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검색


어깨배너

2월 전사이벤트
2월 혜택 모음
네네 혜택주의보
소년과개
1/6

빠른분야찾기


윙배너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마우스를 올려주세요.

박지민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인생 도서

관련상품
소년과 개

주인을 잃은 개 다몬이 일본 전역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저/손예리 역 | 창심소

마케팅 텍스트 배너

웹진채널예스


느낌 그게 뭔데, 문장
미리보기 공유하기
소득공제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앤솔로지

강경애, 계용묵, 고유섭, 기형도, 김교신 저 외 41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우시모북스 | 2021년 01월 05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360 판매지수란?
상품 가격정보
정가 15,000원
판매가 13,500 (10% 할인)
YES포인트
결제혜택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카드/간편결제 혜택 보기/감추기
카드할인 정보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3천원 즉시할인 (5만원 이상 결제시, 1회) 자세히 보기
 모바일팝 모바일 4% 즉시할인 (모바일 결제시) 자세히 보기
신한체크카드 신한체크카드 상품권 1만원 지급 (체크카드 신규 발급시 ) 자세히 보기
네이버페이 네이버페이 1% 적립 (전체결제) 자세히 보기
할인/적립 카드 더보기바로가기
배송안내
배송안내 바로가기

  • 배송비 : 무료 배송비 안내
구매 시 참고사항
구매 시 참고사항

판매중

수량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1/4
광고 AD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92g | 148*210*14mm
ISBN13 9791197132902
ISBN10 1197132902

관련분류

카테고리 분류

이 상품의 이벤트 (2개)

책소개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저자 소개 (46명)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읜 뒤 모친의 재혼으로 장연(長淵)으로 이주했다.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아 경성부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해 약 1년간 수학했다. 1924년 양주동 등이 참여한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 고향으로 돌아가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 1906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친을 여읜 뒤 모친의 재혼으로 장연(長淵)으로 이주했다. 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아 경성부 동덕여학교 4학년에 편입해 약 1년간 수학했다. 1924년 양주동 등이 참여한 잡지 [금성]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같은 해 9월 고향으로 돌아가 무산 아동을 위한 흥풍야학교를 개설해 학생과 농민을 지도했다. 그 뒤 신간회와 여성 단체인 근우회 활동에도 가담했다. 1931년 장하일과 결혼하고 간도에 이주해 살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한때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했으나, 건강 악화로 1942년 남편과 함께 간도에서 귀국해 요양하던 중 작고했다. 1931년 단편 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어려운 살림살이와 병고, 그 리고 중앙 문단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준열한 작가 정신으로 식민지 한국의 빈궁 문제를 작품화하는 데 힘쓴 작가이다. 작가 강경애의 문제의식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인간 문제』와 「지하촌」을 비롯해 「원고료 이백 원」, 「소금」, 「어둠」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날카로운 안목으로 제국주의와 계급, 젠더 문제를 치밀하게 다룬 작가이자 언론인, 여성 운동가. 가난과 불우한 가족, 중앙 문단과 멀리 떨어진 지방살이이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근대 최고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본명 하태용河泰鏞. 1904년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반대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향리의 삼봉공립보통학교에 다닐 때 순흥 안씨 안정옥과 혼인하였다. 졸업 후 몰래 상경하여 1921년 중동학교, 1922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잠깐씩 다녔으나 그때마다 할아버지에 의하여 귀향하여야만 하였다. 약 4년 동안 고향에서 홀로 외국문학서적을 탐독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 대학에서 수학... 본명 하태용河泰鏞. 1904년 평안북도 선천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신학문을 반대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향리의 삼봉공립보통학교에 다닐 때 순흥 안씨 안정옥과 혼인하였다. 졸업 후 몰래 상경하여 1921년 중동학교, 1922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잠깐씩 다녔으나 그때마다 할아버지에 의하여 귀향하여야만 하였다. 약 4년 동안 고향에서 홀로 외국문학서적을 탐독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나 가산이 파산돼 1931년 귀국하였으며, 그 뒤 조선일보 등에서 근무하였다.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잡지 [대조]를 발행하였고, 1948년 김억과 함께 출판사 수선사를 창립하기도 하였으나,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상환相換」으로 등단한 이래 대체로 성실한 작가생활을 했다. 사실성과 낭만성을 아우른 예술 지상주의적 작품을 쓴 그는『병풍에 그린 닭이』『백치 아다다』『별을 헨다』등의 작품집 등을 남겼으며, 1961년 자택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저 : 고유섭 (高裕燮, 우현(又玄))
우현(又玄) 고유섭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서 미학·미술사를 전공했으며,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학문화한 선구적인 학자였다. 그는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1930년 이후 중요한 고대미술품들을 조사 연구하는 데 힘썼으며,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국내의 중요한 고대 미술품의 조사와... 우현(又玄) 고유섭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에서 미학·미술사를 전공했으며,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근대적인 방법론으로 학문화한 선구적인 학자였다. 그는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1930년 이후 중요한 고대미술품들을 조사 연구하는 데 힘썼으며, 1933년 개성부립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해 국내의 중요한 고대 미술품의 조사와 연구에 힘썼고 방대한 양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1944년 병으로 사망했다. 우리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準據)를 세우고, 나아가 한국미술에 대한 학문적 궁구(窮究)를 통해 실질적인 한국미술사학 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그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미술의 등불 같은 존재이다. 그가 생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글들은 죽은 뒤 제자들에 의하여 『조선탑파(韓國塔婆)의 연구』 『한국미술사급미학논고(韓國美術史及美學論攷)』, 『조선화론집성(朝鮮畵論集成)』, 『한국미술문화사논총(韓國美術文化史論叢)』, 『송도의 고적』 등으로 간행되었다. 한국 미술사에서의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우현상(又玄賞)’을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한 시인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 문화부 ·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한 시인 기형도. 1960년 경기도 연평 출생. 1979년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정법계열에 입학하여 1985년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을 앞둔 1984년에 중앙일보사에 입사하여 정치부 · 문화부 · 편집부 등에서 근무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 윤동주문학상 등 교내 주최 문학상을 받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안개」가 당선되면서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고, 주로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나 도시인들의 삶을 담은 독창적이면서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시집 『입 속은 검은 입』을 상자했으나, 출간을 준비 중이던 1989년 3월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그러나 살아생전 시집 한 권 묶지못하고, 첫시집이 유고시집이 되어버린 이 시인은 20년이 넘은 지금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시를 꿈꾸는 모든 문학청년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문학 대중의 압도적인 열광 속에,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로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20년이 되는 2009년 3월을 기준으로, 1989년 5월에 출간된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초판 24쇄, 재판 41쇄, 총 65쇄를 찍었으며 24만 부가 판매되었다.

1999년 3월에 그의 10주기를 기리며 출간된 『기형도 전집』은 초판 15쇄를 찍었으며 4만 7천 부가 판매되었다. 또한 그의 20주기에는 그를 아끼고 추억하는 지인과 문우들의 산문, 그리고 그의 사후 그의 시를 분석하고 의미 지은 여러 비평가들의 밀도 높은 평문들을 한데 모은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가 출간되기도 하였다.

