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검색


어깨배너

3월 전사이벤트
모바일팝 모바일 5% 할인
에어프라이어 기획전
책보내기 결산
편의점픽업 500P 적립
L포인트 50% 캐시백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3월 상품권
남한산성
미리보기 공유하기
수상내역
소득공제 2007 제5회 올해의 책 선정도서

남한산성

김훈 | 학고재 | 2007년 04월 14일 리뷰 총점8.6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4점
편집/디자인
4.2점
회원리뷰(294건)
상품 가격정보
정가 13,000원
판매가 11,700 (10% 할인)
YES포인트
결제혜택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카드/간편결제 혜택 보기/감추기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 4천/8천원 캐시백 (5/10만원 이상 결제시, 누적금액 기준)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팝 5%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L포인트 L포인트 50% 캐시백 (2천P 이상 사용시 1천P 캐시백) 자세히 보기
페이코포인트 페이코포인트 1.2% 적립 (건당 1만P 이내) 자세히 보기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 본 도서의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
  • 현재 새 상품은 구매 할 수 없습니다. 아래 상품으로 구매하거나 판매 해보세요.

절판

수량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1/4
광고 AD

출판사 추천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7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74g | 128*188*30mm
ISBN13 9788956250595
ISBN10 8956250596

관련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2개)

책소개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저자 소개 (1명)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만든 이 코멘트

저자, 역자, 편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코멘트 쓰기
접수된 글은 확인을 거쳐 이 곳에 게재됩니다.
독자 분들의 리뷰는 리뷰 쓰기를, 책에 대한 문의는 1:1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책 속으로

--- p.93
--- p.231
--- p.218

줄거리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1636년 12월 13일 조정은 청의 대군이 청천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장계를 받고 술렁인다. 9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야 하는가. 분분한 논란이 이어지고 인조의 어가행렬은 황망 중에 강화행궁을 향한다. 그러나 이미 청군은 가는 길을 차단했다. 인조는 얼어붙은 송파나루에서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양주 석실에서 형 김상용이 보낸 급보를 받고 남한산성으로 출발한다. 송파나루에 닿은 그는 뱃사공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는데, 얼음길을 잘 아는 뱃사공에게 함께 남한산성에 들기를 청하나 뱃사공이 거절하고, 김상헌은 뱃사공을 죽인다. 한편 산성 안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대장간을 지킨다.

성 안은 춥고 식량은 모자라며, 말들은 먹을 풀이 없었다. 비와 눈이 모질게 내려 얼어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말들은 굶주려 죽는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는 삼전도에 진을 치고 성 밖을 둘러싼 채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엄두를 낼 수 없고 몇 명씩 유군을 편성, 암문을 통해 나가 소규모 국지전만 몇 차례 치르는 상황인데, 묘당에서는 항쟁을 주장하는 김상헌과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논쟁이 포화보다 뜨겁다.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던 임금은 최명길을 조용히 불러 화친의 길을 열어보도록 명한다. 최명길은 청군 진영에 가서 청의 조칙을 따를 것과 세자와 척화파 대신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고 온다. 마침내 칸이 당도했다는 소문이 성 안에 돌고, 묘당에서는 최명길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조정은 산성의 힘을 과장하는 격서를 만들어 성 밖의 군사들에게 돌리려 한다. 그들의 힘을 북돋우고 원군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첩첩 적진을 돌파해 격서를 전달할 사람은 없었다. 김상헌은 서날쇠를 찾아가 그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서날쇠는 격서를 돌리기 위해 성을 나간다.

새해를 맞아 인조는 세찬을 용골대에게 보낸다. 적들은 거절한다. 모욕을 당한 조정은 북문을 나가 청병을 공격한다. 무모한 도발로 오히려 조선 군사는 자멸하고 만다. 설날 아침 인조는 행궁 안에서 명나라를 향해 망궐례를 행하고, 칸은 망월봉 위에서 그 광경을 심상하게 지켜본다.

서서히 날이 풀리고 인조는 성을 나와 항복하라는 칸의 문서를 받는다. 그러나 신하 중 아무도 칸에게 보낼 답서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인조는 정오품 교리, 정오품 정랑, 정육품 수찬, 최명길을 불러 각자 글을 쓰도록 명한다. 어명을 받은 정육품 수찬은 못 쓰겠다는 글을 써 곤장을 맞고, 정오품 교리는 심장이 터져 죽고, 정오품 정랑은 선택되지 않을 글을 써낸다. 결국 최명길이 쓴 글이 적진으로 간다. 답서에 불만을 품은 청군은 남한산성 안으로 홍이포를 쏘며 겁준다.

이때 원손과 빈궁이 있던 강화도도 청군에게 함락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조는 성을 나서서 칸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로 결심한다. 끝까지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은 사직 상소를 올린 뒤 목을 매고, 인조는 1월 30일 새벽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칸에게 항복하는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가 진행된다.

