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E.H. 카(Edward Hallett Carr) 지음

김택현 옮김

까치 출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나
'소련사'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를 집필한 위대한 역사가이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교육자와 역사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누구나 제목을 들어봤을만큼
널리 알려진 권장도서이다.


역사는 무엇이고 어떻게 후대에 전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 있다.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지,
시대적 배경에 맞춰 역사가의 사관이 개입되어야하는지는 확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자료나 근거가 선택되고 쓰여진 시점부터 역사가의 개입이 들어갈 수 밖에 없음은 부정할 수 없다.
카이사르 말고도 '루비콘 강'을 건넌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자체보다 역사적 의미가 깃든 사실이 의미가 있기에 역사가는 사실 가운데 역사적 중요성을 띠는 사실을 쫓는 것이다.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그것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항상 굴절된다.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역사가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며, 인간의 실존조건 때문에 자신의 시대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거나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다.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이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자 할 때,
해당 사실의 배경을 숙지하고 역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사회와 개인은 서로에게 필요한 요소이며 종속적이라기 보다는 상호보완적이라고 칭할 수 있다.

역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환경에 의해 스스로 영향을 받는 개인이며 철저히 객관적 사실로만 역사를 적어나갈 순 없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실이라고 넣은 것들조차
역사가의 입장과 가치관이 기여하고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대의 배경과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독단적인 역사가가 되기 보다는 포용적 시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자신이 적고자 하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인물의 심리를 포함한)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과거에 비추어질 때에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역사를 기술하는데 있어 인과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할 때 원인에 따른 결과로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 원인은 하나이기 보다는
다수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역사를 현명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다양한 원인을
알고 분석할 뿐 아니라 해당 원인들간의 서열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성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원인을 단순화하고 통일된 견해를 도출해내는 것도 필요하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배경(구조적 측면, 생물학적  측면, 경제적 측면, 형이상학적 측면, 심리적 측면 등)을 포괄적으로 담고자하는 노력과 동시에
어떤 원인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어떤 원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하고
각각의 원인들의 상관 관계와 상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정적이라기 보다 역동성을 지니고 움직인다.
역사가로 인해 탄생하고 기록되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와 같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며 미래의 과거이다.
역사가는 역사가 움직여가는 어떤 방향을 가정하고 있고 역사가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방향은 전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고 인류를 보다 좋은 상태로 이끈다고 믿어왔다.
역사의 진보는 직선적이라기 보다 파동을 그리기도 하고 간혹 후퇴를 겪기도 하지만 점진적으로 정진하는 모습을 띤다.
역사적 사건이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게는 쇠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보다 넓은 범위를 전체적으로 살폈을 때 진보하고 있다.

최근의 역사가일수록 더 많은 과거를 객관적 시선으로 볼 수 있기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가 수월하다. 즉, 더 많은 시간을 축적한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보다 더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현재에 존재하는 고정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래에 남겨진 그리고 역사 과정이 전진함에 따라서 발전하게 되는 그런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다.

역사는 이성의 발휘를 통해서 환경을 이해하고 그것에 작용을 가해온 인간의 오랜 투쟁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계절의 순환이나 사람의 일생과 같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

16세기 이후로 지중해 패권이 대서양으로 옮겨가고 20세기에 들어서며 영어권 국가, 특히 미국으로
세계적 패권이 이동하였다.
역사가 자신이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며 어떤 국가의 국민이기에 사적인 감정과 가치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그에 따라 역사적 관점이 서구 중심적(현대에 들어서는 영어권 국가 위주)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중국을 비롯한 그 외의 나라들에 대한 시각을 견지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가가 속한 사회 뿐이 아닌 다양한 사회의 다각적인 부분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사실은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다른 책과 달리 분량이 적은데도
읽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지만
역사서나 철학서를 읽을 때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