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시선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를 살피는 예리한 시각
이명수. ‘1959년 서울 출생. 젊어서는 광고기획자로 일했고, 마흔 넘어서는 심리기획자로 일했다. 지금은 치유공간 이웃 대표.’ 책에 짧게 소개된 그의 프로필이다. ‘심리기획자’는 그가 붙인 국내 유일의 직업이다. 심리치유 기업 ‘마인드프리즘’ 대표로 상담과 치유가 필요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서 심리기획자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마인드프리즘을 떠나 안산으로 이주, 치유공간 이웃에서 정신과의사 정혜신 및 여러 치유자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엔 두 개의 트랙이 있다. 하나는 철저한 진상규명에 대한 것으로 정치사회적 맥락에서의 접근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심리치유적 맥락에서 세월호 참사에 접근하는 관점이다. 그게 있어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꾸라지지 않고 갈 수 있다. 전투로 치면 보급부대나 야전병원쯤의 역할이다.”(어떤 생일) 치유공간 이웃의 역할이 보급부대나 야전병원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돕는 활동을 하면서 치유공동체 ‘와락’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4년 전부터는 국가폭력 및 자본 폭력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이웃인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성찰한 칼럼을 일간신문에 꾸준히 게재해왔다. 이명수의 글은 언제나 ‘사람이 사람다워야 할 까닭’ ‘사람답게 산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글을 쓸 때 늘 “명예나 인정욕구 같은 내밀한 욕망이 아닌지 따져 물었고, 내가 가진 대의적 선명성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닌지 고쳐 물었다.”(머리말) 그래서 대의적 명분으로 책을 출판할 생각이 없다고 하여 편집자가 애먹기도 했고, 실제로 현장의 아픔을 대의적으로 표현해줄 사진을 책에 수록하는 편집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수와 이명수의 글은 ‘대의’다.
이웃, 분노, 함께, 불편
4개의 키워드로 본 한국사회의 희망과 슬픔
첫 번째 키워드는 ‘이웃’이다. 어려울 때 손내밀어주고 즐거울 때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이웃이라는 것. 당신 곁에 내가 있다는 것. 아픔의 현장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웃들 이야기다.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농성할 때 전국에서 찾아간 희망버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이 더 아픈 이웃을 위무하는 이야기,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위로하는 ‘밥셔틀’, 철도 파업 때 제 시간에 열차가 도착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는 방송에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는 시민 이야기, 용기가 없거나 소심하여 현장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마음을 포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 등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분노’다. 국가가 자본이 분노유발자이므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장. 국가폭력, 자본폭력에 대해 분노하고 성찰했다. 재외국인의 안전에 무심한 외교부, 용역 뒤에 숨은 국가 공권력, 어이없는 인권 수준, 원전 마피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질타.
세 번째 키워드는 ‘함께’다. 함께 살자는 것. 상처 입고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손 꼭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사법 판결을 되돌려놓은 이창한 판사, 자본의 의자놀이를 거부하자는 것, 어버이연합으로 대표되는 노인문제, 아픈 현장에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자는 것.
네 번째 키워드는 ‘불편’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릇된 관행,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나 기관의 태도를 꼬집었다. 불편한 사회를 상식적인 사회로 만드는 것은 구성원의 임무라는 것. 이명박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소통법, 전관예우, 청와대, 후광효과, 승자독식의 사회, 일방 소통 등을 다뤘다.
지금 우물쭈물하는 당신, 마음을 포갰다면 괜찮다
마침내 사람에게 다가가 마침표를 찍는 글
강요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된단다. 잊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글 읽는 사람이 위로받는다.
“꼭 무언가를 해야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때론 모르는 척 가만히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 힘이 된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거대한 슬픔과 고통의 현장에는 자기가 가진 자격증으로 뭘 해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경험에 의하면 그런 이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은 고통 그 자체보다 자기 자격증의 효용성에 더 주목하고 자격증만큼 대접받으려 한다. 외려 내가 도울 자격이 있을까요, 주춤거리고 미안해하는 이들이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끝까지.
폭우처럼 눈물 흘리는 이들 곁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막막하고 무기력할 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바로 그것을 하면 된다. 그것이 눈물이든 기도든 약간의 핫팩이든. 그러다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잠깐 뒤로 빠져 있다가 다시 오면 된다. 초지일관해야 자격이 있는 거 아니다. 오랫동안 2진에 있다가 지금 맨 앞에서 몸을 보태고 마음을 포개는 이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이 지치면 뒤로 물러나 있던 당신이 다시 앞으로 오면 된다. 그런 순간에 내가 1진으로 나오지 않고 미적거릴까 봐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론적인 걱정에 불과하다. 그런 건강한 불안을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
지금 눈물 흘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담요를 덮어주고 기도를 하는 모든 이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대들의 축복받은 삶에 응원과 존경을 보낸다.”(그것으로 충분하다)
함께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이 책은 누가, 왜 읽나?
‘함께 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셔츠에 문신처럼 새겨진 글귀다. 너무 빤하여 식상한가. 누군들 모르겠나? 모른다. 혹 알아도 모른 체한다.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 밀양 송전탑, 쌍용차, 강정마을, 세월호…. 진실은 늘 현장에 있었고, 현장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절규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 형제자매거나 이웃들이다. 그들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려는 선한 이웃이 있는가하면, 생활에 지쳐 먼데 불구경하듯 딴청 부리는 이웃이 있고, 듣도 보도 못한 일베나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같은 괴물 이웃도 나타났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 내가 먼저 읽고 친구와 이웃에게 권하자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 배우자나 부모에게 슬쩍 밀어놓으라는 책이다. 10대, 20대 자녀들과 함께 읽고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선생님이 먼저 읽고 중고생에게 권해주라는 것이다. 이 책이 따뜻하고도 유려하면서 촌철살인의 문장으로 그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이 책을 만나면 서둘지 마시라. 흥미진진한 장편소설처럼 한 번에 읽어치우는 책이 아니다. 한 꼭지, 한 꼭지마다 한국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녹아있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있다. 그러므로 꼭꼭 씹어 삼켜야 한다. 한 꼭지 읽고 천천히 음미하고 생각한 뒤에 다음 꼭지 읽기를 권한다. 그리하여 저자의 성찰과 통찰에 공감한 당신은 함께 사는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