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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산주의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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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산주의운동사

[ 양장, 개정판 ]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공저 / 한홍구 | 돌베개 | 2015년 01월 26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468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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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5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124쪽 | 1,662g | 153*224*60mm
ISBN13 9788971996393
ISBN10 8971996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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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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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로버트 스칼라피노Robert A. Scalapino
1919년생으로 194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겸 동 대학 동아시아연구소Institute of East Asian Studies 소장을 역임했으며 극동문제 전문학술지 『아시안 서베이』Asian Survey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1년 타계했다. 주요 저서로는 Democracy and Party Movement in Prewar Japan(1953), Partie...
저자 : 이정식
1931년 평안남도 태생으로 1961년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정치학 교수를 거쳐 현재는 펜실베이니아대학 명예교수이자 경희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The Politics of Korean Nationalism(1963), 『김규식의 생애』(1974), Revolutionary Struggle in Manchuria: Chinese Communism and Sov...
역자 : 한홍구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한국 현대사학자이자 현재사학자로 불린다. 현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이자 평화박물관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대한민국사』(1~4권),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장물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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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p.250~251

출판사 리뷰

▶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개정판 출간과 그 의의

1980년대 초중반 수많은 청년을 가슴 뛰게 했던 ‘공산주의운동’이라는 주제는 1980년대 말 동구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제 이후 급속히 그 관심과 활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지금도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북한 정권이 실재하는 한 이 주제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5명의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잃게 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이후 이 주제는 다시금 대중의 관심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1973년 초 미국에서 출간된 로버트 스칼라피노와 이정식 교수의 공저 Communism in Korea를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한홍구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초판 전 3권)는 오랫동안 큰 도서관 혹은 헌책방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이 분야의 고전이었다. 운동 편과 사회 편 두 권으로 된 총 1,532쪽의 방대한 원서 중 1986~1987년에 운동 편만 번역해 세 권짜리로 냈던 것을 근 30여 년 만에 합본 개정판으로 새로 단장해 선보이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감안해 북한 쪽 자료를 접하기 어려웠던 초판 출간 당시에는 의미가 있었으나 이제는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어진 90여 쪽의 북한 관련 자료는 수록하지 않은 대신 ‘21세기의 북한’이라는 주제로 이정식 교수의 새로운 분석을 추가했으며 이 분야 연구자들을 위해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연구 전반의 흐름을 논한 이정식-한홍구 교수의 특별대담 ‘이정식이 걸어온 학문의 길’을 부록으로 실어 그 의의를 더했다. 또한 초판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중요 도판 다수를 추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역사를 모르면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데 3년이라는 공을 들인 한홍구 교수는 이 책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반공적이고, 1970년대 이후 이북이 겪은 역사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근 100년에 이르는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으로는 아직도 이 책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나 이북 현대사의 특정 시기나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뛰어난 연구 성과가 상당히 나왔지만, 이 책처럼 일관성을 갖고 큰 흐름을 설명하는 책은 서구 학계에서도 한국 학계에서도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진보운동은 지배세력으로부터 늘 극심한 탄압과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권위적인 독재체제의 으뜸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반공주의’였다. 3대 세습을 강고히 하고 자기들 말로 주체의 혁명 전통을 중시하는 북한을 우리가 함께 손잡고 일으켜야 할 형제이자 통일의 파트너로 보느냐 흡수 통일해야 할 주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만큼 지나온 우리 역사부터 바로 보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운동의 전열을 가다듬고 향후 더욱 장기적이며 치밀한 전략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흐름과 한계를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 뜨거운 민족주의운동으로 시작된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일제가 극심한 무단통치를 시행하던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은 국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었던 반면, 동부 시베리아와 만주에 산재해 있던 많은 한인韓人이주자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도록 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가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 가운데는 열정적인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베리아에서 동맹군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볼셰비키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았던 러시아인들이 보기에 최근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아픔을 겪은 한국인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볼셰비키당이 한국의 뜨거운 민족주의를 이용해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동원함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붉은 깃발 아래 움직이는 한국의 정치운동이 출현했다. 따라서 초기 한국의 공산주의운동은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운동에 일체화된 것으로, 공산주의운동에서 순수한 민족주의 요소들을 제거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산주의는 식민지 민족의 해방을 약속하는 운동으로서 극동에 출현했고,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애국자를 감동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한낱 약속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자금, 무기, 기술적 지원 등 물질적 원조도 제공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긴 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인민들과 동맹을 맺었다. 더구나 공산주의는 식민지 해방을 넘어선 그 무엇, 즉 인간의 해방을 약속했다. 공산주의는 극적인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켰고 상당수의 한국인, 특히 소지식인 출신들이 바로 이 같은 범주에 속했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주동 세력을 볼 때, 그들은 다른 정치적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던 정치적 근대화를 이룩한 세력이나 민족주의운동의 지도 세력과 동일한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전체 한국 인구의 5퍼센트도 안 되는 좀더 ‘서구화’된 고등교육을 받은 상층 출신이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목표는 당시 한국 사회의 가치관에 비춰볼 때 매우 급진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민족주의의 발전과 평등이었다. 이들이 활용한 수단에는 첫째 후견제後見制에 대한 의존, 둘째 개인을 집단의 엄격한 규율에 종속시키는 위계질서가 강력하게 잡힌 조직구조의 발달, 셋째 이성과 신념뿐 아니라 권위에 대한 복종에 의존하는 이데올로기 체계 등이 포함되었는데, 이들 방법은 전통적인 것이었다.

