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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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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

고미숙 | 북드라망 | 2016년 05월 25일 리뷰 총점8.8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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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6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438g | 145*210*30mm
ISBN13 9791186851302
ISBN10 118685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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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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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gamidang.com)과 <남산강학원>(kungfus.net... 고전평론가.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gamidang.com)과 <남산강학원>(kungfus.net)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계몽의 시대 :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 『연애의 시대 :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 『위생의 시대 : 병리학과 근대적 신체의 탄생』, 『윤선도 평전』,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청년백수를 위한 길 위의 인문학 : 임꺽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고미숙의 로드 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등이 있고, 함께 옮긴 책으로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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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7장_ 트랜스 제너레이션 혹은 마주침의 윤리학」중에서

출판사 리뷰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
저자 인터뷰

1.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라는 이번 책 제목이 지금까지의 제목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부제도 좀 낯설고요. 제목과 부제를 이렇게 지으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1992년 미국 대선 때 클린턴진영이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죠. 책 제목은 그걸 약간 비튼 것인데요, 왜냐하면 지금 이 말이 우리시대의 주술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기업가, 언론인, 교육자 등 각계각층의 모든 이들이 틈만 나면 ‘문제는 경제’라고, 아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문제는 돈’이라고 외쳐 대고, 경제가 살아나면, 돈만 들어오면 만사형통이라고 하죠. 한때 저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인생을, 우리 삶을 생각해 보면, 정말 ‘돈’이 문제인지 의문이었어요. 우리 생활을 볼까요. 사실 역사상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웠던 적은 없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입만 열면 돈타령입니다. 저소득층이나 백수라면 이해합니다. 그런데 중산층도, 상류층도 그러고 있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얼마나 더 벌어야 ‘이제 충분해’라고 할까요? 아마 그런 순간은 오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의식주의 기본을 제외하고 돈으로 해결되는 일은 살아보니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살 수도, 마음을 치유할 수도, 운명의 비전을 탐색할 수도 없었어요. 돈으로 가능한 건 오직 소비와 상품뿐이었죠. 그것을 ‘길’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를 제목으로 삼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부제 ‘몸과 우주의 정치경제학’을 말하면… 사실 ‘정치경제’하고 ‘몸과 우주’를 이렇게 연결해 놓으면 조금 ‘뜨악’한 느낌이 있어요. 그렇지만 발음은 참 자연스럽죠. (웃음)
하나씩 이야기를 해 봅시다. ‘정치’와 ‘경제’ 모두 사실은 ‘사람살이’를 운용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사람살이’란 무엇인가, 그건 결국 ‘몸’의 문제이자, ‘마음’의 문제예요. 그렇다면 지금 현대인이 겪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몸과 마음’의 문제란 무엇일까요? ‘몸이 아프다’, ‘마음이 괴롭다’죠. 그 아픔과 괴로움의 내용은 또 무엇일까요. ‘관계’의 문제입니다. ‘관계가 잘 안 풀린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죠.
우리가 물질적인 부가 늘어나고, 제도가 잘 정비가 되고 뭔가 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가요? 사실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기보다는 더 복잡해졌어요. ‘불통’이 일어나는 것이죠. 개인과 제도, 개인적인 행복과 경제적 안정의 불균형 등, 다 막혀 있어요. 결국 부자가 될수록 ‘충만감’을 느끼기 보다는 더욱 결핍감이 심해지고 마는 상태죠.
