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만화에서 현실의 이야기로,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콘텐츠로서의 만화
얼마 전 종영된 케이블 TV 드라마 〈미생〉은 말 그대로 엄청난 돌풍을 몰고 왔다. 여느 직장 드라마처럼 단순히 직장인들의 애환과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그 안에서 가능한 긍정의 힘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또한 동명의 웹툰 원작이 지닌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흡입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콘텐츠로서의 만화가 지닌 힘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사실 만화 하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보던, 혹은 어린이들이나 보는 판타지물, 추억의 오락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로 우리의 어린 시절에 처음 접했던 만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만화 원작이 각종 드라마와 영화, 게임 등 문화 산업의 전반에서 활약하는 지금 만화는 동심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무엇이든 가능한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계를 구축하여 깊고도 독자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만화는 과거보다는 앞으로 무엇이 가능할지 모르는 미래와 더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 이렇게 본다면 만화 산업은 추억의 산업, 투자하면 망하는 비즈니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하기 힘든 사업이 아니라 미래 콘텐츠 산업의 주역으로 당당히 대우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만화 산업을 그야말로 불모지 같은 한국 땅에서 온몸으로 일궈낸 인물 중 한 명인 정욱 대원미디어 회장의 인생 역시 미래진행형이다. 올해 고희를 맞은 그는 201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SICAF어워드를 수상할 때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랐을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그의 정신과 열정은 지금도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만화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만화는 끊임없이 미래를,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정욱 회장의 50년 만화 인생과 그와 함께해온 대원미디어가 걸어온 길을 이원복(만화가) 외 집필진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의 생태계를 구축하기까지,
그 시작과 끝에 존재한 ‘우리 만화’
만화 애니메이션의 불모지였던 과거 한국에서 정욱 회장과 대원그룹이 걸어온 길은 일본의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이었다.
1960년대 신동헌 화백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한 정욱 회장의 시작은 당시 도제 시스템 아래에서의 다른 만화가 지망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수년간 선생님의 작업을 도우며 조금씩 자신의 작품을 신문 등에 연재하기 시작하고 단행본을 내는 것이 그 시절의 만화가 데뷔 과정이었다. 그런데 정욱 회장은 신동헌 화백 문하에 있다가 우연히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원프로덕션을 설립, 만화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욱 회장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OEM 제작하면서 우리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한다.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영심이〉 등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한국 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전까지 한국의 시청자들은 TV에서 방영하던 만화가 사실 외국, 그것도 일본의 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달려라 하니〉 등을 기점으로 한국 만화와 일본 만화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배경에서부터 인물의 입모양까지 모두 우리의 것을 소재로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만화를 TV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욱 회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심형래를 영입해 당시 어린이들은 죄다 봤다고 해도 좋을 극장용 특촬(특수촬영) 영화 〈영구와 땡칠이〉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20세기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어린이 영화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과 그때까지만 해도 전무했던 특수 기술과 영화 제작력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대원은 탄탄한 기술력과 제작력을 기반으로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에 힘을 쏟았으며, 그 결과 우리의 애니메이션을 해외에 수출하고 외국과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사업 영역 또한 라이선스 사업에서 캐릭터 완구, 출판, 방송,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문화 산업의 거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욱 회장은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만화’라고 말한다. 우리가 창작한 만화에서 애니메이션, 방송, 게임, 캐릭터 사업을 이어나가고, 이 사업들을 유지, 지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좋은 만화가 창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과 여기에서 파생된 다른 산업 영역들의 기반을 구축한 놀라운 사업가이기도 했지만 ‘우리 만화’의 중요성, 즉 독자적인 콘텐츠가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도전과 응전의 20세기를 넘어
또 다른 진화를 꿈꾸다
오늘의 대원그룹이 있기까지 정욱 회장이 걸어온 길에는 수많은 장벽이 있었다. 제작 여건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던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미군 용산기지에 들어가 촬영 카메라를 눈으로 보고 와서 모조 카메라를 만들어 촬영했던 일, 일본의 OEM 제작을 따내기 위해 일본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했던 그가 일본어 교본 하나 달랑 들고 일본 제작진을 찾아가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을 아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일, 해외 수주로 계속 철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어냈던 일 등 열악한 현실로 인한 전설 같은 일화와 사건이 늘 따라다녔다. 또한 만화, 그중에서도 어린이 영화에 대한 좁은 시각과 해외 OEM 제작에 대한 우려 섞인 비난도 정욱과 대원을 비롯해 20세기의 한국 만화계가 부딪혀야 했던 난관이었다.
그러나 끝없는 관심과 추진력으로 정욱 회장은 한국의 만화를 도제 시스템에서 산업으로 정착시켰고 다양한 사업 영역으로의 확산을 통해 만화와 애니메이션 창작이 유지되는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는 이원복 화백이 말했듯이 그 세대가 거쳐야만 했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현재의 풍요로움이 있기까지 무모할 정도의 엄청난 도전과 의지,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욱 회장과 대원이 걸어온 길은 한국 현대사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점에서 정욱과 대원, 그리고 한국의 만화 산업이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정욱 회장이 그랬듯이 현실을 정확히 보고 더 큰 기반을 꿈꿔야 한다. 과거 잡지 연재 후 단행본 발매라는 시스템을 통해 만화를 빌려 보는 것이 아니라 ‘사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을 최초로 심었던 것처럼, 무료 웹툰과 다운로드가 성행하는 오늘의 만화계에도 만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진일보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 생존이 아닌 도약을 위해 또다시 진화하려는 시도만이 21세기 문화 콘텐츠 산업을 이끌 발판임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