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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레이트 레코딩스 (50 Great Recordings)

[ 50CD ]
Leontyne Price, Christian Wunderlich, Montserrat Caballe, Kammerchor Stuttgart, Dietrich Fischer-Dieskau 노래 외 59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 Classical / Sony Classical | 2014년 04월 09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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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레이트 레코딩스 (50 Great Recordings)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4년 04월 09일
시간, 무게, 크기 300g
제조국 EU

관련분류

음반소개

구성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64명)

노래 : Leontyne Price (레온타인 프라이스)
미국의 흑인 소프라노가수. 빈국립오페라극장, 스칼라극장,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등에 출연하였다. ‘황금의 목소리’로 불리는 아름답고도 밀도 짙은 성질(聲質)과 그 박력 등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흑인 소프라노가수. 빈국립오페라극장, 스칼라극장,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등에 출연하였다. ‘황금의 목소리’로 불리는 아름답고도 밀도 짙은 성질(聲質)과 그 박력 등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성악가 (소프라노) 성악가 (소프라노)
노래 : Kammerchor Stuttgart (슈투트가르트 실내 합창단,Stuttgart Chamber Choir)
노래 : Dietrich Fischer-Dieskau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성악가 (바리톤) 성악가 (바리톤)
성악가 (소프라노) 성악가 (소프라노)
’보컬 비루투오조’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은 현대 음악계에서 가장 기이한 음악인으로 통한다. 순간적으로 최저음의 음역에서 높은 음역까지 자유자재로 옮겨다니며 구사하는 그의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난 스타일이다. 재즈 뿐 아니라 팝, 클레식 등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도무지 혼자서 내는 소리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층(多層)적인 목소리를 구사한다. 목소리로만 ... ’보컬 비루투오조’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은 현대 음악계에서 가장 기이한 음악인으로 통한다. 순간적으로 최저음의 음역에서 높은 음역까지 자유자재로 옮겨다니며 구사하는 그의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난 스타일이다. 재즈 뿐 아니라 팝, 클레식 등 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도무지 혼자서 내는 소리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층(多層)적인 목소리를 구사한다. 목소리로만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는 그는 가히 보컬의 기인이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세리토스 대학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977년 솔로 보컬 주자로 데뷔하기 전까지 아이스 폴리스(Ice Follies)라는 보컬그룹의 멤버로 나이트 클럽과 카바레 등지를 돌며 음악 활동을 했다. 뉴올리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의 활동무대를 거쳐 1981년 쿨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을 통해 일렉트라 레코드와 계약, 이듬해 그의 셀프 타이틀 데뷔작을 내게 된다. 1982년 데뷔 앨범< Bobby Mcferrin >에 이은 < The Voice >(1984)는 재즈 보컬,아니 보컬 음악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만큼 빼어난 것으로, 최초로 오버 더빙과 밴드의 연주 없이 오로지 그의 1인 보컬로만 만들어졌다. 1985년 블루 노트사와 계약, 그 해 재즈 보컬 그룹 맨하탄 트랜스퍼(Manhattan Transfer)와 같이 발표한 곡 ’Another night in Tunisia’로 그래미상을 수상한다. 기인에 가까운 공연 스타일은 그를 유명 뮤지션으로 비상시켰고, 빌 코스비 쇼를 비롯해 각종 광고에도 등장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1988년 < Simple Pleasure >를 통해 발표한 ’Don`t worry, be happy’로 빌보드 팝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팝의 대중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친숙하게 한 이 곡은 팝 역사상 아카펠라로는 최초로 차트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기도 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 칵테일 >에 삽입된 것이 빅히트의 동력이었다. 1990년대 들어 바비 맥퍼린은 클래식과 재즈의 본격적인 접목을 시도하며 한층 음악적 지평을 넓혔다. 첼리스트 요요마와 함께 1992년 발표한 < Hush >는 클래식 차트에 2년 넘게 머무르는 대성공을 거뒀고, 국내 각종 CF 배경음악과 라디오 방송 삽입 음악으로도 인기를 얻었다.(수록곡 중 트래디셔널 곡 ‘자장가’는 단연 인기 트랙이었다) 이듬해엔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함께 한 실황앨범 < Play >를 발표, 크로스오버 음악의 진수를 선보였다. 1995년에 발표한 < Paper Music >에선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바흐의 작품을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배경으로 목소리로 담아낸다. 이듬해 발표한 < Bang! Zoom >에선 퓨전재즈 그룹 엘로우 자켓이 연주에 참여하며 밴드의 리드보컬을 담당했고, 같은 해 < The Mozart Session >에선 칙 코리아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1997년의 < Circlesongs >는 그의 뿌리로 돌아가 1984년< The Voice >처럼 1인 즉흥 보컬을 재현했다. 2001년 근 10년만에 다시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새 앨범 < Beyond Words >를 발표한다. 예전 < Play >를 통해 그와 호흡을 맞춘 칙 코리아가 다시 참여해 눈길을 끈 앨범은 기존의 클래식 곡이나 있던 곡이 아닌 칙과 그의 공동 작업을 통해 완성된 ‘순수한 창작물’이라는 데서 의미가 있다. 송 라이터로 본격적으로 나선 그의 ‘음악적 욕심’이 반영된 수작이었음은 물론이다. 바야흐로 2004년 2월 5-7일, 올해 나올 새 앨범 홍보 차 이뤄질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재즈 보컬역사를 다시 쓴 그의 내한 연주를 통해 과연 ‘보컬 즉흥연주’의 대가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성악가 (소프라노) 성악가 (소프라노)
노래 : Fritz Wunderlich (프리츠 분덜리히)
성악가 (테너) 성악가 (테너)
연주 : Pablo Casals (파블로 카잘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출생한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이자 작곡가. 소년 시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헌 책방에서 발견하고 초연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출생한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이자 작곡가.