결국 요지는 무엇인가 하면, 기준을 조금 바꿔봐야 해요. 제도의 개선, 경제적 번영처럼 몸과 마음 바깥을 어떻게 하는 것 외에도, 구체적인 삶(사람살이)의 현장인 ‘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몸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우주로,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가지고 ‘정치경제학’ 차원을 살펴보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선생님 스스로 ‘정치와 경제에 모두 문외한이고 관심도 없다’고 언급하신 바 있는데, 이렇게 정치와 경제에 관한 책까지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이건, 일단 80년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그때도 저는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다거나, 경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러지 않았을 뿐입니다. 지금하고는 다른 환경이었어요. 경찰이 매일 학교에 상주해 있고, 학교 밖에서는 최루탄 터지고, 백골단 피해서 도망다녀야 하는 그런 환경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닐지라도, 조건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 책을 보아야만 하는 환경이었어요. 19세기 시조 같은 걸 공부하더라도 문제는 어떤 ‘정치경제학적 세계관’ 속에서 하느냐가 문제였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런 시대를 통과해서, 그토록 원하던 직접선거를 하고, 주5일 근무가 안착되어 가고, 이렇게 저렇게 세상이 바뀌는 걸 보니 ‘아 원래 내 체질대로 살아도 되겠다’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는 분명히 예전에 아주 확고하게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믿었거든요. 왜냐면 그렇게 바뀌면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창조자랄까, 그런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믿었던 것들이 하나도 맞지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나 스스로에게 무언가 대답할 필요 같은 걸 느꼈어요. 이걸 그냥 이렇게 쑥 넘어가도 되나?, 나 스스로에게 무언가 대답을 해야 하지 않나? 같은 것이죠.

3. ‘스스로에게 대답해야 할 필요’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조금 순진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나는 고전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사람들이 그 풍요와 시간 위에서 책을 읽고, 영성을 탐구하고 할 줄 알았어요. (웃음) 그런데 그렇지가 않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일하고, 시간은 전보다 더 부족해지고, ‘노동의 소외’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하나도 나아진 게 없어요. 책을 읽는 사람은 더더욱 줄어들고 있고요. 문제가 딱 여기까지만 있느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그러다보니까 ‘관계’에 있어서는 문제가 더 심각해져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같은 문제들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죠. 이렇게 되리라고는 예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죠.
그래서 ‘전제’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질적 부가 늘어나고,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 도대체 어떤 경제적 토대 위에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자기 삶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는가, 나아가, SNS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째서 관계의 불통을 호소하는가 같은 문제들이요. 본능적으로 이걸 탐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것은 내가 과거에 가졌던, 지금은 멈춰 있는 세계관, 전제를 바꾸는 작업이고요.

4. 명리학을 가지고 현대의 정치와 삶을 풀어내신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중 “보수는 식상생재, 진보는 관인상생에 가깝다”고 말씀하신 부분을 좀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주명리학, 역학을 배운다는 것은 동양적인 우주론을 배우는 것이에요.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고요. 그러면, 그런 방법을 통해서 배운 자연의 운행법칙을 알면, 그 다음은 뭐겠어요? 인간사의 운행을 보는 것, 즉 ‘윤리학’이 나오는 것이죠. 내가 타고난 자연의 법칙이 사회와 만나 어떻게 펼쳐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운명이고요. 저는 명리학이라는 담론의 배치랄지, 패러다임이랄지 이런 게 되게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역술원에 가면 주로 무얼 물어볼까요? 재물, 관운, 연애운 이런 것들이죠. 애인은 언제 생겨요, 남편은 어디서 뭐하고 있나요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사실 이거는 무의식의 순환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이 먹고 말하는 등의 ‘활동’에서 그 다음으로는 축적하는 ‘재물’로, 그 다음에는 조직이나 그 안에서의 명예 같은 ‘사회적 관계’로, 그 다음에는 자기 탐구와 자기 생성으로 순환됩니다. 이걸 명리적으로는 ‘식상-재성-관성-인성’의 순환으로 보는 것이죠. 이게 너무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줘요. 이걸 머릿속에 넣고 자본주의를 보면, 자본주의는 끼와 재능, 능력을 펼쳐서 재물을 일구는 체계죠. 그러니까 이건 ‘식상생재’의 흐름을 띱니다. 이걸 흐름을 탄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고요. 이 속에 있는 사람은 체제를 견고하게 지키는, 이게 인생의 최고의 단계라고 믿는 사람들, 이른바 ‘보수’가 됩니다. 누구를 지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흐름을 견고하게 믿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의 화신이라는 의미에서 ‘보수’가 되는 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를 지지하고, 찍고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전체 흐름에서 보면, 이는 결국은 반半만 사는 모양이 됩니다. 그럼 이게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관성-인성’의 흐름을 타야 하죠. 이쪽은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믿어요. 그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명분’은 뭡니까? 너와 나를 넘어 지켜야 하는 공적 기준이에요. 즉, ‘관성’이죠. 사주명리학에서는 관성이 발달한 사람은 어디 가서나 사리사욕이 아니라 공적 명분을 내세운다고 봅니다. 그런데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내게 공적 기준, 진리가 있다고 믿으니까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이것(명분)으로 움직이고 싶어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공적 기준을 세우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탐구해야 하죠. 공부해야 하고. 사회와 존재에 대한 통찰로, 즉 ‘인성’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바로, ‘관인상생’이라고 본 것입니다.