관련 자료

인물소개
주화인가, 주전인가? 논쟁의 주역 5인

작가 김훈은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전제한다. 아울러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하지만 그가 되살린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탁월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살점이 붙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생생한 얼굴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인조仁祖 1595(선조 28)~1649(인조 27). 조선 제16대 왕. 1623년부터 1649년까지 재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에 의해 왕위에 올라 광해군의 중립 정책을 지양하고 친명배금親明排. 정책을 폈고, 그 가운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었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의 내란과 외침으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경제가 악화되었는데도, 주도권을 잡은 서인은 당쟁에 몰두했다. 청에서 서양 문물을 접한 소현세자가 오랜 볼모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죽자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를 사사하였다.
정치적으로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틈에도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여진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방 여러 곳에 개시開市하여 민간무역을 인정했다. 또한 군제를 정비하여 수어청 등을 설치하였다. 능은 장릉으로 경기도 교하에 있다.

영의정 김류金? 1571(선조 4)~1648(인조 26). 본관은 순천. 159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이렇다 할 중앙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지방관으로 전전했다. 인조반정의 공로로 병조판서, 대제학 등에 봉해지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부체찰사, 이후에는 도체찰사와 몇 차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지내며 인조시대 정국을 주도했다. 병자호란 때는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도체찰사의 임무 또한 소홀히 하여 비난받았다. 소현세자가 죽자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고 스스로 세자사世子師를 칭하였다. 1646년 소현세자빈 강씨의 옥사가 있자, 이를 반대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 1570(선조 3)~1652(효종 3). 본관은 안동. 1596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북인과 관계가 좋지 않아 이렇다 할 관직을 지내지 못하다가 인조반정 이후 대사간, 도승지 등에 올랐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으로 반정 주체들의 뜻에 거슬려 향리로 귀향가기도 했다. 정묘호란 때는 명나라에 가 구원병을 청하였으며, 돌아와 후금과의 화의를 끊고 강홍립의 관직을 복구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끝까지 척화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대세가 기울자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였으며, 식음을 전폐하고 자결을 시도하였다. 그 뒤 안동에 내려가 명나라와 의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뒤 두문불출하였다. 청에 의해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심양으로 끌려가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명분을 지킨 절개 있는 척화신으로 추앙 받았으며,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대로大老'라고 존경받았다.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 1586(선조 19)~1647(인조 25). 본관은 전주. 20세인 1605년에 생원. 진사시와 문과를 모두 통과하고 화려하게 중앙 관직에 진출했다. 북인들이 인목대비를 유폐하려 하자 반정계획에 참여하였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을 극복하는 데 크게 공헌하여 1632년부터 이조. 예조. 호조 판서와 예문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정묘호란 당시 후금과의 화의를 주도하여 많은 지탄을 받았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이조판서로 홀로 청과의 강화를 주장하여 조정에서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인조에게 깊은 신임을 받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주도하며 호패법과 양전.田의 실시를 주장하는 등 양란으로 피폐해진정국을 수습하였다. 임경업을 통해 명나라와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한 일이 발각되어 1643년 청에 끌려가 수감되었으며, 1645년 소현세자와 함께 풀려났다.

수어사 이시백李時白 1581(선조 14)~1660(현종 1). 본관은 연안延安.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형조. 공조. 병조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효종 때는 이조판서,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반란군을 격퇴하였고, 수원 방어사로 있던 정묘호란 때는 인조를 무사히 강화로 피신시켰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수어사를 맡아 주화론과 척화론의 논쟁 속에서도 묵묵히 산성 방위에 책임을 다하였다. 병자호란 뒤에 남한산성 재건작업을 담당했고, 소현세자 사후 봉림대군을 세자에 책봉하는 것을 반대하고 소현세자의 아들을 세자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다. 최명길과 함께 병자호란 뒤 상황을 수습하고 대동법을 실시하는 등 사회 안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일곱 번이나 판서를 역임하고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그의 집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아 그는 청빈한 삶의 모범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

“실천 불가능한 정의인가, 실천 가능한 치욕인가?”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김훈의 다른 글에서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남한산성』의 상징을 톺아보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병자년 겨울과 이듬해 봄, 조선 사직 앞에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이 포개진다.

“치욕을 기억하라!”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실천 불가능한 정의인가, 실천 가능한 치욕인가?”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김훈의 다른 글에서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남한산성』의 상징을 톺아보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병자년 겨울과 이듬해 봄, 조선 사직 앞에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이 포개진다.

“치욕을 기억하라!”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김훈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겨진 뜨거운 말의 화살들은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작가는 주화를 편들지도, 주전을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왜 ‘남한산성’인가?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회원리뷰 (294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293명의 YES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리뷰 총점8.6/ 10.0
내용 내용 점수 편집/디자인 편집/디자인 점수 정보 더 보기/감추기 내용
47% (137건)
5점
44% (128건)
4점
9% (26건)
3점
1% (3건)
2점
0% (0건)
1점
편집/디자인
38% (111건)
5점
47% (139건)
4점
13% (39건)
3점
2% (5건)
2점
0% (0건)
1점
연령대별 평균 점수는?
  • 10대 8.0
  • 20대 8.0
  • 30대 8.0
  • 40대 8.0
  • 50대 8.0
YES24에서 우수작으로 선정한 리뷰가 (2건) 있습니다.

한줄평 (19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문구/GIFT,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한광일 privacy@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친절상담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상품정보 문의 bookinfo@yes24.com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