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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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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히틀러에 대한 유일한 내부 보고서

알베르트 슈페어 | 마티 | 2016년 06월 24일 | 원제 : Memoirl by Albert Speer 리뷰 총점7.5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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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6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896쪽 | 1,285g | 152*225*45mm
ISBN13 9791186000342
ISBN10 118600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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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05년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가 테세노의 조교로 일하던 무렵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접하고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개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대 연출로 히틀러의 눈에 띄어, 이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주요 도시 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총리 청사를 건설하는 등 ‘히틀러의 건축가’로 활약했다. 1942년 3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군수장관 ... 1905년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건축가 테세노의 조교로 일하던 무렵 히틀러와 민족사회주의 이념을 접하고 나치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개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무대 연출로 히틀러의 눈에 띄어, 이후 베를린을 비롯해 독일 주요 도시 개발 계획을 입안하고, 총리 청사를 건설하는 등 ‘히틀러의 건축가’로 활약했다. 1942년 37세의 나이로 최연소 군수장관 임명되었으며, 제국의 2인자로 불릴 만큼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다.
종전 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괴링, 히믈러, 로젠베르크, 카이텔, 리벤트로프, 슈트라이허 등과 함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슈페어는 나치 지도부의 집단 책임을 주장하며 연합군 검사 측으로부터 ‘최고의 피고인’, ‘선량한 나치’로 불렸다. 빼어난 자기변호와 죄를 시인하는 태도로 20년형을 선고받아 나치 독일의 장관으로서는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했다.
메모광이었던 슈페어는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편지, 일기, 업무일지 등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살려 회고록을 작성, 1966년 출소와 동시에 Erinnerungen라는 제목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81년 영국 방문길에 올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역자 : 김기영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KBS1 라디오 외신 캐스터로 활동했으며, 중앙대학교 번역대학원 강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bk21 영상번역사업단 계약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전임대우강사이다. 옮긴 책으로 『낯선 밤의 그림자』 『난쟁이』『비버족의 표식』 『사랑』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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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이 책은 2007년 출간된 《기억: 제3제국의 중심에서》의 개정판입니다.

“만약 히틀러에게 절친이 있었다면, 바로 나일 것입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했던 제3제국(1933~45)의 핵심 세력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다. 선전장관 괴벨스, 나치 친위대 창설자 힘러, 게슈타포 창설자 괴링 등이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제국의 실세로서,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가해자로 수없이 언급되어왔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슈페어가 이들만큼 세간의 호기심을 끌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꽤나 ‘정상적인’ 인물이었고 히틀러 주변에서 매우 드문 지식인(괴벨스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이었다.
슈페어는 히틀러가 이룩하고자 했던 세계를 그대로 구현시켜줄 총애 받는 예술가로 활동하다가, 전시 중에는 유능한 군수장관으로 일하며 결과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연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틀러가 정치적 입장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았을 겁니다.”
슈페어는 만하임의 전형적인 중산층 부르주아지 집안에서 1905년 태어났다. 비판적 언론 [프랑크푸르트차이퉁]이나 [유겐트]를 목 빠지게 기다렸던 그의 아버지는 강력한 사회 개혁을 주창하는 사상에 동조했다. 지루하게 이어졌던 제1차 세계대전은 이 지식인 부르주아지 가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슈페어는 타이어를 구하기 어려워 멈춰져 있던 바캉스용 차량이나, 집에 드나들던 장교들의 초대로 구경했던 비행선 체펠린과 함께 1차 대전을 떠올린다. 문제는 전후였다. 패전 이후 독일은 엄청난 인플레이션, 정치적 무질서에 빠져든다. 젊은이들은 여러 사상가들에 환호하며 열정적이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었다. 진보적이었던 이들도 남몰래 나치당 가입서류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강력한 질서에 매혹당했다. 그는 회고한다. “위대한 건물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면, 파우스트처럼 영혼이라도 팔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은 것이다. 히틀러는 괴테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공식적으로 히틀러의 ‘위대한 건축 과업’을 위임받았습니다.”
히틀러는 총리 청사나 관저 설계도를 직접 그릴 정도로 건축에 열정을 쏟았다. 베를린 도시계획이나 뉘른베르크, 뮌헨 재건 계획에 세세하게 관여했고, 현장 시찰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파리와 빈을 도시계획의 기본으로 삼았다. “베를린은 큰 도시야. 그러나 진정한 대도시는 아니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리를 보라고. 아니면 빈. … 우리는 반드시 파리와 빈보다 멋진 도시를 건설해야 하네.”(120쪽)
그러면서도 히틀러는 두 도시보다 더 크고 웅장한 도시를 만드는 데 열을 올렸다. 그가 베를린에 세우고자 했던 개선문의 크기는 198미터 지경의 돔에 100미터 높이였다.(비용은 최소 1억 6,000만 제국마르크로 예상되었다.) 이에 슈페어는 “놀라운 것은 그 건물들의 웅장함이 아니라, … 승리를 기념하는 건축물에 집착했다는 사실이다. … 오로지 전쟁으로만 가능한 제국의 승리를 표현하는 건물을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생각하면, 불길한 충격으로 다가온다”(120쪽)고 쓰고 있다.
히틀러의 건축적 열망은 전쟁 중에도 꺼지지 않았다. 수백만 마르크를 들여 잘츠부르크의 쓰러져가는 클레스하임 성을 고급스러운 게스트하우스로 고치는 공사를 진행했고, 전후 히틀러를 위해 지어질 건물들을 장식하는 데 쓰일 러그와 태피스트리는 차질 없이 생산을 계속하도록 했다.

