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많은 교향곡’의 섬
17세기 이후 대만 역사문화의 전개도
대만은 지리적으로 지구상 최대의 대륙판인 유라시아대륙과 최대 해양인 태평양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동서 문화교류의 ‘세계도(世界島)’이자 동남아와 동북아 두 지역 문화가 상호 교차하는 지점이며,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족(漢族)의 가장 큰 해외 이주민의 섬이자 ‘대륙중국’과 ‘해양중국’이 만나는 토대로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하고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대만은 3백여 년에 걸쳐 세계의 지배세력들이 패권을 다툰 곳이기도 하다. 네덜란드(1624~1661)부터 명정(明鄭, 1661~1683), 만청(滿?, 1683~1895), 일본(1895~1945)을 거쳐 중화민국정부(1945~ )에 이르기까지 대만통치의 주체는 계속 교체되었다. 1987년에 이르러서야 계엄령이 해제되고 정치적 · 경제적 정세가 급변하면서 비소로 민주정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저자는 17세기 이후 이러한 대만문화의 발전사를 한 편의 ‘잡음 많은 교향곡’에 비유한다. 긴 시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만을 통치했던 정부들은 각기 서로 다른 문화가치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섬으로 들어와 교향곡의 서로 다른 악장을 연주한 것이다. 더구나 정치사의 각도에서 보면, 역대 대만의 통치자들은 모두 이전 통치자가 남긴 역사의 흔적들을 열심히 지워내면서 새로운 역사를 구축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았다. 결국 대만은 정치정체성과 문화정체성이 분열된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고, 여러 역사적 전환기에 동아시아 각국, 특히 중국대륙과 복잡한 상호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대만의식의 변천과정
이 책에서 저자는 대만과 대만의 정체성이란 화두를 ‘대만의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다. 대만의식이란 대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시공의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과 그 사상을 가리킨다. 그 핵심은 곧 정체성의 문제로, ‘나는 누구인가?’, ‘대만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저자의 시야에 대만의식의 형성과 발전은 대만사상사의 중요한 현상으로서, 역사적으로 그 변화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변천과정을 보인다. 저자는 이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 명 · 청시대 대만에는 단지 중국의 지방의식으로서 ‘장주(?州)의식’, ‘천주(泉州)의식’, ‘민남(?南)의식’, ‘객가(客家)의식’ 등만 존재했다. 둘째, 일제강점기에 피통치자가 된 대만인의 집단의식으로서 대만의식이 비로소 출현했다. 이 시기 대만의식은 이미 ‘민족의식’이었으며 또한 ‘계급의식’이기도 했다. 셋째, 1945년 광복 이후 대만의식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성적의식(省籍意識, 대만 본토인[內省人]과 광복 이후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外省人] 세력 간의 대립의식)’이다. 특히 2 · 28사건(1947년 2월 28일, 국민당정부가 인수위원회의 실정에 항의하는 대만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탄압한 사건) 이후 대부분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으로 구성된 국민당정권에 대항하는 대만 내성인의 ‘항쟁의식’으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넷째,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자 대만은 민주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중국의 대만에 대한 각종 압력으로 인해 대만의식은 점차 중국 공산당정권에 반항하는 ‘정치의식’으로 변해갔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 맥락 속에서 대만의식을 기본적으로 ‘항쟁논술’로 평가한다. 일제강점기 대만의식의 형성과 존재는 일본제국주의에 반항하기 위한 것이었고, 광복 이후의 대만의식은 국민당의 통치에 반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계엄령시대 이후의 대만의식은 중국공산당의 대만 탄압에 반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대만의식은 기본적으로 항쟁논술이란 토대 위에 서 있다.
대만의식과 대만문화의 구체적 양상들 1
―애증의 양안관계의 기점
이 책의 중심부는 각 시대별 대만의식과 대만문화의 변화상들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사례들로 채워진다. 19세기 말~20세기 초입 대만을 바라보던 일본 사상가들의 제국주의적 시선에서 출발해, 일제강점기 대만 지식인들이 중국과 중국의 미래를 전망하던 복잡 미묘한 감정과 견해, 광복 초기 중국대륙인들이 대만과 대만인들을 대하던 모순적 태도와 입장,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점차 개체성을 자각해나가기 시작하던 대만문화의 향방과 이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유가사상의 존재형태와 그 보수화 경향까지, 저자는 근현대 대만의식과 대만문화의 입체적 면모들을 치밀하게 분석해놓는다.