소년 시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헌 책방에서 발견하고 초연했다.
연주 : Rudolf Serkin (루돌프 제르킨)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Arthur Rubinstein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Leon Fleisher (레온 플라이셔)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1928년생 미국인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10세 때 아르투르 슈나벨 (Artur Schnable) 에게 인정되어, 그의 밑에서 1938년부터 1939년에 걸쳐 슈나벨의 자택에서 친히 가르침을 받았다. 1943년 피에르 몽퇴 지휘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에서 데뷔하여 ‘젊은 라흐마니노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195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처음 실시된 피아노 부문에...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1928년생 미국인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10세 때 아르투르 슈나벨 (Artur Schnable) 에게 인정되어, 그의 밑에서 1938년부터 1939년에 걸쳐 슈나벨의 자택에서 친히 가르침을 받았다. 1943년 피에르 몽퇴 지휘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에서 데뷔하여 ‘젊은 라흐마니노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195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처음 실시된 피아노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하였고, 1960년대 전반까지는 조지 셀 (George Szell) 지휘 클리블랜드 관현악단과 함께 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1965년 오른손에 근육긴장이상증 질환이 생기면서 35년간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 후로 왼손을 위한 작품을 레퍼토리로 삼았다. 그 밖에 1968년 워싱턴의 시어터 쳄버 플레이어즈의 지휘자로 활동하였고, 1959년 이래 피바디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 후, 기적적으로 그의 오른손이 감각을 되찾았다.
연주 : Vladimir Horowitz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연주 : David Geringas (다비드 게링가스)
첼로 연주자 첼로 연주자
연주 : Andreas Staier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하프시코드와 포르테 피아노 연주자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2014년 국제클래식음악상(ICMA)에서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는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로 최고의 찬사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1955년 괴팅겐 태생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는 하노버와 암스테르담에서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공부하였고, 고음악 전문 연주 단체 무지카 안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하프시코드와 포르테 피아노 연주자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2014년 국제클래식음악상(ICMA)에서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는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로 최고의 찬사와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1955년 괴팅겐 태생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는 하노버와 암스테르담에서 피아노와 하프시코드를 공부하였고, 고음악 전문 연주 단체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3년간 활동하면서 투어와 녹음활동을 하였다. 또한 독주자로서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의 활발한 활동과 함께 콘체르토 쾰른,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연주하였다.

슈타이어는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요크 고음악 페스티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라이프치히 바흐 페스티벌, 키싱거 썸머 페스티벌 등 유럽의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연주하였고, 빈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 필하모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위그모어홀, 싱헐센터, 콘세르트허바우, 브뤼셀 팔레 데 보자르, 취리히 톤할레, 라 빌레트 음악도시, 뷔페 뒤 노르, 이크람, 샹젤리제 극장, 페르골라 극장, 산토리홀, 카네기홀을 비롯한 유서 깊은 공연장에서 연주하였다. 또한 영국 공영방송BBC에서 정기적으로 초청받아 연주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제페크, 첼리스트 로엘 디엘티엔스와 함께 피아노 트리오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알렉산더 멜니코프, 토비아스 코흐, 독일 바리톤 게오르그 니글, 바이올리니스트 페트라 뮐레얀스, 이자벨 파우스트, 그리고 클라리네티스트 로렌조 코폴라를 비롯한 실력있는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안네 소피 폰 오터, 페드로 메멜스도르프, 알렉세이 루비모프 등 저명한 연주자들과 연주하였으며, 테너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디엔과 함께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베토벤, 라흐너, 브람스 음반을 발매하였고 클라리네티스트 로렌조 코폴라와 함께 브람스 소나타를 녹음하여 2015년 가을 발매 예정이다.

안드레아 슈타이어의 많은 음반들이 비엠지, 텔덱,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출시되었고, 2003년 이 후, 그의 음반들이 많은 국제 언론에서 수상하였다. 특히 슈타이어의 레코딩 중 쇼른스하임과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 음반은 프랑스 디아파종상, 독일 음반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주한 C.P.E. 바흐 음반을 통해 그라모폰상을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디아벨리 변주곡 음반을 통해 스케르초, 그라모폰, 10/10 클래시카, 그리고 BBC 뮤직 매거진에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으며, 17세기 독일과 프랑스의 작품을 수록한 음반은 그의 두 번째 그라모폰상을 수상하였다.