어둡고 축축한 현실에서 길어올린, 불길하고 처연한 상상력의 시어들은 90년대의 어떤 시인도 넘어서지 못한 울림을 낳았다. 평론가 남진우씨가 기형도 시의 양대 질료로 요약했던 '환멸과 환상' 이야말로 지난 천년의 끝무렵을 지배하는 심상이기 때문일까. 기형도 시의 처절한 아름다움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이란 이름을 붙였던 김현은 '그의 시는 현실적인 것을 변형시키고 초월시키는 아름다움, 추함과 대립되는 의미의 아름다움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앎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목표한다'고 읽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한 시 60편을 담고 있는데, 그의 시 세계는 우울한 유년 시절과 부조리한 체험의 기억들을 기이하면서도 따뜻하며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공간 속에 펼쳐 보인다.
교육자·종교인·독립유공자 교육자·종교인·독립유공자
저 : 김남천 (金南天, 본명:김효식(金孝植))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다. 1930년 카프 도쿄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1년 호세이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하기도 하였...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다. 1930년 카프 도쿄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1년 호세이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1931년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어 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으며,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 때도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1935년 임화·김기진과 협의하여 카프가 경기도 경찰국에 해산계를 낼 때까지 조직에 충실하면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며, 한국전쟁 때는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대하』외에 연작소설인『경영』, 창작집『소년행』『삼일운동』『맥』등이 있으며, 1953년 휴전 직후 남로당계 박헌영 세력 제거와 관련해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Megalithic Cultures in Asia』, 『한국인의 발자취』, 『몽골』(공저), 『김수로왕비 허황옥』, ...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Megalithic Cultures in Asia』, 『한국인의 발자취』, 『몽골』(공저), 『김수로왕비 허황옥』, 『금관의 비밀』,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 등이 있다.
저 : 김유정 (KIM, YOO-JUNG,金裕貞)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 제목은 『동백꽃』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하여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를 발간했다. 제1회...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하여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를 발간했다.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경상대, 경남과학기술대 등에 출강하며 진주KBS라디오 ‘김이듬의 월요시선(月曜詩選)’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선정되어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 간 생활했고, 2013년 여름부터 석 달 간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한국작가로 참가하였다. 2020년 『히스테리아(Hysteria)』 시집으로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문학과사회』에 중편소설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엇박자 D』로 김유정문학상을, 『1F/B1』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요요』로 이효석문학상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휴가 중인 시체』로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 2000년 『문학과사회』에 중편소설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엇박자 D』로 김유정문학상을, 『1F/B1』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요요』로 이효석문학상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을, 『휴가 중인 시체』로 심훈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 『뭐라도 되겠지』,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 『모든 게 노래』, 『메이드 인 공장』, 『바디무빙』, 『무엇이든 쓰게 된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공저), 『탐방서점』(공저), 『질문하는 책들』(공저)등이 있다.
저 : 나도향 (羅稻香, 본명:나경손, 필명:빈(彬))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듬해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19세의 소년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백조」를 창간하고『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 주었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과 날카로운 필치를 바탕으로 하여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에 대하여 김동인(金東仁)은 다음과 같이 평하기도 하였다. "젊어서 죽은 도향은 가장 촉망되는 소설가였다. 그는 사상도 미성품(未成品), 필치도 미성품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열이 있었다. 예각적으로 파악된 인생이 지면 위에 약동하였다. 미숙한 기교 아래는 그래도 인생의 일면을 붙드는 긍지가 있었다. 아직 소년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도향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 다분의 센티멘털리즘을 발견하는 것은 아까운 가운데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나 그 센티멘털리즘에 지배되지 않을 만한 침착도 그에게는 있었다."
저 : 노자영 (盧子泳, 춘성春城)
시인 · 수필가. 호는 춘성(春城). 1898년 평남(황해도 송화군 상리면 양지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였으나 폐 질환으로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해 병상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으며, 19... 시인 · 수필가. 호는 춘성(春城). 1898년 평남(황해도 송화군 상리면 양지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 입사했으며, 1925년경 일본으로 넘어가서 니혼대학[日本大學]에서 수학하였으나 폐 질환으로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해 병상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서울]·[학생]지의 기자로 있으면서 감상문 등을 발표했으며, 1934년 문예지 [신인문학(新人文學)]을 발간하였으나 자본 부족으로 중단, 1935년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입사하여 [조광(朝光)]지의 편집을 맡았고, 1938년 기자 생활 청산 후 '청조사(靑鳥社)'를 직접 경영하기 시작했다.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月下)의 몽(夢)」이, 그 해 11월에 「파몽(破夢)」·「낙목(落木)」 등이 시부분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21년 [장미촌], 1922년 [백조] 창간 동인으로 가담하여 [백조] 창간호에 시 「객(客)」·「하늘의 향연(饗宴)」·「이별한 후에」를 발표했고, [백조] 2호에 「우연애형(牛涎愛兄)에게」라는 수필을, 1923년 소설 「반항(反抗)」을 발표했다. 1924년 첫 시집 『처녀(處女)의 화환(花環)』, 1928년 제2시집 『내 혼(魂)이 불탈 때』, 1938년 제3시집 『백공작(白孔雀)』 등을 간행하였다. 1940년 10월 6일 41세 나이에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했다.
1954년 9월 27일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을 거쳐,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외 5편의 시를, 1985년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박하고 순수한 시어를 사용하여 사랑과 슬픔 등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면서도,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 결백(潔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평단의 주목을... 1954년 9월 27일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을 거쳐, 충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 외 5편의 시를, 1985년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소박하고 순수한 시어를 사용하여 사랑과 슬픔 등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면서도,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 결백(潔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시집인 『고두미 마을에서』(1985)는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등, 리얼리즘적인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었으나, 이후 『접시꽃 당신』(1986)에서 사별한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 시집은 독자의 큰 호응을 얻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와 같은 시집에는 교사로 재직하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 투옥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교육시, 옥중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슬픔의 뿌리』(2002), 『해인으로 가는 길』(2006) 등을 통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를 통한 인간의 존재론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화해와 조화의 세계를 모색하고 있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창작과비평사, 1985), 『접시꽃 당신』(실천문학사, 1986),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몸은 비록 떠나지만』(실천문학사, 1989),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제삼문학사, 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창작과비평사, 1993),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1994), 『부드러운 직선』(창작과비평사, 1998),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5),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2006),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2011)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푸른나무, 1990),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한양출판, 1994),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사계절, 1998), 『모과』(샘터사, 2000),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계절, 2000),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좋은생각, 2004) 등이 있다. 그 외 『바다유리』(현대문학북스, 2002), 『나무야 안녕』(나무생각, 2007)과 같은 동화를 쓰기도 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조 활동으로 해직 · 투옥되었다가, 1998년 복직되어 2004년까지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에 재직했다.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상, 2009년 제22회 정지용 문학상, 2010년 제5회 윤동주상 문학 대상, 2011년 제13회 백석문학상, 2012년 제20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17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저 : 백신애 (박계화(朴啓華))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집과 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영천공립보통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다.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필명 박계화(朴啓華)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집과 향교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영천공립보통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하고,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나와 2년 동안 교사로 지냈다.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 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필명 박계화(朴啓華)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신춘문예 첫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결혼 후 경산군 반야월의 과수원에 기거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 체험한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이 「복선이」(1934), 「채색교(彩色橋)」(1934), 「악부자(顎富者)」(1935), 「식인(食因)」(1936) 등의 바탕이 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와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를 포함해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소설 20여 편과 수필 및 기행문 등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작품으로는 『꺼래이』, 『채색교』, 『적빈』, 『악부자』, 『소독부』를 비롯해 소설 22편, 수필, 기행문 등 33편을 남겼으며 2008년 고향 영천에 문학비가 세워지고 ‘백신애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저 : 법정 (法頂, 본명:박재철)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하고,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하였고 1956년 당대의 고승 효봉을 은사로 출가하여 같은 해 사미계를 받고 1959년에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행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3년을 수료하고,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1955년 통영 미래사로 입산하였고 1956년 당대의 고승 효봉을 은사로 출가하여 같은 해 사미계를 받고 1959년에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행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등을 지냈으며,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1976년 출간한 수필집 『무소유』가 입소문을 타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이후 펴낸 책들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수필가로서 명성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조차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1994년부터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었으며, 1996년 서울 도심의 대중음식점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2003년부터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에서 문명을 멀리하고 살던 중 폐암이 발병했다.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입적하였다.강원도 생활 17년째인 2008년 가을, 묵은 곳을 털고 남쪽 지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삶의 기록과 순수한 정신을 담은 법정 스님의 산문집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를 영혼의 언어로 일깨우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는 출가 50년, 법정 스님의 잠언 모음집으로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달렸다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그의 법문들에서 130여 편의 대표적인 잠언들을 류시화 시인이 가려 뽑았다. 2006년, 법정 스님 출가 50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기획된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이 엮은 본문과 세계적인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명상적인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소유, 자유, 단순과 간소, 홀로 있음, 침묵, 진리에 이르는 길과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로 채워져 있는 이 잠언집은 단순하되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가르침들이 행간마다에서 읽는 이를 일깨운다.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이 직접 가려 뽑은 50편의 글이 담겨 있는 대표산문선집이다. 산중 생활에서 길어 올린 명상과 사색이 특유의 계절적인 감성과 어우러져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영혼의 피안처가 되어 준다. 세상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현실 감각과, 절대 진리의 세계를 가리켜 보이는 초월적인 혜안이 그의 글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인도기행』은 1989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이루어진 인도 여행 기록을 적은 법정 스님의 유일한 여행 산문집이다. 이 책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혼의 나라, 인도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는 명상 기행집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인도 기행서들처럼 단순한 여행 기록이나 가이드북의 차원을 넘어서, 이 책에서는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다시금 느끼는 불교 정신과 더 나아가 종교의 본질과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법정 스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사(生死)와 관련된 인간의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담긴 스님의 시선을 엿볼 수가 있다.

