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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

심상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30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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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4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56g | 130*210*11mm
ISBN13 9788932026909
ISBN10 893202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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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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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심상대
196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소설 세 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 『사랑과 인생에 관한 여덟 편의 소설』 『망월』 『떨림』 『단추』, 산문집 『갈등하는 신』 『탁족도 앞에서』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2001)과 김유정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현재 장편소설 『선생님을 위하여』를 ‘프리미엄조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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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나’ 없는 지상낙원,

욕망도 사라진 이곳에

저주받은 봄이 찾아왔다

마르시아스 심, 그리고 다시, 심상대

2001년 단편 「미美」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2012년 중편 「단추」로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심상대의 첫 장편소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심상대는 1990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여 소설집 여섯 권과 산문집 두 권을 펴냈다. 2000년 연작소설집 『떨림』을 출간한 뒤 긴 공백기를 보냈던 그는 2012년 본격적으로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등단 후를 크게 이분해보면 처음 10년은 마음껏 문학적 재기를 분출하던 시기였고 그다음 10년은 글보다 삶에 충실하던 시기였다. 자신의 사십대를 “미혹(迷惑)의 세월”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던 작가는, 시간강사로 출강하다 고고미술사 공부에 뛰어들었고, 정치연구소에서 5년, 개성공단에서 2년을 일했다. 그러다 고향 강릉으로 돌아갔다. 다시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2013년 5월~7월)되었던 글을 다듬어 묶어낸 『나쁜봄』은, 앞으로의 10년을 온전히 소설에 바칠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며 시도다.

심상대는 삶에서든 문단에서든 쉽게 주류에 서는 것을 경계해왔다. 2000년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 ’마르시아스 심’에는 신 아폴론에 맞서 예술을 겨루려 했던 신화 속 피리 명수 마르시아스처럼 ‘고독하더라도 자신의 예술 앞에 당당해지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그 기개는 여전하다. 다만 이전에 그의 소설이 온갖 ‘미’에 바치는 찬사였고 그의 문장이 삶에 들러붙어 용틀임하는 언어였다면, 이제 날뛰던 힘은 정제되어 글 속에 더욱 깊게 담겼다. 이상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거슬러 쫓으며, 개인과 욕망이 억압된다면 과연 그곳이 낙원일 수 있는지 『나쁜봄』은 묻고 있다.

세상 어디에도 다시 없을 지상낙원 ’우리고을’

―“또다시 저주받은 계절이 시작됐다”

『나쁜봄』 속 ’우리고을’은 “세상 어딘가에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실체는 없지만 이름이 있”고, “경험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 건설하였으니 ‘이상향’ ‘무릉도원’이라고 불릴 만하다. 자연 환경이 비옥하며 원하는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 사람들은 즐겁게 일하고 생산한 것을 조화롭게 나눈다. 신선한 음식이 풍부하고 환경 오염이나 스트레스 따위는 찾을 수 없으므로 대개 180세까지 장수하곤 하지만, 언젠가부터 특이한 유전병이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모두가 미남미녀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불임이고 봄이 되면 광증을 보이는 젊은이가 번번이 나타난다는 것이 그 증상이다.

정월 ‘큰보름날’엔 ‘망련초’로 만든 ‘정씻기 술’을 마셔 지난해의 기억을 잊고 새롭게 자신과 연을 맺게 될 사람을 정한다. 이를 ‘새낭군맞이’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해 짝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짝을 정하는 데엔 남녀노소 아무런 제약이 없으나, 함께 살다 출산한 적이 있다면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다. ‘우리고을’에서는 불임 탓에 아이 역시 온 고을 사람이 공유하는데, 자칫 각별한 애착이 생겨 ‘가족’을 부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봄철 젊은이의 광기 외에 이곳을 위협할 만한 요소는 딱히 없어 보인다.