연주 : Emanuel Ax (엠마누엘 엑스)
피아노 연주자 피아노 연주자
재즈, 클래식 트럼펫 연주자이다.1961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인 아버지 엘리스 마설리스 밑에서 형 브랜퍼드, 동생 델피요, 제이슨 등과 함께 음악을 익혔다. 십 대 후반부터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0년대 초반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며 명성을 굳혔다. 어린 시절부터 재즈와 클래식음악을 모두 연마해 양 부문에서 아홉 개의 그래미상을 수... 재즈, 클래식 트럼펫 연주자이다.1961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인 아버지 엘리스 마설리스 밑에서 형 브랜퍼드, 동생 델피요, 제이슨 등과 함께 음악을 익혔다. 십 대 후반부터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0년대 초반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며 명성을 굳혔다. 어린 시절부터 재즈와 클래식음악을 모두 연마해 양 부문에서 아홉 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발표한 재즈 오라토리오 [들판에 뿌려진 피Blood on the Fields]를 통해 재즈 작품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87년 뉴욕 링컨 센터에 상설 재즈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1996년 세계 최초의 재즈 전용 복합 공간인 재즈 앳 링컨 센터를 설립해 현재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7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재즈-록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이하 RTF)의 수장 칙 코리아는 이미 1960년대부터 독창적인 연주 영역을 개척해 온 재즈 피아노의 대가이다. 그는 1940년대 버드 파웰, 1950년대 호래이스 실버와 빌 에반스 ,1960년대 맥코이 타이너와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으며 20세기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힌데... 7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재즈-록 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이하 RTF)의 수장 칙 코리아는 이미 1960년대부터 독창적인 연주 영역을 개척해 온 재즈 피아노의 대가이다. 그는 1940년대 버드 파웰, 1950년대 호래이스 실버와 빌 에반스 ,1960년대 맥코이 타이너와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받으며 20세기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힌데메스(Hindemeth), 바르톡(Bela Bartok)의 전위적인 4성 화음 전개를 자신의 연주에 도입하며, 특유의 서정성과 박진감이 묻어나는 피아노 연주를 창조해낸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완벽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한 그는 재즈-펑크의 기인 허비 핸콕(Herbie Hancock)과 ECM을 활동무대로 한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e)과 더불어 당대 ‘3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추앙되곤 한다. 작열하는 라틴 음악의 기운은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이미 재즈 스탠다드 반열에 오른 ‘La fiesta’, ’Spain’, ’Window’에서 펼쳐보인 유려한 라틴 선율은 그의 연주에 한층 대중성을 띄게 해준다. 하드 밥 스타일의 연주를 특기로 한 재즈 초년병 시절을 시작으로 60년대 말, 마일즈 데이비스의 퓨전 사단의 일원으로, 이후 재즈 퓨전과 정통 재즈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음악세계를 보여준 그는 지금까지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만도 앤소니 코리아(Armando Anthony Corea) 라는 본명으로 1941년 6월 12일 미국 매사츄세츠 주 태생인 칙 코리아는(참고로 그의 성 ‘Corea’는 우리나라와 전혀 관련이 없다) 4세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 버드 파웰과 호래이스 실버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 재즈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 졸업 후인 1962년 뉴욕에 진출,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로 나선 그는 아프로-큐반 퍼커션 주자 몽고 산타 마리아를 비롯, 윌리 보보, 블루 미첼, 스탄 게츠와 같은 당대 중견급 재즈 뮤지션들의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1966년까지 여러 밴드의 사이드 맨으로서 활약한 그는 당시의 세션 경험을 통해 얻은 라틴 재즈의 기운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다. 어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첫 솔로 앨범< Tones For Joanes Bone >(1966)과 < Inner Space >(1966)을 연이어 발표하며 현대 클래식과 라틴 음악을 접목한 그의 독특한 연주 작법에 평론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블루 노트사에서 내놓은 초기 걸작 < Now He Sings, He Sobs >(1968)에서 들려준 신선한 트리오 연주(미로슬라브 비터우스;베이스, 로이 하인즈; 드럼)는 ‘50-60년대 빌 에반스 트리오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라는 호평을 받으며 ’칙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그만의 연주 세계를 확립시킨다. 