삶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포근한 마음의 안식을 제공한 『무소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품으로 북적이는 도심이 싫어 자연으로 돌아가 새와 바람, 나무와 벗하며 살아가시는 스님은 평범한 모든 이들에게 맑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보여준다. 『무소유』의 원문이기도 한 『영혼의 모음(母音)』은 한 구도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진실된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과 벗하며 어린왕자와의 대화를 통해 순수한 영혼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스님은 평범하고 무료하기까지한 일상을 감동의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 은사 스님이신 효봉선사의 삶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는 대목은 법정 스님의 구도자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는 청빈의 도를 실천하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려온 법정 스님은 끝없이 정진하는 진정한 수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저서로는 『홀로 사는 즐거움』『말과 침묵』『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참 좋은 이야기』『화엄경』『인연 이야기』『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영혼의 모음(母音)』『버리고 떠나기』『물소리 바람소리』『진리의 말씀-법구경』등이 있다.

폐암으로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 11일 병원에서 퇴원하여 법정스님이 1997년 12월 창건해 2003년까지 회주를 맡아왔던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입적하기 전날 밤 "내 것이라고 하슴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고 말했다. 평소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말라'고 당부했다는 법정 스님은 가는 걸음까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남은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저서로는 수필집 『산에는 꽃이 피네』, 『인연 이야기』, 『오두막 편지』, 『물소리 바람소리』, 『무소유』, 『홀로 사는 즐거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등이 있고, 역서로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因緣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걷기 여행의 열풍을 일으킨, 걷는 길 내는 여자. 1957년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 출생으로, 서귀포초등학교, 서귀여자중학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다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월간 [마당], [한국인]의 기자로 일했고, 이후 [시사저널] 정치부 기자, 취재1부장, 편집장, ...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걷기 여행의 열풍을 일으킨, 걷는 길 내는 여자. 1957년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 출생으로, 서귀포초등학교, 서귀여자중학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다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월간 [마당], [한국인]의 기자로 일했고, 이후 [시사저널] 정치부 기자, 취재1부장, 편집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내며 23년을 기자로 살다가, 남들이 다 말리는 ‘미친 꿈’에 빠져 길 내는 여자가 되었다.

나이 쉰에 과감히 기자생활 때려치우고, 홀로 산티아고 길 순례에 나섰다가 그 길 위에서 문득 고향 제주를 떠올리게 된다.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리라’ 결심하고 귀국,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하고 걷는 길을 내기 시작한다. (사)제주올레 이사장, 아시아트레일즈네트워크(ATN) 의장, 월드트레일즈네트워크(WTN) 국제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올레 길로 제주를 한 바퀴 잇는 날까지 '길 만드는 여자' 서명숙의 길 내기는 계속될 것이다.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름다운 땅, 제주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어 한 코스 한 코스 제주올레가 되었다. 제주의 구석구석을 느리게 걸어 여행하는 제주올레길은, 여행자들이 제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여행문화를 바꾸고 있다. 제주올레를 걸으면, 차를 타고 점 찍듯 둘러보는 여행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제주의 속살을 발견하게 된다. 2010년 7월, 제1회 ‘한국 관광의 별’을 수상한 제주올레는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일으키며 ‘걷기 여행’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돌담,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 평화로운 마을을 품고 있는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조용히 이 길과 이 길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모두 길 위에 풀어놓고 평화와 행복과 치유의 특권을 누렸으면 하는 것이 서명숙의 바람이다.

지은 책으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흡연 여성 잔혹사』 『식탐』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영초언니』 등이 있다.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올바로 성찰하면서도 그것을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작가라 평했다. 또한 평론가 문혜원은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라고 전한다. 이런 평론가들의 말처럼 성석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곧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 소설세계와 상통한다. 십수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이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게 한다.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농부 황만근의 일생을 묘비명의 형식을 삽입해 서술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한 친목계 모임에서 우연히 벌어진 조직폭력배들과의 한판 싸움을 그린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돈많은 과부와 결혼해 잘살아보려던 한 입주과외 대학생이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 겪는 일을 그린 「욕탕의 여인들」, 세상의 경계선상을 떠도는 괴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책」, 「천애윤락」,「천하제일 남가이」등 2년여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중 ·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번 작품집도 예외없이 세상의 통념과 질서를 향해 작가 특유의 유쾌한 펀치를 날리는데, 비극과 희극, 해학과 풍자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성석제가 3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혼기에 이른 맏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딸이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옛이야기를 교차 시키며 유려하게 텍스트를 직조해낸 표제작을 비롯,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등 총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화려한 수사와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각양각색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 밑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기도 하고 그리움이나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은근히 깔려 있다.

이외의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호랑이를 봤다』 『홀림』 『지금 행복해』 『첫사랑』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이 인간이 정말』 『믜리도 괴리도 업시』 『사랑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등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위풍당당』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전2권) 등, 산문집 『소풍』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등이 있으며,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묶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이 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단편「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2회 이효석문학상, 같은 작품으로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내 고운 벗님」으로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기아대책 이사장이며, 나눔국민운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세계밀알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협동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자이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이다. 서울... 1938년 경북 포항 출생. 고신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기아대책 이사장이며, 나눔국민운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세계밀알연합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서울영동교회, 한영교회, 다니엘새시대교회 협동 설교자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함을 전하는 특별한 사역자이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철학과 사회윤리학을 가르쳤다. 한성대학교 이사장, 동덕여자대학교 제6대 총장을 지냈다.