“우리는 지금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1942년 4월은 독일의 전세가 뒤집힌 전환점이었다. 패색이 짙어지면서 히틀러는 판단력을 잃어갔다. 그는 적의 정보기관이 실제 목표 지점에서 엉뚱한 곳에 병력을 배치하도록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주장하곤 했다. 슈페어가 시찰을 돌며 찍어온 피난민 행렬 사진도 히틀러는 못 본 척했으며, 패배한 군인은 “피 흘리며 죽어가 전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까지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히틀러는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보고조차 들으려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전세에 대한 일반화와 결론을 내리는 일을 금지하겠소. 그것은 나의 직무요. 앞으로는 전쟁에 패배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낼 시에는 누구든지 반역으로 간주하겠소.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지 않고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처벌이 돌아감은 물론이오!”(673쪽)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는 슈페어의 보고서를 본 히틀러는 이후부터 슈페어를 무시했다. 이렇게 참모진의 입을 막은 나치 지도부는 언론을 장악해갔다. 공공연하게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비밀병기’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선전장관 괴벨스의 작품이었다. “상황의 회복”과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라는 구호와 함께 ‘비밀병기’가 있다는 환상은 일부 지도부뿐 아니라 대중의 눈과 귀를 막았다.
이 와중에도 부패한 나치 지도부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은 ‘온갖 이유’로 큰 집과, 사냥 별장, 농장과 궁전, 많은 고용인, 풍성한 만찬, 최고급 와인 셀러를 필요로 했다.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1944년 생일을 맞은 괴링은 지금까지처럼 화려한 파티를 주최했다. 전쟁 통에 큰돈이 어디에서 났을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주 의회는 매년 괴링의 생일선물 비용으로 수천 마르크를 전달했다. 전쟁 물자는 부족한 시점에서도 군수 물자 개발과 생산에 부족한 노동력은 지도부의 안위를 지키는 데 유용되었다.

