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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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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09월 28일 리뷰 총점9.2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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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09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46g | 128*205*20mm
ISBN13 9788932029085
ISBN10 8932029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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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 권의 시집『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공부하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 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10월 3일, 독일에서 투병 중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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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 모든 시간의 ‘사이’를 둘러싼 상상력과 질문들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를 출간했다.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물론 보다 아득한 세월이 시인과 함께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어느덧 시력 30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1992년에 독일로 건너가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햇수로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대부분 돌아오지 않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무참한 예감 속에, 대체 “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 다녀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눈」) 스스로 묻고 다녔던 이국의 거리와 광장과 역에서 씌어진 시들이다.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몸은커녕 삶도 추상화가 아니어서”(「오렌지」) 쓰리고 아린 고독의 시간들. 시집을 열면, 차마 “그냥, 세월이라”(「네 잠의 눈썹」) 하고 지나치기엔, 묻고 싶은 말들이 넘쳐 연신 쌓여가는 그 시간의 내력 속에 한 발 한 발 들이게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부분

“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시인의 말)은 어쩌면 내 삶에서조차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으로 우리 모두의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동(空洞)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한때 생생했던 그 모든 생과 기억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남아 있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내기란 영영 불가능할 터. 시인은 “토해놓은 사랑과 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 생에 대한 감각을 다시 시간의 감각으로 옮겨놓는다. 삶도, 사랑도, 기억도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지독한 봄날의 일/그리고 오래된 일”(「오래된 일」)이라고. 남은 우리는 그 ‘오래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름 불러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비추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눈앞에 타들어가는 포도나무를 바라보며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과 뼈아픈 시간에 대한 쓸쓸한 질문을 보태는 일이 ‘장례’와 ‘애도’ 그리고 ‘어루만짐’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전문

“잘 가, 라고 말하는 순간”
깊숙한 고요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영혼의 이름들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은 그의 실존적 몸과 영혼의 기억을 한껏 확장시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를 한데 불러 모은다. 그렇게 ‘내 속의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 계집아이와 고아’, 다시 ‘내 안의 노인과 신생아와 태아’의 중얼거림이 “고요한 연”처럼 이어지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며 “기별의 기척”을 건네고 헤어진다.(「빙하기의 역」)
시간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여러 겹의 계절을 소환하는 일도 허수경의 시에서는 독특한 이름과 무늬를 낳는다. 밤과 새벽의 틈새에서 열매 맺은 모든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딸기」), 시인은 ‘아주 영영 익어버린 환한 봄빛’을,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가는’ 지난여름의 꿈을(「레몬」),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으로 눈치채는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을(「자두」), 그리고 ‘그대 영혼 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한 욕망과 가을의 살빛’(「호두」)을 동시에 꿈꾼다.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앞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이 가을의 무늬」 전문

“아무도 그 심장을 거두지 않던 오후여”
삶의 지반을 뒤흔드는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한편, 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계속해서 ‘무엇이었을까’ 묻고, 살아남은 우리만이라도 쉬지 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네자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남자들은 울면서 밤하늘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하늘에 구멍이 뚫릴 때 청년이 아직 가슴에 피를 흘리며 우주의 난민이 되어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죽음의 관광객」 부분

이 거리 처음 본다
이 건물들 본 적 없다
이 사람들 모른다

그들은 내가 여기에서 이십여 년째
살고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 같다

국경을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들 속에
강도들과 테러리스트들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천년 전에 지어진 수도원을
내가 어제 폭파했다고 했다
그 수도원에는 이 지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방언들을 모은 자료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말들을 함께 폭파한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집에만 있었는데!
천년을 살아도 낯선 내 그림자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는데!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
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다
- 「카프카 날씨 1」 부분

얼굴에 먼지와 피를 뒤집어쓰고
총 쏘기를 멈추지 않던 노인이여
붉은 양귀비꽃이 뒤덮인 드넓은 들판이여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터지던 지뢰여
종으로 팔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던 소녀들이여

이 이상하게 빠른
이 가벼워서 낯설디낯선 시간이여
-「카프카 날씨 2」 부분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일은, 남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서로를 베끼는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이 시작된다면, 그 상상력조차 이런 질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
위로는 불가능하지만, 불가능에 대한 노래는 다른 시간의 잠재성에 가닿는다. 시는 그 시간이 다시 올 거라고,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혹은 오래전 그 순간이 영원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저 뼈아픈 불가능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대면하게 한다. 영원성은 미리 주어져 있지 않으며, 시간을 지배하는 단일한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오래된 시간의 영혼은 시적인 이행의 순간 탄생한다. 또 다른 시적인 시간이 도래하는 그 순간,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애도는 시간의 고독을 둘러싼 미래가 된다.” ―이광호(문학평론가)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부분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
자연을 과거 시제로 노래하고 당신을 미래 시제로 잠재우며 이곳까지 왔네 이국의 호텔에 방을 정하고 밤새 꾼 꿈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낯선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얼굴에 켜지는 가로등을 다시 꺼내보는 저녁 무렵

슬픔이라는 조금은 슬픈 단어는 호텔 방 서랍 안 성경 밑에 숨겨둔다

저녁의 가장 두터운 속살을 주문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들리는 골목 토마토를 싣고 가는 자전거는 넘어지고 붉은 노을의 살점이 뚝뚝 거리에서 이겨지는데 그 살점으로 만든 칵테일, 딱 한 잔 비우면서 휘파람이라는 명랑한 악기를 사랑하면 이국의 거리는 작은 술잔처럼 둥글어지면서 아프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이국의 호텔」 부분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바람의 혀가 투명한 빛 속에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나 혼자 노는 날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왔다

나는 춤추는 중
얼굴을 어느 낯선 들판의 어깨에 기대고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나는 춤추는 중」 전문

[시인의 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2016년 가을 허수경

[뒤표지 글(시인의 산문)]
어느 기차역, 노숙자는 낡은 시집을 읽으며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면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시집 제목을 훔쳐보았다.

『불가능에게로』

시인의 이름은 너무 희미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기차는 철로에 앉은 비둘기들을 몰아내며 들어왔고 비둘기들은 도시의 눅눅한 하늘로 흩어졌으며 나는 기차를 탔다. 차창 너머로 보랏빛 시집 제목이 보였다. 내 목적지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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