저서로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문화사), 『오늘을 위한 철학』(지학사), 『기독교적 관점에서』(나비), 『꼬집어 본 세상』(철학과현실사), 『윗물은 더러워도』, 『별수 없는 인간』, 『나는 누구인가』(이상 샘터), 『건강한 가정』(기윤실), 『고통받는 인간』(서울대 출판부), 『고상한 이기주의』(규장), 『기독교와 복음』(한국복음신학연구원), 『울림 열림 어울림』(철학과현실사), 『사도신경 강해』(성서유니온선교회), 『생각을 담아 세상을 보라』(노잉힘) 등 다수가 있으며, 이 밖에도 여러 권의 번역서를 통해 신앙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격조 높으면서도 친숙한 언어로 풀어냈다. 주요 방송 뉴스 해설을 비롯하여 많은 방송매체에서 자녀교육, 인성계발, 시민사회 도덕교육 등 윤리 실천에 관한 강의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손봉호 교수는 시민운동의 물길을 연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기독교인만이라도 선거 부정을 막아보자는 뜻에서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만들었고,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발족에 참여하여 공동대표를 맡았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을 출범시켜 군 부재자 투표를 영외에서 하도록 했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중 유세 대신 TV토론을 도입하는 등 선거법 개정에 크게 기여했다. 밀알선교단, 샘물호스피스, KBS강태원복지재단 등의 이사장으로 복지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남북나눔운동 등 북한 돕기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몽골에서 나무심기 운동을 하는 푸른아시아와 한국에 유학 온 가난한 외국 학생들을 후원하는 국제학생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 가나안농군학교의 정신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엔재단과 손잡고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에 모기장을 보내는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 : 심훈 (본명 : 심대섭(沈大燮), 호 : 海風)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사진작가 사진작가
1962년 생. 출판기획자. 충북 청주 출생. 우리 한국현대시(詩)나눔활동가. 문장수집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세상의 온갖 것에 관심과 애정을 그만의 안테나로 수신하면서 발신(發信)하고 살고 있다. 20대에는 음악을 했(?)다가 국어교사로 살면서 방송 · 신문 · 글쓰기 · NIE · R&E 동아리로 특별활동을 인정받아 교육부총리상까지 20여개를 수상하고 덕분에 시드니 · 멜버른도 다녀왔다. 서울시교육청 제1기... 1962년 생. 출판기획자. 충북 청주 출생. 우리 한국현대시(詩)나눔활동가. 문장수집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세상의 온갖 것에 관심과 애정을 그만의 안테나로 수신하면서 발신(發信)하고 살고 있다. 20대에는 음악을 했(?)다가 국어교사로 살면서 방송 · 신문 · 글쓰기 · NIE · R&E 동아리로 특별활동을 인정받아 교육부총리상까지 20여개를 수상하고 덕분에 시드니 · 멜버른도 다녀왔다. 서울시교육청 제1기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과 고려대입학사정관과정이수(2012), 성균관대입학사정관과정이수(2013) 등을 받으며 진로지도 및 대입지도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매주 수요일 우리한국현대시 3편 읽기 《우리시사랑모임》을 운영 및 ‘우리시읽기 나눔지’를 발행하여 2021년 1월 현재 2,667개의 한국현대시(詩)를 함께 읽었다. 우리시사랑 시집 11권을 발행했다. 문학전문 팟캐스트 《북적북적톡설》은 현재 ON AIR.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가 있으며,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내려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실수처럼 그 길로 접어들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이 존재하므로 달라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전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사물에 죽도록 약하며 한번 몸속에 들어온 지방이 빠져나가지 않는 체질로 인해 자주 굶으며 또한 폭식한다. 술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친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며 정상적이지 못한 기분에 수문을 열어줘야 할 땐 속도, 초콜릿, 이어폰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나 간혹 당신에게 일방적이기도 하다.
저 : 이상 (李箱, 김해경金海卿)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191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1930년 [조선]에 첫 소설 『12월 12일』 연재를 시작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내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친다.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했는데, 난해하고 파괴적인 형식에 독자들의 항의를 받고 연재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오감도 작가의 말」은 연재 중단 후 쓰여 해당 잡지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1936년「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날개」는 이상의 대표 소설이다. 이듬해는 1937년 2월 사상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고, 같은 해 4월 17일 도쿄대학교 부속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애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 [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 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 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 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20세기 한국문학사에 내장된 최고의 형이상학적 스캔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집이 출간되기도 하였다.
저 : 이어령 (李御寧, 호:凌宵)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 석좌교수이다. 그는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명 칼럼리스트로만 활약한 게 아니라 88서울올림픽 때는 개ㆍ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0~1991년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젊음의 탄생』,『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고, 어린이 도서로는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시리즈 등이 있다.

디지로그(Digilog)는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는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현재 우리가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해준다. 시대를 읽는 특별한 눈을 가진 그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사명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척자이자 전도사가 되었다. 한국이 산업사회에선 뒤졌지만 정보화사회에선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음을 일찍부터 설파한 그가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다. 물리적 나이로 보자면 분명 노학자이지만, 그는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명전환의 시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디지털 패러다임의 한계와 가능성을 몸소 체험한 얼리어댑터이다.

그의 서재에는 7대의 컴퓨터와 2대의 스캐너, 무선 공유기, 프린터 등 각종 디지털 장비가 자리한다. 7대의 컴퓨터를 직접 네트워킹했다. 그는 컴퓨터들을 이용해 직접 자료를 모으고, 검색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지적 회로망에 연결한다. 그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뇌의 확장된 영역이 되고, 그가 선창하는 디지로그 세상을 몸소 살고 있는 인간임을 증명한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1963년 「경향신문」에 연재 에세이 형식으로 발표된 글을 모은 것으로 처음으로 이 땅에 한국 문화론의 기치를 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으로 이어령은 "젊은이의 기수" "언어의 마술사" "단군 이래의 재인"으로까지 불렸다. 또한 대만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임어당으로부터 "아시아의 빛나는 거성"으로 칭송받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저명한 문화 인류학자 다다 교수가 '그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감동을 준 세 권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영문으로 번역되어 나갔을 때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다. 이 책은 한국의 문화를 최초로 분석해 낸 기념비 같은 것이면서도 '젊다'. 또렷하고 거침없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한국의 건축, 의상, 식습관, 생활양식에 대한 예리하고도 통찰력 있는 지적은 지금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방대한 지식에 기반하여 한국의 풍습을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서 동서고금의 사상을 가리지 않고 적용하는 자유로운 그 사고방식과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글재주 역시 비상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 고전 문헌에 대한 자료와 그간의 일본, 일본인론에 대한 저자의 견해 및 비평을 피력하면서 문화 현상을 중심으로 일본인을 투시해 본,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그럼으로써 가혹한 분석이다.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대를 초월한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인접국인 일본에 대한 피상적 이해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둥지 속의 날개』(상,하)는 1978년 월간 「한국문학」에 '의상과 나신'이라는 제목으로 8회 연재를 하다가 도중에 저자의 건강상 이유로 중단했던 작품이다. 분망한 나날과 가진 고초 속에서 저자인 이어령의 문학적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던 작품이라 그런지 세월이 갈수록 유난히 애정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70년대서 80년대의 초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영원한 내면세계를 다루려 한 소설이기에 산업화·도시화라는 시대상황과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광고라는 새로운 직업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문명 비평적 요소도 없지 않다.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여겨져 온 이어령. 문학박사, 교수, 장관 등 다채로운 이력과 타이틀을 지닌 그는 과거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이러한 이어령의 모습을 담은 책이다. 말하자면 '(무신론자의) 신앙입문기'라고 할까. 지식인 이어령이 아닌 그리스도교 신자 이어령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영성'에 관한 참회론적 메시지와 함께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인생의 후반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어령. 존재 자체의 변화로 인해 그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서, 그는 지성을 넘어선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 세례를 받았고,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냈다. 생명과 영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글쓰기에 나섰다. 지나온 세월 동안 한국의 대표지성으로 이름을 날린 그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저 : 이육사 (李陸史, 이원록, 이활)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저 : 이윤기 (Lee Yoon-ki,李潤基)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탁월한 번역가 이윤기.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비를 위해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인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경북중학교, 성결교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하였다. 국군 나팔수로 있다가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비롯해 오랫동안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뒤 신화에 관한 저서를 내 크게 성공했다.

