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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와 이백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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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와 이백 시선

두보, 이백 저/최병국 편역 | 한솜미디어 | 2015년 04월 10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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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와 이백 시선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5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153*224*30mm
ISBN13 9788959594184
ISBN10 895959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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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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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3명)

두 보(杜甫, 712∼770)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 두 보(杜甫, 712∼770)는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 시단을 대표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는 본래 유가(儒家)로서 정치에 몸담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두보가 처한 시대는 당나라가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다가 안사의 난으로 제국의 붕괴 위기를 맞았던 때였다. 그의 생애는 크게 보아 755년에 발발한 안사의 난을 중심으로 전·후반으로 양분된다. 안사의 난 이전, 그는 당대의 다른 시인들처럼 독서와 유람으로 견문을 쌓아 착실히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735년 진사 시험의 낙제는 그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재차 유람에 나서는 한편 이백, 고적(高適)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746년 이후 두보는 거처를 장안으로 옮겨와 고위 관리에게 벼슬을 구하는 간알시(干謁詩)를 써서 보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생활이 10년간 지속되면서 두보는 점차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였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삶에 대하여 절감하기 시작했다. 755년은 그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였다. 그해 10월, 그는 10년 노력의 결과로 무기의 출납을 관리하는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曹參軍)이라는 미미한 벼슬을 받고 스스로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1월, 당 왕조를 거의 멸망시킬 만큼 파급력이 대단했던 안사의 난이 발발한다. 이후 두보의 삶은 전란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전개된다. 두보는 잠시 장안 근처 부주에 떨어져 살던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어린 아들이 먹지 못해 요절한 사실을 알고 참담한 마음으로 장편시 『장안에서 봉선으로 가며 회포를 읊어(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를 남겼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당시 귀족들의 사치와 서민들의 궁핍한 처지를 그렸으며 총체적인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했다.
이후 두보의 삶은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다. 전란의 와중에 현종(玄宗)은 사천으로 피난 가고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임시로 즉위한 사실을 알고 두보는 이를 경하하기 위해 영무로 가던 중 반군에 붙잡혀 장안으로 호송되어 얼마간 억류되었다. 이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봄의 전망(春望)』을 썼다. 757년 2월, 숙종이 행재소를 봉상(鳳翔)으로 옮겼을 때 두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을 배알하여 그 공으로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곧 반군 토벌에 실패한 방관(房琯)을 변호하다 숙종의 미움을 사게 되고 그것은 곧이어 파직으로 이어졌다. 화주사공참군(華州司功參軍)으로 좌천된 두보는 벼슬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진주(秦州)행을 감행한다. 두보의 대표적 사회시로 알려진 이른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이 이즈음에 지어졌다.

759년 두보는 진주에서부터 여러 지역을 전전하여 성도(成都)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두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초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나중에는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막부(幕府)에서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두보는 성도를 떠나 운안(雲安)을 거쳐 기주(夔州)에 이르게 되었다. 기주는 성도에 비해서도 더욱 낯선 곳이었지만 비교적 물산이 풍부했던 이곳에서 두보는 어느 정도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시가 창작에서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의 대표작으로 『가을날의 흥취(秋興八首)』를 꼽을 수 있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풍요로웠던 과거와 일순간에 일어난 전란을 지극히 미려한 언어로 수를 놓듯이 새긴 이 시는 율시(律詩)가 이룩한 미감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보는 기주 생활에 결코 안주하지 못했다. 중앙 정부에서 벼슬하리라는 희망을 끝내 놓을 수 없었기에, 768년에 협곡을 빠져나가 강릉(江陵)을 거쳐 악양(岳陽)에 이르렀다. 이후 그의 생활은 주로 선상에서 이루어졌고 건강이 악화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악양과 담주(潭州) 사이를 전전하다 뱃길에서 사망하였다.
시인 두보가 품었던 뜻은 시종일관 정치를 바르게 펼쳐 백성을 구원하는 데 있었으나 운명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전란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삶은 자기 한 몸도 돌보기 힘들만큼 곤란해지는 때가 많았다.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그의 꿈은 아니었으나, 역설적으로 상황이 열악해질수록 그는 더욱더 시인의 눈으로 피폐한 사람과 영락한 사물을 따뜻하게 돌아보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시를 썼다. 사후에 그에게 붙은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라는 칭호는 그의 고단하고 정직했던 삶에 대한 애도 어린 칭송이 아닐까 한다.
저 : 이백 (李白,태백太白, 이한림李翰林,청련거사靑蓮居士)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의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고 이 한림(李翰林)이라고도 부른다. 별칭으로 적선謫仙이라 불리기도 했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며 10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백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바로는 조적(祖籍)은 지금의 간쑤성 톈수이(天水) 부근의 농서현(?西縣) 성기(成紀)였으나, 수나라 말기에 부친이 서역으로 이사해 서안도호부 관할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이백을 낳았고, 부친이 다시 사천성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으로 옮겨 옴에 따라 이백 또한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725년(25세) 촉 땅을 떠나서 장강을 따라 삼협을 거쳐 강남 일대를 유람했으며 산동, 산서 등지를 떠돌며 도교(道敎)에 심취했다. 742년(42세) 도사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실현할 수 없자 3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장안을 떠나 다시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755년(55세) 안녹산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이백은 안휘성 선성(宣城)에 있었다. 57세에 황자(皇子) 영왕(永王) 인(璘)의 막료가 되었으나, 영왕이 권력 투쟁에서 패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이백도 역도로 몰려 강서성 심양(尋陽)에 투옥되었다. 송약사(宋若思)가 구명해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끝내 귀주성 야랑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 삼협을 거슬러 무산에 당도했을 때 특사를 받아 강릉으로 내려가며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을 지었다.