5. “자본주의는 봄/여름만 알지 가을/겨울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이제 동양의 우주론은 시공이 맞물려서 돌아가는데, 특히 시간의 변화가 중요해요. 이를테면 ‘때를 알라’ 같은 말이 그런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죠. 때를 알아서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천지를 계속 관찰하고, 변화를 느껴야 하는 것이죠. 봄에는 피어나고, 여름에는 무성해지고,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걸 다시 ‘하루’로 옮겨서 보면,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봄 같은 시간, 활동을 펼치는 여름같은 시간, 그걸 거두는 가을 같은 시간, 그리고 씨앗으로 돌아가 잠드는 시간인 것이죠. 거두고, 돌아가는 시간에 무언가는 도모한다는 건 그래서 이상한 일인 거예요. 무슨 일이든지요. 동양적인 세계관에서는 이걸 24절기, 72절후, 5운6기 등의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죠.
이 사고 방식으로 제국의 역사, 왕조의 역사를 파악할 수도 있어요. 왕조가 열리고, 태평성대가 오고, 서서히 사그라지면서 난세가 찾아오는 식으로요.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전에는 이런 식의 상승하강, 태평성대가 오면 난세도 온다는 것을 확신했어요. ‘인간’의 생으로 이야기 하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늘 알고 있는 것이죠.
사실 ‘죽음’이야말로 완벽한 ‘증여’죠. 내 몸을 자연에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늘 죽는다는 걸 알고 살면 생애 전체를 소유와 축적, 증식에 올인 할 수가 없게 되요. 소유와 집착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항상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죠. 시작부터 자연에 대한 ‘약탈’로 출발한 것이어서 오로지 소유와 축적, 증식의 관점에서만 자연의 운행에 관심을 가져요. 거기에서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죠. 마치 부는 무한히 증식될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있으면서요. 사실 1870년부터 2008년까지 부는 계속 증식했죠. 그것도 ‘고도성장’을 했고요. 계속 성장할 거라고 믿었고요. 사실 지금의 경제 체제는 ‘성장하지 않으면 끝나는 체제’예요. 그런데 그 ‘성장’이 멈추고 말았죠. 인구도 그렇죠. ‘저출산 고령화’가 화두에요. 공장에 가서 일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문제가 아니라, 만들어도 살 사람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죠.
영영 활동하고, 증식하고, 축적하는 봄/여름만 지속될 줄 알았고, 그런 바탕 위에 선 자본주의 체제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6.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드러운 몰락’의 기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몰락이 필요하다는 것도 낯설고, 거기다가 ‘부드러운 몰락’이라는 말도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계속 성장할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계속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습니까. 강도에 따라 엄청난 추락을 할 수도 있고, 사뿐하게 고양이 낙법하듯 내려 탈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이 어떤 시기건 간에 다들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더 많아진 것은 분명하죠. 지금까지 하던 방식, 성장과 발전을 중심으로 계속 가면 결국 벼랑 끝에서 급정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태양의 후예]를 보면 벼랑 끝에 매달려도 살기는 하더만, 음…… 나는 조금 너무하지 않나 생각했어요.(웃음) 그렇게 될 거라고 상상하면 안 됩니다. 어쨌든, 그런 벼랑 끝에서 뒤로 돌아 나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결국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테고요. 성장, 발전을 전제로 하는 체제에서는 그런 형태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요. 발산만 있고 수렴이 없는 것이죠. 봄, 여름은 좋은 것이고 가을, 겨울은 나쁘다?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이제 때가 되었구나, 이제 수렴의 시간이 도래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멈춰야 할 때를 알고, 때에 맞춰 부드럽게 멈추는 것이죠.