1976년 첫 번역서 『카라카스의 아침』을 펴냈고 그 이듬해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 『변신 이야기』 , 『신화의 힘』, 『세계 풍속사』등 20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1999년 번역문학 연감 『미메시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이윤기는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0년 첫 권이 출간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전 5권)는 ‘21세기 문화 지형도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와 함께 신화 열풍을 일으키며 200만 명 이상의 독자와 만났다.

번역과 동시에 작품활동도 이어갔다. 1994년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출간하며 문단으로 돌아온 그는 중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풍부한 교양과 적절한 유머, 지혜와 교훈을 두루 갖추고 있어 ‘어른의 소설’ 또는 ‘지성의 소설’로 평가받았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과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 등을 펴냈고, 그 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의 교양서와 『어른의 학교』, 『꽃아 꽃아 문 열어라』 등의 산문집을 펴냈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하였으며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원장,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논저서로는 『영동 영서의 언어 분화』, 『국어문법론』, 『방언학』, 『국어학개설』, 『국어 표기법 연구』, 『사회언어학』, 『한국의 언어』(공저), 『국어문법론 강의』(공저), 『국어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하였으며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원장,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논저서로는 『영동 영서의 언어 분화』, 『국어문법론』, 『방언학』, 『국어학개설』, 『국어 표기법 연구』, 『사회언어학』, 『한국의 언어』(공저), 『국어문법론 강의』(공저), 『국어 부사절의 성립』, 『한국어 문법』 외 다수가 있다.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 및 『실천문학』과 『문학과사회』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회 난고(김삿갓)문학상과 편운문학상, 제1회 윤동주시상과 한남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유심작품상, 풀꽃문학상, 송수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신대 외 여러 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주)천년의시작 대표이사... 1958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한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삶의 문학』 및 『실천문학』과 『문학과사회』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회 난고(김삿갓)문학상과 편운문학상, 제1회 윤동주시상과 한남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유심작품상, 풀꽃문학상, 송수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신대 외 여러 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다. (주)천년의시작 대표이사이다.

저서로 시집 『섣달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 6시』, 『경쾌한 유랑』, 『슬픔은 어깨로 운다』, 시선집 『오래된 농담』, 『길 위의 식사』, 『얼굴』, 시평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긍정적인 밥』,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 『생의 변방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공저 『민족시인 신경림 시인을 찾아서』, 편저 『대표시, 대표평론Ⅰ·Ⅱ』 등을 발표했다.
196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시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 주요 도서로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 196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한문교육과 문학예술학을 공부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시와 이야기를 쓰고 있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윤동주문학대상을 받았다.

주요 도서로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어머니 학교』,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동화책 『나무 고아원』, 『황소바람』, 『달팽이 학교』,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 청소년시집 『까짓것』, 동시집 『지구의 맛』, 『콧구멍만 바쁘다』 등이 있다.
저 : 이태준 (李泰俊,, 상허尙虛)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다. 1925년 문예지『조선문단』에 「오...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다. 1925년 문예지『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궁핍한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개벽』과 『조선중앙일보』의 기자, 『문장』지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1933년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수필집 『무서록』, 문장론 『문장강화』 『상허 문학독본』 등이 있다.
번역가, 수필가 번역가, 수필가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저 : 최서해 (曙海, 학송(鶴松))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설가, 희곡작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9년 희곡 「내가 잃어버린 당나귀」가 계간 『연극평론』에 게재되면서 등단했다.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사 신인상 수상하고, 이후 희곡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과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칠수와 만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6년 『소설문학』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소설가, 희곡작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1979년 희곡 「내가 잃어버린 당나귀」가 계간 『연극평론』에 게재되면서 등단했다.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사 신인상 수상하고, 이후 희곡 「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과 영희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 〈칠수와 만수〉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1986년 『소설문학』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소설집 『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 제18회 박영준 문학상을 수상했다. 창작집으로 『인형만들기』, 『내 영혼의 우물』,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구렁이들의 집』 등 다수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잠과 늪』, 『새떼』, 『내 마음에는 악어가 산다』, 『안에서 바깥에서』 연작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 등을 펴냈다.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소설 『가족』을 연재하여 자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 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꾸준한 관심의 결실로 1986년엔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분야들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길을 보여주었다.

[샘터]지에 34년 6개월 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중)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집 『인연』을 출간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렸다. 이 소설로 2011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어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 10분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최인호는 1970년대 청년 문화의 중심에 선 작가다. 세련된 문체로 ‘도시 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그 가능성을 탐색한 그는 황석영, 조세희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1970년대를 자신의 연대로 평정했다.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청년 문학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했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대신 시거를 피웠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청계산에 오르는 생활 습관이 있었으며 컴퓨터로 작업한 글은 "마치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고 왠지 "정형 수술한 느낌"이 들어 지금도 원고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겼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1982년 인하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후부터 인천 도시산업선교회가 운영하는 '일꾼자료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노동자들의 생활과 그들의 욕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만든 자료를 갖고 노동교육을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노동상담 일을 해오면서 1년에 300회 이상 노동교육을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다. 한겨레신문 ... 195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1982년 인하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후부터 인천 도시산업선교회가 운영하는 '일꾼자료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노동자들의 생활과 그들의 욕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만든 자료를 갖고 노동교육을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노동상담 일을 해오면서 1년에 300회 이상 노동교육을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다. 한겨레신문 객원논설위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인천대학교 강사,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노동자교육센터 교육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 '하종강의 노동과 꿈(www.hadream.com)'을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일했으며, 성공회대학교 노동대학 제8대 학장을 거쳐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 교수로 있다.

