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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의 식탁

이기성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07월 15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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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13쪽 | 174g | 128*205*20mm
ISBN13 9788932027654
ISBN10 89320276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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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문학과사회』에 시 「지하도 입구에서」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채식주의자의 식탁』, 『사라진 재의 아이』, 평론집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 『백지 위의 손』 등이 있다. 2015년 제60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문학과사회』에 시 「지하도 입구에서」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채식주의자의 식탁』, 『사라진 재의 아이』, 평론집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 『백지 위의 손』 등이 있다. 2015년 제60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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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통스러운 일상을 마주하는 단정한 슬픔
텅 빈 존재들을 끌어안는 식물성의 세계

이기성의 세번째 시집 『채식주의자의 식탁』(문학과지성사, 2015)이 출간되었다. 2010년 『타일의 모든 것』 이후 5년 만에 묶는 이번 시집에는 2015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굴 소년의 노래」를 비롯한 55편의 시가 묶였다.

“이기성의 작품들은 비극적인 인생의 장면들을 영화화하는 동시에 문자화한다. 마치 기억의 허공에 떠다니다 소멸하는 이미지들을 콘크리트 바닥에 문자로 각인하듯이. [……] 때로 그로테스크한 동화적 상상력을 펼칠 때에도 그의 작품들은 환상적이면서 일상적이다. 환상을 이륙시키는 활주로와도 같은 이 구체적 일상성이, 일상성을 배제한 채 환상을 다루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이기성을 멀리 떼어놓는 듯하다. 거기에 그의 독자적인 시의 영역이 있고, 그가 걸어갈 개성화의 길이 있다.” (시인 최승호, 현대문학상 심사평에서)

삶의 황폐한 풍경을 마치 사진을 찍어내듯 자세하게 묘사하는 기법은 이기성 시인이 오래도록 추구해온 시작(詩作) 방식이다. 동시에 삶에 대한 ‘사회적 예각을 놓치지 않으면서 과도한 격정에 시를 넘기지 않는, 시대를 앓되 자신의 성량과 창법의 개성을 함부로 하지 않는, 분노와 슬픔을 지니되 단정함을 유지하는 자세’(시인 김사인)가 시인이 오래 유지해온 태도다. 시인은 1998년 『문학과사회』에 「새점을 치는 노인」 외 세 편의 시로 등단했던 당시부터 ‘삶의 폐허성을 철저한 세밀 묘사로 밀고 나가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시인’(문학평론가 정과리)이라고 평가받았다. 이후 2004년 출간한 첫번째 시집 『불쑥 내민 손』에서 시인은 죽음과 부패로 얼룩진 도시에서의 삶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하며 일상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균열, 고독함과 비루함 등을 깨닫는 아픈 각성을 포착해냈다. 객관적 세계가 시선의 주관적 ‘왜곡’을 통해 묘사와 진술이 뒤섞인 채로 특유의 (반)풍경으로 드러났던 이기성식의 표현법은 두번째 시집 『타일의 모든 것』에서 더욱 발전되어 잿빛의 현실을 대면하는 ‘불편한 열정’과 이런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 ‘무모한 용기’ 사이에서 적절한 원근법을 확보하기도 했다.
올해로 등단 17년차를 맞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좀더 원숙한 시선으로 파편적이고 익명화된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 시선 안에서 결핍의 영토를 떠도는 우울과 슬픔, 비애와 무기력 등의 감정이 구조화된다. 하지만 “후회를 알고 무한한 슬픔을 알고 슬픔의 글자를 쓸 줄”(「스틸 라이프」, p. 61) 아는 자기 이해와 실천을 통해 허무의 나락에만 머무르지 않고 부패된 것에 ‘말’과 ‘시’의 생명을 되먹임으로써 이기성은 새로운 시적 도약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먹다’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각성의 감자

그렇지, 이것은 감자다, 식탁 위에 어둑하게 놓인 이것. 당신이 오늘의 심장에 손을 푹 찔러 넣어 파낸 감자, 뜨거운 감자 말이다. 오늘은 감자를 먹는 날, 많은 서류가 바람에 날리고 프레스 기계에 잘린 것은 손가락뿐이 아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감자를 먹다가 감자처럼 목이 뚝 떨어질 때도 있는 것. [……] 새파란 눈물이 핑 돈다. 그렇지 이것은 감자다. 너의 검은 심장이 둥둥 울면서 먹어야 하는 것. 공손한 감자를 앞에 놓고서, 손을 맞잡은 채 모두 말이 없다. -「감자」 부분