당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모색했던 재즈 퓨전의 창시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런 그의 독창적인 프레이징에 매료,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내며 마일즈의 5인조 퀸텟의 마지막을 알린 < Filles De Kilimanjaro >(1968)에서 키보드 연주를 하게 된다. 얼마 후 재즈 퓨전의 서막을 장식한 < In A Silent Way >(1969)와 < Bitches Brew >(1969)에서도 키보드 연주자로 참여한 그는 마일즈와의 세션 경험을 통해 70년대 자신이 일궈낼 재즈 퓨전의 신화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2년간 마일즈와 함께 한 그는 다시 솔로로 나서며 전위적인 프리 재즈 연주를 들려준 써클(Circle)을 조직, 마일즈 데이비스의 < Bitches Brew >녹음을 통해 만난 베이시스트 데이브 홀란드(Dave Holland)와 드러머 베리 알트슐(Barry Altschul)와 의기투합하며 < Song For Singing >(1970), < A.R.C >(1971)를 발표한다.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써클은 프리 재즈 색스폰 주자 앤소니 브랙스톤(Anthony Braxton)과 함께 한 야심찬 라이브 실황 앨범 < Circle-Pari concert >(1971)까지 발표하지만 평론가들의 극찬과는 달리 엘리트적이라 느껴진 프리 재즈의 광기에 등을 돌려버린 대중들의 외면에 결국 그의 실험밴드 써클은 얼마 후 쓰디쓴 해산을 맛본다. 다수와 함께 공감할 수 없는 음악이 무용하다고 느낀 그는 과거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작업을 떠오르게 되었고, 얼마 후 그의 재즈 퓨전 밴드 RTF가 탄생한다. 1972년 < Return To Forever >와 < Light As A Feather >를 연이어 발표한 그는 비슷한 시기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웨더 리포트와 함께 재즈-록 퓨전의 ‘빅 3’로 떠오르며 차츰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피아노 대신 일렉트릭 키보드만을 연주한 앨범에서 수록곡 ‘La fiesta’와 ’Spain’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후 일렉트릭 기타가 연주의 중심으로 부각되며 한층 힘이 실린 하드 록 성향의 연주를 지향하며 < Hymn Of Seventh Galaxy >(1973), < Where Have I Known You Before >(1974), < No Mystery >(1975), < The Romantic Warrior >(1976)를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시키며, 2개의 그래미상을 얻어내며 RTF는 7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재즈-퓨전 밴드로 부상한다. 그러나 한층 인기의 주가가 치솟았을 무렵 RTF는 라이브 앨범< Live >(1977)를 끝으로 종언을 선언했다. RTF 활동과 병행, 그는 < The Leprechaun >(1975), < My Spanish Heart >(1976)과 같은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규정했던 플라멩코 음악의 정수를 집대성한다. 특히 앨범 < My Spanish Heart >에 수록된 대곡 ‘El bozo’와 ’Spanish f antasy’는 그의 음악 인생의 화두인 라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늠케 하는 본보기이다. RTF의 해산과 함께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듀엣, 트리오, 쿼텟을 통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며 70년대 초부터 콤비로 활약한 비브라폰 주자 게리 버튼(Gary Burton)과의 협연 작< Crystal Silence >(1972), < Duet >(1978), < Live In Zurich >(1979), < Lyric Suite For Sextet >(1982)를 연이어 발표하며 1979년 그래미상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고, 허비 핸콕과 함께 한 이색적인 피아노 듀엣 작 < A Evening With Chick Corea & Herbie Hancock >(1978)을 발표한다. 80년대 초엔 자신의 레이블 스트레치(Stretch)를 설립하며 음악 산업 내 사업가로도 활약하게 된 그는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마이클 브레커(색스폰), 에디 고메즈(베이스), 스티브 갯(드럼)과 같은 탁월한 테크니션들과 함께 한 프로젝트< Three Quartets >(1981)을, 게리 피콕(베이스), 로이 하인즈(드럼), 조 핸더슨(색스폰)과 함께 한 < Live In Montreux >(1981)을 발표한다. 같은 해 ECM을 통해 그의 초기 트리오 명반 < Now He Sings, He Sobs >에 참여했던 미로슬라브 비터우스(베이스), 로이 하인즈(드럼)이 다시 모여 < Trio Music >(1981)을 발표한다. 재즈 퓨전에서 다시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 귀환하는가 싶던 차에 그는 1986년 촉망받던 젊은 세션맨 데이브 웨클(Dave Weckl;드럼)과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베이스)와 함께 일렉트릭 밴드(Electric band)를 결성, 재즈 록 퓨전으로의 즐거운 외도를 감행한다. GRP에서 나온 밴드 데뷔작 < The Electric Band >(1986)를 시작으로 에릭 마리엔탈(Eric Marienthal; 색스폰), 프랭크 갬블(Frank Gambale;기타)이 정규 라인업으로 참여한 < Light Year >(1987), < Eye Of The Beholder >(1988), < Inside Out >(1990), < Beneath The Mask >(1991)에 이르기까지 만 5년을 활동한 일렉트릭 밴드는 RTF 시절 이상의 인기를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달성한다. 일렉트릭 밴드와 함께 그는 밴드 내 멤버였던 존 패티투지, 데이브 웨클과 어쿠스틱 밴드를 조직해 활동을 병행했고, 후에 이를 발전시켜 90년대 초엔 쿼텟으로 다시 재편, 밥 버그(Bob Berg;색스폰),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 베이스), 게리 노박(Gary Novac; 드럼)으로 구성된 ‘칙 코리아 쿼텟’ 활동으로 이어지며, < Time Warp >(1995)를 발표한다. 90년대 후반부턴 자신의 레이블 스트레치를 통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한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음악세계를 조명한 < Remembering Bud Powell >(1996)을 발표했고, 1996-97년까지 케니 가렛(색스폰), 왈리스 로니(트럼펫)와 같은 스타급 재즈 뮤지션과 세계 투어를 펼치며 비밥 피아노의 명인 델로니어스 몽크와 버드 파웰의 음악을 재해석한다. 