이후 노쇠한 이백은 금릉과 선성을 오가다가 당도(當塗) 현령으로 있던 친척 이양빙(李陽?)에게 몸을 의탁했다. 762년 병이 중해지자 이백은 자신의 원고를 이양빙에게 주고 「임종가(臨終歌)」를 짓고는 회재불우의 한 많은 한평생을 끝마쳤다. 우리에게는 당도에 있는 채석기(採石磯)에서 노닐다 장강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이 훨씬 더 익숙하다.

이백은 굴원 이후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당시의 민간 문예뿐 아니라 진한(秦漢)과 위진(魏晉) 이래 악부 민가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더구나 그는 도가에 심취해서 그의 시는 인간의 세계를 초월한 환상적인 경향 또한 짙다. 이백의 문장은 거의 모든 문장 형식을 망라하고 있어 그가 다양한 종류의 글에 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대붕大鵬에 비유하며 기상을 떨치고자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에는 호방하고 높은 기상이 빛나며 타고난 상상력으로 불후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남긴 시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인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미쳤으며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애송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MBA). 현대종합상사(기획부/해외지사).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시) 수료. 저서: 시집 『너와 내가 웃을 때』,시집 『동구 앞 느티나무』,편역 『두보와 이백시선』,번역 『기탄잘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MBA). 현대종합상사(기획부/해외지사).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시) 수료.
저서: 시집 『너와 내가 웃을 때』,시집 『동구 앞 느티나무』,편역 『두보와 이백시선』,번역 『기탄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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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두보와의 여행에 앞서

여러분은 1,200년 전 농경시대의 원시촌락을 오가는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요즘 같이 낭만 가득한 여행이 아니라 고난으로 점철된 절박한 삶의 여행입니다. 동행친구는 유명인사도 아니요, 높은 벼슬도 아니요, 부자도 아닙니다. 가족도 먹여 살리기 버거운 가난한 서생입니다. 벼슬을 얻으려 했으나 번번이 낙방하여 실의 속에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촌부입니다. 잠깐 미관말직을 얻었으나 곧 마다하고 굳이 유랑의 길을 갑니다. 친구는 여행 중 강산이나 인생을 노래하면서 유난히 사람을 많이 만나고 대화도 많습니다. 의지할 곳이 있으면 머물기도 하고, 술을 만나면 취해도 봅니다. 이따금 즐거운 시간도 갖고 잔치 대접도 받습니다.

깡마른 체구에 성격도 까다롭습니다. 불의를 못 참는 성품이라 부정을 일삼는 벼슬아치나 유지들에게 주접대지 못하여 여행길은 각박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전란으로 너나없이 피폐하여 어디 가나 살기가 고달픕니다. 가족이 있어도 가진 땅이 없으니 동서남북 전전합니다.장안에서 아내의 종친이 있는 봉선으로, 외삼촌이 있는 백수로, 부주의 강촌으로, 다시 장안으로, 화주로, 진주로, 동곡으로, 성도로, 재주로, 낭주로, 다시 성도로, 양자강을 따라 충주, 운안, 기주, 강릉, 공안, 악양으로, 상수를 따라 담주로, 형주로, 다시 담주로, 그리고 마지막 장안을 향하여 악양으로 가는 길에 미완의 생을 마감합니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끝내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타고난 체질이 약한데다 생활고에 찌들다 보니 병까지 얻어, 삶이 더욱 힘들기만 했습니다. 늘그막에 옛 친구나 친척을 찾아도 대부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도움받기 어려워 여정은 갈수록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상갓집 개처럼 되어버린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의기를 잃지 않은 꿋꿋한 모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시의 첫 부분인 절구는 식전 전채前菜로 삼고 율시 부분을 주된 메뉴로 하여 동일시기(참고표시)의 배율을 함께 감상하면 더욱 풍부한 여행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별표(*) 표시한 시는 좀 천천히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어디서든지 느긋이 쉬어가기 바랍니다. 주마간산으로 지나쳐버리면 숨은 보물을 놓치기 십상입니다. 느린 걸음으로 유유히 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그 시대 생활상의 화석을 볼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연민, 불의에 대한 의분, 생활고의 처절함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예나 지금이나 세상살이 근본이 변치 않음에 흠칫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동행친구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별 볼 일 없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 지나서 후배 몇 분이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300년 후 많은 후배의 환호를 받으며 역사에 다시없는 시성詩聖에 올랐습니다. 여행 중 남긴 시는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면서도 고답적 철학이 아닌 정직한 언어로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여, 읽는 이의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구절마다 해학적이면서도 섬세하고 꾸밈없는 표현은 천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좋은 글의 본보기로 전해집니다. 이런 연유로 오백여 년 전 세종께서 한글 창제 후 첫 서책으로 『두시언해』 편찬을 명하셨던 것이라 짐작됩니다. 이백은 두보가 살아생전 흠모해 마지않은 친구이자 스승이었습니다.

둘의 기풍은 서로 판이하지만 두보 시에서 가끔 이백의 문채文彩가 엿보이는 것은 둘의 의기가 가까웠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 두보는 풍류보다 현실의 삶을 읊으며 또 다른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두 시인의 서로 다른 경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백의 시 몇 수를 뒤편에 함께 실었습니다. 이백의 시는 두보도 놀랐던 것처럼 가히 경이롭습니다.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안타깝습니다. 시선詩仙이라 일컫는 인걸人傑이 앞섰기에, 시성詩聖의 탄생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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