그리고, 어쨌든, 올라갔으면 내려오는 일은 당연히 있는 것이죠. 내려오는 때를 지연시킬 순 있을지 모르지만, 내려오는 것은 필연이죠. 그러면 내려올 때는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무게 중심을 유연하게 산포시키는 게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내가 돈·노동·화폐와 그에 따른 쾌락에 의지해서만 산다면 무게중심을 옮길 수가 없죠. 그런 내려오는 것이 아니죠. 비류직하삼천척이라, 곧 추락이지요. 나를 지탱할 어떤 베이스가 필요합니다. 삶을 좀 더 넓고 깊게, 무게중심을 고양이처럼 골고루 배분하는 그런 기술이요. 그런 게 ‘몰락의 기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7. 이 책을 “백수는 미래다”라는 말로 결론 지으셨는데요, 백수는 흔히 불안정하고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는데, 그런 백수를 미래의 존재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아, 그건 일단 내 존재가, 대졸 백수, 뭐지? 박사 백수? 좀 이상하네요. 쩝. ‘박사 실업자’ 정도로 해두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최대 행운이었죠. 그게 사실 2008년까지는 나 혼자만의 소중한 비밀이었어요. ‘백수로 사는 거 너무 행복하다.’ 이런 거. (웃음) 그런데 어디 가서 말하기는 좀 위험하기도 하고,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서 정말 내 인생에 이런 봄날이 있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뭐, 고용불안정 이런 문제를 떠나서 직업이 있어도 불안한, 유동성이 엄청나게 커졌잖아요.
지난번에 알파고가 막 이슈가 될 때 신문기사를 봤는데, 안 없어질 직업에 ‘작가’가 있더라고요. ‘고전평론가’라고 쓰면 참 좋았을 텐데……. 여하튼, 직업 유동성이 엄청나게 커졌죠.
정규직이 대다수일 때, 또는 그나마 ‘정규직’이 희망이 있을 때 ‘백수’는 거기에 편입되지 못한 존재였지요. 암울했어요. 그런데 관점을 바꿔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말하자면, 직업을 이용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요. 이 직업을 가졌다가 멈췄다가, 혹은 이 직업을 가졌다가, 직업을 갖기도 하고. 과거라면 ‘장인’이나, ‘숙련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정말 많았는데, 요즘은 디지털화 되면서 노동이 평준화되어가고 있잖아요. 이 과정들이 점점 심화되면 아마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평생직장이 꼭 필요한가?’하고 말이죠.
특히 요즘 20대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평생직장을 원한다기보다는, 한 10년 무얼 하고, 그 다음에 여행하고, 그 다음에 자영업을 해야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느껴요. 그러려면 뭐가 필요하냐 하면 직업에 대해서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경제나 노동이나 화폐 이런 것들이 삶을 80~90% 이상 규정한다는 믿음을 깨는 능력인 것 같아요. 저의 오랜 백수생활에 비춰보면, 진짜 뭘 먹고 사나 싶다가도 어떻게 먹고 살아져요. 돈이 절묘하게 돌죠. 고정직업을 가져야 돈이 생긴다, 연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20세기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고요. 돈은 돌고 있다, 그러면 나는 거기에 적절하게 접속을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해 보는 거죠.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면 뭐가 중요할까요? 인맥입니다, 인맥. 역시 인맥이 중요해요.(웃음) 우리 연구실 백수들도 그렇게 알바를 못 구하다가 와가지고 인맥이 생기면, 백수들끼리 서로 알바를 소개해줘요. 그래가지고 다 와서 공부하러 왔다가, 다 알바로 취업을 했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정보의 메신저라는 게 그런 거죠. 그러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 이게 바로 ‘정치경제학’의 핵심이에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괴롭다기보다는 고립감하고 이 외로움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죠. 그런데 이걸 돌파를 못해요. 왜냐하면 사람이 무서워서. 그냥 이건 신체적으로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몸을 알아야 하죠. 