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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03월 28일 리뷰 총점9.3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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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08년 03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60g | 128*205*20mm
ISBN13 9788932018492
ISBN10 893201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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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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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5

출판사 리뷰

제도와 문법의 두께를 꿰뚫고,
피 흘리는 붉은 몸의 소리를 다시 호출하는 ‘첫 시’들


치열한 이미지의 시인, 김혜순의 아홉번째 시집 『당신의 첫』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345번으로 출간되었다.
김혜순 시인은 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강력한 미학적 동력으로 역할해왔다. 한국의 여성시를 대표한다는 말도 그에겐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가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학이며, 김혜순 시학은 하나의 공화국”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광호는 여기에, “동시대의 여성 시인들이 김혜순 공화국의 시민이었으며, 특히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언술 방식과 김혜순 시학의 상관성은 더욱 긴밀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시집에 실린 「모래 여자」는 한 여자의 미라를 통해 여성의 삶을 되짚은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제6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것은 미당문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의 탄생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자신을 비우고, 자기 몸으로부터 다른 몸들을 끊임없이 꺼내온 김혜순의 시학은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며, 언제나 자기 반복의 자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같은 도형은 절대로 그리지 않는” 김혜순의 시는 그래서 어쩌면 늘 ‘첫 시’처럼 느껴진다. 그곳의 ‘첫 말들’의 내용은 새로운 이미지의 탄생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의 발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시집은 ‘당신의 첫’ 김혜순 시집이 될수도 있으리라.

‘사이’에서 만나는 ‘모래 여자’ 이야기
이번 시집에서 김혜순의 시와 만나는 지점은 ‘사이’이다. 이런 점에서 「지평선」이 시집의 처음에 놓인 이유는 명확해진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으로서의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몸이 갈라진 흔적”으로 남은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흰낮과 검은밤”의 사이에 김혜순의 시가 있다. 이것은 “핏물 번져 나오는 저녁,”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에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는 이야기이다. 그녀가 매가 되는 낮과 그가 늑대가 되는 밤,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그 “만남의 저녁”으로 들어가본다.
그 ‘사이’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김혜순 시의 화자이자, 동시에 시인 김혜순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두번째 시에서 나타난 「모래 여자」이다. 상한 곳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로 모래 속에서 들어 올려진 여자는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자를 보존하기 위한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신체가 훼손된다.
이제 그 ‘모래 여자’가 번쩍 눈 뜬다. 그리고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넒”은 “여자의 눈꺼풀 속”에 담긴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모래 여자’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갈갈이 찢어 세계의 곳곳, 광활하고 자유로운 자연에 두고, 현실에서 “밥하고 강의하고 이렇게 늙어”가는 존재이다. 때문에 현실의 시궁창 속에 살면서 그녀의 발은 “저 먼 산으로/늑대처럼 가버린다.”(「불가살」) 또한 이 여자는 출산과 절단의 상징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가위의 이미지를 가지기도 한다. 특히 자기 몸의 치욕을 씻어내기 위해 쏟아내는 거침없이 들끓는 에너지(이광호)로 표현된 붉은색 이미지는 김혜순의 앞선 시집 『한 잔에 붉은 거울』에서 전면화된 것으로, 이전 시집의 해설에서 이인성이 한 말처럼 “새로운 상상을 여는 색감으로 솟아오르고 있다.”(「붉은 가위 여자」)

‘첫’에 대한 질투에서 시는 다시 시작된다
표제작 「첫」에서 ‘나’는 “당신의 첫”을 질투한다. 무언가의 앞에 붙어서야 그것의 처음으로서의 성격을 만들어주는 관형사 ‘첫’은 죽은 명사들을 처음의 상태로 활성화하는 에너지 자체이다. 그래서 ‘첫’은 실체를 알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 때문에 ‘첫’은 지독한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첫’의 이름 안에는 ‘첫’이 살고 있지 않다. ‘첫’은 언제나 ‘첫’의 자리로부터 도주한다. 그래서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첫’은 ‘끝’과 같다.
죽음과 탄생이 맞물리며, 처음과 끝이 흔적도 없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김혜순의 시는 지배적 상징질서들이 만들어놓은 시적인 것들과 결별하고, 다시 그것을 게워내는 ‘첫’의 혁명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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