“엄청난 월급을 받는 우편배달부들 같으니!”
항복 선언 후 체포된 슈페어는 다른 1급 전범들과 함께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의 법정에 선다. 기민하고 뛰어난 듯 보였던 제국의 각료들은 그러나 법정에서 그저 비겁한 멍청이 행세로 책임을 면하려 애썼다. 자신의 서명이 들어 있는 서류가 제시되면 무조건 히틀러의 명령이었다고 설명한 지도부를 향해 슈페어는 고함을 지른다. “엄청난 월급을 받는 우편배달부들 같으니!”
변명으로 일관하고 히틀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다른 피고인들과 달리, 슈페어는 제3제국의 지도부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후 오랫동안 회자되는 ‘자기변호와 반성이 매우 영리하게 뒤섞인 피고인 증언’을 시작한다.

“정치인에게는 개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히틀러에 관한 가장 내밀한 묘사’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대로 《기억》은 매 쪽마다 내부자가 아니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에피소드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히틀러의 건강염려증과 사이비 의사에 대한 맹신, 기이한 식생활과 반려견에 대한 애정, 사치스러운 히틀러의 애인으로 알려진 에바 브라운의 속사정, 독특한 옷차림을 선호했던 괴링의 취향, 더할 나위 없이 부패한 나치 정권의 이면 등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전모 역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슈페어는 “나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경고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슈페어의 자기반성은 자기변명일 뿐이라는 비난은 여전하다. 단순히 그가 교수형을 면해 못마땅해서는 아닐 것이다. 슈페어는 나치 정권을 유지시키고 제2차 세계대전을 연장시킨 권력자였고, 동시에 철저히 나치당 당원으로서 활동한 괴벨스나 악의 고리 끝에서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며 홀로코스트를 거리낌 없이 자행한 아이히만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뒤늦은 반성과 참회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슈페어는 목숨을 부지했고, 우리에게 제3제국의 속살을 살펴볼 기회를 남겼다. 모든 악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더미 위에서 책임과 반성을 외친 그를 어떻게 판단할지, 선량한 나치로 기억할지 아니면 잔악한 전범으로 기억할지는 오롯이 역사의, 그리고 독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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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감* | 2022-07-06

이차대전과 나치 독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알베르트 슈페어. 슈페어는 독일의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예술욕을 채워준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20년 형을 선고 받은 슈페어가 출소 직후인 1966년 발표한 회고록으로, 원제는  'Erinnerungen (기억)'이다. 밀덕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지가 인생의 반을 넘겼는데, 지금껏 읽은 회고록 중 가장 알찬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히틀러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자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했던 이의 회고록이기 때문. 괴링, 괴벨스, 힘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모두 자살하거나 형장의 이슬이 되어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더불어 슈페어 개인의 삶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편. 그저 무명 건축가였던 한 젊은이가 끝내는 독일국의 장관 위치에 올랐으니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하겠다.