그냥 성격을 바꿔, 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요.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고립감, 이 사무치는 고독감에서 벗어나고, 여러 갈래로 사람들과 연결되면 그 연결된 통로를 통해서 경제적인 것들이 함께 흐르게 되어 있어요. 말하자면 ‘백수의 노하우’가 생기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에 대한 이해든, 뭐 우정이든, 지성이든, 철학이든 삶을 좀 통째로, 총체적으로 보는 어떤 시선이 필요합니다. 교육, 직장 내 관계, 마을 제도나 시스템, 이런 것들이 다 바뀌어야 하죠. 인류가 도달해야 할 새로운 혁명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리고 또 하나. 그 과정에서 ‘고령화’ 문제도 해결이 되요. 고령화가 두려운 건 정규직을 기준으로 삶을 규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규직에 못 들어가면 거기서 박탈감이 생기고, 결혼도 못해, 결혼을 해도 가족이 해체되고 이런 식이 되고 말죠. 60대 이혼을 보면 잘 이해가 되요. ‘왜 이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혼을 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이혼하는 부부가 많아졌어요. 결국은 무슨 문제냐 하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 배우자, 평생 날 책임질 배우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보증 같은 것이 문제에요. 그걸 어떻게 보증을 하나요? 보증할 수 없어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여서 이미 몸이 바뀌고, 그에 따라 다른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으니까요. 그런 ‘보증’이나 ‘보장’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원래 유전한다는 것, 삶은 변해가게 마련이라는 것을 터득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가족 관계가 삶의 전부라고 하면 얼마나 삶이 위태위태한가요. 사실 가족은 각자의 네트워크가 다 따로 있어요. 하루 중에 아주 짧은 시간만 만나고요. 어찌 보면, 참 만나기가 어려운 가정이 좋은 가정 같기도 하고. 그러면 만날 때 더 애틋해지니까.(웃음) 아닌 게 아니라, 같이 오래 있으면 뭔가 불화를 만들어 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겨요, 사람이라는 게.
이제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해보면, 어떤 모습을 상상하나요? 시간도 많고, 경제적 여유도 좀 있고 그러니까 대화도 많이 하고 막 사랑이 꽃이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헤어지고 싶죠. 결국 문제는 다시 인맥입니다. 좁디좁은 가족을 넘어서 마을, 그보다 더 큰 어떤 것, 이런 식으로 네트워크를 새로 짜야 하는 문제인 거죠. 회사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그 다음날엔 뭐 가족하고 보낸다고 치고, 그 다음날엔 또 가족하고 보내나요? 그럼 그 다음 날은? 그게 아니라, 그 다음 날부터는 동네에 있는 도서관, 평생 학습 센터 같은데 가서 바로 ‘학생’이 되거나, 혹시 청년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으면 그걸 하거나, 이런 식으로 돌아갈 곳이 있으면 정년이 두렵지 않죠. 이제는 뭐 상관들 뒷담화 안 해도 되고, 부하직원 눈치 안 봐도 되고, 기 싸움도 할 필요 없죠. 다시 학생이 되어서 책보고, 토론하고, 같이 밥 먹고, 이런 관계가 형성된다면 정년이 두렵지도, 혼자 남게 될까봐 두렵지도 않겠죠. 이건 제가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예를 이렇게 든 것이지만, 이것 외에도 각자 자신의 마음속으로 흐르는 다른 ‘관계’가 있다 하면 그걸 하면 되요. ‘노동’이나 ‘활동’에 대해서 유연해지는 것이죠.
내일부터 당장 만날 사람이 없고, 가족들도 나를 피하고, 그리고 할 일도 없고, 이건 뭔가요?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는 거죠. 이게 주는 막막함은 돈으로도 절대 해결이 안 돼요. 그럼 문제는 돈이 아닌 거죠. 다른 관계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고, 그건 청년 백수든, 노령 백수든 어쨌든 역사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백수가 해오던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백수는 미래’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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