1997년, 재즈 고전의 재해석을 모토로 한 모던 섹스텟(Sextet) 오리진(Origin)을 결성, 일본 블루 노트 클럽에서 6일 동안의 마라톤 콘서트 실황을 담은 < A Week At The Blue Note >(1998)를 발표, 노익장을 드러내며 전 세계 재즈 팬들의 화제를 모았다. 1997년엔 명콤비 게리 버튼과 15년만에 다시 만나 다섯 번 째 듀엣< Native Sense >(1997)를 발표,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재즈 인스트루멘털 상을 획득한다. 환갑을 바로 보는 2000년, 자신의 곡과 재즈 스탠다드로 꾸며진 단출한 피아노 솔로< Piano Standard >, < Piano Original >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집대성하고, 이듬해 그의 섹스텟 오리진에서 만난 아비쉬 코헨(Avish Cohen;베이스) 제프 발라드(Jeff Ballard;드럼)와 함께 어쿠스틱 트리오를 결성 < Past, Present, Future >(2001)를 발표한다.
연주 : Christoph Eschenbach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독일의 피아노 주자이기도 하다.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령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에 모친을, 4세 때 음악가였던 부친도 잃게 되어 1946년 에센바흐 집안의 양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였던 양모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웠는데, 10세 때에 지휘자인 요훔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의 권유로. 함부르크에서 명교사 엘리자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다. 일찍이 13세로 스타인웨이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 독일의 피아노 주자이기도 하다.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령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에 모친을, 4세 때 음악가였던 부친도 잃게 되어 1946년 에센바흐 집안의 양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였던 양모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웠는데, 10세 때에 지휘자인 요훔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의 권유로. 함부르크에서 명교사 엘리자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다. 일찍이 13세로 스타인웨이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16세 때 아헨에 옳기고, 쾰른 음악원에서 H.슈미트 - 노이하우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하던 해 1959년에 독일음악학교연맹 주최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그 후 다시 함 부르크에서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고 동시에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우고 21세 때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1962년에는 뮌헨 국제 콩쿠르에서 제1위 없는 제2위로 입상하고, 유럽 각지에 연주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1965년의 제2회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1967년에는 미국에도 데뷔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래 전후의 독일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였고, 1973년 지휘자로서도 데뷔하여 각지의 오케스트라에 초청되었다.

1980년부터는 취리히 톤할레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에셴바흐는 반드시 기교파의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항상 작품에 대해 성실하고 예민하게 파고 들어가는 그 연주에서 청신한 감각이 상쾌하며, 로맨틱한 정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데뷔 레코드인 슈만의 [어린이 정경](그라모폰) 외에 1960년대 후반에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그라모폰)은, 그러한 그의 작품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젊디젊은 서정이 표현된 아름다운 연주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의 에셴바흐는 그 성실한 음악성에다 깊이 작품의 내면에 파고드는 예민함으로 적극적인 표현을 가미하여, 더욱 정신적인 엄격함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러한 이 시기의 그의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베토벤의 [하머클라비어](그라모폰)이었다. 여기서 그는 놀랄 만한 집중력으로써 이 대작을 일순의 이완도 없이 연주하고 있으며 더욱이 내성적인 아름다운 정열과 노래가 넘치고 있다. 또 쇼팽의 [전주곡집](그라모폰)도 깊은 내면적인 노래와 서정을 음영도 아름답게 노래한 독특한 표현이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카라얀과 협연한 베토벤의 [제1번], 헨체와 협연한 베토벤 [제3번], 오자와와 협연한 베토벤 [제5번(황제)](이상 그라모폰)의 3가지에서 각각 그의 개성이 훌륭히 발휘되어 있다. 최근 지휘와 솔로를 겸하고 녹음을 시작한 모차르트(에인절)에서는 이제까지 이상으로 섬세하게 닦여진 표현을 들려주고 있다.