이번 시집의 많은 수록작들이 ‘먹다’라는 동사를 포함하고 있다. ‘먹다’는 삶의 가장 최전선에 위치한 근원적인 행위지만, 최근에는 ‘먹방’ ‘쿡방’ ‘푸드포르노’ 등이 유행하며 원초적인 재미와 흥미를 자극하는 유희와 쇼핑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바라보는 자를 소외시키고 자본주의의 질서를 그대로 내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기성은 이러한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굶주림을 면하고 생존을 유지하는 장치로서 ‘먹다’의 절대성, 지폐 한두 장 값으로 그것을 제공하는 길거리의 약자, 꾸겨진 푼돈에 목숨을 거는 이들의 생명의지”(최현식 해설, 「노동과 식탁 그리고 연애시」)에 주목한다. 시인은 식탁 위에 낯설고 섬뜩한 것들을 올린다. “심장에 손을 푹 찔러 넣어 파낸 감자” “잘게 썰린 혀”(「2호선」) “어느 즐거운 날의 시체”(「육식의 종말」) 등이다. 이것들은 먹는 행위가 갖는 일상성마저 철저하게 전복시킨다. 특히나 위의 시에서 인용된 감자는 기계적인 노동에 지친 채 텅 비어버린 자아에 대한 냉정한 인지와 비판을 통해 겨우 덩이져온 생의 구근에 가깝다. 하루하루 자신을 마모시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예리한 문장들로 보여주며, 이기성은 우리를 자꾸 아프게 깨문다.


썩은 것들을 씹어서 새로운 생으로 빚어내는 시의 식탁

밤의 심장에 고개를 처박고 창백한 고백을 몰래 만져본다
조용히 침을 삼키며
이빨을 닦듯이 낡은 구두코를 닦고
커다란 검은 주머니 속에서
어제 죽은 새를
꺼내 보듯이

잿빛 돌멩이처럼 울퉁불퉁한 고백들

그리고 오늘의 만찬이 시작될 것이다
먼 곳에서 막 도착한 손님처럼 번쩍이는 강철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광활한 모국어의 식탁 위에서 덜덜 떨면서

커다란 접시 위에
당신의 잘린 목이
다정한 가족처럼 앉아 있을 것이다
- 「채식주의자」 부분

이 시집에는 두 편의 「육식의 종말」과 「채식주의자」 그리고 「채식주의자의 식탁」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합에서 익숙하게 예상되는 ‘육식의 종말’에서 ‘채식의 시작’으로 수렴되지 않고, 양자를 참과 거짓, 정상과 비정상, 폐기와 지향 따위로 구분하는 것을 시인은 거부한다. 문학평론가 최현식은 해설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는 어쩌면 양자를 구분하기보다 한자리에 올려놓고 육식의 ‘종말’을 관찰하고 의미화하는 편이 좀더 생산적일 듯싶다. 그리고 ‘종말’의 힌트는 “너의 시체를 먹을 때/흰 눈처럼 쏟아지는/말의 하루/혀 위에서 천천히 녹는 세계”(「육식의 종말」, p. 89)에서 찾아질 것이다. 그럴 경우 먹힌 ‘시체’(육식)의 종말은 “말의 하루”와 “혀 위에서 천천히 녹는 세계”를 통합한 ‘무엇’의 탄생, 곧 새로이 저작되어 소화(혁신)된 ‘시’의 창출이 가치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결국 육식과 채식을 구분하는 것보다는 식탁에 오른 부패된 존재들에 ‘시’의 가치를 부여하고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 주안점이었다는 것이다.

노파는 완두콩과 쪽파를 고요히 펼쳐놓았다. 쭈글거리는 손가락으로 식물을 다듬어 내게 권한다. 친절한 얼굴이 가득한 골목 노파의 식물들은 이상한 기침을 터뜨린다. [……] 노파는 자꾸 내게 쪽파를 완두콩을 권한다. 친절한 얼굴이 파도처럼 자라는 골목, 식물들의 시체가 고요히 썩어가기 시작할 때, 쪽파와 완두콩을 떨리는 두 손에 가득
- 「골목」 부분

이기성의 첫 시집 『불쑥 내민 손』에서는 지하철에서 졸다가 눈을 뜬 순간 구걸하는 노파의 손과 대면하게 되는 장면(「手」)이 있다. 여느 날과 같던 하루에 균열을 내는 순간이다. 말끔한 골목에서 쭈글쭈글한 노파가 건네는 채소들이 내뿜는 이상한 기침 또한 삶에 낯선 각성을 불러온다. 불쑥 내밀어진 완두콩과 쪽파, 너무나도 소소하고 비근한 식용작물들. 그러나 시인은 이것들이 가진 가능성, 이를테면 인간 너머의 자연으로 스스로를 밀고 나갈 줄 아는 존재라는 점에서 텅 비어버린 인간들을 채울 수 있을 마지막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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