광대가 잠깐 낮잠 좀 자고 오겠다며 무대에서 사라지면, 이내 4막 4장부터 코딜리아가 다시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어는 코딜리아의 시신을 안고 “나의 불쌍한 어릿광대가 목 졸려 죽었구나” 하면서 울부짖는다. 아마도 추측건대, 극단의 많지 않은 배우 수를 고려해서 셰익스피어는 코딜리아 역과 어릿광대 역을 같은 배우에게 맡길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 두 인물이 같은 장면에서 겹치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인물의 역할의 유사성을 염두에 두면 1인 2역 구도는 편의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코딜리아와 어릿광대는 리어의 총애를 받는 인물들로 리어의 우매함을 지적하고, 깨우쳐서 리어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코딜리아는 첫 장면에서 리어의 어리석은 효심 경쟁을 거부한다. 그 이후 등장하는 어릿광대는 리어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꼬집고, 어릿광대에 이어 다시 등장한 코딜리아는 상처 입은 리어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결국, 어릿광대와 코딜리아는 리어의 마음속과 바깥에 함께 존재하는 이중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