그 밖에 실내악이나 리트 반주에도 뛰어난 연주가 많고, 피셔-디스카우와 협연한 [슈만 가곡 전집] 전 3권(그라모폰)에서 로맨틱한 정열을 간직한 예민하고 유연한 표현으로 그의 자질이 훌륭하게 발휘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연주 : Murray Perahia (머레이 페라이어)
피아니스트, 지휘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연주 : Evgeny Kissin (예프게니 키신 )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항공 우주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여섯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영재 학교에 입학하여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에게 배웠으며 그녀는 그의 평생 유일한 스승으로 남아 있다. 1984년 열두 살의 나이에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모스크바 음악원 대극장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으며 이 유명한 콘서트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1971년 10월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항공 우주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여섯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영재 학교에 입학하여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에게 배웠으며 그녀는 그의 평생 유일한 스승으로 남아 있다. 1984년 열두 살의 나이에 드미트리 키타옌코의 지휘로 모스크바 음악원 대극장에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으며 이 유명한 콘서트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연주회로 기억된다. 그는 그날 저녁까지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다음날 아침 그는 이후 시작되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1985년 동유럽 무대 데뷔 후 1987년 베를린 페스티벌을 통해 서유럽 무대에 데뷔했고, 1988년 12월 신년 음악회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한 연주가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된다. 1990년 런던의 BBC 프롬스 콘서트에 처음으로 출연했으며, 같은 해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북미 에 데뷔했다. 1997년 그는 러시아 공화국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문화 훈장인 트리움프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BBC 프롬스 역사상 최초로 피아노 독주회를 가졌다. 1991년 러시아 시민 혁명 직후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2002년 영국 국적을, 2013년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도 신동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피아니스트 레오폴트 고도프스키의 ‘놀라움이 사라지고 나면 어린 아이만 남을 뿐’이라는 경구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신동을 뛰어넘어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피아니스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연주 : Frank Peter Zimmermann (프랑크 페터 침머만)
바이올린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테오르보, 류트 연주자, 작곡가 테오르보, 류트 연주자, 작곡가
바이올린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연주 : Arcadi Volodos (아르카디 볼로도스 ,Arcady Volodos / Arkady Volodos)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이스라엘 피아니스트인 야라 탈과 독일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그뢰투이젠이 결성한 피아노 듀오 이스라엘 피아니스트인 야라 탈과 독일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그뢰투이젠이 결성한 피아노 듀오
연주 : Giuliano Carmignola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바이올린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연주 : Midori (미도리 ,五嶋 みどり,Goto Midori)
바이올린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첼로 연주자 첼로 연주자
연주 : Dorothee Oberlinger (도로테아 오베링거 )
리코더(바로크 플루트) 연주자 리코더(바로크 플루트) 연주자
연주 : Lisa Batiashvili (리사 바티아쉬빌리)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지휘 : Fritz Reiner (프리츠 라이너)
지휘 : Leonard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 레너드 번스타인은 1918년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출신이며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하기를 좋아했으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다.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했고, 1937년 모더니즘 음악의 대가였던 디미트리 미트로폴로스(Dimitri Mitropolous)를 만나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하버드의 미학교수였던 데이비드 프롤(David Prall)로 부터 예술을 이해하고 음악을 표현하는데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39년 그의 졸업논문은 '인종적 요소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썼다.

졸업 후에는 F.라이너, S.쿠세비츠키에게 지휘법을, 톰프슨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1943년 뉴욕필하모니 음악감독이었던 아서 로진스키(Arthur rodzinski)의 인정을 받아 뉴욕필하모닉의 보조지휘자가 되었다. 그해 11월 14일 뉴욕필하모니의 지휘자 브루노 발터(Bruno Walter)가 급환으로 지휘를 못하게 되자, 그의 대신 뉴욕필하모니의 지휘를 맡았고 CBS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되었다. 번스타인은 이 한번의 기회로 유명세를 탔고 이름을 떨치게되었다. 1944년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지휘하였고 자신의 첫 교향곡 《예레미야 심포니 Jeremiah Symphony》을 연주했다.

당시 유럽에서 일어난 2차세계대전은 러시아로 확전되었고 히틀러가 저지런 대량학살 소식이 미국 전해졌다. 부모가 러시아 출신인 번스타인은 러시아 난민을 돕자는 자선행사에 자주 초대되어 나갔으며 카네기홀 등에서 자선 연주회를 열었다. 번스타인은 음악뿐만아니라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진보당 창당에 관여하였고 진보적 단체의 단결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그는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정치적 성향은 공산주의로 분류되었다. 그는 CBS 방송국 출입이 금지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의 음악과 공연은 취소되었다. 번스타인은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마침내 미국의 유력지인 라이프 지에 50명의 대표적인 좌파 블랙리스트로 번스타인이 소개되었고 뉴욕필하모니 지위자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1953년 7월 미국 국무부는 번스타인의 여권 갱신을 거부하였고 항상 FBI의 감시를 받으며 고립되었다가 자신의 활동과 신념을 부정하는 진술서에 서명하고 나서야 여권을 받아 유럽으로 갈 수 있었다. 그해 8월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연주활동을 하였는데 음악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미국인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 결과 컬럼비아 영화사의 승인을 얻어내 《워터프론트 Waterfront》(1954)라는 영화음악 제작을 맡을 수 있었다. 그후 포드 자동차의 의뢰를 받아 연주회를 열었고 CBS를 통해 방송되었다. 번스타인은 다시 뉴욕 필하모니로 복귀하게 되었으며 미국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57년 뉴욕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이듬해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회는 최대의 흥행을 보증하게 되었다. 번스타인은 뮤지컬《웨스트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1957)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가장 미국적인 뮤지컬의 창작하였다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인 성향이 보수로 전향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내 민권투쟁과 인종차별 등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1964년 번스타인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민권운동에 가담하여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와 함께 앨라바마에서 열린 셀마 대행진에 참가하였다. 번스타인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닉슨 행정부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종전을 주장하였고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이 시기에 자신의 사회사상을 표현한 교향곡《카디시 Kaddish》(1963)와《치체스터 시편 Chichester Psalms》(1965)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보수파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미국내 진보세력의 몰락을 우려하였고 보수파가 추진하는 핵무기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과 다르게 변모하는 미국사회의 모습으로 번스타인은 상실감으로 실의에 빠져들었다. 20세기 미국을 표현하는 오페라를 구상하였으나 끝내 작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1985년 세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영국, 일본, 그리스, 헝가리 등지에서 연주했으며 이후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연주활동을 했다. 1990년 10월 14일 사망했다.