▶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약점과 한계

* 인적, 지역적 한계
이러한 급진적 지식인 혹은 소지식인들은 한국 사회 내의 어떤 사회경제적 집단과 가장 성공적으로 접촉할 수 있었을까? 도시노동자계급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 전체 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층만이 그 당연하고도 절실한 대상이었다. 이는 농민들의 불만 때문만은 아니었다(실제로 농민층의 요구를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받은 층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농민층이 중요했던 이유는 농민이 전통적인 조직구조를 거의 완전히 유지하고 있었으며, 더욱 중요하게도 농민층은 공산주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력을 지니고 있었다. 급진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전통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공산주의자들에게 농민은 바로 가장 좋은 접촉대상 또는 목표였다.
한국 공산주의자들이 어느 지역보다도 만주-한국 국경지대의 간도와 함경남도의 농민층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많은 활동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 지역은 중앙의 통제력이 잘 미치지 않는 변경지대였고, 따라서 불평분자나 범죄자 혹은 다른 종류의 독립적인 인간들이 모여들 수 있는 지역이었을 뿐 아니라 정부에 대한 농민층의 반항이 전통적으로 강했고 정부가 이에 대처할 수단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한 지역이었다. 민족주의나 농업개혁 등 매력적인 문제들을 들고 나오는 것은 공산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활발히 이용한 농민층의 불만은 지방적이고 특수한 것이 많았다.
사실상 공산주의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의 동기에서 이성적理性的인 요소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느냐 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1930년대 말을 포함해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자료들은 민족주의나 경제적 개혁이 이들이 공산주의운동에 투신하게 된 중요한 동기였음을 보여주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와 친척, 동료들의 호소 역시 적어도 이와 동등한 정도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 정치의 본질적인 군집성은 다른 정치운동에 대한 투신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투신에서도 그 모습을 나타냈다.

* 극도의 의존성과 파벌주의
1945년 이전 한국 정치의 다른 국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공산주의는 가능한 어느 지역에서라도 지지기반과 원천을 찾아야 했다. 따라서 한국 공산주의는 조직상의 결속력이나 통일된 정치적 전망이 부족했다. 1928년 이후 다시 국외로 기반을 옮겨야 했던 한국 공산주의자들은 이후 1945년까지 주로 해외 기지에서 활동해야 했으며, 국내에서는 공산당도, 효율적인 운동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선공산당은 코민테른에 극도로 의존하고 있었다. 조공의 지도자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조공은 자금원과 운동기지를 외부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기반이 가장 약한 공산당이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작고 ‘질서가 잘 잡힌’ 사회여서 독자적인 공산주의 조직이 국내 토양에서 성장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시베리아와 만주만이 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무원칙한 파벌투쟁도 계속되었다. 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한국의 문화에서 조직이나 집단 간 관계의 본질, 해외운동 지도자들의 분산적·자족적 태도, 자칫 운동에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련과 중국, 일본의 급진주의자들과의 광범위한 접촉, 계속된 실패에 따른 좌절, 당원 획득의 기반 협소, ‘온건파’와 ‘과격파’ 간에 갈등을 조장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효율적인 전술 등이 한국 공산주의운동의 성장을 억제했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에 파벌주의가 널리 퍼진 것은 단지 지식인이나 소지식인들이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한 데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벌이는, 혹은 그들의 주도로 여러 곳에 흩어진 기지에서 승산을 갖지 못한 채 진행되는 운동이 당면하게 되는 문제는 언제나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파벌성이다. 이런 파벌성은 가족, 소집단 등 사회 내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 강력한 공산주의 억제 세력에 의한 적대적인 주변 환경
일제에 이어 이후 공산주의자들을 억제한 것은 미국이었다. 특히 해방 직후 첫 단계의 중요한 시기에 이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산당이 갖고 있던 약간의 조직력과 힘은 특히 인민공화국과 같은 외곽단체의 베일 속에 싸여 있을 때 몇 갑절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좌익이 여운형, 박헌영 등 지도자 밑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을 무렵 이승만, 김구 등 우익 지도자들은 수만 리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에 공산주의자들을 억제했던 것이 미국 세력이었다면, 얼마 후 공산주의운동을 분쇄한 것은 미국과 한국인들의 연합 세력, 다시 말해 미 군정의 지지 아래 움직였던 남한의 비공산 세력이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 자신도 여러 가지 전술적·전략적 과오를 범함으로써 자신들의 패배에 크게 한몫했다. 그중 대부분의 실책은 남과 북에서의 공산주의운동에 관한 기본 결정을 내린 소련 군정 측에서 그들한테 강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실책 중 대부분은 당내의 파벌싸움, 미비한 연락체계, 이와 유사한 약점들의 소산이었다.
물론 이런 약점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의 성격과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은 계급적 사회구조와 유교적 가치관이 특히 그 농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철저히 보수적인 사회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한국은 기본적으로 반외세적이고, 어떤 서구 이데올로기와도 쉽게 조화를 이루지 않는 사회였다. 계급 구성의 면에서도 전체의 75퍼센트가 농민이고 도시노동자계급은 보잘것없었으며 중간계급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따라서 초기 단계의 공산주의운동이 일반 대중과 연결되기 어려운 학생이나 지식인들에 의해 전개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한국전쟁 전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에서 완전히 파멸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과 지식인 사회의 상당수는 운동에 대해 어느 정도 계속 동조하고 있었다. 게다가 심한 타격을 입고 세력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노동자와 농민, 청년, 여성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외곽단체 속에는 공산주의 지지자들이 숨어 있었다. 경찰과 군대에도 공산당은 비밀요원을 두고 있었으며, 산악지대에는 유격대가 존재했다. 그럼에도 남한에서 공산주의운동의 절정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 주된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매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공산주의운동이 대중을 점차 당과 유리시킨, 시기를 잘못 택한 극단적 방법을 취하게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무렵, 남한에 남아 있던 공산주의자들은 대개 골수 공산주의 신봉자뿐이었다.