1994년에 「너무 늦게 만난 사람들」(『항상 가슴 떨리는 처음입니다』)로 제6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 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 『노동자는 못말려』, 『울지 말고 당당하게』,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등의 저서가 있다.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전업 시인. 개인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특유의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시로 호평받은 그는, 인간미와 진솔함이 살아 있는 에세이로도 널리 사랑 받고 있다.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전업 시인. 개인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특유의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시로 호평받은 그는, 인간미와 진솔함이 살아 있는 에세이로도 널리 사랑 받고 있다.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을 펴냈다. 그의 시집 『우울氏의 一日』에서는 의사소통 부재의 현실에서 「잡념」 의 밀폐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993년 발표한 『자본주의의 약속』에서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서울 달동네와 친구 방을 전전하며 떠돌다 96년,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보증금 없이 월세 10 만원 짜리 폐가를 빌려 둥지를 틀었다는 그는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그는 없는 게 많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다. 한 기자가"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스스한 머리칼에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원한다는 건데, 난 사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혼자 사니까 별 필요한 것도 없고. 이 집도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한데 뭐.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만큼 확장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했지만 굳이, 확장 안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기사 인용)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출간하여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집은 그의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인 셈이다. 함민복 시인은 이제 강화도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다. 강화도 사람이 되어 지내는 동안 함민복의 시는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을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시인은 지금도 조용히 마음의 길을 닦고 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포털 사이트 Daum에 5개월간 연재한 글에다 틈틈이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었다. 과거를 추억하나 그에 얽매이지 않고, 안빈낙도하는 듯하나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날선 눈초리를 잃지 않는 글들은 온라인에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미안한 마음』은 산골짝 출신인 함민복 시인이 10여 년 세월 강화도 갯바람을 맞으며 강화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며 보고 느낀 바를 표제처럼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담은 이야기다. 장가를 갔으면 싶은 노모의 모정을 읽을 수 있는 글, 때론 한 잔 술을 거절하고 파스 한 장 척 붙이고 ‘이제 안 아프다’ 위안하며 쓴 글 묶음이다. 그러하기에 함민복 시인의 문학적 모태가 되고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 밖에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하였다.
저 : 홍사용 (洪思容, 노작露雀)
시인. 극작가. 호는 노작(露雀)이며,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했다. 1922년 김덕기(金德基)과 함께 창간된 문예 동인지[백조(白潮)]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서사시를 발표했다. 낭만파 시인으로 청빈 속에서 지조를 지키며 『나는 왕이로소이다』 대표작이 되었다. 또한 [토월회(土月會)]의 동인이 되어 사극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 강점기 홍사용은 친일 시를 남기지 않았다. 극단 ... 시인. 극작가. 호는 노작(露雀)이며,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했다. 1922년 김덕기(金德基)과 함께 창간된 문예 동인지[백조(白潮)]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을 가진 서사시를 발표했다. 낭만파 시인으로 청빈 속에서 지조를 지키며 『나는 왕이로소이다』 대표작이 되었다. 또한 [토월회(土月會)]의 동인이 되어 사극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제 강점기 홍사용은 친일 시를 남기지 않았다. 극단 운영에 재산을 다 써버리고 절과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폐결핵으로 죽었다. 대표작품으로 '시'는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꿈이면』, 『봄은 가더이다』 등이 있고, '희곡'으로는 『할미꽃』, 『출가(出家)』, 『제석(除夕)』이 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일명 '국민 연애시'라고 할수 있는 '즐거운 편지'의 작가. 등단작인 '즐거운 편지'로 주목을 받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로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다.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193...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일명 '국민 연애시'라고 할수 있는 '즐거운 편지'의 작가. 등단작인 '즐거운 편지'로 주목을 받았지만 안주하지 않고, 쉼 없고 경계 없는 사유로 발전을 거듭해온 시인이다.

본관은 제안(濟安)이다. 1938년 평안남도 숙천(肅川)에서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성장했다. 1957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66∼1967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1968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다. 1970∼1971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1987∼1988년 미국 뉴욕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와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58년 서정주(徐廷柱)에 의해 시 「시월」 「동백나무」「즐거운 편지」가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초기에는 사랑에 관한 서정시가 주로 썼지만 두번째 시집 『비가(悲歌)』(1965)부터는 숙명적 비극성을 받아들여 구체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1966년에는 정현종(鄭玄宗) 등과 함께 동인잡지 『사계』를 발행했다. 1968년 마종기(馬鍾基), 김영태(金榮泰)와의 3명의 공동시집 『평균율 1』을 출간하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열하일기』『전봉준』『허균』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변화를 시도했고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로 이어져 모더니즘으로 자리잡았다.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1975)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초기의 고뇌에서 자기 삶의 내부로 비극의 비전을 비쳤던 그는 차츰 자기 밖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를 수행하면서 민족의 약소함과 황량한 우리 삶의 풍경을 묘사했고 이 참담한 상황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힘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무력감을 표명했다. ... 그의 사랑은 이웃으로 번지고 드디어는 삼남 - 이 가냘픈 한국과 그곳에서 괴로이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로 확산되었다.”라는 평을 하고 있다.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1986)는 실험정신이 돋보이는데 이 시집에서는 지적 시선에 의한 상상력의 조형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시인이 이 세계의 존재성과 거기에 얹혀 살아야 하는 인간의 운명적 구조를 투시하면서 그것들과 친화와 역설의 이중적 얽힘을 그의 언어로써 새로이 구성해내고 있다. 1995년 『현대문학』에 연작시 「풍장 70」을 발표하면서, 1982년에 시작한 연작시가 마감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죽음관에 대해서 대면할 수 있는 이 시집은 독일어판으로도 번역되었다.
1962년 생. 출판기획자. 충북 청주 출생. 우리 한국현대시(詩)나눔활동가. 문장수집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세상의 온갖 것에 관심과 애정을 그만의 안테나로 수신하면서 발신(發信)하고 살고 있다. 20대에는 음악을 했(?)다가 국어교사로 살면서 방송 · 신문 · 글쓰기 · NIE · R&E 동아리로 특별활동을 인정받아 교육부총리상까지 20여개를 수상하고 덕분에 시드니 · 멜버른도 다녀왔다. 서울시교육청 제1기... 1962년 생. 출판기획자. 충북 청주 출생. 우리 한국현대시(詩)나눔활동가. 문장수집가. 여기저기 이것저것 세상의 온갖 것에 관심과 애정을 그만의 안테나로 수신하면서 발신(發信)하고 살고 있다. 20대에는 음악을 했(?)다가 국어교사로 살면서 방송 · 신문 · 글쓰기 · NIE · R&E 동아리로 특별활동을 인정받아 교육부총리상까지 20여개를 수상하고 덕분에 시드니 · 멜버른도 다녀왔다. 서울시교육청 제1기 진로진학상담교사 자격과 고려대입학사정관과정이수(2012), 성균관대입학사정관과정이수(2013) 등을 받으며 진로지도 및 대입지도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매주 수요일 우리한국현대시 3편 읽기 《우리시사랑모임》을 운영 및 ‘우리시읽기 나눔지’를 발행하여 2021년 1월 현재 2,667개의 한국현대시(詩)를 함께 읽었다. 우리시사랑 시집 11권을 발행했다. 문학전문 팟캐스트 《북적북적톡설》은 현재 ON AIR.

만든 이 코멘트

저자, 역자, 편집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코멘트 쓰기
접수된 글은 확인을 거쳐 이 곳에 게재됩니다.
독자 분들의 리뷰는 리뷰 쓰기를, 책에 대한 문의는 1:1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책 속으로

--- p.273, 「이정록 -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장/수/집/가/ 팟캐스터 포충망에 걸린
『느낌 그게 뭔데, 문장』-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앤솔로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우시모북스 간)이 나왔다.문/장/수/집/가/로 팟캐스트(‘북적북적톡설’)를 운영 중인 출판기획자 윤작가의 ‘포충망’에 걸린 느낌 있는 문장을 찾아서 수집한 가슴을 울리는 45편의 감동 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이 그것이다.

6가지 주제로 묶은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느낌 있는 아름다운 산문 44편과 ‘가족 문단사’.