지휘 : Carlos Kleiber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 Frieder Bernius (프리더 베르니우스)
지휘 : Daniel Barenboim (다니엘 바렌보임)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은 194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식적으로 데뷔 연주회를 가지며 신동 아티스트로 유명세를 떨쳤다.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이고르 마르케비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나디아 불랑제 등을 사사했다. 1965년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본격적인 지휘자로 데뷔했으며, 1981년 이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등을 지휘하며 대표적인 바그너 지휘자로 급부상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또한 1992년부터 도이치 슈타츠오퍼 베를린의 음악감독 겸 이 극장의 상주 악단인 슈타츠카펠레 베를린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현재 UN 평화대사로 활동 중이다.
지휘 : Claudio Abbado (클라우디오 아바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음악원에서 지휘, 피아노, 작곡을 배웠다. 이 음악원을 졸업한 다음 빈에서 한스 스바로프스키에게 지휘를 배웠다. 1958년에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쿠세비츠키 상(賞)을 받았다. 1960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갤러콘서트에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 데뷔했다. 1963년에 뉴욕에서 열린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65년 8월 14일에,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다. 그 때의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이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시즌 최초의 공연을 지휘했다. 작품은 벨레니의 오페라 [카풀레티와 몬테키]였고, 1968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를 지휘했다. 그 해에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0년에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를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 작품은 그 뒤에 런던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도 지휘하였다. 1971년에 빈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로 지명되었다. 뮌헨 음악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하였다. 1972년에 베를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의 첫날을 지휘하였다. 이해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뮌헨에서 스칼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지휘하여 베르디의 [레퀴엠]과 오페라 [아이다]를 연주한 것도 1972년의 일이다. 1973년에 빈의 모차르트 협회에서 모차르트 메달을 그에게 주었다. 이해에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및 필라델피아 관현악단과 함께 미국을 연주 여행하였고, 빈 필하모니와 함께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도 연주 여행하였다. 이때가 아바도의 첫 한국 방문이었다. 더욱이 이 해에는 런던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1974년에는 아바도로서는 최초의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을 스칼라 극장에서 지휘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바도는 착착 그 활동의 무대를 넓혀 온 셈인데 그 활동 무대 확대 방식은 용의주도하였다. 이것은 레퍼토리의 선택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제까지(1981년 봄) 아바도는 이탈리아의 지휘자이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로 이름난 스칼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푸치니에 의해 대표되는 베르디 이후의, 일반적으로 베리스모 오페라라고 불리는 오페라를 조심성 있게 피해 왔다. 한편으로 프로코피예프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하고, 더욱 루이지 노노의 신작 초연을 종종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아바도의, 굳이 말한다면 지성파(知性派)라고 할 수도 있는 지휘자로서의 본연의 자세가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사실 아바도의 연주는 열기에 가득 찼다든가 또는 정열적이라든가 하는 형용이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지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연주는 언제나 명쾌하고, 조금의 애매모호함도 없으며, 그 작품의 양식적인 아름다움을 뚜렷이 떠오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휘자로서는 아직도 젊다고 할 수 있는 아바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마 그 정교하고 치밀함을 잃지 않으면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부한 표현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아바도는 문자 그대로의 수재 코스를 걸어 왔고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1989년 정식 상임 지휘자가 없는 빈 필하모니의 준상임 지휘자로 있었으며, 1989년 카라얀의 사망으로 그의 휘하였던 베를린 필의 제5대 음악 감독으로 취임해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휘 : Gottfried von der Goltz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 )
바이올린 연주자, 지휘자 바이올린 연주자, 지휘자
지휘 : Esa-Pekka Salonen (에사 페카 살로넨)
지휘 : Colin Davis (콜린 데이비스)
지휘 : Thomas Hengelbrock (토마스 헹겔브로크)
지휘 : Nikolaus Harnoncourt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 James Levine (제임스 레바인)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피아노 연주자, 지휘자
지휘 : Mariss Jansons (마리스 얀손스)
지휘 : Christian Thielemann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 Christoph Eschenbach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독일의 피아노 주자이기도 하다.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령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에 모친을, 4세 때 음악가였던 부친도 잃게 되어 1946년 에센바흐 집안의 양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였던 양모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웠는데, 10세 때에 지휘자인 요훔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의 권유로. 함부르크에서 명교사 엘리자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다. 일찍이 13세로 스타인웨이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 독일의 피아노 주자이기도 하다.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령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에 모친을, 4세 때 음악가였던 부친도 잃게 되어 1946년 에센바흐 집안의 양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였던 양모에게 음악의 초보를 배웠는데, 10세 때에 지휘자인 요훔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의 권유로. 함부르크에서 명교사 엘리자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다. 일찍이 13세로 스타인웨이 콩쿠르에 입상하였다. 그리고 16세 때 아헨에 옳기고, 쾰른 음악원에서 H.슈미트 - 노이하우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하던 해 1959년에 독일음악학교연맹 주최의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그 후 다시 함 부르크에서 한젠 여사를 사사하였고 동시에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우고 21세 때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1962년에는 뮌헨 국제 콩쿠르에서 제1위 없는 제2위로 입상하고, 유럽 각지에 연주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1965년의 제2회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더욱 이목을 집중시켰다. 1967년에는 미국에도 데뷔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래 전후의 독일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하였고, 1973년 지휘자로서도 데뷔하여 각지의 오케스트라에 초청되었다.

