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혼돈에 대처하려면
본질에 충실해야
“우리가 지식을 쌓을수록 세상은 더 빨리 변하고, 그 변화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점점 더 모르는 상태가 된다.……혼돈의 상태, 무지의 상태, 변화의 상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가르치는 것이 최선이 될 것”_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저자
저자가 〈한겨레〉의 ‘유레카’ ‘스마트 돋보기’ 등에 쓴 칼럼 중 디지털 시대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들을 선정해 대폭 보완하고, 일부는 새롭게 써서 묶은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로봇을 이기는 스마트한 인재의 자질: 디지털 시대의 인재론〉은 로봇에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자질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려면 끊임없이 변하는 기술을 발 빠르게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코딩을 의무교육으로 가르치고, 심지어는 유치원에서까지 코딩을 조기 교육하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자는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더 많은 정보”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응용 기술이 빨리 변할수록 교육은 핵심과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생겨나는 세상에서는 지금 등장한 지식과 기술도 금세 낡아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구글이 직원들의 입사·퇴사·승진 데이터를 분석한 ‘옥시전 프로젝트’에서는 구글에서 성공하기 위한 여덟 가지 자질 중에서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의 전문성이 꼴찌인 여덟 번째로 나타났고, 좋은 코치되기·소통과 청취를 잘하기·관점과 가치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통찰 등이 1~3위를 차지했다. 디지털 기술이 급변할수록 오히려 로봇과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인문적·사회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장 〈기술의 빛과 그림자: 알고리즘의 윤리론〉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 일상생활에 가져올 변화와 그에 따라 새롭게 제기되는 윤리적 쟁점을 다룬다.
디지털 기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동 원리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딥러닝은 ‘은닉층’에서 작동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 기술의 구조가 눈에 보이지도, 이해되지도 않는다. “알파고 개발자도, 알파고를 대리해 돌을 놓은 프로기사 아자 황도, 바둑 중계를 해설한 프로기사들도 알파고가 왜 그 돌을 놓았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이 디젤엔진 차량의 배출가스를 감소시키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조작해오다 발각된 ‘디젤 게이트’가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알고리즘 특성상 설계자 외에는 그 특성과 작동 방식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1,100만 대의 차량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대규모 기만극을 자행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사례를 통해 “숨어버린 기술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기술의 구조와 성향을 의식하고 사용자인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기술과 서비스에 인간적 욕구를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진짜 중요한 결정은 사람의 몫
“우리는 말하는 기계를 만들어놓고 인간적이지 않은 물체에 인간의 속성을 불어넣으며 그것과 대화하려 애쓴다.”_셰리 터클,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저자
3장 〈과잉연결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스마트폰과 SNS의 관계론〉은 스마트폰과 SNS가 바꾼 인간의 관계와 소통 방식을 설명한다.
스마트폰과 SNS는 사람들이 24시간 상시 소통할 수 있도록 연결해줬고,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든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하지만 이런 ‘과잉연결’에는 부작용도 있다. 퇴근 후 업무 연락처럼 원치 않는 연결도 피할 수 없다는 점, 상대방과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대면 대화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비대면 대화를 하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 디지털 환경 속에서 계속해서 즉각적인 자극에 노출됨에 따라 집중력과 깊은 사고력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1년에 두 번 오두막에 머무는 ‘생각 주간’을 갖는 빌 게이츠, 1년에 한두 달은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끊고 명상에만 몰입하는 유발 하라리 등의 사례를 통해 휴식과 여유가 통찰력과 성취의 원동력임을 밝히고, “디지털 환경에서 삶이 숨 가쁘게 돌아갈수록 타인이나 기계에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피난처이자 휴식 공간”이 절실해진다고 강조한다.
4장 〈로봇, 인공지능, 인간의 경계에서: 포스트휴먼의 존재론〉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가져올 인간 존재의 미래를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로봇·인공지능·인간이 융합된 포스트휴먼을 탄생시키며,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4만 명 이상이 뇌에 전극을 넣는 실험에 참여하고 있고, 로봇에 ‘전자인간’ 지위를 도입해 ‘로봇세’를 물려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 7월부터 ‘로봇 실명제’를 시행했다. 사람만의 본능이라고 생각했던 호기심을 모방하는 인공지능까지 등장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고유성이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의 지위를 위협할 정도로 발달한 기술이라고 해도, 이런 기술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인공지능과 로봇이 고도로 발달해도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내면 누구 책임인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라며 “자동화 시대에도 여전히 진짜 중요한 결정은 사람의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트렌드 대신
오랜 뒤에도 유효한 ‘본질’을 말하는 안내서
“알고리즘을 객관적이라 생각해 신뢰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므로 다양한 편견과 관점이 알고리즘에 스며들 수 있다.”_다니엘레 시트론, 보스턴대학교 법학 교수
이 책은 최첨단의 디지털 기술과 기기를 키워드로 삼지만, 기술과 기기에 대한 과학적·공학적 설명이나 이들이 시장과 산업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트렌드 분석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러한 강력하고 편리한 도구로 인해 나의 삶과 사회적 관계는 어떠한 변화에 직면하게 될까’라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사유해야 할 인문학적 고민에 초점을 둔다. 빠르게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릴 트렌드에 집중하는 대신 트렌드의 저변에 놓인 거대한 흐름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기술이 변해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인간 본연의 능력과 특징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 책은 시간이 지나고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유효할, ‘인공지능 세계를 유랑하는 이주민을 위한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