32년간 중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 글쓰기 NIE R&E 신문반 방송반 활동을 지도하면서 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살았던 윤작가가 - 출판기획자로 제2의 인생을 찾아 한국 현대문학사 100년 자료 가운데 수집한 1만여 편의 산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엮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에서 만나는 45편의 산문들.
여러 가지 주제로 - (문인들의)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 (신선한 주제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선명하게 그린) 느낌은 그리움처럼 - 아무튼 산문, (여행자의 기록) 길 위의 인생,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문단이면사, 우리말 바로 쓰기, 예술가의 첫사랑 -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기도 한 저자가 인터넷 오디오 방송으로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 작가의 문장 44편 - 그리고 ‘가족 문단사’를 실었다.

강경애(소설가) 계용묵(소설가) 고유섭(미술사학자) 기형도(시인) 김교신(교육자,종교인,독립유공자) 김기림(시인) 김남천(소설가,문학비평가) 김병모(고고학자) 김유정(소설가) 김이듬(시인,소설가) 김중혁(소설가) 나도향(소설가) 노자영(시인) 도종환(시인) 백신애(소설가) 법정(수필가,스님) 서명숙(언론인) 설의식(언론인) 성석제(시인,소설가) 손봉호(기독교철학자) 손영목(소설가) 심훈(시인,소설가,영화인,독립운동가) 윤광준(사진작가) 윤작가(출판기획자) 이동순(시인) 이문재(시인) 이병률(시인) 이상(시인,소설가) 이어령(소설가,언론인,문학평론가) 이유식(문학평론가) 이육사(시인,소설가,독립운동가) 이윤기(소설가,번역가) 이익섭(국문학자) 이재무(시인) 이정록(시인) 이태준(소설가) 전혜린(번역가,수필가) 정지용(시인) 최서해(소설가) 최인석(소설가,희곡작가) 최인호(소설가) 하종강(노동운동가) 함민복(시인) 홍사용(시인,희곡작가) 황동규(시인,영문학자)

# 1장 : 시처럼 산문

‘책은 빌리는 사람도 빌려 가는 사람도 모두 도적’이라는 금언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책에 관한 빼어난 글인 이태준 소설가의 〈책〉,
32세로 너무 빨리 떠났지만 짧은 생애 속에서도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백신애 소설가의 〈자수〉,
평양냉면에 대하여 이토록 맛있게 쓸 수 있는 있단 말인가! 새삼 감탄하며 입맛을 다시며 읽게 만드는 소설가 김남천의 맛있는 글 〈냉면〉,
30년대 문단에서 필명 때문에 한때 여류작가 특집판에 이름을 올린 진기한 삽화도 갖고 있는 나도향 시인의 필명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 〈별호(別號)〉,
시인 소설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 심훈이 작고 1년 전에 쓴 서정적인 산문 〈7월의 바다〉,
《청록파》 시인을 배출한 《문장》지 시 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지용 시인의 아름다운 글 〈산문〉,
30년대 《구인회》 멤버이자 모더니즘 문예 이론가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문학평론가 김기림 시인의 산문 〈가을의 누이〉,
경춘선 청춘열차에 ‘김유정역’이라는 고유명사를 심은 단편소설의 대가 김유정 소설가의 애교 넘치는 글 〈길〉,
단편 〈부자〉, 〈지하촌〉, 장편 『인간문제』 등을 발표하여 30년대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고히 다진 강경애 소설가의 서정적인 산문 〈내가 좋아하는 솔〉,
본명은 최학송, 아호는 서해 - 제도권 교육 졸업장 학력 없이 독학으로 한국 문학사에 자기 이름을 새긴 카프파 경향문학의 대가 최서해의 애절한 가족 체험 산문 〈담요〉,
《백조》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고 극단 ‘토월회'에 참여하며 창작희곡을 무대에 올리고 연극 활동에 정열을 바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한 전천후 작가 홍사용 시인이 망자가 된 친구 어머님의 장례를 다녀와서 인생무상에 대하여 쓴 성찰의 글 〈궂은비〉,
문예지 《장미촌》, 《백조》 창간 동인 출신으로 문단에 나와 시인으로 소설가로, 30년대 출판 시장을 말 그대로 쥐고 흔들었던 서정적 서간체 수필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노자영 시인의 〈계변정화〉,
요즘에는 정치가로 신념을 펼치고 있는 도종환 시인의 책에 대한 오랜 마음의 빚짐을 그리고 있는 〈헌책방 순례〉,
제2의 고향 강화도에서 글쓰기와 삶을 작품으로 잘 그리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아름다운 산문 〈그냥 내버려 둬 옥수수들이 다 알아서 일어나〉,
분명 헤어진 것 같았는데 (확실히 정리되었다고 믿었는데, 단지) 그녀의 글씨체 같은 간판을 보자 가슴이 뛰어 허둥대는 영원한 청춘 이병률 시인의 가슴 서늘한 산문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라면으로 느림을 서술하는 유쾌한 필체, 라면에 대한 설득력 있는 산문 - 이문재 시인의 〈누가 라면을 함부로 말하는가〉,
당혹스러움을 당당히 느끼게 하는 시와 소설을 남긴 이상의 또 다른 매력은 권태로운(?) 산문 스타일인데 역시나 읽을수록 당기는 맛은 /강/추/! 이상의 〈조춘점묘(早春點描),

# 2장 :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

서슬 퍼런 1942년 일제 강점기 《성서조선》 잡지 권두언에 실어 잡지 폐간 파동을 겪은 김교신의 〈조와(弔蛙)〉,
올림픽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진 기사를 실어 무기 정간을 당한 《D일보》, 쫓겨난 기자들 - 당시 편집국장이던 언론인 설의식이 1926년 일제에 의해 헐리게 된 광화문을 위한 애절한 세레나데. 현대사 100년 100대 명문장으로 뽑혔던 〈헐려 짓는 광화문〉,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되어 전설이 된 ‘선죽교’는 그 사건 5년 전에 이미 ‘선죽교’로 불리고 있었다는 역사적 고증을 살핀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선죽교 변〉,
중국 상해에서 공부할 때나 독립운동을 할 때도 한시도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애장품 - 비취 인장을 독립운동 거사로 떠나는 독립운동사관학교인 조선혁명군 군사정치 간부학교 제1기 동창 윤세주(1901~1942)에게 이별의 정표로 건네고 건넨 후 친구와 분신 같은 도장을 못 잊어하는 이육사 시인의 〈연인기(戀印記)〉,
제주 올레길을 만든 이야기 - 언론인 서명숙의 〈행복한 걷기〉,
세상에서 활자로 된 책 2권만을 꼽으라면 불경 『화엄경』과 『어린 왕자』를 꼽으리라는 법정 스님의 〈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 1971년에 발표한 이 아름다운 글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 ‘어린 왕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어린 왕자’ 감상문의 전설(傳說) - 신호탄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아는지 …….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석좌교수의 혜안 깊은 직관적인 안목으로 성찰한 글은 보는(?) 순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산문 〈괜찮다 : 관계의 문화〉,
번역가로 대한민국 독서계에 두꺼운 팬층을 갖고 있던 이윤기 소설가의 번역하는 자세의 글 〈잘 익은말을 찾아서〉,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언어 6,000여 개 가운데 대한민국 한글이 당당하게 12위이고 우리나라는 언어 강국이라는 확실한 자부심을 불러주는 국문학자 이익섭 교수의 〈한국어의 멸종위기설〉
대중소설로 쌓은 인기를 한민족의 진취성과 능동적인 삶을 그린 역사소설 작가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긴 최인호 소설가의 매력적인 산문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 3장 :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