먼저 저자는 회고록이나 구술역사기록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대만 지식인들의 ‘조국의식’의 내용과 그 변천과정을 고찰한다. 일제강점기 많은 대만인들은 중국대륙을 자신의 조국으로 여겼다. 식민의 억압 하에서도 이들은 강렬한 한문화정체성을 가지고 대륙을 자신의 고향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조국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한 채 대륙에 들어갔던 대만 지식인들은 곧바로 ‘이상의 조국’과 ‘현실의 대륙’과의 격차를 깨닫기 시작한다. 광복 후 대만은 정식으로 조국에 회귀하지만, 이후 그 ‘모순적인 태도’의 조국과 전면적으로 접촉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졌고, 그로 인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한다. 특히 대만동포를 ‘전범’으로 간주한 것에 대한 대만인들의 불만이 구체적으로 표면화되었다. 급기야 1947년 2 · 28사건이 터지면서 조국의식은 종적을 감춰버린다. 저자는 이렇게 일제강점기 대만 지식인들이 대륙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드러났던 맹점이 오늘날 양안관계(兩岸關係,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쪽 연안의 중국과 동쪽 연안의 대만의 관계)의 측면에서도 의미심장한 교훈을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대만의식과 대만문화의 구체적 양상들 2
―개체성의 각성과 그 현대적 문제의식
덧붙여 저자는 심리 차원에서 전후 대만문화의 변화를 분석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개체성의 각성’에 주목한다. 수천 년에 걸쳐진 전체 중국역사의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커다란 역사적 함의를 지니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된 후 개인의 ‘자유의지’는 더욱 쉽게 표출될 수 있었고, 이로써 대만사회에서 개인은 전통 중국사회의 권위주의 아래서 강하게 억압받던 개체인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는 개인주의 발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21세기 민주정치의 발전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토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개체성의 각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만신문화에 심각한 자기중심주의와 그로 인한 대립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음을 언급한다. 이러한 문화의 병적 상태는 원래 수백 년 이래 이주민사회였던 대만의 상황, 공리주의의 횡행이라는 문화적 전통, 나아가 전후 대만정치와 경제의 발전과도 관계가 깊다. 특히 저자는 대만의식의 발전단계상 제4단계 이후에는 정치가의 농락으로 대만의식이 뿌리 깊은 ‘자아도취’와 ‘자기중심주의’의 심리를 내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민주화 이후 중화민국의 총통선거는 그 정체성 분열의 양상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곤 한다. 보편적으로 민주국가에서 최고 지도자 선거의 결과는 정권교체로 이어지지만, 대만에서는 통치권의 교체 외에도 항상 ‘국가정체성’의 교체로까지 이어지곤 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치정체성’ 사이에서 그리고 ‘문화정체성’과 ‘정치정체성’의 분열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신음했다. 저자는 이를 대만의 비극이자 대만역사의 숙명이라고 적는다. 지난 수년간 치러진 총통선거 또한 필연적으로 이렇게 서로 다른 정체성의 대립을 또다시 선명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중화문화의 등대’라는 긍지를 바탕으로
양안관계의 새로운 설정을 모색하다
사실 대만은 중화문화 최후의 수호자였다. 대중화문화권에서 대만이라는 섬은 큰 동란을 겪지 않고, 유교 · 불교 · 도교를 비롯한 전통적인 중화문화를 원형 그대로 고스란히 보존해왔다. 전후 대륙 지식인들의 입도와 함께 자연스럽게 유입된 유가사상과 불교문화는 대만에서 융성했다. 머우쭝싼(牟宗三, 1909~1995)과 쉬푸관(徐復觀, 1904~1982) 등 당대 신유가의 걸출한 학자들이 대만의 각 대학에서 강학하면서 저작을 발표했으며, 또한 대만불교계의 법고(法鼓), 자제(慈濟), 중대(中臺), 불광(佛光) 등 4대 단체가 모두 불교의 법맥을 계승했다. 문화대혁명이 중국대륙을 석권하던 시기, 대만은 비록 정치상으로는 일당독재였지만, 문화와 교육 차원에서는 중화문화에 대한 교육을 추진하면서 전통문화의 가치를 수호하고 발양했다. 이로써 대만은 ‘중화문화의 등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여 년간의 역사적 단절로 양안 인민들은 서로 다른 역사 경험을 쌓아나갔고, 역사의식마저 서로 다르게 변해갔다. 결국 양안의 관계변화는 21세기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잠재적인 폭발력을 지닌 문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대만과 중국대륙은 21세기에 통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분열로 갈 것인가. 이 문제는 2천만 명이 넘는 대만인들의 복지뿐만 아니라 중국대륙 13억인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에 충격을 줄 만큼 파괴력이 크다.
그간 양안관계에 대한 담론 중 대부분은 경제관계 혹은 군사적 위기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요소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화적 배경에 주의를 기울인 시도가 있었으나 상세히 거론하지 못했고, ‘하나의 문화중국 속에서 다원화된 정치정체성’ 문제를 제기한 이도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그 이론적 기초와 실현방법까지 다루지는 못했다. 이에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 경험의 해석이라는 차원에서 양안 국가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논하고, 미래전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나간다. 물론 여기엔 무엇보다 양안 간 문화교류를 바탕으로 양측 인민들이 서로 역사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상호 이해도를 높이는 프로세스가 핵심적인 선결과제로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