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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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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276g | 115*205*15mm |
ISBN13 | 9788937442537 |
ISBN10 | 8937442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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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던 건 지난해였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여동생까지 슬하에 3남 3녀의 많은 자식을 두었건만 병든 노모를 거두고 돌보겠다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팍팍한 현실이 만들어 준 이런저런 변명과 구실들이 노모를 모시지 못하는 주된 이유였지만, 요양원이라는 더없이 편리한 기관이 자식들의 불효를 모두 덮어주는 까닭에 지근거리에서 노모를 모시지 않고도 어떤 자책이나 회의감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사셨던 엄마가 재작년 어느 날 목욕탕에서 넘어져 약간의 뇌출혈 증상을 보였던 게 요양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감옥과도 같았던 요양원에서 2년 남짓을 보내고 돌아가셨다. 코로나 시국에 면회도 되지 않는 그 답답했던 시간을 엄마는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면회가 금지된 한 달 사이에, 대명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주치의가 전했다. 그는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쯤 덮고 일남과 두어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대명의 임종 상황을 설명했다. 한 달 만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지난달 면회 때만 해도 아주 좋아 보이셨다고, 일남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흔둘, 언제 어느 순간에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였다." (p.254 '특별재난지역' 중에서)
김유담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읽다가 기어코 흐르는 눈물을 찍어내고야 말았다. 표제작인 '돌보는 마음'을 포함하여 열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소설집은 돌봄을 근간으로 한 여성의 서사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적 파고를 직접 겪어 보았고, 이를 통해 '돌봄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쓴 열 편의 짧은 소설을 매개로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돌봄'을 소재로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 이를테면 청소년과 노년, 전업주부와 감정 노동 종사자 등 각계각층의 시선으로 돌봄의 현실과 마음을 펼쳐 보인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그녀는 아기를 독립적인 자아를 지닌 타인으로 인정하며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임신 기간 내내 태아는 자신과 개별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그녀의 의지나 생활 패턴과는 무관하게 태동하고, 무관하게 반응하는 아기의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태아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타자를 품고 있다는 이물감이 앞섰다. 하지만 친구가 툭 던지듯 말한 인생의 성패라는 단어가 가슴 한구석에 날카롭게 박히는 순간, 자신과 아기가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p.139 조리원 천국' 중에서)
<돌보는 마음>에는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한 『안(安)』도 수록되어 있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큰엄마와 여성의 능력을 강조하는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란 '나'의 고민을 통해 '집 안 여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그 외에도 복직을 앞둔 워킹맘 '미연'의 베이비시터에 관한 고민을 다룬 소설 '돌보는 마음'과 젖 잘 나오는 엄마가 되기 위해 몰두하는 산후 조리원의 풍경을 담은 '조리원 천국', 코로나로 아버지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특별재난지역', 노년에 졸혼을 결심한 ‘희숙’과 노년에 결혼을 결심한 ‘명주’를 통해 결혼과 여성의 삶을 새로운 각도로 조망하는 '태풍주의보'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계각층의 여성들을 통해 돌봄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나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공과 헤어졌고, 공의 집에서 나왔다. 처음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편하게 살면서 호강에 겨운 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고, 이혼 과정에서는 혼자만 편하려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 여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p.72~p.73 '안(安)' 중에서)
'평균 수명의 연장이 우리의 삶에 과연 득일까, 실일까?' 하는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할 때가 있다. 불과 쉰 살을 넘기지 못했던 수백 년 전의 사람들에 비한다면 우리의 삶은 획기적으로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수명 연장이 우리 모두를 행복한 삶으로 안내할 것이라는 기대는 애저녁에 접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환갑이 지나 백발이 성성해진 자식이 백수를 바라보는 부모를 모시는 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부모가 자식 늙어가는 걸 하릴없이 지켜보는 건 얼마나 가슴 미어지는 일이겠는가. 차라리 젊고 건강한 자식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는 게 백 번 행복한 일일 테다. 그러나 돌봄 노동의 부담을 오롯이 홀로 떠안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고된 삶과 이를 당연한 듯 여기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이기적인 삶을 생각할 때, 약자를 향한 애정의 발현이라는 돌봄이 오늘날에 와서는 노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나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통해 배운다. 신은 사랑의 꼬리표에 돌봄이라는 의무를 우리들 몰래 매달아 두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되면서, 아이와, 나의 부모와, 나자신에 대해 '돌보는 마음'이 무언인가를 자주 생각 하게 되었다. 워킹맘으로써 육아와 회사일에 고분분투하며 마음이 지쳐 있던 무렵, 김유담 작가의 '돌보는 마음' 단편소설집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첫 페이지부터 글이 섬세하고 흥미진진해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고,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상황에 처해진 주인공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도 받을 수 있었다.