29년의 짧은 시절을 시인으로 살다가 떠난 기형도(1960~1989)시인이 남긴 매력적인 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 : 제3 묘원에서 만난 사람〉은, 1988년 8월 2일 홀로 여행을 떠나 대구에서 부산으로 광주로 해서 5.18 민주화 묘지로 발길을 돌려 만난 - 뜨겁게 살다 민주 열사로 역사에 이름을 새긴 박관현(1953~1982) 열사의 묘지를 순례하다가 우연히 만난 이한열 (1966~1987) 열사의 어머니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눈 체험은 애틋한 마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1960~80년대 문자 해독한 수준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통과의례 같았던 뮌헨 슈바빙 거리를 살았던 수필가 전혜린과 독일어로 발표한 명작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추억담 〈이미륵 씨의 무덤을 찾아서〉,
1965년 네덜란드로 유학 중에 다닌 유럽 배낭여행에서 동방의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고 설움 받았던 체험을 그린 여행기 손봉호 교수의 〈약소국민의 여권〉,
1974년 영국 유학 중 음악의 고장 비엔나로 친구와 떠난 김병모 고고학자의 유쾌한 여행기 〈비엔나로 가는 밤기차〉.
요리사 2명과 이탈리아로 떠난 김중혁 소설가의 맛이(?) 부러운 여행기 〈여행의 무게〉.

# 4장 : 제발 그 음악은, 음악 세상

음악에 대해 남다른 안목과 명성을 가진 영문학자 황동규 시인의 음악사랑 〈음악이 있는 삶〉,
자신만의 귀에 맞는 음악을 찾아 방랑하는 오디오 기기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 글 쓰는 사진작가 윤광준의 〈오디오에 미친 사람들, 오디오 파일〉,
중학생 록밴드 기타리스트 아들과 의기투합하여 떠난 송도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발 체험과 노이즈 풍성한 ‘백 판’ 세대 회고담 하종강 교수의 〈딥 퍼플을 만나다〉.
1979년 여름 대구의 다운타운가 음악다방 풍경과 영화 《스팅》의 폴 뉴먼을 닮은 친구 DJ의 서울 구로공단 음악 박스 접수기, 성석제 소설가의 〈그 음악을 제발 부탁해요, DJ〉.

# 5장 : 문단 이면사

한국 문단 이면사의 다양한 기록을 풍부하게 창고에 적재했다가 흥미 있는 필체로 그리고 있는 이유식 문학평론가의 〈일찍 데뷔한 조숙한 문인들〉,
제자 사랑 이야기 많기로 소문난 스승 김동리 소설가에게 추운 정초 날 세배드리러 가려다가 꾀가 나 벌어진 에피소드를 한 폭의 그림처럼 훈훈하고 정감 있게 그리고 있는 손영목 소설가의 〈세배객 인명록〉,
꼭 그 소설처럼 … 잔잔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 온몸에 덮여오는 소름과 함께 둔중하게 머리를 압박하여 오는 깨달음, 그런 것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3 여름방학에 강원도 봉평을 찾아 떠난 최인석 소설가의 〈메밀꽃과 A.T.T.〉
현대문학사 100년 동안 문인 가운데 ‘모든 장르(?) 노래 부르기’ 최고의 가객(歌客)(?) 겨루기 노래 부르기 내기 - 중앙(?)에서 가왕 J(?)를 물리친 여세로 1980년대 청주로 쳐들어가 대격돌을 벌이는 1박 2일 대회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는 이동순 시인의 〈김지하 시인과의 노래 시합〉.
한국 문학사의 저력은 ‘가족’이라는 든든한 ‘언덕’ 덕분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계로 보여주는 - 부부 문인 63팀, 부자(父子) 문인 17팀, 부녀 문인 16팀, 모자 문인 2팀, 모녀 문인 6팀, 형제자매 문인 32팀, 남매 문인 6팀, 장인 장모 사위 6팀, 시아버지 며느리 3팀, 조손(祖孫) 문인 3팀, 동서지간 2팀, 사돈 관계 3팀 - 이들의 명단과 활동 장르 연관성을 찾아 기록한 윤작가의 〈가족 문단사〉.

문인 5인 대가족은 소설가 박화성,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김동리, 시인 송동균 집안이 첫 손에 꼽혔고, 문인 4인 가족은 시인 김동환, 소설가 주요섭, 시인 서정주, 시인 박주일, 소설가 한승원, 시인 김종해, 시인 장지홍, 시인 김성수, 시인 윤석산 집안이다.
문인 3인 가족은 시인 조종현 시인 이설주, 소설가 장덕조, 소설가 황순원, 시인 윤동주, 소설가 박경리, 시인 신동엽, 시인 김대규, 소설가 홍성원 가족이다.
가족 안에 ‘한국 문단사’에 기록될 문인이 1인이라도 기쁨인데 그 이상 ‘문인 대가족’ 통계는 작가 본인이나 바라보는 독자에게 모두 영광이고 감탄이다.
- 윤작가 〈가족 문단사〉 중 -


# 6장 : 예술가의 첫사랑

학창 시절 국어 시간, 언제 들어도 귀가 솔깃하던 소설가의 사랑과 시인의 사랑 이야기 - 사랑도 역시 우리 일반(?) 사람 사는 세상처럼 가슴 저리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가의 첫사랑’ 코너의 절실한 사랑 노래, 시인 이재무의 〈혼자서만 꺼내 보는 내 마음 벽장 속의 이야기〉,
지나간 인연을 슬프지만 발랄한 언어로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읽고 난 뒤 (추억 같은 사랑이 마음에 밟혀) 며칠 동안 내내 김광석의 동명 노래를 무한 반복 듣게 만들고야 마는 김이듬 시인의 느낌 서늘한 발라드 〈잊어야 한다는 이름으로〉.
그래도 이 책의 대미는 성공한 사랑 이야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어 이정록 시인의 이쁜 사랑 이야기를 골랐는데,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일 년 전보다 나는 깨끗해져 있었다. 시간과 술의 힘이었다. 하지만 자목련을 바라보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입영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입대까지는 석 달이 남아 있었다. 내가 왜 하얀 목련이 피고 짐을 몰랐겠는가. 너와 함께 이 세상을 건너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입영통지서를 디밀어야 하는 내 자신이 싫었기 때문에, 목련이 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었다.
- 이정록 〈반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구른다〉 중 -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를 한자리에 묶은 앤솔로지 『느낌 그게 뭔데, 문장』은 외로운 이 시대에 따뜻한 느낌과 가슴 서늘한 감동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회원리뷰 (0건)

매주 10건의 우수리뷰를 선정하여 YES상품권 3만원을 드립니다.
3,000원 이상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일반회원 300원, 마니아회원 6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리뷰쓰기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1,000원 이상 구매 후 한줄평 작성 시 일반회원 50원, 마니아회원 100원의 YES포인트를 드립니다.
(CD/LP, DVD/Blu-ray, 패션 및 판매금지 상품, 예스24 앱스토어 상품 제외)
0/50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YES24 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예스이십사(주)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대표 : 김석환   개인정보보호책임자 : 권민석 yes24help@yes24.com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고객만족센터 T.1544-3800
상담 전화번호
  • 중고샵 문의 1566-4295
  • 영화예매 문의 1544-7758
  • 공연예매 문의 1544-6399
1:1 문의하기 자주 묻는 질문 상담시간 안내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3