소년이 사는 마을은 ‘가운데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마을을 포함해 다섯 마을을 통틀어 부르는 고을의 이름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 고을을 단지 ‘우리고을’이라 불렀다. 이 고을 밖에 다른 고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고을 이외의 다른 고을이나 다른 세상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p. 8)

이 고을은 어떤 면에서나 풍족한 곳이었다. 결핍이라면 오직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풍요는 그래서 가능했다. […] 이 고을에서는 하늘이나 땅과 마찬가지로 나무와 풀, 호랑이와 지렁이, 곡식과 과일, 버섯과 산나물, 바람과 이슬, 집과 음식이 하나같이 공동 소유였다. 아이와 행복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대상의 용도와 가치를 함께 누렸으며 어떤 직업이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고, 직업을 바꾸면 그 직업에 유용한 집과 도구도 교환했다. (p. 14)

영원한 낙원을 위해 ‘나’와 ‘욕망’을 죽이다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선 안 된단 말일세”

새봄 ‘우리고을’의 첫 광기는 살인으로 시작된다. 봄눈 내린 입춘, 고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그의 부인이 무참히 살해당하는데, 범인들은 금세 일체의 범행을 자백한다. 미심쩍은 구석이 많아 수사관은 진범이 따로 있을 거라 의심하고 증거를 모은다. 한편, 도서관장과 촌장들은 마을 곳곳에서 광증을 드러내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그저 봄바람이 들었을 뿐인지 진짜 광인인지 판단한다. 그중 광인으로 판명된 두 명을 각각 큰보름날과 한식에 화형시켜 고을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우리고을’의 전통이다. 고을 사람들이 기묘하다고 생각하는 행위는 대개 신을 믿는 등 초월적이거나, 상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소금으로 조형물을 만드는 등 예술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광증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기행이 우리 아닌 ‘나’를 드러내는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고을 전체의 기이한 조화와 결속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지다. 단지 좀더 영민했을 뿐인 누군가는, 어떠한 낱말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광인으로 판정되어 화형당한다. 놀랍게도 ‘우리고을’에서는 살인보다 ‘나’를, 개인적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고 고을 바깥을 궁금해하는 게 더 큰 죄가 된다.

봄마다 되풀이되는 젊은이의 광기는 감당하기 어려운 증상이었다. 이 증상은 종잡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면서 고을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봄만 되면 미친 젊은이를 가려 화형에 처한다는 합의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사적인 해결책이었다. 이후로 그들은 해마다 큰보름날과 한식(寒食)에는 열여섯 살 이상의 남녀라면 누구나 화형장으로 운집했다. 산골짜기와 호숫가에 시설된 화형대 주변으로 몰려든 그들은 광기에 사로잡힌 젊은이를 불태워 죽이는 집단 살인을 치르면서 새해를 맞았다. 이 고을과 고을 사람의 안녕을 위한 중요한 습속이었다. (p. 12)

광기의 양상은 다양했지만 공통된 본질은 욕망이었다. 고을 사람들은 봄마다 되풀이되는 광기를 통해 아직도 이 고을에 이기심과 소유욕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욕망 자체를 의심했을뿐더러, 이 고을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욕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지난 사백 년에 이르는 광기의 역사에서 초기 삼백 년 동안 발생한 광기의 정체는 이성과 재물에 대한 독점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광기가 잦아들면서 새로운 광기가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지극히 관념적이고 현학적으로 변했다. (p. 63)

“때론 그런 곳이 있다네. 하늘 끝이든 땅속이든 그 어디에 존재하긴 하겠으나 우리로선 알 수 없는 곳이 있는 법이야.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은 알 수 없는 곳으로 남겨둬야 한다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어떤 곳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 고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겠지. 자신들로서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곳에 그 누군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러니 그 정도에서 그쳐야 전부 평안하다네. 알 수 없는 곳을 기어이 알고자 하면 탈이 나고 말아.” (p. 85)