이 전쟁의 기이한 점 가운데 하나로, 히틀러가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루스벨트보다 자국민에게 요구한 바가 훨씬 적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조차 모든 노동력의 총동원령이 내려진 반면, 독재국가였던 독일에서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민심이 흩뜨려질까 두려워하는 독재 정권의 불안을 잘 드러내준다. 독일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혹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적당히 타협해 국민의 사기를 최고 상태로 유지하기만을 원했다. 히틀러와 그의 정치적 동지들은 군인으로서 1918년 11월 혁명을 목격했고,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 히틀러는 사적인 대화에서 1918년 혁명을 경험한 이후 모든 일에 너무도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돈이 소비를 위해 지출되었다. 처칠은 국민들에게 오로지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했던 반면, 히틀러는 전쟁이 다양한 국면을 맞거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외쳐댔다. 정권의 취약점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이하 기억)'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단락은 이 부분이었다. 막연히 서슬 퍼런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들을 옭아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민주주의 체제와의 태생적 차이로 인해 전국민적 동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니 상당히 의외의 모습. 오히려 그들의 숙적인 소련과도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탈린이 대조국 전쟁이란 미명하에 사관생도부터 여학생까지 가리지 않고 전선으로 내몰고, 노동자들을 우랄 산맥 너머로 강제 이주시킨 것을 상기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군수장관으로 임명된 나는 시작부터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오류와 실책을 거듭 발견했다. 모순이지만 히틀러 자신도 전쟁 기간 중에 이런 말을 반복했다. "이번 전쟁에서 지는 쪽은 가장 큰 오류를 범한 쪽일 것이다." 히틀러의 연속된 오판이 생산 능력을 떨어뜨렸고, 지고 있던 전쟁의 종말을 앞당겼다. 예를 들어 그는 영국 공습작전 때도 혼란스러운 판단을 했다. 전쟁 시작부터 U-보트는 부족했다. 전체적으로 전쟁 전반에 대한 기획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숱한 독일의 기록들이 히틀러의 결정적인 실수를 언급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요소들이 아니었더라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하인츠 구데리안이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회고록에서도 지적하듯이 히틀러가 가진 전략적 식견의 부재 역시 기억에서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가지 놀라운 점이라면 슈페어가 히틀러를 만난 직후부터 독일이 독소 전쟁에서 패전을 향해 기울기 전까지 히틀러는 종종 전문가들도 생각치 못하는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슈페어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히틀러는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매우 기민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나 너무 쉽게 핵심에 접근한 나머지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치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발휘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황이 점차 좋지 않게 흘러가고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나치당의 수뇌부들이 보이는 반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특히 괴링이 그러한데,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괴링 역시 1942년 말 즈음에는 지친 기색이 뚜렷했다. 그를 위해 특별이 지어진 본부에는 히틀러의 벙커에서 사용되는 딱딱한 가구 대신 푹신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괴링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이 1933년도의 국경을 유지할 수만 있어도 춤을 추겠네." 그는 재빨리 진부하고 긍정적인 말을 덧붙여 방금 한 발언을 번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발뺌에도 불구하고, 괴링은 패배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하는 듯 보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패배주의적' 발언을 성급히 내뱉고는 자신의 말을 주워담으려 애써 노력하는 괴링의 모습이 상당히 웃기다는 점. 여러 기록을 통해서 접한 괴링의 인격으로 능히 짐작 가능한 모습이라 어쩜 이리도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패전을 앞두고 점차 히스테리컬해지는 히틀러와 조금이라도 전쟁의 무게 추를 승리쪽으로 기울이려 동분서주하는 슈페어의 모습은 흡사 고전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분연히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부여받은 운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 허나 히틀러를 비롯한 지도층의 죄는 결국 독일 국민들의 피로써 씻게 되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일일 수 밖에.

명령 이행에 대해 정치인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자신이 정권의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데서 발생하는 집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의 통치자를 둘러싼 측근 인사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일련의 사태를 책임져야 합니까? 그러나 집단적인 책임은 세부적인 사항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에만 적용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독재 체제라 하더라도 지도자들의 집단 책임은 존재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마당에 그 누구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정권의 지도부는 분명 집단 책임을 열렬히 옹호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정권의 수장이 독일 국민과 세계 시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버린 이상 저에게 그 의무가 있습니다.

'기억'이 갖는 가장 큰 허점은, 대부분의 회고록이 그러하듯 교묘한 자기 변명과 윤색이 가득하다는 점. 물론 그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슈페어와 한번이라도 대립한 적이 있었던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천하의 비열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인리히 힘러와 마르틴 보어만인데 이들이 '기억' 전체에서 좋게 묘사되는 장면을 한점이라도 찾을 수 없다. 또한 슈페어 자신은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해 막연히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 실체에 대해 모르는 채로 나치 독일에 봉사했다고 서술되어있는데, 과연 그것이 진실일지는 오직 그만이 알 일.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친구로 산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엔 신빙성이 낮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전 동안의 독일 수뇌부에 대해서 이렇게 생생히 조명했던 책은 없으니 흥미가 있는 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본인 역시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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