1980년부터는 취리히 톤할레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에셴바흐는 반드시 기교파의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항상 작품에 대해 성실하고 예민하게 파고 들어가는 그 연주에서 청신한 감각이 상쾌하며, 로맨틱한 정감이 넘쳐 흐르고 있다. 데뷔 레코드인 슈만의 [어린이 정경](그라모폰) 외에 1960년대 후반에 녹음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그라모폰)은, 그러한 그의 작품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젊디젊은 서정이 표현된 아름다운 연주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의 에셴바흐는 그 성실한 음악성에다 깊이 작품의 내면에 파고드는 예민함으로 적극적인 표현을 가미하여, 더욱 정신적인 엄격함과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러한 이 시기의 그의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 베토벤의 [하머클라비어](그라모폰)이었다. 여기서 그는 놀랄 만한 집중력으로써 이 대작을 일순의 이완도 없이 연주하고 있으며 더욱이 내성적인 아름다운 정열과 노래가 넘치고 있다. 또 쇼팽의 [전주곡집](그라모폰)도 깊은 내면적인 노래와 서정을 음영도 아름답게 노래한 독특한 표현이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카라얀과 협연한 베토벤의 [제1번], 헨체와 협연한 베토벤 [제3번], 오자와와 협연한 베토벤 [제5번(황제)](이상 그라모폰)의 3가지에서 각각 그의 개성이 훌륭히 발휘되어 있다. 최근 지휘와 솔로를 겸하고 녹음을 시작한 모차르트(에인절)에서는 이제까지 이상으로 섬세하게 닦여진 표현을 들려주고 있다.

그 밖에 실내악이나 리트 반주에도 뛰어난 연주가 많고, 피셔-디스카우와 협연한 [슈만 가곡 전집] 전 3권(그라모폰)에서 로맨틱한 정열을 간직한 예민하고 유연한 표현으로 그의 자질이 훌륭하게 발휘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 Chicago Symphony Orchestra (시카고 교향악단,CSO)
오케스트라 : New York Philharmonic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Philharmonic-Symphony Society of New York, 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New York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오케스트라 : Cleveland Orchestra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 Wiener Philharmoniker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VPO),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 Berliner Philharmoniker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BPO)
오케스트라 : L'Archibudelli (아르키부델리)
오케스트라 : Smithsonian Chamber Orchestra (스미소니언 챔버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 Franz Liszt Chamber Orchestra (프란츠 리스트 챔버 오케스트라,Liszt Ferenc Kamarazenekar / Franz-Liszt-Kammerorchester)
오케스트라 : Cantus Colln (칸투스 쾰른)
보컬 앙상블 막달레네 하레르 Magdalene Harer, Sopran 엘리자베스 포핀 Elisabeth Popien, Alt 한스 외르크 맘멜 Hans Jorg Mammel, Tenor 볼프 마티아스 프리드리히 Wolf Matthias Friedrich, Bass 콘라드 융해넬 Konrad Junghanel, conductor 보컬 앙상블
막달레네 하레르 Magdalene Harer, Sopran
엘리자베스 포핀 Elisabeth Popien, Alt
한스 외르크 맘멜 Hans Jorg Mammel, Tenor
볼프 마티아스 프리드리히 Wolf Matthias Friedrich, Bass
콘라드 융해넬 Konrad Junghanel, conductor
오케스트라 : Freiburger Barockorchester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Freiburg Baroque Orchestra)
오케스트라 : LA Philharmonic Orchestra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os Angeles Philharmonic Orchestra (LA Phil, LAP, or LAPO))
합창 : Kammerchor Stuttgart (슈투트가르트 실내 합창단,Stuttgart Chamber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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