김유담 작가님은,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돌보는 이의 마음', 그리고 어쩌면 남들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쓸쓸하면서도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순간에 대해 예리하게 잘 그리셨다. '어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게 아니었어.' 라는 감탄사를 남발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말이다.
<<안(安)>>에서, 평생 시댁 식구들을 뒷바라지 하는 큰엄마와,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일만 하면서 가정내 돌봄을 큰엄마에게 당연하게 의지했던 엄마와, 남편 가정의 평화를 위해 며느리의 주말 가족 행사 참석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일하는 며느리의 고충을 이해 못했던 시어머니, 시어머니에게는 시큰둥 했던 큰엄마의 며느리 등 다양한 역할에서의 여성들의 행동과 그들의 심리상태가 보는 이를 참 씁쓸하게 만들었다. 남을 돌보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타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둘 수 밖에 없어서, 그 무게 때문인지, 돌본다는 행위의 따뜻함과는 반대로 각자의 위치에서는 그들의 자리가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큰엄마가 주인공 윤미에게는 엄마처럼 자신을 돌봐준 따뜻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시댁에서 큰엄마와 같은 역할을 요구 받았을 때 당연히 그 역할을 받아 들일 수 없었던 장면을 그린 부분은, 시대가 흐르며 바뀐 '돌봄'의 가치관에 대한 시대상의 반영이지 않았을 까 싶다. 조금은 다르지만, 나도 회사에서 후배로 부터 몇년 전, "선배가 신입사원때 그렇게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선배로부터 받았다고 해서, 우리들도 꼭 그런 역할을 수행할 필요는 없는거잖아요. 그때와 지금은 달라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다르게 받아 들일 수도 있구나란 생각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큰엄마도 조카인 윤미를 생각해서 이혼을 말리며 "나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된다." 라는 말을 했겠지만, 윤미 입장에서는 내후배가 한 생각 처럼 이 말이 진부하게 느껴졌으리라. 이런 걸 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리다는 말도 생각이 나고, 그간 부당함을 표현 할 수 없었던 시절에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의식의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재난지역>>도 마음이 아린 에피소드 중 하나였는데, 딸 '상희'와 주인공 엄마인 '일남'의 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대체 누가 챙겨주는 걸까? 특히 '돌봄'의 행위를 많이 하지만 생각보다 인정도 많이 못받고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길 수 없는 여성들끼리 연대하면 좋겠지만 그게 또 생각만큼은 쉽지 않은 거 같다. 딸 상희는 오히려 엄마인 일남으로부터 또다른 역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니깐. 딸은 부모를 당연하게 챙겨줘야 하고, 아들은 혜택만 받는 그러한 상황에 처해졌다는 생각. 사실 이부분은 86년생인 나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항상 갈등하는 부분이라, 시대를 떠나 쉽게 공감이 갔다. 딸인 상희는 투덜대면서도 외조부의 상(喪)을 엄마 옆에서 도왔고, 이때에도 엄마인 일남의 남동생과 아들로부터는 여러가지 사유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돌보고 도움을 주는 이와 혜택 받는 자는 항상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이 늘 아이러니 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종종 많이 든다. 일남은 어릴때에도 엄마를 일찍 여의고 아빠와 남동생을 엄마처럼 돌봤고,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과 그녀의 아이들과 며느리가 버리고 간 손녀딸과 아픈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돌봄' 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살아 갈 수도 있는 딸에게는 그게 차별인지 인지하지도 못한채 딸에게 의지하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삶의 무게의 맡긴꼴이 되었다. 딸인 상희도 엄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미래사회가 조금만 더 바뀌면 좋겠는데, 그게 과연 언제가 되어야 큰 진전이 있을 까 하는 생각과 언제쯤이면 이 모녀 세대간의 갈등이 평화롭게 풀려 엄마들의 굴레를 딸들이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기 두 에피소드 외에도, 다른 에피소드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시간상 생략코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기에, 유아기와 노년기에는 부모, 자식을 포함한 타인의 '돌봄'의 도움을 받으며 생의 시작과 마무리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엄마라면, 딸이라면, 그리고 부모가 된 남편이라면, 아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고, 나를 돌보아주는 혹은 돌보아주었던 이들에게 오늘이라도 당장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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