“아름다움이나 더러움은 조화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몸을 위한 일이든 생각을 위한 일이든 미추를 분별하게 되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추함도 드러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죄는 바로 그곳에서 발생합니다. 더욱이 그 대상을 파괴하고 초월해버릴 정도의 감정에 도달한다면 이는 야만과 만나게 됩니다. […] 누구든지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대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도 존중돼야지요. 그렇지만 그 생각이 우리 고을의 평화를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인가 아름답다면 다른 무엇은 더럽다는 뜻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 고을 모두가 다 아름답습니다. 더럽고 악한 존재는 없지요.” (pp. 127~28)

“상상력은 아상(我相)의 세계로 들어서는 통로라네. 위험한 정신 영역이지. 우리 고을에서는 개인이란 존재는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아! 누구든 독립된 세계를 가져서는 안 돼! 더군다나 그 상상의 세계를 다른 사람 앞에서 떠벌리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일이야.” (p. 252)

탐미와 방랑을 넘어선 자신으로의 회귀

심상대는 낙원이자 감옥인 이 기묘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치밀한 구성과 묘사로써 구현해냈다. 가운데마을을 중심으로 모인 고을의 다섯 마을과 양옆을 휘감아 도는 청하와 청수가 생생하다. 늦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설산은 점점 푸르러가고, 설중매나무가 흐드러지고, 뱀들조차 꽃 더미처럼 엉킨다. 데일 듯 뜨거워 자주 멈추게 되는 초기 소설 속 문장과 달리, 지난 삶의 무게만큼이 녹아든 『나쁜봄』은 명료하면서도 산뜻하게 힘을 뺀 문장들이 첩첩이 쌓이고 막힘없이 읽힌다. 총 25장(章), 원고지 1,300매에 달하는 이 소설에 의존명사 ‘것’이 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가 문장을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겠다. 2013년 5월부터 두 달간 ‘네이버 웹소설’ 코너에 연재하는 형식으로 소설을 발표했던 것도 2012년 중순까지 휴대전화도 없이 살던 심상대에게 한층 의미 있는 시도였을 터다. 종이책으로 묶인 『나쁜봄』에서는 좀더 정돈된 호흡과 심상대식 사유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독자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해가고 있다.

설중매나무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컹컹대던 개들도 꼬리를 말아붙이고, 야옹야옹거리고 골골거리던 고양이도 닭도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장터로 다가오던 사람들 역시 발길을 멈췄다. 흰 눈 위로 번져나가는 갖가지 꽃 때문이었다. 꽃은 꿈틀대며 움직였다. 꽃의 머리가 지난 자리로 꽃의 허리가 지나고, 꽃의 허리가 지난 자리로 꽃의 꼬리가 지나갔다. 붉은 꽃도 푸른 꽃도 노란 꽃도 흰 꽃도 검은 꽃도 쉼 없이 움직였다. 설중매나무 뿌리 사이에서 솟아난 꽃은 작은 동산을 내려와 마당으로 번져나갔다. 기다랗고 현란한 꽃이었다. 누구든 처음 보는 꽃이었으며 이제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꽃이었다. (p. 117)

목둥둥이 질풍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너울이 그녀 뒤편에 떨어졌다. 빈 두 손을 활짝 펼친 그녀가 불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을 오가며 장터 한가운데서 맴을 돌았다. 그러더니 땅에 주저앉았다. 두 팔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펼쳤고 두 다리는 양쪽으로 활짝 벌린 모양이었다. 머리를 숙인 그녀가 입으로 붉은 명주너울을 물어 올렸다. 두 손으로 너울을 펼쳐 들고 땅에서 일어난 그녀는 뱀의 무리 한가운데 오뚝 섰다. 천천히 몸을 틀었다. 다시 멈춰 섰다. 꺾은 손목을 위로 채뜨리고 다른 손으로 너울을 튀겨 올려 공중으로 기다랗게 펼쳤다. 팔을 휘두르자 너울은 무수한 선과 원을 그렸다. 어깨를 뒤틀었다. 흰 버선발 발끝으로 땅을 박차며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p.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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