▶ 북한 체제의 수립과 김일성의 주체사상

엘리트들을 통한 꽉 짜인 통제, 경쟁의 극소화, 지도자의 결정사항을 추인하기 위해 강조되는 군중 동원 등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는 한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손쉽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한국 사회 특유의 보수성과 정치적 후진성은 서구식 민주주의자들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렇게 되어 1948년 가을 무렵 고도로 조직되고 내부 단결도 잘된 북한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남한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어떠했는가? 소련의 지지와 후원이 따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만 본다면 김일성은 이 무렵의 다른 어떤 정치지도자들보다도 외세에 밀착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미 군정 당국이 이승만에 대해 애증이 교차하는 감정을 가졌던 데 비해 로마넨코 사령부와 김일성 간에는 탄탄한 협력관계가 지속되었다.
일단 생존에 성공한 김일성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체제를 확립해나갔다. 1948년까지 김일성은 자신의 주요한 정적 대부분을 제거하거나 그들이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었으며, 전국의 신문과 방송을 자신의 사적 도구로 장악했다. 당시 북한 체제는 실권이 정상에 집중되어 있었고 김일성 자신이 당과 주요 국가기관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 효과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였던 북한은 정치사업에 모든 힘을 동원했다. 경제적으로는 극도의 빈곤과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북한의 정치체제는 아주 안정된 것이었다. 통제된 부르주아 민주혁명은 완수되어가고 있었으며, 대중봉기는 말할 것도 없고 쿠데타의 기미조차 남한에서와 달리 북한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948년 가을을 맞이한 김일성과 그의 측근들은 그간의 발전 상황에 대해 대체로 만족해하면서 미래에 기대감을 가질 만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김일성 자신이 새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살아남았으며, 북한 정치에 대한 그의 지도력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해 보였다. 박헌영을 비롯한 강력한 경쟁자들은 이미 제2선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소련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소련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소련군 사령부의 역할은 단지 평양 주재 소련대사관으로 이전되었을 뿐이며, 소련 정치고문들이 북한 각료들과 함께 계속 근무하면서 기본적 정책 결정사항을 재검토했다. 소련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한 것은 북한 정권의 요직에 앉아 있던 소련계 한인들이었다. 비록 이들은 다른 러시아인들과는 달리 일반 주민들 속에서 생활했지만, 소련 당국의 지시와 감독을 받고 있었다. 소련의 권력은 직접적이고도 근본적으로 이들을 통해 투영되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북한은 민족주의가 전통적인 공산주의적 가치에 대해 승리를 거둔 뛰어난 사례다. 물론 이를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두 가지 정치세력의 통합이 거둔 승리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주체’라는 것이 마르크스나 레닌이 이해했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었음에도 김일성이 ‘주체’를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상징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 된다. 더구나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경제에서의 ‘자립’, 외교와 정치에서의 ‘자주’,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것은 ‘소련식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북한 자신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다만 이들 계획은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대신해 북한 인민들의 엄청난 희생 위에서 추구된 것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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