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노트, 스타인벡의 연필… 창조적 영감을 선사하는 도구들
- 작가들이 사랑한 문구들의 특별한 이야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은 매일 아침 그날 사용할 딕슨 타이콘데로가 연필 여섯 자루를 뾰족하게 깎은 다음에야 일을 시작하곤 했다.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인벡은 작가 생활 내내 완벽한 연필을 찾아다닌 끝에 ‘종이 위에서 활강하며 미끄러지는’ 블랙윙 602에 정착했다. 헤밍웨이, 피카소와 같이 몰스킨 노트에 작품을 썼던 기행문학 작가 브루스 채트윈은 그 노트의 생산이 곧 중단된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평생 쓸 100권의 노트를 주문하러 나서기도 했다. 이들에게 문구는 평범한 소모품이 아니라 창작의 연료이자 작품의 일부였다.
저자 제임스 워드는 색인 카드에 짧은 글을 써두고 이리저리 퍼즐을 맞추듯 소설을 완성해나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노란색 리걸 패드에 작품을 써내려간 노벨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 포스트잇에 소설을 구상하고 완성한 이후에도 모두 스크랩해서 보관하는 윌 셀프 등 자신만의 도구에 애착을 가진 작가들과 그들의 특별한 문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연필 끝에서 생각이 탄생하는 경험과 손에 익은 도구들이 주는 안정감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연필, 클립, 볼펜, 포스트잇… 내 책상 위에 펼쳐진 흥미진진한 드라마
- 당신의 인생과 함께한 문구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스타빌로 형광펜의 납작한 모양은 계속되는 재작업에 화가 난 디자이너가 주먹으로 모형을 뭉개버리는 바람에 탄생했다. 그 납작 눌린 점토 모형에서 영감을 얻은 회사는 그대로 제품을 출시했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형광펜, 스타빌로 보스(BOSS)가 탄생했다. 포스트잇은 사용할 곳을 찾지 못하던 ‘쓸모없는 풀’이 우연히 메모지와 만나 탄생한 발명품이다. 발명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제품의 시장성에 회의적이었던 3M은 198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광고와 함께 미국 전역에 제품을 출시했다. 스펜스 실버가 접착력이 약한 풀을 개발한지 12년만의 일이었다. 소니의 워크맨보다도 뒤늦게 출시된 이 발명품은 이후 모든 사무실과 가정에서 만날 수 있는 제품이 되었다. 저자는 볼펜, 스테이플러, 클립 등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된 친숙한 사물들의 흥미진진한 역사와 드라마를 발굴해낸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던 짜릿한 순간과 한 시대를 풍미한 제품들의 숨겨진 이야기, 볼펜 끝이나 잉크에 압축된 정밀한 공학 기술들까지 풍성하게 소개하며 이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삶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다.
발명부터 진화, 문화적 변용까지 그가 소개하는 문구사(史)의 주요장면들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 문화사, 생활사, 산업사의 주요 장면들이다. 산업화와 관료주의, 사무실의 탄생과 함께 등장하여 이후 나치 점령하의 노르웨이인들에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던 ‘젬 클립(종이 클립)’,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대량생산되어 미국 전역의 사무실에 공급된 ‘딕슨 타이콘데로가’ 연필, 의무교육법의 시행과 함께 등장하여 미국 전역의 교실에 공급되고 그 상징적 지위를 기리는 조각상까지 제작된 ‘핑크 펄’ 지우개 등. 그는 일상적 사물이 된 문구들이 어떻게 발명되고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계 맺어 왔는가를 차근히 살피며 독자들을 흥미로운 문구의 세계로 안내한다.
“디지털 시대의 중심에서 아날로그를 외치다”
- 잊혀진 감각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문구의 재발견
각종 ‘스마트’한 기기들이 오래된 문구들을 대체해나가는 시대지만, 최근 캘리그라피나 컬러링북의 유행은 문구의 반격을 예고하는 듯하다. 손에 힘을 주어 획을 내려 긋는 기쁨, 종이를 한 장씩 넘겨가며 무언가를 읽어나가는 기쁨은 태블릿이나 랩톱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며 디지털 기반 생활이 강고해질수록 이런 감각과 기억은 더욱 소중해진다. 저자는 디지털 도구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더 희소해지는 ‘실재’에 대한 경험이 우리를 문구에 대한 사랑으로 이끈다고 이야기한다.
전구의 발명 이후에도 양초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양초에 어둠을 밝힌다는 본래의 기능에 더해 ‘로맨틱’한 물건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저자는 문구에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본다. 이메일보다 인간적인, 그리고 친밀한 것의 상징으로 말이다. 이 책 《문구의 모험》은 잊고 있던 소중한 기억과 감각을 되찾을 기회를 선물할 것이다.
추천사
* 제임스 워드 덕에 우리에게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문구에 관한 책이 필요 없게 되었다. -옵서버(Observer)
* 제임스 워드는 재치, 정신건강에 해로울 만한 집착, 순수한 애정을 모두 섞어 글을 쓴다. 여기, 문구 덕후들을 위한 고품격 포르노그래피가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The Financial Times)
* '블루택(Blu-Tack)' 활용법만큼이나 많은, 매력적이고 흥미롭고 시시콜콜하며 과학적인 문구 이야기다. -사가(Saga)
* 제임스 워드의 《문구의 모험》은 당신을 가을, 새 학기가 시작하던 바로 그때로 데려간다. 몰스킨 노트의 첫 페이지가 주는 상쾌한 만족감, 그리고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줄 펜에 관해 탐사하는 책이다. -보그(Vogue)
* 끝없이 매혹적이고 위트 있는 책 -숀 어셔, 레터스 오브 노트(Letters of Note)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